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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망한다 의리와 신뢰의 동양을”

뤼순에서 만난 청년 안중근과 21세기 한·중·일

  • 뤼순=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나는 소망한다 의리와 신뢰의 동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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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월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날이다. 올해로 의거 106주년을 맞았다. 중국은 안중근을 상징으로 삼아 대일항쟁기의 환난지교를 강조하며 한국을 미일동맹과 떼어놓으려 한다. 미국은 ‘전쟁할 수 있는 일본’을 환영하면서 일본의 군사력으로 중국을 견제하려 한다. 일본은 유사시 자위대의 북한 출병도 언급했다. 안중근은 삶을 마감하며 이렇게 말했다. “자연의 형세를 돌아보지 않고 이웃 나라를 해치는 자는 독부(獨夫)의 판단을 기필코 면치 못할 것이다.”
“나는 소망한다 의리와 신뢰의 동양을”

안중근은 1910년 3월 26일 뤼순 감옥에서 순국했다.

①9월 18일 중국 랴오둥(遼東)성 뤼순(旅順)의 203고지에서 내려다본 바다는 쇠처럼 무거웠다. 이곳은 러일전쟁 격전지다. 뤼순항이 내려다보이는 랴오둥반도의 끝.

러시아와 일본은 1904~05년 한반도, 만주 지배권을 놓고 총칼을 겨눴다. 1904년 2월 8일 일본군이 뤼순항에 주둔한 러시아 함대를 타격했다. 203고지를 공격하면서 손실이 컸으나 1905년 1월 공략에 성공했다. 석 달 후(1905년 4월) 러시아 발틱 함대가 대한해협에서 도고 헤이하치로의 연합함대에 격파되면서 일본이 승리한다.

1905년 7월 러일전쟁 종전을 앞두고 일본은 미국과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어 한반도 지배를 보장받는다. 그러고는 대한제국을 강압해 외교권 박탈 및 통감부 설치가 골자인 을사늑약을 강제한다(1905년 11월). 이듬해 3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초대 통감으로 부임해 병탄(倂呑)에 나선다. 경술국치(庚戌國恥)일은 1910년 8월 29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8월 14일 종전 70년 담화에서 111년 전 발발해 동아시아의 운명을 가른 러시아와의 전쟁을 이렇게 규정했다.

“일러전쟁은 식민지 지배하에 있던 많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인에게 용기를 줬다.”

“양국 인민 목숨 바쳐 도왔다”

②뤼순은 중국에 치욕의 땅이다. 중국은 1894~95년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후 랴오둥반도와 타이완을 일본에 할양했다. 러시아, 프랑스, 독일이 개입해(삼국 간섭) 랴오둥반도를 청(淸)에 반환하라고 일본에 요구했고, 일본이 굴복해 일제 통치는 7개월 만에 끝난다.

1898년 3월 독일군이 자오저우만(膠州灣)에 상륙했으며, 프랑스와 영국도 군대를 파견해 조차지(租借地)를 요구했다. 러시아는 만주 철도 부설권을 획득한 후 랴오둥반도를 조차했다(1898년). 동아시아의 전통 격인 중국 중심 세계질서(Sino-centric world order)가 종지부를 찍고, 중국의 영토는 갈기갈기 찢겨나간다.

러시아는 1898년부터 러일전쟁에서 패배할 때까지 랴오둥반도를 지배했으며, 일제는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뤼순 일대를 관동주(關東州)라고 이름 짓고 관동도독부와 관동군을 창설했다. 일제는 1945년까지 관동주를 식민지로 지배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4년 7월 4일 서울대 특강에서 한중 간 우호관계를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20세기 상반기 일본 군국주의자는 중국과 한국에 대한 야만적 침략전쟁을 강행해 한반도를 병탄하고 중국 국토의 절반을 강점해 양국이 모두 큰 고난을 겪었다. 대일(對日) 전쟁이 가장 치열할 때 양국 인민은 목숨을 바쳐 서로를 도와줬다.”



③안중근(1879~1910) 의사는 뤼순 감옥에서 쓴 자전(自傳)에 이렇게 기록했다.

“일개 조그마한 늙은이가 염치없이 감히 하늘과 땅 사이를 횡행하듯 걸어오고 있었다. 저것이 필시 늙은 도둑 이토일 것이다. 만일 죄 없는 사람을 잘못 쏘아 다치게 했다면 반드시 잘된 일은 아니라, 잠깐 주춤하며 생각하는 사이에 러시아 헌병에게 붙잡혔다. 이때가 바로 1909년 9월 13일(양력 10월 26일) 상오 9시 반쯤이었다.”

안중근이 쏜 총탄이 겨냥한 ‘일개 조그마한 늙은이’가 이토 히로부미다. 하얼빈역에서 거사에 성공한 후 체포돼 뤼순으로 끌려온 안중근은 ‘일본관동법원’ 법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토의 죄상은 천지신명과 사람이 모두 다 아는 일이다. 더구나 나는 개인으로 사람을 죽인 범죄인이 아니다. 나는 대한민국 의병 참모중장의 의무로, 임무를 띠고 하얼빈에 이르러 전쟁을 일으켜 습격한 뒤 포로가 되어 이곳에 온 것이다. 뤼순 지방재판소와는 전연 관계가 없는 일이니, 만국공법과 국제공법으로써 판결하는 것이 옳다.”

안중근은 뤼순 감옥에서 ‘동양 평화론’을 집필하다 끝을 보지 못하고 서거했다. 일제는 ‘동양 평화론’ 저술을 완성할 때까지 사형 집행을 미루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나는 소망한다 의리와 신뢰의 동양을”

뼈는 바스라지고 두개골만 남은 백골과 뤼순감옥의 암방(暗房). 송홍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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