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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닥 황제’ 권성문 KTB 사장의 위험한 도전

“한국의 워렌 버핏이 되고 싶다”

  • 이나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코스닥 황제’ 권성문 KTB 사장의 위험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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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스닥과 벤처업체의 ‘큰 손’ 권성문 KTB 사장. 30대의 나이, 재계 데뷔 6년만에 자산규모 2조2000억원의 오너경영인이 되기까지 그가 던졌던 세 번의 승부수, 그리고 새로 직면한 과제들. 과연 그는 ‘한국적 기업 풍토’와 도덕성에 대한 끈질긴 의혹의 시선들을 떨쳐버리고 월가의 전설적 투자자 워렌 버핏의 뒤를 이을 수 있을 것인가. 》
7월10일 한낮, 강남대로는 늘어선 차들과 고층빌딩에서 뿜어져 나온 열기로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흐르는 땀을 닦으며 강남역 사거리 양재동 방향 초입에 있는 쌍동이 빌딩으로 향했다. 왼편 건물엔 김석기 사장이 이끄는 중앙종합금융이, 오른편엔 최근 여의도에서 옮겨 온 KTB네트워크 본사가 입주해 있었다. 오른쪽 건물로 들어서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오후 3시. KTB 권성문(39) 사장 인터뷰가 예정돼 있었다.

어렵게 이루어진 약속이었다. 권사장은 지난해 말부터 언론과의 직접 접촉을 사실상 끊은 상태였다. 홍보실을 통해 거듭 인터뷰 요청을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결국 권사장과 직접 통화를 해 30분간만 만나기로 합의했다.

시간 맞춰 찾은 KTB 사장실은 세련되고 규모 있어 보였다. 직원들의 몸가짐에도 대기업다운 진중함이 엿보였다. 자산규모 2조 2002억원(99년 말 현재). 과연 국내 최대 벤처투자회사다운 면모였다. 대기실을 거쳐 접견실에 앉아 기다리니 곧 권사장이 나타났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 때문에 실제 나이보다 노숙해 보였다. 홍보상무와 비서실 직원이 배석한 가운데 권사장은 시종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벤처 비즈니스 전반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비전, 경영관을 피력했다. 인터뷰는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 80분 가량 계속됐다.

권사장은 지금 두 가지 큰 도전에 직면해 있는 듯했다. 하나는 자신을 따라 다니는 세간의 일부 부정적인 평가를 불식시키고 명실상부한 ‘오너경영인’으로 거듭나는 것, 또 한가지는 미래를 걸고 뛰어든 벤처 비즈니스에서 확실한 성공을 거두는 것이다. 그는 이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모종의 ‘큰 그림’을 그려가고 있는 중인 것 같았다.

그림의 중심에는 물론 KTB가 있었다. 잘 알려져 있듯 KTB는 코스닥 등록 기업 중 57%에 자기 지분을 갖고 있는 벤처업계 최대 ‘큰손’이다. 오늘의 권사장을 있게 한 ‘미래와사람’ ‘한국M·A’ 등의 산하 기업들에도 일정한 몫이 주어질 것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속에서 KTB가 투자중인 350여 개 벤처기업과 미래와사람 및 권사장이 대주주로 있는 ‘옥션’ ‘인티즌’ 등 인터넷 핵심 기업들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다. 결국 권사장이 어떤 그림을 완성하느냐에 따라 우리나라 벤처 비즈니스와 인터넷 산업, 코스닥 시장은 적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될 수 밖에 없다.

권사장은 “가능하다면 한국의 워렌 버핏이 되고 싶다”고 했다. 워렌 버핏은 세계적 투자전문사 ‘버크셔헤더웨이’의 회장이자 엄청난 규모의 M·A(기업인수합병) 펀드를 운용하는 월가의 전설적 투자가다. 포브스지 선정 세계 3위의 거부이기도 하다.

급변하는 첨단 산업 분야의 향방과 증시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경제 구조는 이제 우리나라에도 자본과 네트워크를 무기 삼아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거대 투자회사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권사장은 그 주인공이 되고 싶은 것일까. 도전은 이미 시작됐다.

권사장은 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인물 중 한 사람이다. 6년 전만 해도 대기업 샐러리맨에 불과했던 그가 어떻게 자산규모 2조원의 KTB를 비롯, 총 21개 기업을 거느린 사업가로 급부상할 수 있었을까.

기업인으로서 권성문 사장의 성장기를 살펴보면 몇 번의 큰 승부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95년 1월 한국M·A 창립, 96년 11월 군자산업(미래와사람 전신) 인수, 99년 3월 KTB 인수. 일견 ‘돈줄’만 찾아 쉼없이 달려온 듯한 그의 포트폴리오에는 실상 쉽게 폄할 수 없는 일관성과 치밀함이 내재한다.

탁월한 추진력과 치밀함

1962년 대구 출생인 권사장은 심인고등학교 졸업 후 재수 끝에 1981년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동기들은 권사장을 “성실하며 놀 때와 공부할 때를 잘 구분하는 학생”이었다고 기억했다. “유니크한 대구 사투리에 달변이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학창 시절 권사장은 만화와 무협지를 상당히 즐기는 편이었다. 독립문 근처 하숙집에 가면 비슷한 책들이 몇 권씩 놓여있곤 했다. 바둑도 잘 두었는데, 그때 룸메이트가 KTB 관계사인 엠에스테크 소병우 사장이다. 권사장과 소사장은 고교, 재수, 대학 생활을 함께 한 절친한 사이다.

85년 대학 졸업과 함께 삼성물산에 입사한 권사장은 87년 중순, 돌연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고향에 내려가 만화가게를 시작했다. 권사장은 뛰어난 사업 능력을 발휘, 단시간 내에 점포 가치를 높인 후 매도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권사장은 인터뷰 중 “그 때 그 일을 계속했다면 지금 우리 만화 산업의 규모 자체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얘기를 했다. 경영 능력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다. 만화 마니아였던 것이 사업에 어떤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영향을 받았다기보다 간접 체험의 좋은 재료가 된 정도”라고 말했다. 아울러 자신은 “누군가에 의해 이미 정의된 2차적 지식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어떤 현상이나 상황,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각 사안에 대해 스스로 정의하고 판단하는 데 익숙하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요즘은 시간이 없어 만화 마니아로서의 즐거움은 만끽하지 못하고 있지만 비디오는 여전히 많이 본다고 했다.

권사장은 89년 미주리대학교 롤라교 경영학 석사(MBA)를 마친 뒤, 90년 다시 오하이오주립대학교대학원에서 재무관리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귀국 후 럭키투자자문에 잠깐 몸담았다가 곧 동부그룹 종합조정실로 자리를 옮겨 92년 3월까지 M·A 담당자로 일했다. 이후 한국종합금융에 입사, 역시 기업인수합병을 담당하다 95년 1월, 한국M·A를 창업했다.

권사장의 이름이 언론에 처음 오른 것은 96년 7월29일의 일이다. 신축 중이던 목동백화점 인수 과정에 사기와 폭력배 동원 사실이 밝혀져 8명이 구속되고 2명이 수배됐는데, 바로 이 사건의 중개업무를 한국M·A가 담당한 것이었다. 인수 자금은 22억원에 불과했으나 한국M·A가 받기로 한 수수료는 31억원에 이르러 눈길을 끌었다. 당시 검찰은 관련 자료에 ‘위 중개회사의 대표이사는 자신이 위와 같은 거액을 중개료로 받은 점에 대해서 수사관으로부터 상식에 기초한 도의적 추궁을 받게 되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위 중개료 채권 담보를 위하여 자신이 보관중인 위 회사 주식 44만주를 반환하겠다고 하였다’는 내용을 싣기도 했다. 그러나 법에 저촉되는 행위는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고 신문들도 ‘인수합병 전문회사가 조직폭력배의 농간에 놀아났다’는 식의 기사를 싣는 데 그쳤다.

한국 최초의 ‘기업사냥꾼’

96년 10월 초, 권사장은 또 한번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기사에는 ‘한국 최초의 레이더스(기업사냥꾼) 등장’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같은 해 3월 주식매수를 통해 경영권을 확보했던 영우통상 주식 15만여 주 중 9만주를 10월 4일 한솔제지 조동길 부사장에게 매각, 경영권을 양도하면서 6개월만에 9억원의 시세차익을 남긴 때문이었다. 이처럼 M·A 알선 업체가 단순한 기업인수합병 주선에 그치지 않고 직접 기업을 인수해 시세차익을 남기고 처분하는 것을 턴어라운드 방식이라고 한다. 미국에선 비교적 일반화된 방식이지만 국내에선 처음 시도됐던 일이라 화제를 모았다. 이후 권사장은 국내의 대표적 M·A 전문가로서 위치를 확고히 하게 됐다. 한국M·A는 이전에도 한솔전자, 한솔텔레콤, 한솔종합금융 등의 인수합병을 주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같은 달 16일에는 증권관리위원회로부터 내부자거래 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한국KDK’라는 회사의 경영권 인수 거래를 주선하면서 같은 회사 주식 1000주를 주당 1만5800원에 취득한 뒤 그 일부를 주당 2만2100원에 팔아 350만원의 부당 이득을 취했다는 혐의였다. 다시말해 권사장이 주식을 사들인 것은 이 회사의 소유권이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간다는 내부정보를 이용한 불공정 행위라는 것이 증관위의 해석이었다. 그러나 한국M·A측은 “실무 추진 과정에 발생한 착오”라고 해명했다. 업계 안팎에서도 “천재 기업레이더스의 단순한 실수”라는 평가에서 “예견됐던 부도덕 행위”라는 극단적 의견까지 다양한 견해가 쏟아져 나왔다.

기업과 개인에 대한 이런저런 말들로 주변이 어수선하던 그 즈음, 권사장은 큰 결단을 내린다. 96년 11월 상장 봉제의류업체인 군자산업을 인수한 것이다. 권사장은 “직접 경영하기 위해 이 회사를 인수했다”며 “섬유수출기업으로 지위를 강화하고 정보통신·자동차부품 등 첨단 성장업종에 진출, 사업다각화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증권가에서는 “영우실업처럼 차액을 남기고 되팔아버릴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이들의 예측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1997년 2월, 권사장은 정기주주총회를 열어 군자산업의 상호를 ‘미래와사람’으로 바꾸고 정관의 ‘사업 목적’에 환경·정보통신·자동차부품·무역·부동산개발·토목건축·주택건설·전기전자·전자파관련사업 등 첨단 또는 유망 사업을 모조리 포함시키는 파격을 단행했다. 또 발행예정주식총액 규모를 300억원(600만주)에서 3000억원(6000만주)으로 10배나 늘리고 전환사채와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한도도 각각 100억원에서 3000억원으로 30배나 늘렸다. 업계에선 여전히 권사장이 정관개정을 통해 군자산업의 주가를 올린 뒤 제3자에게 비싼 값에 되팔려는 속셈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달랐다. 권사장은 스스로 밝힌 대로 미래와사람을 통해 단순한 M·A전문가가 아닌 오너경영인으로에게 첫발을 내디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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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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