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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기계 같다” “자살 생각 자주 해요”

가출상담창구 초등학생들의 SOS

  • 박은경 |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공부하는 기계 같다” “자살 생각 자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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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출 청소년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 열 살 갓 넘은 초등학생들이 부모의 불화와 이혼, 가족 간 갈등, 방임과 학대에 지쳐 ‘집 탈출’을 시도한다.
  • 가출상담창구 초등학생들의 하소연.
“공부하는 기계 같다”  “자살 생각 자주 해요”

청소년 일시쉼터 ‘한울타리’의 가출 관련 상담. 김성남 기자

#1 초등학교 6학년 은수(가명· 13)는 학교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해 심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 어느 날 가수 오디션을 본 경험을 한 친구에게 자랑 삼아 털어놨다가 “거짓말한다”고 공격당한 뒤 다른 친구들까지 “못생겼고 칙칙하다” “잘난 척한다”며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따돌리자 학교 가는 게 무서워졌다. 더 견디기 힘든 건, 고민 끝에 따돌림당한다는 사실을 학교 선생님과 부모에게 털어놨는데도 자기 말을 믿어주지 않는 것이다.

장녀인 은수는 집에서도 갈등을 겪는다. 사사건건 남동생을 감싸고돌며 편애하는 부모 때문에 동생과 더 자주 싸우게 되고 일방적으로 야단을 맞는 악순환이 지속된다. 은수는 “얼마 전엔 싸우다 동생 얼굴에 살짝 상처를 냈는데 나만 혼났다. 동생이 먼저 잘못했는데 엄마, 아빠는 왜 싸웠는지 묻지도 않았다. 나도 엄마, 아빠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은데 만날 나만 혼낸다. 더는 학교에도 가기 싫고 집에 있고 싶지도 않다”며 가출 청소년 쉼터 상담사에게 하소연했다.

#2 한꺼번에 서너 군데 학원을 다니며 집과 학교, 학원밖에 모르는 초등학교 6학년 혜민(가명·13)은 부모의 기대가 너무 커 괴롭다. 부모는 혜민의 성적이 조금만 떨어져도 학원을 바꾸고, 주말에도 친구들과 놀 시간을 주지 않는다. 오빠는 혜민이 친구와 잠깐만 통화해도 “공부 안 하고 수다 떤다”고 엄마에게 일러바쳐 야단 맞게 한다. 학교와 집이 너무 답답해서 부모를 조른 끝에 발레 학원에 다니게 됐지만, 엄마가 “성적 떨어진다, 학원 끊어라”고 하자 큰 상처를 받았다. 혜민은 자신이 “공부하는 기계 같다”며 학교와 집을 벗어나고 싶어 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채팅을 통해 은수와 상담한 청소년 일시쉼터 상담 전문가는 “또래 아이끼리는 공감대가 끈끈해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통해 비슷한 고민을 가진 아이나 가출한 또래와 연결되면 은수 같은 아이는 실제로 가출을 감행할 위험이 매우 높다”고 했다. 다행히 은수와 혜민은 청소년 쉼터 전문가와 상담한 뒤 가출 대신 부모와의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기로 했다.



낮아지는 가출 연령

부모의 불화와 이혼, 가족 간 갈등, 방임과 학대 등을 이유로 집을 ‘탈출’해 거리를 떠도는 가출 청소년은 한 해 20만 명을 헤아린다. 주 연령층은 10대 중후반의 중·고교생. 하지만 최근 가출 청소년 관련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우려하는 점이 있다. 가출을 감행하는 아이들의 연령이 낮아지는 것이다.

청소년 일시쉼터 ‘한울타리’의 성태봉 소장은 “요즘은 중학교 1, 2학년 때 최초 가출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 가출을 고민하는 시기도 빨라져 최근엔 10~13세 초등학생의 가출 고민 사례가 급격히 늘었다. 이 아이들은 이미 가출한 아이들이 가출 전에 가졌던 문제를 그대로 안고 있다”고 전한다.

여성가족부의 ‘2015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2014년까지 한 번 이상 가출을 경험한 중·고교생은 11.0%. 가출 원인은 가족 간 갈등이 67.8%로 가장 많았고, 9.5%는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6.1%는 가출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공부에 대한 부담감(3.3%), 학교에 다니기 싫어서(3.0%), 가정 경제 형편이 어려워서(0.6%) 가출한 경우도 있다.

열 살을 갓 넘긴 어린아이들이 가출을 고민하는 이유가 청소년의 가출 원인과 유사한지 알아보기 위해 초등학생이 가장 많이 이용한다는 포털 사이트 지식·정보 교류 게시판에 검색어로 ‘가출’을 입력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글이 떴다. 그중 10~13세 초등학생이 올린 글을 추리자 10건에 한두 건 꼴이었다. 최근 일주일간 아이들이 올린 가출 고민 글만 16건이었다.



‘사이버 아웃리치’ 확대

올해 중학교에 가는 여학생이에요. 지난번엔 엄마가 모임에 갔다가 조금 늦게 들어왔다고 아빠가 막 뭐라 하셔서 두 분이 엄청 싸우셨어요. 오늘은 제 생일인데 엄마, 아빠는 관심도 없고 또 싸우셨어요. 요새 두 분이 너무 자주 싸워요. 제가 무서워서 울면 아빠는 엄하게 야단치세요. 싸움을 말리면 “나가라”며 혼을 내고요. 그럴 때마다 진짜 집에 있기 싫고 그냥 가출하고 싶어요. 자살 생각도 여러 번 했어요.

오늘 학교 끝나고 학원 가기 전에 친구 집에 잠깐 가서 숙제하려고 엄마한테 전화해서 물어봤더니 안 된대요. 학원 끝나고 집에 와서 공부하다가 저녁 먹고 잠깐 동영상 보면서 쉬는데 엄마가 갑자기 “내일 시험인데 뭐하느냐”고 화내면서 “쌍○”이라 욕하고 머리채를 확 잡아 이리저리 흔들고 막 때렸어요. 솔직히 그 정도는 유치원 다닐 때부터 늘 있던 일이라 예상했어요. 근데 이번엔 “차라리 낳지 말고 배 속에 있을 때 없애버릴 걸 그랬다. 그냥 집 나가서 뒈져라”고 해서 엄청 충격받았어요. 가출해도 찾지 않을 거래요. 가출할까, 가위로 자살할까 생각했어요. 전 이제 겨우 열세 살인데 이런 생각까지 들 줄은 정말 몰랐어요.

부모가 다른 형제들과 차별해서 가출을 고민하는 아이도 많았다. 부모의 편애는 실제 가출로 이어지기도 한다. 2월 초 대구시 남구 대명동 지하철역 앞에서 엄마, 동생과 외출에 나선 초등학교 4학년 A군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뒤늦게 아이가 없어진 것을 안 엄마는 애타게 아이를 찾다 실패하자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얼마 후 남대명파출소 정성오 경사는 자동차로 20분 거리인 달서구 유천동에서 길을 헤매던 A군을 발견하고 다가가 머리를 껴안았다. “엄마가 너를 애타게 찾고 있다”며 다독거리는 정 경사의 품에 안긴 A군은 눈물을 떨궜다. 엄마가 동생만 챙기고 위하는 것 같아 설움이 폭발한 A군의 가출 소동은 다행히 몇 시간 만에 끝났다.

최근 1~2년 새 인터넷과 SNS를 통해 초등학생의 SOS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가출하고 싶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도와달라”는 아이들의 절절한 호소가 넘쳐난다. 이에 따라 지금껏 가출 청소년 보호에 주로 힘써온 청소년 쉼터 중 서울과 수도권 중심의 일시·이동쉼터 일부에선 가출을 고민하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가출 예방에 진력하고 있다. 오프라인 중심의 ‘현장 아웃리치(outreach)’를 지난해부터는 사이버 공간으로까지 확대한 것. 현장 아웃리치는 가출 청소년이 있는 곳으로 전문가들이 직접 찾아가 상담하고 쉼터 입소를 권유하거나 가정으로 돌려보내는 등의 활동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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