2018년 8월호

20대 리포트

‘고객센터 상담직원’ 괜찮은 직업일까?

“청년실업난 ‘대체 일자리’로 적당”

  • 입력2018-08-05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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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 190만 원…살아 있는 공부”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감정노동 여전”

    요즘 많은 젊은이가 직장을 구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5월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10.5%로 역대 최악을 기록했다. 이 때문인지 진입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한 각 기업체 ‘고객센터 상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필자는 몇몇 회사에서 고객센터 상담직원으로 근무하는 20대 남녀 8명을 인터뷰해 이 직종 전반에 대해 알아봤다. 이 인터뷰엔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 등이 활용됐다.

    월 190만 원 받는 정규직

    이들에 따르면, 고객센터 상담직은 대체로 구직 희망자의 학력·경력·성별을 따지지 않는다. 전화로 한국어 대화가 가능하고, 고객 서비스 마인드를 갖고 있고, PC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정도가 자격 요건이다. 

    K은행 고객센터 상담사원의 경우 상담 업무를 처리하는 별도 회사의 정규직 형태로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주5일 근무하면서 평균 190만~200만 원의 급여를 받는다. 이 중 고정급은 163만~193만 원 정도이고 인센티브가 50만 원 정도다. 주 업무는 이 은행이 발행한 신용카드에 관한 고객 문의에 응대하는 일이다. 

    한 음식배달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고객센터에서 8개월째 근무 중인 권모(여·21) 씨는 “원래 나는 고객센터 같은 곳에 전화를 한 번도 건 적 없고 전화로 음식 배달을 주문한 적도 없다. 그러나 이 일에 잘 적응하고 있다. 고객들과의 전화에 별 어려움을 못 느낀다. 보람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에 응한 상담직원들은 대체로 다른 목표를 갖고 준비하는 동안 생활비 등을 벌기 위해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숙박 앱 고객센터에서 9개월째 근무하고 있는 신모(여·21) 씨는 “저녁 6시부터 새벽 3시까지 일하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일과 시간엔 더 나은 직업을 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씨는 “금융기관의 고객센터는 업무가 딱딱할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숙박 앱 고객센터는 더 편안한 느낌을 준다”고 했다. “평생 직장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고 다른 꿈이 있기 때문에 오래 할 생각은 없다”고 한다. 



    몇몇 상담직원은 ‘청년실업난 시대의 대체 일자리로 적당하다’고 생각해 일을 시작했다. 숙박 앱 고객센터에서 근무 중인 최모(여·28) 씨는 “구직활동을 하다 상담직원 구인 공고를 보고 나와 잘 맞을 같아 지원했다”고 말했다. 

    “평상시 광고를 자주 접해 익숙하고 이전에도 서비스업을 해본 적이 있다. 오후 1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일하는데, 비교적 단순한 업무여서 어려움이 별로 없고 분위기도 자유로운 것 같다.”

    “정규직 구하기 뜻대로 안 돼서…”

    상담직원들은 업무가 복잡하지 않아 업무에 따르는 스트레스가 적은 점이 좋다고 말한다. 또한 언론에 알려진 것과 달리 몇몇 분야 고객센터에선 감정노동이 그리 심각한 편이 아니라고 전한다. 

    배달 앱 고객센터에서 근무한 권모(여·20) 씨는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는 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상담직 일이라도 해보고 싶어 시작했다. 금세 업무에 익숙해지고 안내하기가 쉬워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달 앱 고객센터의 이모(27) 씨는 대면 서비스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전문적으로 일하고 싶어 이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씨의 근무연수는 2년 9개월로 짧지 않다. 유통 분야 고객을 대하는 일이 익숙해져 업무에 만족감을 느낀다고 한다. 

    한 소셜커머스(SNS를 활용한 전자상거래) 업체의 고객센터에 근무하는 이모(여·26) 씨는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과 함께 일해보고 싶어서 지원했다고 한다. 18개월째 일하는 중인데, 업무에 특별한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이씨는 “한 지인이 ‘고객센터에 모여 일하는 것이 의외로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고 추천했는데, 실제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대학 졸업 후 취업에 계속 실패했다고 한다.

    “살아 있는 공부”

    고객센터 상담직원들이 취재에 응답한 내용.

    고객센터 상담직원들이 취재에 응답한 내용.

    최모(26) 씨는 부친의 일을 돕다가 그만두고 소셜커머스 고객센터에 지원했다. 평소 인터넷 쇼핑을 즐기던 자신의 취미를 살린 것. 19개월째 무탈하게 근무 중이라고 한다. 소셜커머스 분야 고객센터의 상담직원들은 대체로 첨단 전자상거래 분야의 최근 동향과 고객들의 소비 패턴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어 살아 있는 공부가 된다고 말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픈 날엔 참고 견뎌라. 즐거운 날은 오고야 말리니….” 고객센터 상담직원들은 푸시킨의 이 시를 즐겨 말한다. 그만큼 감정노동이 여전히 없지 않다는 의미다. 

    숙박 앱 고객센터의 상담직원 신씨는 “고객이 ‘수고하십니다’ ‘고생이 많으세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해주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나 심하게 불평하는 고객을 상대해야 할 때도 있다. 웬만해선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는 친구들에게 주로 추천할 것”이라고 말했다. 

    “날씨가 안 좋을 때 우울해진다. 숙박앱도 날씨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태풍, 폭우, 비행기 결항 등으로 취소나 환불 문의가 많아지면 아무래도 일하기 힘들어진다.” 

    소셜커머스 고객센터의 상담직원인 최모(여·28) 씨는 일부 고객들이 자신의 구매 취소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내용을 안내받고 나서 사무실로 찾아오겠다면서 위협적으로 말할 때 당황스럽다고 했다. 반면, 고객의 요청을 정확히 처리해 고객으로부터 감사 인사를 들을 땐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최씨는 “고객들과의 사이에서 특이한 일이 자주 일어나 재미도 있다. 주변에 한번쯤 해볼 만하다고 추천할 수 있다”고 했다. 

    배달 앱의 권씨는 “처음 음식 배달을 주문하는 것이라 헤매는 고객과 통화하면서 주문이 완료될 때까지 안내한 일이 뿌듯한 기억으로 남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객이 안 되는 것을 되게 해달라고 하거나 욕설을 내뱉을 땐 이렇게까지 해서 돈을 벌어야 하나 싶어 슬퍼진다고도 했다. 이럴 땐 다른 고객과 통화하면서 마음을 진정시킨 뒤 퇴근 후 동료들과 가볍게 술 한잔한다고 한다. 그녀는 “이젠 적성에 맞아 다른 일을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옥상으로 올라가”

    소셜커머스 업체의 이씨는 “고객센터 입사 1년 후 무기력해 있다가 다시 마음을 잡고 일해 성과급 인센티브 1등을 했을 때가 가장 기뻤다”고 했다. 그러나 “고객 불편 사항에 대해 최대한 안내했으나 고객이 감정적으로 말하거나 상담직을 비하할 땐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옥상에 올라가 바람을 쐰다”고 한다. 이씨는 “일에 지칠 때마다 이직을 고민한다”고 말했다. 

    배달 앱 고객센터의 이씨는 “업무 과정에서 즐거운 일이 적다”고 했다. “고객이 자신의 말을 무시하거나 자신에게 화를 내면 속이 상한다”고 한다. 이후 친절한 고객을 만나 응원의 말을 들으면 다시 마음이 풀린다는 것. “요즘엔 친절한 고객이 더 많으며 고객을 성심껏 대하면 자연스럽게 성과급으로 돌아온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소셜커머스 고객센터의 최씨는 고객이 “가정교육을 어떤 식으로 받았냐?”라고 말했을 때 속이 상했다고 술회한다. 또한 같이 입사한 동기들이 우르르 퇴사했을 때도 슬펐다. 그래서인지 그는 “주변에 상담 업무를 추천하고 싶진 않다”고 했다. 그는 “말을 함부로 하는 고객을 응대할 때 이직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반면, 실적을 내 성과급을 많이 받을 땐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필자가 접한 이들 20대 고객센터 상담직원들은 청년실업대란이라는 현실 속에서 언젠가 올지 모를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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