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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인 성공학|서부산업 회장 윤만희

‘닥터위콤’으로 세계 어학실습기 시장 평정

  • 곽희자 자유기고가

‘닥터위콤’으로 세계 어학실습기 시장 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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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년 첫 부도. 중소기업 최초의 법정관리. 10년 만에 법정관리 조기 졸업. 지난해 다시 부도 위기. 상처투성이 기업을 이끌면서도 그는 절망하지 않는다. 핵심기술이 변함없이 빛을 발하고 있는데다 시장 또한 활짝 열려 있기 때문이다.》
여러 방면에 박식하기로 소문난 한 대학교수가 “내가 영어만 좀더 잘했더라면 훌륭한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었고, 세상도 더 많이 배울 수 있었을 것”이라고 털어놓은 바 있다.

IMF체제를 전후한 상황에, 그리고 저간의 여러 통상협상 자리에서 우리 대표들은 짧은 영어 때문에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거나 불이익을 당하곤 했다. 이런 우를 거듭하지 않기 위해 최근 정부 기관과 기업들은 외국어에 능통한 사람을 요직에 앉히는 것은 물론, 신입사원을 뽑을 때도 어학능력을 가장 중요시하고 있다. 지구촌의 장벽이 무너지는 21세기에는 커뮤니케이션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구실을 하게 될 것이다.

(주)서부산업 윤만희(尹滿熙·56) 회장은 ‘외국어는 세계를 제패하는 무기’임을 일찍이 자각하고 한국의 어학실습기 시장을 개척한 인물. 그는 첨단 어학실습기 ‘위콤’(어학실용)과 ‘닥터위콤’(가정용)을 개발해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워냈다.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사용되던 어학실습기는 모두 일본 소니와 내셔널 제품이었다. 윤회장은 이를 순수 국산인 ‘위콤’으로 대체해왔다. 현재 ‘위콤’은 청와대를 비롯, 군부대와 학교, 학원 등 1만2000개의 어학실에 설치돼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300여개 교실), 미국(200여개 교실), 사우디아라비아(100여개 교실), 태국, 브라질 등 세계 30여개국에도 수출해 소니와 내셔널, 유럽의 텐버거와 함께 세계 4대 어학실습기 메이커로 위상을 굳혔다.

2000년을 며칠 앞두고 서부산업을 찾았을 때 윤회장은 “‘중소기업인 성공학’을 취재하려면 ‘성공한 기업인’을 만나야지, 왜 나처럼 자격 없는 사람을 찾아왔느냐”며 쓴웃음을 지었다. “독자적인 발명품을 세계적 브랜드로 성장시켰고, 한 가지 사업을 20년 이상 지켜온 것만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니냐”고 되묻자 그는 “지금까지 그런 자존심과 긍지만으로 버텨왔는데, 이젠 회의에 빠져 힘에 부친다”고 했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 현재 법원에 화의신청을 해놓은 상태라는 것.

이대로 무너질 순 없다

서부산업은 86년에 한 차례 부도를 내 중소기업으로는 최초로 법정관리를 받았는데, 당시 유예기간을 6년이나 남겨놓고 법정관리에서 벗어나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적이 있다. 그런 회사가 또다시 부도 위기에 놓였다니….

“법원이 지난해 12월20일자로 화의절차 개시 결정을 내렸어요. 거래은행이 우리 계약조건만 수락해주면 이 난관은 충분히 헤쳐갈 수 있는데….”

현재 100억원 정도의 부채를 안고 있는데, 윤회장은 이자를 3년 후에 지불하게 해주고, 이후 5년 동안 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은행에 요구했다. 그러나 은행측은 아직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윤회장은 매일같이 은행을 설득하고 있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정보통신 분야의 벤처기업이 아니면 기업도 아니라는 인식이 퍼져 있어요. 언뜻 보기에 ‘국가 시책’에 부합되지 않을 듯한 업종의 기업들은 은행에서 말을 꺼내기조차 힘들어요.

국가든 기업이든 지금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를 눈여겨 봐야 하지 않을까요? 한 기업이 지금 당장 빛을 못 보고 있다고 해서, 형편이 좀 어렵다고 해서 숨통을 끊어서야 되겠습니까. 기업이 지금껏 쌓아온 기술력과 경영 노하우를 제대로 살펴보라는 겁니다.

사업에서는 ‘중간평가’를 한다는 게 어렵습니다. 사업을 하는 도중에는 ‘성공했다’거나 ‘실패했다’고 쉽게 단정지을 수 없어요. 끝까지 가봐야 아는 것 아닙니까? 노름판에서도 판이 다 끝나봐야 누가 돈을 땄는지 알 수 있잖아요.”

윤회장은 서부산업 수준의 자산과 기술력, 브랜드 인지도를 갖춘 벤처기업을 창업하려면 10년 이상 300억원을 투자해야 될 것이라고 했다.

“솔직히 나도 이제 손놓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이건 누군가가 해야 될 일입니다. ‘위콤’이 설치된 1만2000여개 교실의 사후 관리도 책임을 져야 해요. 발명가로는 유일하게 대통령상과 금탑산업훈장을 받아 많은 발명인들에게 희망을 줬던 내가 여기에서 좌절하면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발명가의 말로란 게 저렇구나’ ‘발명을 하면 뭐하나’고들 하겠죠. 이것 때문에라도 지금 주저앉을 수는 없습니다.”

서부산업이 이렇듯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은 외환위기의 여파로 교육부가 예산을 줄이면서 ‘위콤’의 학교 납품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120억원 정도이던 연간 매출액이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다. 윤회장은 남들처럼 구조조정을 하지도 못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거래 은행인 S은행이 부실은행으로 지정되면서 금융지원도 제때 받을 수 없었다. 그 무렵 800만달러 규모의 미국 수출 기회가 있었지만 금융지원을 받지 못해 무산됐다.

신제품 반응 좋아

말이 좋아 구조조정이지, 지금껏 어려운 형편에도 묵묵히 함께 일해온 사람들더러 ‘회사가 망하게 됐으니 나가달라’고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지난해 ‘닥터 위콤’의 광고 관계로 만났다가 경영전략 수립과 마케팅 업무까지 위임받고 이 회사 사장으로 영입된 이한우씨(47·방송인, 컨설턴트)는 윤회장에 대해 “성실하고 정직하며 국가관이 투철한 사람이다. 하지만 욕심이 없어 자기 것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성격은 기업인으로는 약점이 아닐 수 없다”고 평가했다.

윤회장도 이를 인정한다. 하지만 이 사업을 통해 개인의 욕심을 충족시키기보다는 그의 기업이념처럼 교육공학을 구현하고 고용을 창출하며, 우리 상표를 붙인 어학실습기가 세계 속의 브랜드로 계속 성장하길 바랄 뿐이다. 회사를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은행이 자신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면 3년 안에 회사를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다고 자신한다. 갈수록 외국어에 대한 수요가 늘 것이기 때문에 어학실습기 회사로는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한 서부산업의 성장 가능성이 높은데다, 현재 개발 중인 외국어 맞춤교육용 소프트웨어를 어학실습기와 접목시켜 학습효과를 높일 경우 수익을 낼 여지가 크다는 것.

윤회장은 “최근 개발된 ‘닥터위콤 멀티프로’와 ‘닥터위콤 폰랩’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고 시장도 충분히 확보됐기 때문에 이번 위기만 넘기면 확고하게 자리잡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닥터위콤 멀티프로’는 기존 오디오 기능에 비디오 기능(CD롬 사용)을 보탠 것이다. 이 기계를 TV 모니터에 연결하면 시청각 멀티미디어 교육이 가능하다. 따라서 어학실습실에서 헤드폰을 끼고 하던 어학 공부를 일반 교실에서 영상을 통해 할 수 있게 된다.

각급 학교의 어학실습실은 대개 48석 정도인데, 학교마다 1000∼2000명씩 되는 학생들이 이 공간에서 공부하다 보니 기껏해야 1주일에 1시간밖에 이용할 수 없다고 한다. ‘닥터위콤 멀티프로’는 이런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개발됐다. 전국의 초·중·고교 교실은 20만개. 이만하면 시장성이 충분하다는 얘기다.

‘닥터위콤 폰랩’은 한정된 교육공간을 넘어 원격 어학실습실 개념을 구현했다. 윤회장은 이 기계를 사는 사람에게 외국어 교재를 주고 공부하게 한 뒤 교사들이 전화로 학습과정을 체크, ‘사후 관리’를 맡도록 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우선 올해 100여명의 교사를 양성할 예정.

이와 함께 전국에서 100여명의 주주 대리점 업자를 모집, 1인당 1억원씩 출자하게 해 대리점을 독립채산 형태로 직접 경영(학생 관리)하게 하고, 회사 전체 이익금으로는 주식을 배당한다는 구상이다.

최근 ‘닥터위콤 폰랩’은 TV홈쇼핑 프로그램에 소개되어 한 시간에 400여대가 팔리는 개가를 올렸다. 한국어 영어 독어 불어 등 여러 외국어에 능통한 이한우 사장은 “외국어를 혼자 공부하는 데는 ‘닥터위콤 폰랩’만큼 훌륭한 학습장비도 드물다”고 치켜세웠다.

서부산업은 소유 부동산을 처분하면 부채를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지만, 팔려고 해도 적정 가격에 사겠다는 원매자가 나서지 않아 은행의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한다. 윤회장은 “기업이 거래은행에 도움을 요청했을 때 적어도 채무자가 주장하는 대로 기업이 운영되고 있는지, 어떤 제품을 만들고 있는지,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어떤지 정도는 은행측이 현장 조사를 해보고 결정을 내렸으면 좋겠다”며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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