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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물 파기’와 ‘무차입 경영’으로 떴다

‘최우수 상장기업’ 남양유업

  • 최희정 자유기고가

‘한우물 파기’와 ‘무차입 경영’으로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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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행빚이 한 푼도 없는 기업, 해마다 수백억 원의 순이익을 내면서도 변변한 사옥 한 채, 계열사 하나 없는 회사. 남양유업은 ‘실속’을 빼면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회사다.》
지난 6월20일은 알짜배기 기업으로 소문난 남양유업의 진가를 다시 한 번 확인한 날이었다. 이날 대신경제연구소는 국내 전 상장회사를 대상으로 한 경영평가에서 남양유업을 최우수 상장기업으로 선정했다. 남양유업은 종합대상을 받은 것을 비롯, 수익성 부문과 자본금 150억 원 이하의 소형사 부문에서도 최우수 기업상을 거머쥐면서 3관왕에 올랐다. 해마다 매출이 꾸준히 늘어나고 분유와 음료시장에서 탄탄히 자리매김한 점, 은행빚이 전혀 없다는 점 등이 주요 수상이유가 됐다.

남양유업은 30여 년 전부터 분유를 비롯한 각종 유제품과 음료를 생산하면서 줄곧 국민 식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어온 기업이지만, 특별히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97년 말 온 나라에 경제위기가 닥쳐온 이후였다.

굵직굵직한 대기업들마저 자금난에 휘청거리고, 우유 소비가 격감하면서 동종 업체들이 부도 위기에 직면한 와중에도 남양유업만은 사정이 달랐다. 오히려 매출규모가 늘어났다. 다른 기업들이 어떻게 은행돈을 좀 빌려 쓸 수 없을까, 대출기한을 연장할 수 없을까 하고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남양유업은 오히려 ‘무차입 경영’을 선언하며 있던 빚마저 몽땅 갚아 버렸다. 회사에 여유자금이 생겼는데 굳이 이자 줘가면서 남의 돈을 쓸 필요가 없다는, 극히 상식적인 판단 때문이었다.

이렇듯 탄탄한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남양유업은 해마다 매출이 20%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98년 순이익보다 3배나 껑충 뛴 680억 원의 순이익(매출액은 5980억 원)을 기록했다.

너나없이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고 아직까지도 불황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는 기업들이 허다한 가운데 남양유업이 승승장구한 비결은 무엇일까. 직원들은 그 답이 너무나 당연하고 명쾌한 남양유업의 경영원칙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계열사 없는 기업

‘한 우물을 파고 최고가 되자.’

남양유업은 1964년 창업 이후 오직 유제품에만 매달려 신제품 개발과 생산에 전념했다. 다른 기업들이 재벌 흉내를 내며 문어발 확장을 시도할 때도 실속경영을 통해 작지만 탄탄한 기업으로 내실을 다졌다. 해마다 수백억 원의 순이익을 내면서도 그 흔한 계열사 하나 만든 적이 없다. 속 빈 강정꼴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에 창업 이래 단 한 해도 적자를 낸 적이 없다. 몸집이 좀 커졌다 싶으면 빚을 내서라도 건설과 금융 등 생소한 사업 분야에 유행처럼 진출해 계열사를 주렁주렁 만들어내는 게 한국 기업의 일반적인 경영풍토. 하지만 남양유업은 ‘제품의 다양화’는 추진하되, ‘사업의 다각화’는 철저하게 배격했다.

그 동안 분유캔을 만드는 회사나 사료공장, 광고회사를 세우자는 내부 의견도 많았다. 이런 사업은 남양유업의 자체 수요만 흡수해도 ‘땅 짚고 헤엄치기’ 장사를 할 수 있는 업종. 그러나 전공을 벗어나는 사업에는 절대 눈을 돌리지 않겠다는 방침에 따라 이런 제안들은 번번이 묵살됐다. 다만 세계 최고의 식품회사가 되겠다는 목표로 최근 인터넷 ‘아이엄마(www.iomma.com)’란 포털 사이트에 지분 참여를 한 것이 유일한 ‘외도’다.

‘한 우물 경영철학’의 주인공은 홍원식(洪源植·50) 사장이다. 홍사장은 창업주 홍두영(洪斗榮·89) 회장의 뒤를 이어 대학(연세대 경영학과) 재학중 경영일선에 뛰어들었다. 이후 그는 ‘유제품 분야 세계 최고’라는 한 가지 목표만을 향해 달려왔다. 그의 관심사는 네슬레 같은 세계 유수의 식품업체가 국내 시장에 진출할 경우 어떤 전략으로 얼마나 발 빠르게 대처하느냐 하는 문제일 뿐이다. 식품회사 외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한우물 경영은 98년 무차입 경영을 선언하면서 더욱 빛을 발했다. 당시 남양유업은 매출액이 계속 늘어나자 주거래 은행에서 가져다 쓴 180억 원의 차입금을 몽땅 갚아버렸다. 지금은 빚은커녕 오히려 2500억 원의 여유자금을 은행에 예치해놓고 있다. 장사를 안 하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연 250억 원의 이자소득을 올린다는 얘기다.

1등급 원유만 쓴다

대신경제연구소 노주홍 대리는 “남양유업은 매년 20%의 매출증가율과 94%의 영업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차입금이 전혀 없다 보니 자기자본 대비 경상이익률이 45.9%에 달한다. 경우에 따라선 은행빚이 전혀 없다는 게 기업을 경영해나가는 데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의 금융상황에서는 빚이 없는 게 여러모로 기업에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금융비용이 들 까닭이 없으니 경쟁업체보다 생산원가가 낮을 수밖에 없고, 같은 값에 제품을 팔더라도 비싼 원료를 사용할 수 있으니 품질 고급화와 직결된다는 것이다.

신제품 개발에 들이는 공력도 대단하다. 10년째 장수하며 효자상품으로 자리잡은 발효유 ‘불가리스’가 시판되기 전 남양유업 전 직원은 6개월 동안 매일 ‘불가리스’를 먹어대며 ‘마루타’ 노릇을 했다고 한다. 한 사람이라도 “맛이 텁텁하다”거나 “너무 단 것 아니냐”고 지적하면 원인을 분석해 공정을 다시 손질했다.

현재 남양유업이 시판하고 있는 제품은 분유 ‘아기사랑 수’, 이유식 ‘스텝 엄선’, 발효유 ‘불가리스’, 치즈 ‘로젠하임’, 우유 ‘아인슈타인’, 미과즙음료 ‘니어워터’ ‘오투’, 건강음료 ‘위풍당당’ 등 40여 종에 이른다. 이중 ‘아인슈타인’ 우유나 ‘불가리스’ ‘아기사랑 수’ ‘임페리얼 드림’ 등 7∼8개 제품은 첫 생산 이래 지금까지 시장점유율이 60%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다.

이런 제품들이 오랫동안 히트상품으로 자리를 굳힌 것은 원유 등의 주원료를 철저하게 1등급만 골라 사용하기 때문이다. 남양유업은 97년 6월 “모든 유제품에 1등급 원유만을 사용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농림부가 정한 1등급 원유의 조건은 ‘세균수(혹은 체세포수)가 1ml당 10만 마리 미만’으로 기준을 맞추기가 결코 쉽지 않다. 남양유업은 이 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해 원유를 납품하는 목장들에 매우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한다. DHA 함유 우유인 ‘아인슈타인’의 경우 지정 목장까지 두고 따로 엄격하게 관리할 정도다.

충남 천안에서 선목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경하 사장은 30년 간 남양유업과 인연을 맺어왔다. 그는 “남양유업은 지독할 정도로 깐깐한 회사”라고 혀를 내두른다. 1등급 원유가 아니면 받아가질 않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1등급 원유 기준에 맞게 세균수를 맞춰야 하고 위생관리도 철저히 해야 한다.

“소젖을 짜는 것도 다 사람 손으로 하는 일인데 어떻게 실수가 없겠어요.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착유하는 과정에 공기가 들어갈 수 있고, 더러 소가 발길질이라도 하면 불순물이 좀 들어갈 수도 있는 일인데, 남양유업 사람들은 야박스럽게 퇴짜를 놓거든요. 정부가 정한 기준보다 더 까다롭다니까…. 목장 하는 사람은 피가 마를 지경이죠.”

젖소가 DHA 사료만 1개월 이상 먹어야 원유 속에 DHA 성분이 함유되는데, 아인슈타인 우유용 원유는 DHA를 0.04% 이상 함유해야 통과된다. DHA 기준과 1등급 원유 기준을 모두 만족시키지 못하면 가차없이 DHA 지정 목장에서 제외된다. 남양유업 직원들은 한 달에 서너 차례씩 목장을 방문해 위생시설을 점검하고, DHA 성분과 세균수 등의 기준에 맞추라고 독려한다. 이토록 귀찮게 하는데도 목장주들이 남양유업과 거래를 계속하는 것은 결제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남양유업은 원유값을 대부분 현금으로 결제하는데다 결제 기일도 정확하게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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