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호

저성장 시대 살아가기

뜨거운 감자 청년기본소득

“근로 의욕 저하” “일자리 미스매치 해소”

  • 김용기 |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 seriykim@ajou.ac.kr

    입력2016-12-22 17: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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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 19조 원 추가 예산 필요
    • 핀란드, 월 70만 원 지급 ‘실험’
    • “빈곤 퇴치, 양극화 완화, 수요 확대” 주장도
    청년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핀란드 우파 정부는 2017년 1월부터 2000명을 대상으로 조건 없이 매달 560유로(70만원 상당)를 지급한다. 기본소득 지급이 근로 의욕을 높이는지 확인하려는 목적이다. 기본소득을 기반으로 자기발전을 꾀하고 일자리를 찾기 위해 더 노력할지, 아니면 그저 추가적 불로소득에 안주할지 관찰할 예정이다.

    유럽의 복지 선진국이 기본소득을 실험하는 이유는 제3차 산업혁명의 결과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됐지만, 줄어든 생산시간만큼 실업과 일자리 부족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향후 20년간 로봇이 기존 일자리의 47%를 없앨 것이라는 전망에서 보듯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현상은 앞으로 더 심화할 전망이다.



    성남 청년배당, 서울 청년수당

    과거 산업화시대에 ‘일’은 자본에 고용돼 임금소득을 받는 직업활동을 말했다. 그런데 이제는 이렇게 돈 버는 ‘일’은 줄어들었지만 막상 생활에 필요한 일, 예를 들면 어린이와 치매 노인을 돌보는 활동은 언제나 일손이 부족하다. 문화활동이나 사회적 봉사활동은 사회와 우리 자신을 윤택하게 하지만 소득이 수반되지 않는다. 유럽 복지 국가들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기본소득제도 도입 필요성을 고민한다.

    소득이 보장되지 않더라도 일의 범위가 사회적으로 혹은 문화적으로 의미 있는 영역으로 확대돼야 하며, 이 경우(의미는 있지만 소득이 없는) 야기되는 경제적 불안정성을 일정 부분 해결해야 한다.



    또한 임금근로자 수는 제한적이지만 그들은 과도한 근로시간에 허덕이는 게 현실이다. 일과 가정을 양립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따라서 근무시간을 단축해 일자리를 나누는 한편, 소득이 발생하진 않지만 사회적으로 유익한 일을 경제적 부담 없이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임금소득은 보장되지 않아도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일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기본소득 개념이 제시된다.

    한국에서도 기본소득 논의가 간헐적으로 제기돼왔다. 2016년 총선에선 녹색당이 1인당 40만 원의 기본소득 지급을 공약으로 제안했다. 한국에서 기본소득 논의가 제기되는 배경은 유럽 복지 선진국에 비해 훨씬 절박하다. 한국의 경우, 건강보험을 제외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지출의 비중이 6.4%에 불과하다(2012년 기준). 1인당 GDP가 한국과 비슷한 수준인 이탈리아의 GDP 대비 공공지출 비중은 21.7%로 우리의 3배 수준이다.

    따라서 한국에선, 기술의 발달과 이에 따른 노동의 재구성이라는 차원에서보다는 불평등의 완화나 기회균등을 확대하는 차원에서 기본소득 논의가 제기된다고 볼 수 있다. 가령 기본소득을 지급해 가난한 집 자녀들이 ‘알바(아르바이트)’ 시간을 줄여 취업 준비라도 제대로 하게 하자는 것이다. 2016년 1월부터 실시된 성남시의 청년배당이 그러하고, 서울시에서 실시하려다 정부 반대에 막힌 청년수당 또한 유사한 개념이다.



    청년 16%만 ‘좋은 일자리’

     한국의 경우 기본소득 지급의 대상은 우선 청년층에 한정돼야 할 것 같다. 연령, 소득, 재산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일정한 소득을 지급하자는 것이 기본소득의 취지이지만, 사회적 합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 청년층을 대상으로 실시한 후 노인층으로 그 대상을 넓혀가는 것이 현실적이다.

    한국에서 청년기본소득을 도입할 경우 특히 노동시장에서 나타나는 이른바 일자리 미스매치(mismatch, 불일치) 현상을 해결할 대안이 될 수 있다. 기본소득이 청년들의 눈높이와 현실에 존재하는 일자리 간의 임금 격차를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2016년 9월 발표된 현대경제연구원의 2015년 기준 국내 임금근로자의 일자리 구조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정규직이면서 중위소득의 125%에 해당하는 월 225만 원 이상의 일자리는 국내 전체 임금소득 일자리 1931만 개 중 34.9%인 674만 개다. 중위소득은 소득 순으로 순위를 매길 때 정확히 가운데에 위치한 소득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평균소득보다 낮다.

    그런데 이들 674만 개의 ‘좋은’ 일자리 중 청년(15~29세) 일자리는 63만7000개에 불과하다. 한국의 청년은 947만 명에 달하고 이 가운데 취업자만 395만 명이다. 청년 취업자 중 16.1%만이 세금 등을 공제한 후 월 200만 원 이상을 수령하는 일자리에 종사하고 있다는 얘기다.

    청년들의 눈높이로 보면 월 200만 원 이상은 손에 쥐어야 향후 주거와 결혼 등을 준비할 수 있는데, 그런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다. 2015년 한 해 전문대 이상 졸업자만 68만1000명이다. 좋은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희망의 끈을 쉽게 놓을 수 없어 취업 재수와 삼수를 거듭한 결과가 바로 30세 미만 청년 중 163만 명에 달하는 니트족(NEET族, 취업·교육·직업훈련 어느것도 안 하는 이들)으로 나타난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려면 청년들이 가기 꺼리는 중소기업의 낮은 임금과 청년들의 기대치 간 차이인 미스매치를 일정 부분 좁혀야 한다.



    강소기업 초임 225만 원

    고용노동부가 2016년 4월과 11월에 발표한 ‘청년친화 강소기업’ 1118개의 월평균 초임이 225만2000원이다. 이에 비해 2017년 적용될 최저임금(시급 6470원) 기준으로 하루 8시간씩 주 40시간 근무하면 135만2230원(주휴수당 포함)의 월급을 수령할 수 있다.

    인쇄업자 유○○ 씨는 기술이 없는 ‘초짜’의 경우 하루에 30분씩 연장근로를 할 경우 월 150만 원 정도를 지급한다. 그는 “지금까지 경험한 신입은 대부분 대졸인데 이 월급으론 못 살겠다며 자꾸 그만둔다. 결국 지금은 아주머니를 같은 봉급(150만 원)에, 그리고 숙련된 조선족(180만 원)과 한국인 기술 보유자(월 280만 원, 퇴직금 포함 연 3800만 원) 등 3명을 고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최저임금밖에 지급할 수 없는 많은 수의 중소기업과 청년들이 갈 수 있는 강소기업 간 초임 격차는 75만 원 정도인 것이다.

    통계청이 지난 12월 공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16’ 보고서에서도 한국의 일자리 미스매치 현상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심각하다. 근로자 300인 미만 사업체의 임금은 300인 이상 대기업 임금의 39.3~76.4%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모두가 대기업에 입사하려 무한경쟁을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 관문을 통과할 수 있는 청년은 소수에 불과하다.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최저임금 수준밖에 지급할 수 없는 기업의 생산성을 높여 월 225만 원의 초임을 지급할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혁신과 구조조정은 시간이 걸리고 고통을 수반한다. 만약 사회에 진입하는 청년들에 대해 현실과 기대치 간 격차를 일정 부분이나마 메울 수 있는 보조금을 청년기본소득 형태로 지급할 수 있다면 미스매치 현상은 상당 폭 개선될 것이다. 96만 명에 달하는 국내 상주 외국인 근로자 일자리 중 상당수도 한국 청년의 일자리로 교체될 수 있다.


    네덜란드도 새해부터 실험

    청년기본소득 지급을 실행하는 데에는 많은 난관이 따른다. 재학생을 배제할 것인지, 그 경우 취업을 앞둔 ‘막(마지막) 학기’거나 졸업을 유예한 청년은 어찌할지, 기본소득을 지급할 경우 중소기업이 이를 감안해 기존 임금을 일부 낮출 가능성에는 어떻게 대비할 것인지 등 고민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재원 마련은 무엇보다 어려운 일이다. 청년 취업자(395만 명)와 공식 실업자(청년실업 8.5%의 경우 36만 명), 청년 니트족(163만 명) 모두에게 매월 30만 원을 지급할 경우 연 21조3840억 원이 소요된다. 현재 중앙정부가 지출하고 있는 청년일자리 예산 2조 원 이상과 지방정부 예산을 다 털어 넣어도 매년 19조 원 정도의 예산이 추가적으로 필요하다.

    그렇지만 박근혜 정부 3년간 발생한 정부 재정적자가 95조 원이고 국가재난 수준에 이른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인 대책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합의의 수준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연 19조 원의 지출은 정책 우선순위의 문제일 수 있다. 수백만 개의 좋은 일자리가 창출되고, 청년기본소득으로 지출한 예산은 내수 진작을 통해 경제성장에도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 성남시는 2016년 1월부터 ‘청년배당’으로 불리는, 청년에 대한 기본소득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3년 이상 성남시에 거주한 만 24세 이상의 청년이라면 누구나 분기당 25만 원에 해당하는 성남시 상품권을 지급받는다.

    선진국들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할 것인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시에서도 2017년 1월부터 일부 시민을 대상으로 기본소득 실험에 들어간다. 여러 그룹의 실험 대상자에게는 1인당 매월 970유로(120만 원 상당)를 지급한다. 실험의 목적은 기본소득을 받는 대가로 일을 강제하지 않더라도 과연 자발적으로 일하는지를 가늠해보는 것. 다른 20여 개 지방자치단체도 비슷한 시기 기본소득 실험을 예정하고 있다. 스위스는 지난 6월 성인에게 2500스위스프랑(287만 원 상당), 어린이에게 625프랑(72만원 상당)을 매월 지급할 것인지를 놓고 국민투표를 치렀다. 부결됐지만 23%의 찬성표가 나왔다.

    기본소득을 보장함으로써 빈곤을 퇴치하고, 양극화를 완화하며, 취약계층의 삶을 개선할 뿐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문제점인 수요 부족 현상을 해결할 수 있다는 지적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제평론가 톰 스트레소스트에 따르면, 자본주의와 기술의 발전으로 기업은 생산성이 향상돼 이전보다 적은 노동과 자본을 투여하더라도 더 많은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그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고객을 확보할 수 없는 것이 문제다. 20세기 이래 자본주의 역사를 보면 3가지 상이한 방법을 통해 이 고질적인 수요 부족 문제점을 해결해왔다.



    한국형 기본소득 모델은?

    첫째, 대공황 시기의 재정확대 정책이다. 미국 정부는 세계대전 주축국과 싸우기 위한 전쟁물자를 생산하는 등 공공근로사업을 벌여 대공황을 극복했다. 만약, 전쟁물자 생산이 아니라 학교나 주택, 도로를 건설하는 데에만 재정을 투입했다면 훨씬 빨리 공황을 극복했을 것이라 추정하기도 한다.

    둘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노동소득 분배율의 상승이다. 1950년부터 1970년까지 미국 임금근로자의 실질 임금은 두 배로 늘어났다. 임금 상승에 맞춰 소비가 확대됐고 임금 상승과 결합한 생산성의 증가로 전 세계는 빠른 속도의 GDP 상승을 경험할 수 있었다.

    셋째, 1982년 이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 시기까지의 경험인데, 민간 부채를 확대하는 방식이다. 생산성은 빠르게 증가했지만 중위소득은 정체됐기에 상품을 소비할 수요가 부족했다. 이때 은행이 부동산 담보 대출을 통해 가계에 신용을 공급함에 따라 수요가 확대되고 ‘파티’가 계속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 세계는 저성장 국면에 봉착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임금소득은 더욱 정체되고 은행도 더 이상 대출을 하기 어렵다. 수요 부족을 해결할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과거의 재정지출 확대, 임금 상승, 가계부채 확대를 통한 경제성장이 가능하지 않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기본소득은 수요를 늘려 정체된 경제를 다시 작동시킬 대안이 될 수 있다.

    기본소득을 통해 가계의 구매력이 개선된다면 그것은 단지 가난한 자들에게만 유리한 것은 아니다. 부자들의 소득도 증가하고 기업 매출도 증가한다. 또한 기본소득이 보장될 경우 기업의 임금상승이 안정적으로 억제될 여지까지 생겨난다고 톰 스트레소스트는 주장한다.

    기본소득 지급에 유일하게 반대하는 이들은 최상층 부자다. 그들은 실업보다는 재분배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을 지속적으로 연구해온 강남훈 한신대 교수의 추정에 의하면, ‘한국형 기본소득 모델’로 모든 국민에게 1인당 3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전체 가구의 82%가 순수혜 가구가 될 수 있다. 82%의 가구가 자신이 납부한 세액보다 큰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상위 12%의 가구가 일정하게 타협할 수 있다면 전 국민에 대한 기본소득 도입은 생각만큼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다.



    차기 대선 달굴까?

    현 단계에서 우리가 청년기본소득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보다 이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어떤 식으로든지 완화해야 할 필요성이 절박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가 감정 낭비, 시간 낭비, 돈 낭비라고 생각한 적이 여러 번 있다. 할 일은 많고 생각은 복잡한데 쓸데없는 얘기를 들어야 하고, 회식비도 1/n(엔 분의 일)로 나눌 경우 상당히 부담이 된다는 생각에 답답하다.”

    몸과 마음이 분주한 2016년 말 현재 청년 취업 준비생들의 이야기다. 취업을 한다고 해도 상황이 별반 개선되지 않는 비정규직 청년 근로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청년기본소득이 제기되고, 이 이슈로 19대 대선이 뜨겁게 달궈질 가능성이 높다.

    김 용 기
    ● 1960년 강원 거진 출생
    ● 영국 런던정경대(LSE) 석사(경제학), 동 대학원 박사(국제정치경제학·금융)
    ●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
    ● 現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
    ● 저서 : ‘한국경제가 사라진다’, ‘한국경제 20년의 재조명’, ‘금융위기 이후를 논하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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