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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발굴

울도(蔚島) 전투

한반도에서 벌어진 태평양전쟁

  • 권주혁 | 남태평양연구소장, 국제정치학박사

울도(蔚島)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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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력을 잃으면 다른 나라 군대가 국토를 마음대로 휘젓는다.
  • 우리나라에서 미국과 일본의 직접 전투가 벌어졌음을 알 수 있는 사료를 발굴했다.
울도(蔚島) 전투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면 울도.

1941년 12월 8일 일본 해군기동부대가 항공모함 6척을 앞세워 미국 하와이 진주만의 미군 태평양함대를 기습하면서 발발한 태평양전쟁은 태평양 전역을 전장으로 만들었다. 함재기(艦載機)를 이용한 진주만 기습에서 대성공을 거둔 일본군은 전광석화처럼 홍콩, 필리핀, 말레이 반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인도차이나 반도, 미얀마, 중부 태평양(괌 등)을 잇달아 점령했다. 전사(戰史)에 유례가 없을 정도의 속도였다.



B29, B24의 한반도 폭격

일본군은 인도 동부지역에 진입했고, 호주의 주요 항구를 폭격했다. 호주 북쪽의 뉴기니 섬 대부분과 솔로몬 군도 일부도 점령했다. 미드웨이 섬과 하와이 제도를 점령하고자 함대를 파견했으며, 북태평양의 미국 영토인 알래스카 남쪽의 알류산 열도 일부도 차지했다. 또한 동태평양의 미국 영토인 사모아 섬을 공격한 데 이어 파나마 운하를 폭격해 미군의 수송력을 떨어뜨리려 했다.

미군은 1942년 6월 미드웨이 해전에서 승리하면서 전기를 마련했으며 같은 해 8월부터 남태평양에서 반격에 나섰다. 솔로몬 군도의 과달카날 섬 전투에서 일본 육군에 처음으로 승리한 후 뉴기니, 필리핀, 중부 태평양을 탈환했다. 그러고는 일본 영토인 오키나와(沖繩), 이오지마(硫黃島)를 점령하고 장거리 폭격기로 일본 본토를 폭격했다. 1945년 8월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후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면서 태평양전쟁은 종결됐다.

미국과 일본의 전쟁은 태평양 전역에서 3년 9개월간 이어졌으나 한반도에선 미일 양국 간 직접 전투가 거의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요역사연구회가 지은 ‘제국 일본의 하늘과 방공’에 따르면 한반도에서 일어난 미일 간 전투는 1945년 6월 미군이 오키나와를 점령한 후 이곳에서 발진한 미군기들이 1945년 7월 11일~8월 14일 한반도를 폭격한 것이다. 이 기간에 미군기는 18회에 걸쳐 한반도에 위치한 일본군의 군수시설과 공장, 해상의 선박을 폭격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미군의 첫 한반도 폭격은 4발 프로펠러 엔진 중(重)폭격기 B29가 부산, 나진을 폭격한 것이다.

필자는 태평양전쟁을 연구하고자 지난 3, 4월 두 차례에 걸쳐 도쿄의 방위연구소를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뜻밖의 사실을 파악했다. 미국 해군 항공대 소속 B24 중(重)폭격기(B29 중폭격기보다 약간 작다)가 1945년 5월 6일, 제주도 서쪽 해상과 서해안 울도(蔚島) 인근에서 일본군 함선, 선박과 전투를 벌였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B24는 ‘해방자(Liberator)’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진 폭격기다.



제주도 서해 日 수송선 겨냥

필자는 4월 25, 26일 인천에서 서남쪽으로 72㎞ 떨어진 울도를 방문해 조사했다. 울도는 행정구역상으로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면 울도리에 속해 있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울도로 직접 가는 선박은 없다. 일단 덕적도(德積島)로 간 후 그곳에서 울도로 향하는 배로 갈아타야 한다. 덕적도를 출발한 페리선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문갑도(文甲島), 굴업도(掘業島), 백아도(白牙島)를 거쳐 울도에 도착했다.

면적 2.06㎢, 해안선 길이 12.7㎞의 울도에는 주민 68명이 거주한다. 대다수가 노인으로 새우, 우럭, 꽃게 잡이 등 어업에 종사한다. 섬은 남북보다 동서로 길다. 섬의 북쪽은 천연의 양항(良港)이며, 섬 중앙 남쪽에 당산(231m)이 솟아 있다. 섬에는 평지가 거의 없다. 조선시대에는 울도(鬱島)라는 이름이었으나 경술국치 이후 일제가 울도(蔚島)로 이름을 바꿨다. 광복 이전까지 일부 일본인도 울도에 거주했다.

1945년 5월 6일 오전 6시 50분 오키나와 비행장을 이륙한 미국 해군 항공대 제118 비행대대 소속 B24 폭격기가 한반도 서해안으로 기수를 돌렸다. 제118 비행대대는 ‘늙은 까마귀(Old Crow)’라는 별칭을 가졌다. 폭격기에는 기장 러새터(J.A. Lasater) 대위를 포함해 승무원 12명이 탑승했다. 원래는 B24 2대가 출격할 예정이었는데 러새터 대위의 폭격기만  출격했다. 러새터 대위는 제주도 서쪽 19㎞ 해상에서 일본군 수송선 3척이 항해하는 것을 발견하고는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고도 60m까지 내려와 해수면과 거의 평행을 이룬 뒤 수송선에 225㎏ 폭탄을 투하했다(Aircraft Action Report, US Navy, 25 May 1945).

B24는 3척의 수송선 중 가장 큰 1만t급 수송선에 225㎏ 폭탄 3발을 명중시키고 폭격기에 장착된 구경 12.7㎜ 중(重)기관총으로 사격해(B24에는 12.7㎜ 기관총 10문이 장착됐다) 침몰시켰다. 3000t급 수송선도 225㎏ 폭탄 1발을 맞고 침몰했다. 남은 1척의 수송선은 225㎏ 폭탄을 맞고 기관총 사격을 받아 크게 부서졌으나 간신히 침몰은 면했다.

대형 폭격기는 속도가 느리고 움직임이 민첩하지 못해 대개 적군의 대공포화를 피하고자 높은 고도로 수평비행하면서 폭탄을 투하한다. 그런데 러새터 대위는 물수제비뜨기 폭격법(Low Level Skip Bombing, 프로펠러가 해면에 닿을 정도로 낮게 비행하면서 폭탄을 물 위에 투하해 이 폭탄이 물에서 튀어 적함의 옆구리를 뚫고 들어가게 하는 폭격법)을 시도한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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