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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에 길을 묻다

부끄러움을 모르면 못할 짓이 없다

혼용무도(昏庸無道)의 정치

  • 김영수 | 사학자, 중국 史記 전문가

부끄러움을 모르면 못할 짓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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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육림, 황음무도, 과대망상

1. 은나라 마지막 군주 주(紂). 주왕은 하나라의 마지막 임금 걸(桀)과 함께 폭군의 대명사인 ‘걸주’로 불리는데, 주지육림(酒池肉林)과 포락(炮烙, 불에 달궈 지지는 형벌)이라는 황음무도와 포악한 통치를 상징하는 용어들을 창조했다.
2. 수나라를 멸망으로 이끈 양제(煬帝). 그 역시 사치와 향락, 포악한 통치의 대명사로 역사에 오명을 남겼다. 양제는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잘났다면서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과대망상증을 보인 군주로도 유명하다. 술에 취하면 늘 거울을 보며 “이 좋은 머리를 누가 와서 자를까나”라며 스스로를 조롱했으며, 618년 난을 일으킨 측근 우문화급에게 붙잡히고도 “내가 무슨 죄가 있어 이렇게 대하느냐”며 악을 쓰다가 목 매달려 죽었다. 그때 그의 나이 쉰, 황제 노릇 15년 만이었다.
3. 진나라를 멸망으로 이끈 2세 호해(胡亥). 진시황의 작은아들인 그는 측근 조고(趙高)의 정변으로 황제 자리에 올랐으나 조고의 꼭두각시가 돼 국정을 문란케 하다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나아가 최초의 통일제국을 망쳤다.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유명한 고사성어를 만들어낸 당사자이기도 하다.
4. 진(晉) 혜제(惠帝). 혜제는 순진하다 못해 어리석은 군주의 대명사로 꼽힌다. 당시 기근이 들어 백성들이 굶어죽는 사태가 속출해 하루가 멀다 하고 보고가 올라오자 혜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배를 채울 곡식이 없다면 어째서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루이 16세의 왕비로 국고를 탕진하고 민중을 탄압하다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마리 앙투아네트와 어쩌면 그리도 판박이일까.
5. 명나라 황제 세종(世宗), 즉 가정제(嘉靖帝)도 혼용무도의 반열에 올랐다. 재위기간 내내 황음무도한 생활에  빠져 살았는데, 그 뒤에는 간신배들의 농락이 있었다. 미신에 심취했고, 불로장생을 추구한답시고 단약 등 약물에 중독됐다. 이 때문에 통치계급 내부의 모순은 가속화하고 국력은 갈수록 쇠퇴했다.
6. 청나라 황제 함풍제(咸豊帝)는 중국이 열강에 능욕을 당하고 내분에 시달리는데도 나랏일은 뒷전이고 여색에만 몰두했다. 2차 아편전쟁이 터지고 영불 연합군이 북경을 공격하자 1860년 서태후와 함께 피서산장으로 도주했는데, 거기서도 자신의 본성을 버리지 못하고 황음무도한 생활에 빠져 살다가 이듬해 병사했다.
7. 진(陳)의 후주(后主) 진숙보(陳叔寶)라는 자는 나라가 뭔지도, 나랏일이 뭔지도 모르는 황제였다. 그저 술과 향락만 알았고, 대대적으로 토목공사를 일으켜 후궁들에게 나눠줬다. 진숙보의 곁엔 영혼이 썩어빠진 지식인들이 달라붙어 그의 어리석음을 부추겼다. 훗날 수나라 군대가 도성 건강(建康)을 함락한 뒤 그를 찾았을 때 그는 아끼는 후궁 둘과 우물 속에 숨어 있었다고 한다.
8. 명나라 희종(熹宗) 주유교(朱由校)는 특별한 취향 때문에 나라를 망친 황제다. 그는 별스럽게도 목수 일에 심취해 직접 집을 지을 정도로 뛰어난 솜씨를 발휘했는데, 이 때문에 국사를 돌보지 않고 환관 위충현(魏忠賢) 등에게 맡겨 나라를 망쳤다.
9. 한나라 성제(成帝) 유오(劉鰲)는 서한 말기 사회가 극도로 혼란한 상황에서도 나랏일을 돌보기는커녕 조비연(趙飛燕), 조합덕(趙合德) 자매에게 빠져 황음무도한 생활을 일삼다가 병이 골수에까지 침투해 비참하게 죽었다. 이후 권력은 왕망(王莽)의 손에 들어갔고, 결국 한나라는 왕망의 신(新)에게 망했다.
10. 임진왜란 때 구원병을 보낸 명나라 신종(神宗) 주익균(朱翊钧), 즉 만력제(萬曆帝)는 장장 48년을 재위하는 동안 30년 넘게 조정 회의에 나가지 않은 신기록을 남긴 혼군이다. 허구한 날 후궁에 틀어박혀 방중술(房中術) 등에 심취해 나라를 거덜냈다. 훗날 ‘명사(明史)’에선 그런 그를 두고 “명나라는 사실 만력제 때 망했다”고 평했다.
이 밖에도 숱한 제왕이 혼군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리더의 자질 하나가 나라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제왕체제의 한계와 문제점이 이들에게서 고스란히 확인된다.

부끄러움을 모르면 못할 짓이 없다


귀 막은 통치자들

부끄러움을 모르면 못할 짓이 없다

명나라 신종 주익균은 정치에 환멸을 느꼈는지 태후가 죽은 뒤 정치를 완전히 멀리한 채 약물중독 등 혼음(混淫) 생활에 탐닉해 나라를 사실상 멸망으로 이끌었다.

혼용무도한 통치자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여러 가지지만 그중에서도 좋은 말이나 충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심각하다. 그들은 스스로를 대단히 똑똑하고 잘났다고 여겼다. 그러다 보니 바른말을 하거나 충고하는 사람에겐 증오심을 품고 박해한 반면, 자신의 말과 판단에 맞장구를 치거나 기분을 맞춰주는 아첨배와 간신들을 총애했다. 간신 정치와 환관 정치라는 왕조체제의 부조리가 이렇게 해서 나타난 것이다.
하나라 마지막 임금 걸은 포악한 정치의 대명사였다. 이윤(伊尹)이 “좋은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나라가 위험해질 수 있다”고 경고하자 걸은 “백성에게 군주는 하늘의 태양과 같은 것이다. 태양이 없어져야 나도 없어지는 것”이라며 화를 냈다. 그러자 백성들은 “태양아, 빨리 없어져라. 우리가 너와 함께 망하련다”는 내용의 노래를 불러 그가 죽기를 기원했다.
상나라 마지막 임금 주도 걸에게 뒤지지 않았다. 주 임금은 자질이 형편없는 군주는 아니었다. ‘사기’에 따르면 그는 “지혜는 남의 말을 듣지 않을 정도로 충분했고, 말솜씨는 잘못을 감추고도 남았다”고 한다. 그런데 신하들앞에서 자기 능력 뽐내기를 즐겼고, 자신의 명성이 천하의 누구보다 높다고 생각해 모든 이를 자기 아래로 여겼다. 포락이라는 혹형으로 충직한 신하들과 백성을 해치자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그러자 주 임금은 형벌을더 강화했다. 서백 창(주 문왕)이 이런 상황이 안타까워 한숨을 쉬자 숭후호라는 간신배가 이를 고자질했고, 주 임금은 서백을 유리성에 감금했다.
그는 자신의 비위를 잘 맞추는 아부꾼이자 사리사욕을 밝히는 비중이란 자를 중용했고, 남의 비리를 캐내 헐뜯길 좋아하는 오래라는 자를 옆에 두고 아꼈다. 이 때문에 선량한 신하들과 백성의 마음은 더욱 멀어졌고, 끝내는 주 무왕을 따르는 수많은 제후의 공격을 받아 분신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대신 조이(祖伊)가 하늘이 장차 상나라를 멸망시키려 한다고 경고하면서 백성도 상나라의 멸망을 간절히 바란다는 여론을 전달하자 주 임금은 “나는 천명을 받고 태어난 사람이다. 보통 사람과 다른 사람인데 무엇을 두려워하랴”라며 딱 잘라 무시했다. 그러자 조이는 “좋은 말로는 안 되겠다(不可諫矣)”라는 말로 주의 비참한 몰락을 예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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