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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레이더|‘달리는 실용주의’ 일본차의 경쟁력

품질과 서비스는 최고 문제는 디자인에 있다

  • 강호영

품질과 서비스는 최고 문제는 디자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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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자동차들이 한국 상륙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미국차와 유럽차가 들어올 때는 눈도 깜빡하지 않던 국내 자동차 업체들이 일본차 진출에는 아연 긴장하고 있다. 일본차의 경쟁력이 그만큼 탄탄하다는 의미다.》
1990년대 중반부터 소리없이, 그러나 강력한 의지를 갖고 한국 진출을 준비해 온 일본의 도요타자동차가 3월24일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시장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도요타는 ‘한국도요타자동차주식회사’를 설립하고 법인등록을 마쳤다. 앞으로는 이 회사가 도요타의 차량과 부품 및 액세서리 수입과 판매를 전담하게 된다.

72년 신진자동차와 합작을 청산하고 한국시장을 등진 도요타로서는 28년 만에 다시 한국시장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는 지난해 7월 일본 자동차에 대한 전면 개방이 이뤄진 뒤 일본차 본격 진출의 신호탄이란 점에서 한국과 일본자동차 업계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70년대 이후 일본은 세계적인 자동차 강국의 위치를 고수했다. 일본은 현재 세계 2위의 자동차 생산국이고 북미, 유럽과 함께 세계 3대 자동차 생산거점이자 판매시장으로 성장했다. 80년에 미국을 앞지른 이후 94년에 다시 추월당할 때까지 14년 동안 세계 최대의 자동차생산국으로 성가를 높였다.

일본은 97년 기준으로 11개 업체가 1080만 대의 자동차를 생산, 내수시장에 650만 대를 팔았고 430만 대를 수출했다. 여기에 해외 생산분 620만 대를 합치면 일본의 총생산량은 1700만 대로 늘어난다.

일본이 생산한 자동차 1호는 1904년에 만든 승합 증기차로 기록돼 있다. 이듬해인 1905년에 최초의 휘발유차가 나왔다. 1903년 우리나라에 고종황제의 어차로 쓰기 위해 캐딜락 1대가 처음 도입된 것과 비교하면 빠른 출발이 아닐 수 없다. 이어 1914년에는 닛산의 전신인 콰이신샤(快進社)에서 닷도(DAT)를 선보였고, 1917년에는 미쓰비시 조선소에서 피아트를 기본으로 한 모델A를 만들었다.

20년대는 미국차의 전성시대였다. 24년에 GM, 27년에 포드가 각각 조립생산을 시작해 매년 2만 대 이상 만들어냈다. 이 무렵 일본의 차 생산대수는 연간 300∼400대에 머물렀다. 일본 정부는 미국차의 도약에 자극받아 1926년 상공성에 국산진흥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자동차 생산을 독려했다.

6·25전쟁으로 재기 발판

이를 바탕으로 일본 자동차공업은 30년대에 들어 본격적으로 싹을 틔웠다. 닛산자동차(33년) 도요타자동차(37년)가 잇따라 설립됐고, 생산량은 연 1만 대 수준에 다가섰다. 그러나 39년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자동차의 생산과 공급, 가격제도 등이 엄격하게 통제됐고 자동차업체들은 군용트럭을 주로 생산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이 일본의 패배로 끝나자 자동차산업도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업계는 전후 미군사령부의 통제하에 들어갔고, 49년에야 승용차 제조허가가 내려지면서 자동차판매 통제조치도 해제됐다.

50년에 터진 6·25전쟁은 일본 자동차업계가 재시동을 거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미국은 6·25전쟁이 장기화하자 가까운 일본에서 군용트럭을 조달했는데, 이에 힘입어 도요타 닛산 등 경영위기를 맞은 일본 메이커들이 전쟁특수에 힙입어 쓰러져 가는 회사를 다시 세웠다. 일본 업체들은 2차 세계대전을 치르며 축적한 비행기 제조기술을 바탕으로 자동차 엔진을 만드는 등 나날이 기술력을 키워갔다.

50년대 중반부터 일본 자동차산업은 본격적인 성장기를 맞는다. 처음에는 닛산이 업계를 주도했다. 닛산은 영국 오스틴과 기술제휴를 하고 승용차(오스틴 A50)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기술제휴 기간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독자 모델인 블루버드를 개발했다.

60년대 들어서도 도쿄올림픽(64년)을 기점으로 한 고도의 경제성장 속에 급속한 모터리제이션 시대를 맞이했다. 60년대 초 기업마다 대량 생산을 위한 시설 확장이 경쟁적으로 벌어져 여러 종류의 국산차가 소개됐고, 엔지니어들은 매일처럼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데 주력했다. 당시 일본차의 수준은 미국이나 유럽차에 비해 크게 뒤떨어졌지만, 일본인 특유의 민족성이 반영된 서비스만큼은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다.

57년 코로나로 입지를 다진 도요타는 66년작 카롤라를 계기로 일본 제일의 메이커로 떠올랐다. 4기통 1.1×60마력 엔진을 얹은 카롤라는 3년 만에 100만 대를 판매하는 대성공을 거뒀고, 미국 소형차 시장에서도 인기를 모았다.

닛산은 블루버드의 성공에 이어 64년 인기 대중모델 서니를 내놓았다. 모터사이클로 인정받은 혼다는 63년 소형 2인승 스포츠카 S360, S500을 발표했다. 66년에 나온 첫 승용차 N360은 20개월 동안 20만 대가 팔리며 주목받았다. 마쓰다의 전신인 동양공업은 64년 후륜구동차 파밀리아로 인기를 끌었다. 66년 베르토네 디자인의 루체 1500이 그 뒤를 이었고, 이듬해 최초의 로터리 엔진차인 코스모 쿠페를 내놓으며 기술력을 세계에 알렸다.

소형차에서 경쟁력 다져

일본의 자동차산업은 60년에 세계 8위, 66년에 6위로 올랐고, 60년대 말에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을 제치고 세계 3위의 자동차 생산국으로 떠올랐다. 70년대에는 두 차례의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소형차 판매 증가에 힘입어 급부상, 독일마저 누르고 2위로 나섰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으로 수출을 본격화, 77년에 400만 대를 해외에 수출하며 수출고가 70년보다 4배나 늘어났다.

이후 세계적으로 소형차 수요가 늘어나면서 일본차의 경쟁력은 고속 질주를 거듭, 마침내 80년에는 1100만 대를 생산해 800만 대에 그친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의 자동차 생산국으로 떠올랐다. 일본은 소형차의 성공에 머무르지 않고 어큐라(혼다), 렉서스(도요타), 인피니티(닛산) 등 고급 브랜드를 잇따라 선보이며 고급차 시장에서도 벤츠를 위협하기에 이른다. 혼다의 어코드, 도요타의 캠리 같은 중형차는 지금도 미국시장에서 베스트셀러를 다투고 있다.

80년대 후반부터 일본은 미국과 빚은 무역마찰을 해소하기 위해 해외에 공장을 세우기 시작했다. 85년의 플라자협정으로 엔화 가치가 50% 이상 높아진 덕에 일본에서보다 적은 비용으로 공장을 지을 수 있었다. 해외공장 출고분 수출은 95년부터 일본에서의 수출보다 더 많은 양을 차지하게 됐다.

그러나 일본차를 철저히 분석한 미국의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빅3’가 본격적으로 반격하면서 일본은 94년 미국에 다시 1위 자리를 내줬다. 또한 치열한 내수 판매경쟁에 따른 수익성 악화로 마쓰다의 경영권이 포드로 넘어간 것을 비롯, 닛산은 르노, 미쓰비시는 다임러크라이슬러로 넘어가는 등 업계가 재편됐다. 경기 침체에 따른 내수 감소는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세계시장에서 일본차의 위상은 여전히 높다.

60년대 KD방식(부품조립생산)으로 차 생산에 들어간 한국 자동차업계는 당시 일본의 기술과 설비를 받아들였다. 최초의 승용차공장은 62년 새나라자동차가 부평에 세운 연산 6000대 규모의 조립공장이었다. 새나라자동차는 닛산에서 블루버드를 SKD(Semi Knock Down) 방식으로 들여와 조립한 다음 ‘새나라’라는 이름으로 팔았다.

그러나 새나라는 모처럼 우리 기술로 뿌리를 내리던 국산차 ‘시발’을 몰아내면서 기술축적보다는 돈벌이에 급급하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남겼다. 결국 새나라는 특혜비리 의혹과 외화 부족으로 부품을 수입하지 못해 다음해인 63년 7월 문을 닫고 만다.

한편 독자적으로 ‘신성호’를 제작한 신진공업사는 65년 새나라를 인수하고 이듬해 신진자동차공업(주)로 새출발했다. 그러나 신성호를 만든 경험만으로는 제대로 된 차를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일본에서 기술과 부품을 공급해줄 자동차회사를 찾았다. 처음에는 미쓰비시와 접촉해 소형차 콜트 100대를 들여와 조립했으나 더 유리한 조건을 제시한 도요타와 협정을 맺고 코로나를 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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