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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데이트폭력과의 전쟁’ 나선 김헌기 경찰청 수사기획관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데이트폭력과의 전쟁’ 나선 김헌기 경찰청 수사기획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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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요 범행 동기는 ‘이별 통보’
  • ● ‘암수(暗數)범죄’의 한계…재범률 76.5%
  • ● 가정폭력은 데이트폭력의 씨앗
  • ● 근절될 때까지 엄정한 사법처리
‘데이트폭력과의 전쟁’ 나선 김헌기 경찰청 수사기획관

이상윤 객원기자

‘데이트폭력과의 전쟁’ 나선 김헌기 경찰청 수사기획관
2월 23일 전남 화순군의 하천 옆 갈대밭.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김모(18) 양이 목 졸려 숨진 채 발견됐다. 김양이 집에 안 들어왔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된 지 하루 만이다. 피의자는 동갑내기 남자친구 김모 군. 김군은 김양이 임신 사실을 부모에게 알리겠다고 하자 이를 숨기려 김양을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데이트폭력과의 전쟁’ 나선 김헌기 경찰청 수사기획관


3월 5일 서울 노원구 상계동 임모(35·여) 씨의 집에 몰래 침입한 장모(38) 씨. 장씨는 잠자던 임씨와 그의 남편 김모(40) 씨를 흉기로 찔렀다. 김씨는 등을 크게 다쳐 숨졌고 손목 부위를 찔린 임씨는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경찰 조사 결과 장씨는 내연관계인 임씨가 전날 자신의 전화와 문자메시지에 답하지 않은 데 격분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데이트폭력(dating violence)과의 전쟁’이 한창이다. 경찰이 데이트폭력을 엄정한 처벌과 사전예방이 절실한 중대 범죄로 간주하고 근절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갖가지 범죄 유형과 사례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경찰청은 전국 경찰서에 피해자 보호를 중심으로 한 대응체제를 구축하는 ‘연인 간 폭력(이하 데이트폭력) 근절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2월 3일부터 3월 2일까지를 데이트폭력 집중 신고기간으로 운영했다. 112와 인터넷, 스마트폰 앱, 경찰서 방문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한 신고로 익명성을 보장했고, 가해자의 상습성이 인정되고 2차 피해가 우려될 땐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삼았다. 필요한 경우 접근·연락 금지 등 적극적인 피해자 신변보호 조치를 취하는 등 입체적, 종합적 수사를 폈다.
그 결과 가해자 868명이 검거되고, 이 가운데 61명이 구속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검거인원 582명보다 49.1%나 증가한 수치. 이번 집중 신고기간에 접수된 데이트폭력 범죄는 1279건. 피해 유형별로는 폭행·상해가 61.9%, 체포·감금·협박 17.4%, 성폭력 5.4% 순으로 나타났다. 살인 및 살인미수는 각 1건씩 발생했다.



협박 문자 1670회

임신 사실을 알린다는 것, 전화를 받지 않는 것. 과연 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만큼 분노할 일일까. 3월 7일 ‘데이트폭력과의 전쟁’을 진두지휘한 김헌기 경찰청 수사기획관(경무관)을 만나 데이트폭력 근절에 나선 까닭, 범죄의 특성, 앞으로의 계획 등을 들었다. 김 기획관은 경찰대 2기 출신으로 경찰청 지능범죄수사과장 및 강력범죄수사과장, 인천지방경찰청 2부장을 거쳐 지난해 12월 경찰청 수사기획관으로 부임했다.
▼ ‘데이트폭력과의 전쟁’에 나선 계기는.
“최근 데이트폭력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피해자 보호 중심의 대응체제를 구축하게 됐다. 강력범죄로 발전할 개연성이 매우 높은 연인관계 전후 갈등을 사건 접수 단계에서부터 관련 부서가 협업해 유기적으로 대응함으로써 피해를 사전 예방하고 피해자를 보호하자는 취지다.”
▼ 데이트폭력의 주된 범행 동기는.
“대개는 이별 통보에 격분해서다. 데이트폭력은 어느 일방의 요구로 연인관계가 끝나면서 상대방이 이별에 동의하지 못할 때 주로 발생한다. 연인관계가 지속되는 중에도 상대방에 대한 강한 집착과 과도한 간섭 등이 원인이 돼 발생하는 공통된 특징을 지닌다.”
61세 이혼남 김모 씨의 사례가 이를 단적으로 방증한다. 김씨는 4세 연하 이혼녀를 1년 3개월간 사귀다 피해 여성이 만나주지 않으며 이별을 요구하자 지난해 9월 13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욕설과 함께 ‘죽이겠다’며 흉기 사진을 전송하는 등 올해 1월 16일까지 1670차례에 걸쳐 협박성 문자를 보냈다가 피해자 신고로 덜미를 잡혔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피해자가) 전화도 안 받고 만나주지 않아 홧김에 협박성 문자를 보낸 것”이라고 했다.
▼ 연인관계의 특성상 알려지지 않는 사건이 많을 것 같다.
“데이트폭력 범죄는 상대적 약자인 여성 피해자가 대다수이고 재범률이 매우 높다. 치안정책연구소가 3월 2일 내놓은 ‘데이트폭력의 실태 및 대응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05~2014년 데이트폭력 범죄자의 평균 재범률이 76.5%나 된다. 그럼에도 피해자들은 중대한 위협을 느낄 정도의 폭력이 발생하기 전엔 개인이 감당할 몫으로 여겨 신고나 도움 요청에 소극적이다.
경찰도 부부가 아닌 남녀 사이의 폭력은 당사자 간 문제로 치부하고 방치해 피해 발생 후에야 사법처리 위주로 해결하는 등 피해 예방 및 피해자 보호에 대한 체계적 대응이 부족했다. 이미 개념이 정립되고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등 행위규제 법령이 명확하며, 현 정부 들어 4대악(惡) 중 하나로 규정해 엄단하는 ‘가정폭력’과 달리 데이트폭력의 경우 살인, 성폭력, 폭행, 상해 등 범죄행위별로 처벌해온 탓이기도 하다.”



불륜 땐 폭력에 더 취약

치안정책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데이트폭력 재범이 장기간에 걸쳐 계속 발생하는 원인은 긍정적 보상, 이타적 망상, 스톡홀름 증후군(Stockholm syndrome)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피해자의 관계지속 심리와 거절에 대한 불안감, 질투·분노 등 불안정성 같은 가해자의 애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긍정적 보상은 관계의존적인 여성일수록 폭력을 당한 이후 가해자로부터 반성, 선물, 용서를 구하는 행동과 같은 긍정적 피드백을 받고 용서해줌으로써 관계를 더 오래 유지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타적 망상은 피해 여성이 조금만 더 노력하고 희생하면 폭력적인 파트너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비합리적 신념을 일컫는다. 스톡홀름 증후군은 자신보다 더 큰 힘을 지닌 가해자가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에서도 그에게 심리적으로 공감하거나 연민과 같은 긍정적 감정을 느끼는 현상을 뜻하는 범죄심리학 용어다.
데이트폭력은 사랑싸움이 아니라 명백한 범죄행위다. 그럼에도 피해자 상당수는 사생활 노출 등을 우려해 신고하기를 주저한다. 심각한 위협을 느낄 정도의 폭력이 발생하기 전엔 피해 사실을 좀처럼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이런 특성은 내연관계에서 더 두드러진다.
미혼의 40대 남성 이모 씨와 기혼인 40대 여성 김모 씨도 그런 경우다. 두 사람은 2014년 10월 음악동호회에서 만나 불륜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김씨가 헤어질 것을 요구하자 이씨는 자신의 집과 모텔에서 몰래 촬영한 성관계 동영상 6개와 욕설이 담긴 문자메시지를 올해 2월 6〜11일 100여 차례에 걸쳐 전송했다가 구속됐다. 다시 만나주지 않으면 성관계 동영상과 불륜 사실을 인터넷과 김씨의 아파트에 게시하고 가족에게도 알리겠다는 협박에 전전긍긍하던 김씨는 2월 11일 TV의 데이트폭력 관련 뉴스를 접하고서야 비로소 경찰서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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