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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포커스

춤추는 금 다시 전성시대는 오는가

  • 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춤추는 금 다시 전성시대는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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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값이 요동친다. 석 달 간격으로 최저치와 최고치를 오르내린다. ‘금의 침묵’은 왜 깨졌을까. 지금 나라 안팎의 금 시장에선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 》
99년 10월 대신증권은 흥미로운 조사결과를 내놓았다. 99년 3/4분기 중 각종 투자상품의 수익률을 비교했더니 금이 23.4%를 기록, 주식 채권 예금 등을 제치고 수위를 차지했다는 것. 7월1일 1돈쭝(3.75g)에 3만9700원이었던 국내 순금 도매가가 9월30일에는 4만9000원으로 뛰어올랐다.

같은 기간 국제 금값도 큰 폭으로 올랐다. 7월까지만 해도 1온스(31.1g)에 252달러로 최근 20년 사이에 최저치를 기록했다가 이후 상승세로 돌아서 10월 초에는 325달러까지 치솟았다. 11월 이후 다시 290달러대로 내려갔지만, 조만간 400달러를 넘어서리라는 전망도 나왔다.

금값은 2차 오일쇼크 여파로 1980년 1월21일 온스당 838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이래 등락을 거듭하면서도 전반적으로는 완만한 하향곡선을 그려왔다. 금이 지닌 국제 통화 기능이 약화된데다 투자수단으로도 매력이 떨어져 금에 대한 각국 중앙은행과 투자자들의 관심이 낮아진 게 주원인으로 분석됐다.

그랬던 금이 왜 갑작스럽게 ‘부활’을 노래하고 있을까. 몇 달 사이에 이렇게 금값이 요동을 친 배경은 무엇일까. 국제 금 시장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금은 과연 또 한 차례 전성시대를 맞게 될 것인가.

효과적인 포트폴리오 수단

우선 금의 가치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부터 살펴보자. 하고많은 광물 중에서 왜 금이 값비싼 실물자산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

금은 다른 금속에 비해 대단히 우수한 물리적·화학적·기계적 특성을 갖고 있다. 특히 전성(展性)과 연성(延性)이 어느 금속보다도 탁월해 성냥골만한 1g의 순금을 두드려 펴면 3km 길이로 늘일 수 있다. 색깔이 아름답고 잘 변색되지 않으며 산(酸)에도 부식되지 않는다.

이런 성질 때문에 금은 다양한 형태의 장신구나 치아 등 의료용재로 가공할 수 있다. 사람의 몸에 부착했을 때 다른 금속에 비해 피부 알러지 반응이 적은 것도 장점.

또한 금은 산업용으로도 널리 활용된다. 어떤 금속과도 잘 화합하므로 합금 가공하기 쉬우며, 전기 전도성이 뛰어나 반도체 등 전자산업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적인 부품 재료가 된다(한국은 일본 미국 독일 영국에 이어 세계 5위의 전자산업용 금 소비국이다).

98년 세계의 금 수요량은 4124t. 이 가운데 세공용에 쓰인 금이 3709t, 금괴로 만들어진 금이 155t, 투자용으로 퇴장(退藏)된 금이 260t이었다. 세공에 소비된 금 중 장신구를 만드는 데 쓰인 금이 3145t으로 전체 금 수요의 85%를 차지했고, 564t이 산업용이었다.

금의 가치를 높이는 결정적인 요인은 탁월한 환금성이다. 화폐 발행량을 금 보유고와 연동시켜 금의 태환을 보장했던 금본위제도는 막을 내렸지만, 금은 지금도 여전히 중요한 결제수단의 하나로 화폐의 성격을 유지하고 있다. 금은 금괴든 장신구든 어떤 형태로 갖고 있더라도 당장 현금으로 바꿔 쓸 수 있다. 주요 금 시장에서는 하루 24시간 내내 금 거래가 이뤄진다.

화폐보다 더 안정적인 측면도 있다. 달러 엔 마르크 같은 통화는 사실상 발행 국가의 부채라고 볼 수 있다. 가령 한국이 미화 500억달러를 보유하고 있다면 미국이 한국에 500억달러의 빚을 지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렇게 통화로 보유한 자산은 통화 발행 국가에 의해 동결될 수도 있고 회수불능 상태에 빠질 수도 있으나, 금으로 보유한 자산은 사겠다는 사람만 있으면 동결될 우려가 없다.

더욱이 화폐 자산은 그 화폐가 평가절하될 경우 손실을 입게 되지만, 금은 비교적 안정적인 국제가격에 따라 움직이므로 그럴 위험성이 낮다. 금이 투자자들에게 일정한 비율의 포트폴리오 수단으로 많이 활용되는 것도 이런 특성 때문이다. 금에 대한 투자는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는 없으나, 가격 안정성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주식이나 채권, 외환 등 다른 투자상품의 리스크 헤지 기능을 했다.

재고 금 수급량이 금값 좌우

금은 일단 채굴되면 부식하거나 변질되지 않기 때문에 현존하는 금은 소량의 소모분을 제외하면 인류 역사 이래 생산된 금(약 12만5000t)이 그대로, 혹은 형태만 바뀐 채 유통되거나 퇴장된 것이다. 엊그제 아기 돌 선물로 받은 금반지가 고대 이집트나 신라시대에 채굴된 금으로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와 같은 재고 금의 양은 매년 세계 전역의 광산에서 생산되는 금(약 2300t)의 50배가 넘기 때문에 재고 금이 금 시장에 얼마나 쏟아져 나오느냐에 따라 금의 수급량과 가격이 좌우된다.

금의 수급은 여러 가지 경제적·비경제적 요인에 영향받는다. 금값과 주요 경제 요소들 간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먼저 물가. 금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헤지수단으로 활용되므로 물가 상승기에는 매입수요가 늘어 금값이 오르고, 물가 안정기에는 내린다. 역사적으로 금값은 미국의 소비자 물가지수와 정비례했다.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되면 투자자들은 금이 다른 상품보다 고유 가치의 보전 기능이 크다고 판단, 더 많은 금을 사들이려고 한다. 그래서 금값 상승률은 인플레이션 증가율을 상회하는 경우가 많다.

금리와 금 가격은 반비례 관계에 있다. 금리가 오르면 금을 보유한 데 따른 기회비용이 커진다. 즉 높은 금리를 주는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게 금에 투자하는 것보다 유리하므로 금 매입수요가 감소한다.

달러화 가치도 금 가격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일반적으로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면 금값은 하락한다. 금 가격은 달러화로 표시되는데, 달러화 가치가 오르면 엔화나 마르크화 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에 이들 국가의 금 매입수요가 감소한다. 금 보유량을 줄이는 대신 평가절상된 달러를 보유하려고 하는 것. 반대로 달러화가 약세일 때는 달러 자산을 매각하고, 달러에 비해 가치가 상승한 자국 통화로 금을 매입한다.

각국 중앙은행들과 IMF(국제통화기금) 등 국제금융기구의 동향도 주목 대상이다.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금은 무려 3만4000t으로 세계 재고 금 보유량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이들이 금을 매입하거나 매각할 경우 거래 규모가 엄청나기 때문에 국제 금 시장은 늘 이들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정치적·사회적 불안정은 금값에 영향을 주는 비경제적 요인으로 볼 수 있다. 개인이든 전문적인 투자자든 이런 요인 때문에 자신의 자산 가치가 위협받는다고 판단되면 ‘안전한 투자대상’인 금을 사들인다.

구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란의 미 대사관 인질사건, 레이건 미 대통령 피격사건,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등 국제적으로 긴장이 고조됐던 시기에는 금 수요가 늘면서 금값이 뛰었다. 구 소련이 붕괴됐을 때는 일시적으로 200t의 금이 구 소련 지역에서 서방세계로 유입되면서 금값이 폭락하기도 했다.

중앙은행들의 금 매각 바람

96년 이후 국제 금 가격은 뚜렷한 하락세를 보였다. 그 배경으로는 우선 90년대 들어 두드러진 주요국 중앙은행들과 IMF의 금 매각 붐을 들 수 있다.

벨기에는 89년부터 96년까지 847t의 금을 내다팔았고, 네덜란드는 93년과 97년에 700t, 호주는 97년에 167t을 매각했다. 99년 5월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은 현재 보유하고 있는 715t의 금 중 415t을 2001년까지 매각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2590t의 금을 보유한 스위스도 향후 장기적으로 1300t의 금을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스위스 헌법은 중앙은행이 보유한 금을 매각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었으나, 99년 4월 헌법을 개정해 1년 후인 2000년 3월부터 금 매각이 가능해졌다.

지금까지 중앙은행들은 금을 팔고 난 후에 매각 사실을 공표하는 게 관행이었기 때문에 영란은행과 스위스 중앙은행이 이처럼 경매를 통한 금 매각 의사를 미리 밝힌 것은 금 딜러들의 눈길을 끌 만했다. 이는 장기적으로는 금 거래의 투명성을 높여 국제 금 시장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지 몰라도 당장은 국제 금 가격의 급락으로 이어졌다.

99년 6월 독일 쾰른에서 열린 서방 선진 7개국(G7)과 러시아의 정상회담에서는 외채 과다 빈곤국(HIPC·Highly-indebted poor countries)의 부채 삭감을 지원하기 위해 IMF가 보유하고 있는 금(3000t) 가운데 10%를 적절한 시기에 매각하기로 합의했다.

중앙은행들이 잇따라 금 매각 대열에 합류한 것은 막대한 양의 금을 보유하는 데 따르는 기회비용이 크다는 판단 때문. 수익성이 낮은 금(중앙은행이 금을 빌려주고 얹어 받는 리스 금리는 연 1∼2%에 지나지 않는다)보다는 채권이나 외화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더욱이 유럽통화연맹(EMU)과 함께 지역내 단일 통화인 유로화가 출범하면서 유럽 각국이 환율안정 수단으로 선호했던 금의 가치가 퇴색했다.

물론 지금껏 중앙은행들이 수익을 기대하고 금을 보유한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인플레이션 억제 수단으로 금을 활용한 측면이 컸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 억제정책을 시행한 결과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가 수축됐다. 오히려 일부 선진국에서는 경기침체에 따른 디플레이션 조짐까지 생겨났다. 따라서 화폐가치 하락에 대비한 헤지 수단으로 금이 갖는 매력은 반감될 수밖에 없었다.

금 가격과 역상관관계를 보이는 미 달러화가 꾸준히 강세를 유지해온 것도 금 매입수요를 떨어뜨려 금값 하락을 초래한 요인이다. 또한 금 생산업자들은 금값 하락에 따른 마진 축소를 최소화하기 위해 비용절감과 신기술 도입, 새로운 금광 발굴 등을 통해 금 생산을 늘리고 금의 생산원가를 지속적으로 낮춰왔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런 노력이 금값의 추가 하락 요인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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