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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앞에 선 현대車, 비상구를 찾아라

  • 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태풍 앞에 선 현대車, 비상구를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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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자동차업계가 다임러 크라이슬러-현대, 포드-대우, 르노-삼성의 국제 3각구도로 재편될 전망이다. 국내 업체로는 유일하게 경영권을 거머쥐고 글로벌 네트워크에 편입된 현대차는 어떤 전략으로 격변기를 헤쳐나갈 것인가.》
대우자동차 인수경쟁이 본격화하던 지난 봄, 현대자동차는 기관과 일반 투자자 등을 대상으로 IR(기업투자설명회)를 열었다.

당시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현대차는 대우차를 인수해도 문제, 인수 못해도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현대차가 98년 말 기아자동차를 인수한 데 이어 대우차까지 인수하면 자금 압박이 커질 수밖에 없고, 인수에 실패하면 외국의 메이저 업체에 시장을 내주게 되니 진퇴양난 아니냐는 얘기였다.

그러자 현대차의 한 임원이 해명에 나섰다. “그 반대다. 우리는 대우차를 인수해도 문제가 없고, 인수 못해도 문제가 없다”고. 대우차를 인수하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시너지 효과를 높일 수 있고, 인수하지 못할 경우 몸집이 줄고 재무구조가 개선돼 해외 선진업체와 전략적 제휴가 쉬워진다는 설명이었다. 입찰에 실패해도 ‘글로벌 플레이어’가 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

6월29일, 포드가 대우차 인수의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 추후 협상결렬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대의 대우차 인수는 이미 물 건너간 느낌이다. 포드가 대우차를, 르노가 삼성차를 인수해 점령군으로 진주하면 현대를 비롯한 국내 자동차업계의 판도는 어떻게 변할까. 현대차는 대우차 인수에 실패했어도 자기들 말마따나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국내시장 점유율 76.6%, 매출 22조1000억 원, 당기순이익 5490억 원(이상 기아차 포함·99년)의 자동차왕국 현대는 과연 수성(守城)에 성공하고, 나아가 글로벌 네트워크 연합군의 핵심 일원으로 당당히 설 수 있을 것인가.

자신만만한 현대

현대측은 향후 현대-기아와 함께 한국 자동차업계의 양대 축을 형성할 ‘포드-대우號’의 파괴력을 평가절하한다. 포드가 대우를 인수해도 최소한 2∼3년간은 내수시장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하리라는 것이다. 포드가 당분간은 대우의 기존 모델을 활용해 내수시장을 공략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 이유다. 포드나 포드의 자회사인 마쓰다 모델을 완성차 형태로 국내로 들여올 경우 가격경쟁력이 워낙 낮아 판매고를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

한국에서 수입차의 시장점유율이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은 관세장벽과 환율에도 원인이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생산원가가 비싼데다 수입물량이 적어 유통단계의 마진을 높게 책정한 데 있다. 예컨대 포드의 중급 승용차인 토러스 기본형은 현대의 고급 차종인 그랜저 풀옵션과 같은 값에 팔리고 있어 가격경쟁력에서 ‘게임’이 되지 않는다. 포드가 현대보다 경쟁력이 높은 차종은 픽업과 미니밴 정도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조성재 연구위원은 “포드나 마쓰다 차를 들여와 대우에서 조립 생산할 경우에도 국내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게 모델을 수정해야 한다. 여기엔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데, 과연 포드가 국내시장을 보고 그런 투자를 할지 의문스럽다”고 말한다. GM이 카데트를 들여와 제휴사인 대우에서 르망 모델로 만들어 팔다 재미를 보지 못한 게 그 예라는 것. 르망은 독일 등 유럽에서 엄청난 판매고를 기록했지만, 한국에서는 소음이 심하고 실내공간이 좁아 소비자들에게 외면당했다. 이들과 달리 고속으로 아우토반을 내달리며 운전 자체를 즐기는 독일인들은 소음과 좁은 공간을 단점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위원은 “포드가 대우의 기존 모델로 국내시장을 공략한다면 대우의 경영을 정상화시킨다 해도 현재 23% 수준에 머물고 있는 대우의 시장점유율을 5%포인트 이상 끌어올리기는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아를 인수한 현대가 자사 개발 모델인 비스토 카스타 옵티마를 잇따라 기아에 OEM으로 공급, 기아의 경영 정상화를 지원한 것과 같은 순발력있는 제휴관계를 포드-대우 관계에선 당장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도 그 이유로 들었다.

현대측은 포드가 제시한 대우차 인수가격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앞으로 협상과정에 가격이 다소 낮아질 가능성은 있으나, 대우를 사들이는 데 70억 달러를 쏟아붓겠다고 한 것은 상식 밖이라는 것.

현대차 경영전략팀의 한 임원은 “지난해 포드가 스웨덴의 볼보를 인수할 때 60억 달러를 지불했는데, 대우의 매출규모가 볼보의 5분의 3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대우의 적정 인수가는 높게 잡아도 40억 달러 이상으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더욱이 볼보는 브랜드 가치가 대우보다 월등한 데다 피인수 시점에도 수익을 내고 있었으므로 적자와 부채가 누적된 대우의 자산가치는 이 가격보다 20% 이상 낮게 봐야 한다는 것.

현대차 재경본부 관계자도 “현대차 주가가 저평가돼 있어 계산상으로는 10억 달러 정도면 현대차 지분 30%를 사들여 적대적 M·A가 가능한데, 포드가 왜 70억 달러나 주고 대우를 사겠느냐”며 “포드가 그 가격에 대우를 인수하고서도 이익을 내겠다면 대우차를 대당 150만 원은 더 받고 팔아야 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동유럽 교두보 놓치다

그러나 포드의 자금력과 대우의 영업력이 조화를 이루면 사실상 현대-기아가 독점하고 있는 국내시장 판도에 무시 못할 영향을 끼치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포드는 생산대수나 매출액은 세계 최대 규모인 GM에 다소 뒤지지만 순이익은 GM을 능가할 만큼 실속있는 경영을 통해 막대한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다. 지난해 순이익은 72억 달러로 현대와 기아의 순이익을 합친 것보다 15배나 많다. 또한 포드는 현대보다 연 4%나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에 할부판매 같은 공격적인 영업전략을 펼 경우 현대를 충분히 위협할 수 있다.

또 대우는 회사가 흔들리면서 자동차가 정상적으로 생산되지 않을 때도 시장점유율이 20%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을 만큼 뛰어난 영업력을 인정받고 있다. 따라서 포드가 가세해 회사가 정상화 단계로 접어들면 빠른 속도로 시장점유율을 회복할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대우차의 한 임원은 “기업 가치를 평가할 때는 현재의 자산과 부채보다 향후 수익전망에 더 비중을 둔다”며 “2조4000억 원을 들여 만든 삼성차를 르노가 1조 원도 안 주고 샀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포드가 대우를 고가에 사려는 것은 대우의 비즈니즈 플랜과 성장 잠재력을 그만큼 긍정적으로 봤기 때문”이라고 자평했다.

현대차의 자체평가와 달리 현대는 대우차 인수에 실패함으로써 잃은 것이 적지 않다. 대우는 폴란드 FSO공장을 비롯, 자동차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동유럽에 핵심 생산설비와 판매망, 부품 조달망을 갖추고 있다.

대우가 인수한 영국의 워딩연구소는 대우의 첫 독자 모델이라 할 수 있는 레간자, 라노스, 누비라를 탄생시킨 산실이었다. 현대가 대우를 인수해 이런 연구·생산기반을 확보했다면 동유럽 및 서유럽 시장 진출을 향한 든든한 교두보를 마련했을 것이다.

80년대 들어 잇따라 독자 모델과 독자 엔진을 개발하면서 자체기술 발전에 크게 고무된 현대는 89년 북미시장을 겨냥, 캐나다 브루몽에 공장을 설립했다. 브루몽 공장은 연 10만 대의 쏘나타 생산설비를 갖췄는데, 판매부진이 거듭되면서 생산대수가 급감, 불과 수년 만에 연 2만 대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 공장은 93년부터 사실상 가동이 중단됐고, 96년에는 결국 매각되기에 이른다.

그 결과 수천억 원의 손실을 입게 되자 이후 현대차 임원들은 해외 현지생산에 대해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기술력은 낮아도 외형을 키우는 데 열심이었던 대우가 유럽에 잇따라 공장을 설립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현대가 이 지역에 취약했던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었다. 따라서 현대가 대우의 유럽 기반을 차지했다면 두 회사의 약점을 서로 보완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지난 6월 현대와의 전략적 제휴에 합의한 다임러 크라이슬러도 동유럽 시장에 이렇다 할 기반이 없기 때문에 현대가 대우를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면 현대는 다임러 크라이슬러와의 제휴관계에서도 좀더 강한 협상력과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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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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