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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기획 | 新東亞 macromill embrain ‘좌절세대’와 중산층

성별이 스펙, ‘성보라’는 없다

더 힘들고 더 불안한 ‘알파걸’들

  • 유설희 | 자유기고가 zorba8251@naver.com

성별이 스펙, ‘성보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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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신입사원 10명 뽑으면 8명은 남자”
  • ● 결혼하고 출산하면 ‘구조조정 1순위’?
  • ● 여성 10%만 “노력하면 중산층 될 수 있다”
성별이 스펙, ‘성보라’는 없다


3월 8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여성의 날’이다. 그날 저녁, 서울 종로구 혜화역 부근 카페에서 김지혜(가명·31) 씨를 만났다. 법조인의 꿈을 품고 이른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법대 중 한 곳에 진학한 재원이다. 그러나 지금은 중견 기업에 다닌다.

“로스쿨에 들어가 변호사가 되려면 1억 원 정도가 필요해요. 부모님이 무리해서 지원해주실 순 있지만, 두 분 노후자금을 생각하면 그래선 안 되겠더라고요. 그렇다고 대출을 받아 로스쿨 가는 건 무모하다 싶었습니다. 변호사가 너무 많아 로펌 취업도 어렵잖아요.”

틀린 말이 아니다. 로스쿨 진학 준비부터 변호사가 되기까지는 평균 4.77년간 총 1억579만 원이 든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천도정·황인태, ‘법조인 선발제도별 법조계 진입 유인 실증분석’, 2014).

결국 김씨는 로스쿨 진학을 접고 취업하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지만 그마저 쉽지 않았다. 그는 “신입사원 10명을 뽑으면 그중 8명은 남자라는 데 공감하지 않는 여성 취업준비생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년 넘는 취업준비생 시절을 보낸 끝에 지금 회사에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고 했다.

김씨는 TV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성보라(류혜영 분)와 대비된다. 반지하 방에 세 들어 사는 집의 큰딸 성보라는 서울대학교에 보란 듯 붙고, 사법시험에도 합격해 법조인의 꿈을 이룬다. 김씨는 이 드라마를 보며 씁쓸했다고 한다.



‘서울대 女’보다 ‘중경외시 男’  

성별이 스펙, ‘성보라’는 없다



“1980~90년대에는 가능한 일이었는지 몰라도 요즘엔 가난한 집 딸이 서울대 간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인 일이에요. 서울대 재학생 중 70%가 강남 출신이라는 통계도 있잖아요. 성보라가 현재를 산다면, 어찌어찌 서울대에 진학했더라도 로스쿨은 못 갔겠죠. 취업도 어려웠을 겁니다. 서울대 졸업한 여자가 중경외시(중앙대·경희대·외국어대·서울시립대) 나온 남자보다 취업이 더 안 되거든요. 피 터지게 공부해 서울대 졸업장을 따더라도 여자라면 별 볼일이 없는 거죠.”

만 20~29세 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한 신동아-엠브레인의 ‘20대 중산층 인식’ 표본 조사 결과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20대 여성의 미래 전망이 20대 남성보다 훨씬 더 암울하게 나타난 점이다.

앞으로 15년 후 자신의 기대소득을 ‘월 300만 원 이상’으로 낮게 예상한 비율이 남성은 36%에 그쳤지만, 여성은 52%에 달했다. 20대는 미래의 중산층 소득을 ‘월 500만 원 이상’으로 여긴다. 다시 말해 20대 여성 2명 중 1명은 자신이 중산층 수준의 소득을 올리지 못할 것으로 예상한다.

‘나는 중산층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하는 비율도 남성 32.2%, 여성 17.7%로 차이가 두드러졌다. 20대 여성 10명 중 4명은 ‘될 수 없다’(44.3%), 또 다른 4명은 ‘모르겠다’(38%)고 했다.

20대 여성의 잿빛 미래 전망은 ‘알파걸’ 현상을 고려할 때 이례적이다. 여성은 2009년 이후 대학 진학률에서 남성을 앞질렀다. 2013년에는 여학생 74.6%, 남학생 67.6%로 무려 7%포인트나 차이가 난다. 여성의 학력이 남성보다 더 높아졌는데도 왜 ‘미래 전망’에서 남녀 간 인식 차이가 벌어지는 걸까.



곳곳에 성차별 지뢰

‘신동아’가 만난 20대 여성 10여 명은 가장 큰 이유로 능력보다 성별을 기준으로 사람을 채용하는 기업 인사를 꼽았다. 다음은 경영학과를 졸업한 직장인 김모(28·여) 씨의 말이다.

“우리 과 동기인 남자와 여자가 함께 모 대기업 최종면접에 갔다. 과 애들 모두 여자가 될 거라고 여겼다. 여자는 학점이 4.0을 넘고 토익도 만점에 가까웠다. 언변도 뛰어나고, 성격도 웬만한 남자처럼 서글서글했다. 그런데 여자는 탈락하고 남자가 합격했다. 상심에 빠진 그 친구에게 과 여자 선배들이 ‘고추가 스펙’이라며 위로해줬다.”

언론사 입사를 희망하는 명문대 문과대 졸업생 이모(29·여) 씨는 “문과 출신 여학생들이 언론사 입사를 특히 선호하기 때문인지, 지원자 10명 중 여성이 7명, 남성이 3명이다. 그런데 최종합격자 성비(性比)는 뒤집히곤 한다. 10명이 붙으면 여성은 3명, 남성은 7명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회문제를 고발하는 언론사에서조차 성차별이 있는데, 일반 기업은 훨씬 더 심각하지 않겠냐”고 토로했다.

남성 신입사원을 선호하는 ‘채용 관문’을 뚫기 위한 여성 취업준비생들의 노력은 눈물겹다. 홍보대행사에서 일하는 최모(29·여) 씨는 “면접 볼 때마다 여성스러움을 최대한 없애려고 노력했다”며 “취미란에도 등산처럼 남성 임원들이 좋아하는 것을 적어 넣었다”고 했다. 그는 모 기업에서 인턴으로 근무할 때 “반드시 1등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너무 컸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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