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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 르포

‘反채식 폭력’ 일상화 굶거나, 왕따 되거나

한국에서 채식주의자로 살아가기

  • 김미루 | 고려대 미디어학부 2학년 kmrrrr12@korea.ac.kr

‘反채식 폭력’ 일상화 굶거나, 왕따 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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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골고루 먹어라” 부모 잔소리
  • ● “임신 중인데 풀만 먹나” 시부모 눈총
  • ● “유별난 성격” 직장 입방아
  • ● “데이트도 채식주의자끼리”
‘反채식 폭력’ 일상화  굶거나, 왕따 되거나

소설 ‘채식주의자’ 영어판▶ 서울의 한 채식 전문 음식점▲ [동아일보]

“두 사람이 영혜 팔을 잡아라.” “예?”

“한번만 먹기 시작하면 다시 먹을 거다. 세상천지에, 요즘 고기 안 먹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어!”

“누나, 웬만하면 먹어. 예, 하고 먹는 시늉만 하면 간단하잖아. 아버지 앞에서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맨부커상을 받은 한강의 ‘채식주의자’ 중 한 대목이다. 한강은 이 작품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폭력’을 그린다. 그는 “인간이 이 폭력적인 세계에서 완벽히 순수하게 사는 일이 가능한지…”라며 의문을 품었다.



가족 설득 장벽

그의 말마따나, 한국의 채식주의자(vegetarian)들은 폭력에 직면해 살고 있는 걸까. 그들의 현실을 알아보기 위해 채식주의자 33명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채식 모임에도 몇 차례 참석했다. 채식주의자들은 주류 육식문화로부터 큰 압력을 받고 있었다. 이런 압력이 때로는 폭력적으로 느껴진다고 했다.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고려대 재학생 유소현(21) 씨는 최근 10장쯤 되는 보고서를 썼다. 이 글을 쓰려고 논문 검색 사이트에 올라오는 논문들을 다 찾아서 읽었다. 한국어로 된 글이 별로 없어 영어로 된 글을 20편 넘게 봤다고 한다. 과학용어가 많아 이해하는 데 애를 먹으면서도 포기할 수 없었다. 미국에 본부를 둔 협회의 멤버들과 매일처럼 연락을 취했다. 영어 실력이 절로 늘 지경이었다. 유씨는 이렇게 한 달 동안 자료를 모아서 글을 썼다. 학교 과제로 제출하기 위해서도, 대학생 논문경진대회에 나가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부모에게 채식의 필요성을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유씨는 수능시험을 마친 뒤 채식을 시작했다. 이제 2년차에 접어들었다. 최근 식사 문제로 부모와 마찰이 잦아졌다. 채식 방식을 ‘페스코(Pesco)’에서 ‘비건(Vegan)’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채식주의자는 △채소와 과일만 먹는 ‘비건’ △동물성 중 우유, 달걀, 어류는 먹는 ‘페스코’ △동물성 중 우유, 달걀, 어류, 조류, 가금류는 먹는 ‘폴로(Pollo)’ △평소엔 비건으로 생활하다가 상황에 따라 육식을 하는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 등으로 나뉜다.

유씨가 페스코에서 비건으로 채식의 수위를 한 단계 높이자 부모가 인내의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부모는 “채소만 먹는 건 건강에 안 좋다”고 했다. 유씨가 보기에 이는 편견이었다. 과학적 증거를 들이대 부모를 설득할 생각에 유씨는 공들여 작성한 보고서를 부모에게 건넸다. 그러나 이후에도 부모의 생각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서울시내 모 대학 재학생 이모(24) 씨는 페스코로 산다. 이씨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그는 “우리나라 기성세대는 음식 가려먹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나 역시 부모로부터 ‘왜 고기만 쏙 빼고 먹냐’는 꾸중을 자주 들었다”고 했다. 부모가 자식을 억지로 고급 한우갈비 식당에 데려가 고기를 구워줬는데 자식이 한 점도 입에 대지 않으면 부모로선 화가 치밀기 마련이다.



“채식할수록 영양소 잘 챙겨”

‘反채식 폭력’ 일상화  굶거나, 왕따 되거나

한번 채식주의자가 되면 식습관이 잘 바뀌지 않는다. 단백질을 보충해주는 토마토 콩고기 켄터키(오른쪽).[동아일보]

5년 전부터 채식주의자로 돌아선 이동금(35) 씨는 아직도 부모를 설득하지 못했다. 긴 시간 동안 분쟁을 겪었지만, 부모의 결론은 “네가 너무 별나다”는 것이었다. 이씨는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과 맞서는 것은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필자가 접한 다수의 채식주의자는 이렇게 음식 문제로 인해 가족에게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부모·형제로부터 채식을 포기하라는 압박을 가장 많이 받고, 배우자나 친지로부터도 같은 얘기를 듣는다. 아무래도 우리 전통사회가 서양에 비해 채식에 덜 관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32세 워킹맘 조모 씨는 결혼 후 페스코 채식을 계속하는 문제로 시부모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아왔다고 한다. 조씨는 “임신한 후에도 채식을 유지하려 했지만 시부모가 ‘태아를 생각하라’며 한사코 반대했다. 이 문제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했다.    

채식을 하면 기성세대의 걱정처럼 정말 건강을 해칠까. 채식주의자들에게 부족할 것으로 꼽히는 영양소는 단백질과 비타민B12 등이다. 채식주의자의 관점에서, 비건빌더(비건 채식을 하는 보디빌더)는 ‘채소를 통해선 단백질을 섭취할 수 없다’는 생각을 깨뜨린다.

구체적으로 9가지 아미노산의 충족이 문제인데, 육류는 그 자체로 9가지를 완벽히 포함한다. 채소는 여러 종류를 섭취하면 9가지를 충족할 수 있다고 한다. 콩, 현미, 시금치, 케일 등의 곡물과 채소엔 단백질이 어느 정도 들어 있다는 것이다. 비타민B12는 동물에 축적된 양이 많긴 하지만, 채식 위주 식단을 통해서도 웬만큼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비건 채식을 하는 유소현 씨는 “건강검진을 받아 보니 내 신체의 모든 부분이 정상이었다”고 말했다. “채식주의자일수록 영양소를 잘 챙겨서 식단을 구성한다”는 게 유씨의 설명이다.

그러나 프랑스 보건당국은 최근 “식물성 우유만 섭취한 유아에게선 발육부진이 나타날 수 있다”는 상반된 연구 결과를 내놨다. ‘유아가 식물 섭취만으로 성장할 수 있는가’ ‘성인이 식물 섭취만으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해선 과학적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일부 채식인은 채식을 하게 된 동기에 대해 “동물이 불쌍해서”라고 답했다. 채식주의자 권모(25·여) 씨는 “개는 물론이고 소, 돼지, 오리, 닭도 감정과 사고체계를 지녔다. 이들은 고통도 느끼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느낀다. 이런 존재를 먹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채식주의자 대부분이 동물에 대한 연민, 생명 존중, 건강 증진 욕구, 친환경 욕구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채식을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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