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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여 ‘진짜 목숨’의 무게로 도전하라”

정문술 미래산업 창업자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청년이여 ‘진짜 목숨’의 무게로 도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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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청년에게 ‘길’ 보여주려 회고록 출간
  • ● ‘생물학적 본능’ 거스른 수도자의 삶
  • ● “버림은 소유의 끝이 아니라 절정”
  • ● “실패도 자산…두려워 말라”
“청년이여  ‘진짜 목숨’의 무게로 도전하라”
2남 3녀를 회사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 그럼에도 은퇴를 생각할 때마다 자식들이 눈에 밟혔다. 자식이 잘살기를 바라는 것은 ‘생물학적 본능’ 아닌가. 2001년 1월 2일 두 아들에게 점심밥을 사면서 말했다.

“물러날 작정이다. 너희가 회사를 잘 이끌 능력이 없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미래산업은 아쉽게도 내 것이 아니다. 사사로이 물려줄 수는 없구나.”

짧은 침묵을 깨고 장남이 입을 열었다. “결정 잘하셨어요.” 차남이 받았다. “아버지, 훌륭하십니다.” 두 아들은 “언제나 자랑스러워할 거예요”라고 덧붙였다. 고마움, 미안함이 뒤섞여 청주 석 잔을 들이켰다. 낮술에 취해 부축을 받고 일어나면서 말했다.

“나야말로 너희가 자랑스럽다.”

이튿날 회의에서 은퇴를 발표하자 임원들이 만류했다. “음식은 상한 다음에 남 주는 게 아니다”라면서 그날로 회사를 떠났다. “착한 기업을 만들어달라”고 당부하면서 경영권을 내놓은 것이다.

2016년 3월 1일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이세돌 9단과 바둑을 둔 알파고 개발 회사) 최고경영자(CEO)가 KAIST를 찾아 강연했다. ‘인공지능과 미래’라는 제목이 붙은 강연은 ‘정문술 빌딩’에서 열렸다. 이 건물에 인공지능 연구와 관련된 ‘바이오 및 뇌공학과’가 입주해 있다.

그가 15년 전 KAIST에 300억 원을 기부하면서 사용처로 지정한 분야가 ‘바이오공학’ ‘뇌과학’이다. BT(생명공학기술)와 IT(정보기술) 융합은 오늘날 지구적 화두다. 미래에 대한 그의 통찰이 느껴진다.

2014년 그는 KAIST에 215억 원을 더 내놓았다. “미래 전략을 연구해 나라가 일관되게 발전할 기틀을 마련해달라”고 주문했다. KAIST는 국제관계·경제·산업·과학기술 분야 장기전략을 연구·제시하는 대학원을 세웠다. 이 대학원 명칭은 ‘문술미래전략대학원’이다.

문술미래전략대학원은 지난해부터 매년 ‘대한민국 국가미래전략’이란 제목의 책을 낸다. 지금껏 ‘대한민국 국가미래전략 2015’ ‘대한민국 국가미래전략 2016’이 나왔다. 이 보고서의 문패가 ‘문술리포트’다. ‘문술리포트 2016’ 책날개에 적힌 설명은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이 무궁 번영할, 원대한 국가 미래비전을 매년 수립해줄 것을 요청한 정문술 전 KAIST 이사장의 뜻을 기념하고자 국가미래전략 보고서의 이름을 ‘문술리포트’로 정했다.’

정문술(78) 미래산업 창업자가 6월 15일 회고록을 펴냈다. ‘정문술 회고록 : 나는 미래를 창조한다’. 그는 회고록 출간과 관련해 “아직도 내 발목을 붙잡는 것은 명예욕”이라면서 “그것이 부끄럽다”고 했다.

“뭐 내세울 게 있다고 또 떠드는가. 물러난 놈이 왜 자꾸 떠드나. 그래서 노추(老醜) 아닌가. 하지만 먼저 기업을 경영해본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 것을 어쩌나. 크게 된 놈으로서 떠드는 게 아니라 크게 될 사람을 위해서 떠들고 싶은 걸 어쩌나.”



“목숨을 걸라”

회고록을 낸 까닭은 청년에게 ‘길’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물론 그 길이 유일한 길이라고 우길 생각은 없다.  

“어려움을 겪는 스타트업 지망생을 격려하고자 이 늙은이의 경험담이나마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6월 30일 회고록 출간과 관련해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거절했다. 은퇴 후 은거(隱居)하면서 언론과 인터뷰를 한 적이 없다.

“은퇴한 경영자가 이러쿵저러쿵 목소리를 내는 게 온당치 않다”는 신념 때문인 듯하다. 직접 인터뷰를 극구 사양한 터라 그와 기자의 겹치는 지인을 통해 간접적으로 질의와 응답이 이뤄졌다.

▼ 대외 활동을 안 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연극에서 역할이 끝난 배우는 다시 무대에 등장하지 않는 법입니다.”  

▼ 캐나다에 머무르는 것으로 압니다.

“가끔 딸내미가 사는 캐나다에 와 지냅니다. 현역 시절에는 바빠 못 간 국내외 여행을 부지런히 나섭니다. 걷는 데 불편이 없을 때 가급적 자주 다니려 해요.”

그는 1938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 원광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했다. 육군 복무 중 능력을 인정받아 중앙정보부에 특채돼 18년간 근무했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권력을 쥔 뒤 보안사령부 세력이 득세하는 과정에서 해고됐다. 2000년 국내 최초로 ‘미래산업’을 미국 나스닥에 상장시켰고 이듬해 은퇴를 선언했다.

2001년, 2014년 두 차례에 걸쳐 515억 원을 KAIST에 기부하면서 사재를 사회에 환원했다. “유산을 많이 남겨주는 것은 자식들의 행복권을 남김없이 빼앗아버리는 못난 행동이며, 자식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기회를 빼앗는 잔인한 일”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가 회고록에서 강조한 것은 ‘도전정신’과 ‘정의로움’이다. “벤처를 하려면 목숨을 걸라”고도 했다. ‘하청업체 이익에 배 아픈 대기업’을 꾸짖으면서 “정의로운 기업은 실패하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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