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9월호

이상철 전 한통프리텔사장의 IMT-2000 사업

  • 이나리·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입력2006-08-17 13: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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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기를 더해가는 차세대이동통신(IMT-2000) 사업권 쟁탈전. 거대 무선통신 사업자들에 맞서온 한국IMT2000컨소시엄의 운명은? 또 ‘비동기식’기술표준을 주장하고 있는 사업자들의 속내는? 돈과 명분에 따라 얽키고 설킨 IMT2000 사업에 대한 ‘한국 통신업계의 대부’ 이상철 전 사장의 쾌도난마.》
    ‘2000년 최대 이권’이라는 차세대 이동통신(IMT2000) 사업자 선정이 코 앞에 닥쳐왔다. 사업권 획득을 위한 컨소시엄 구성도 사실상 끝난 상태. 예상대로 ▲한국통신과 자회사인 한통프리텔(016), 한통하이텔, 한통엠닷컴(018) ▲SK텔레콤(011)과 최근 이 회사에 합병된 신세기통신(017) ▲LG텔레콤(019)과 LG그룹 계열사인 데이콤 ▲하나로통신, 온세통신을 축으로 한 한국IMT2000컨소시엄 등이 3장의 티켓을 놓고 각축을 벌이게 됐다. 각 컨소시엄은 다음달 말까지 사업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사업권 쟁탈전의 열기를 반영하듯, 언론은 연일 관련 뉴스를 쏟아내고 있다. 관심거리는 크게 세 가지다. 어느 컨소시엄이 탈락할 것인가, 어떤 기술표준을 선택할 것인가, 일명 ‘꿈의 통신’으로 불리는 IMT2000 사업의 ‘본질’은 무엇인가.

    궁금증을 풀기 위해 이상철(李相哲·52) 전 한통프리텔 사장을 만났다.

    이 전 사장은 경기고·서울대 전기공학과를 거쳐 미국 버지니아 폴리테크닉주립대에서 석사학위, 듀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무선통신 전문가다. 1976년부터 7년간 미 항공우주국(NASA) 통신위성설계담당 선임연구원, 국방성 지휘통신자동화체계설계담당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했다.

    1982년 귀국해 국방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일하며 주파수 도약 무전기의 국산화에 성공했고, 군에 지휘통제자동화체계를 도입키도 했다. 1991년 한국통신으로 자리를 옮겨 통신망연구소장, 사업개발단장, 무선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1996년에는 한국통신프리텔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지난 2월 총선 출마(민주당 경기 성남분당을지구)를 위해 사직했으나 낙선했다. 현재 민주당 정보과학기술특위 위원장이다.

    이사장은 오명 동아일보 사장, 서정욱 과학기술처 장관 등과 더불어 ‘한국 통신업계의 대부’로 불린다. 무선통신 기술개발의 권위자일 뿐 아니라, 통신업체 사장을 지낸만큼 업계 사정에도 정통하기 때문이다. 올 초 개각 때에는 정보통신부 장관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이 전사장의 형 이상훈 재향군인회장 또한 국방장관을 역임한 터라 ‘최초의 형제 장관 탄생 가능성’으로 화제를 모았다. 조훈현 9단과 4점을 깔고 대국해 이길 정도로 바둑 실력이 뛰어나다.

    왜 ‘페이퍼 컴퍼니’여야 하는가

    ─정통부는 지난달 IMT2000 사업 관련 정책 방안을 확정, 발표했습니다. 주 내용은 ▲사업자 선정시 컨소시엄에 높은 점수를 주고 ▲주파수 대여 출연금은 1조원으로 하며 ▲기술 표준은 업계 자율에 맡긴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중 컨소시엄 우대 정책에 대해 몇몇 업체는 자사에 불리한 내용이라며 불만을 표시했는데요, 그에 대한 견해는 어떠십니까.

    “PCS사업자 선정 때도 지금처럼 컨소시엄이 들어갔습니다. 국가적인 인프라 사업을 할 땐 가능한 한 많은 사업체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정석입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아니어도 ‘확실하게 망하지 않는’ 사업인만큼 되도록 많은 기업에 과실을 나눠주자는 거죠. 물론 이번에 SK텔레콤이 그랬던 것처럼 “왜 컨소시엄을 강요하느냐”고 불만을 터뜨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처럼 자본주의가 발달한 나라에서도 국가적 프로젝트엔 꼭 중소기업을 끼도록 돼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도 50만 달러 이상 되는 국책사업엔 무조건 중소기업을 넣도록 돼 있었어요. 컨소시엄 정책은 적절하다고 봅니다.”

    ─컨소시엄 장려가 자칫 통신시장의 출혈경쟁과 중복투자를 조장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선도 있습니다. 기존 무선 사업 3사에, 새 법인 3개가 더해지는 격이니까요. 이에 대해 안병엽 정통부 장관은 “컨소시엄 대주주도 기존 이동전화 사업자이기 때문에 적당한 시기가 되면 자연스레 합병이 이루어질 것”이라 내다봤습니다. 과연 일이 그렇게 쉽게 풀려 나갈까요.

    “컨소시엄을 장려한다고 하지만 기존 무선 사업자가 들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도 메인(대주주)으로 말입니다. SK도, LG도, 한국통신도 다 마찬가집니다. IMT2000이 아무리 새로운 서비스라 해도 결국 고객은 현재 휴대폰을 쓰고 있는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처음 PCS폰 나올 때는 ‘전 국민’이 고객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저수지에 고기가 많았던 거죠. PCS폰이란 그물로 던지고 잡고 던지고 잡고…. 그물 좋고 미끼 좋으면 얼마든지 끌어 모을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저수지엔 더 이상 고기가 없습니다. 지금 휴대폰 사용자 수가 2600만, 2700만을 헤아립니다. 이 사람들을 빼고 또 다른 고객을 찾을 수 있을까요?

    만일 기존 휴대폰 사업자와 IMT2000사업자가 제각각이라면 상황이 어떻게 되겠어요. 대단한 출혈경쟁이 이어지겠지요. 이건 저수지 물고기 갖고 싸우는 거랑은 차원이 다른 얘깁니다. 남의 횟집 수족관에 들어있는 물고기를 빼오는 격이에요. 횟집 물고기는 저수지 고기보다 10배는 더 비쌉니다. 아니 100배가 비쌀 수도 있어요. 결국 새 사업자가 한 명의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선, 반대로 기존 사업자가 고객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엄청난 비용이 든다는 뜻이지요. 그런 식으로 경쟁하다간 양쪽 다 큰 피해를 입게 돼요. 망할 수도 있지요.

    그래서 전 옛날부터 지금의 무선통신 사업자가 IMT2000에서도 주사업자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건 결코 제가 한통프리텔 사장이었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닙니다. 컨소시엄은 국가 정책이니 따른다 해도 주체는 어디까지나 기존 사업자가 돼야 해요. 왼쪽 주머니에 든 물고기를 오른쪽 주머니로 옮기는 수순이죠. 어쩌면 정부가 컨소시엄을 그렇게 강조하는 것도 “우리는 셀룰러폰 때도, PCS 때도 참여하지 못했다. IMT2000만은 꼭 끼워달라”는 기업들의 요구를 좀 다른 방식으로 들어주기 위한 고육책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물론 다른 주주들의 반발이 있을 수 있어요. 대주주인 SK, LG 또는 한국통신은 괜찮겠지만 나머지 주주들에겐 엄연히 둘은 다른 회사니까. 앞으로 그게 심각한 문제가 될 가능성이 커요. 예를 들어 A라는 PCS 사업자가 자사의 휴대폰 고객을, 역시 자사가 대주주로 있는 IMT2000 쪽으로 유도한다고 합시다. 그럼 A사야 상관 없겠지만 PCS 쪽의 나머지 주주들은 “왜 우리 고객을 빼가느냐, 주가 떨어진다”고 반발할 수 있겠죠.

    장관이 언급하셨듯 언젠가는 대주주가 같은 회사들끼리 인수합병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쉽지는 않을 거예요. 이쪽 저쪽 주주들 달래야 하고, 또 고용 승계 문제도 있지 않겠습니까.”

    겉으론 비동기식, 속으론 ‘글쎄…?’

    ─그런 진통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있어야 될까요.

    “전 새로 생기는 IMT2000 서비스 업체들은 ‘페이퍼 컴퍼니(종이 회사)’ 수준이 돼야 한다고 봐요. 그게 사실 경제 논리에도 맞는 겁니다. 컨소시엄 꾸리고 돈 모으고 그런 것은 하라, 정부도 주파수 값(출연금)은 받아야 하니까. 대신 회사는 페이퍼 컴퍼니로 가라, 그래야 나중에 합치기가 쉬워지니 말입니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같은 기술표준을 채택한 업체끼리는 가능하면 한 네트워크를 썼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경쟁력이 생기거든요.”

    네트워크 공유는 중복 투자를 막기 위해 정통부에서도 권장하고 있는 사항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풀어나가려면 기술 표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표준이 서로 다르면 네트워크 공유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IMT2000 기술이 가진 최대의 장점은 세계 어디서나 한 단말기로 통화가 가능하다는 것. 이를 ‘국제 로밍’이라고 한다. 그러자면 역시 세계가 같은 표준을 채택해야 한다. 그러나 이 꿈은 말 그대로 ‘꿈’이 돼버리고 말았다. 지난해 11월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국제전기통신연합 회의에서 비동기 진영의 ‘W─CDMA’, 동기 진영의 ‘cdma2000’을 포함, 모두 5개의 무선 규격을 IMT2000 기술표준으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는 전세계 단일통화권 구축을 위한 단일표준 구상을 사실상 포기했음을 의미한다.

    5개의 기술표준이 있지만 세계시장의 대세는 비동기식 W─CDMA(이하 비동기식)와 동기식 cdma2000(이하 동기식)이다. 국내 사업권 신청업체들도 이 두 방식을 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다.

    동기식은 미국 퀄컴사의 기술에 바탕을 둔 것이다. 미국에서 주로 사용한다 해서 ‘미국식’이라 불리기도 한다. 현재 국내 휴대전화가 채택하고 있는 2세대 코드분할다중접속방식(CDMA)이 진화한 것.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CDMA를 상용화한 국가답게 단말기나 시스템 분야에도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동기식을 선택할 경우 기존 설비 및 기술 노하우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데다 수출 경쟁력도 탁월하다. 문제는 국제 로밍이다. 동기식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20%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주로 사용해 ‘유럽식’이라고도 불리는 비동기식의 경우, 우리나라의 기술 수준은 그리 높지 않다. 국내 업체들엔 생소한 GSM기술을 기반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 시장의 80%가 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어 해외시장 개척이나 국내 업체의 기술고립 방지 차원에서는 단연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또 동기식에 비해 국제 로밍 범위가 3배 가량 넓어 세계화 및 편의성이란 측면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카드다.

    사업권 신청을 눈앞에 둔 4개 진영은 현재, 모두 비동기식을 채택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정통부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표면적으로는 ‘복수 표준’, 다시 말해 사업자에게 표준 결정 권한을 준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내심 하나 이상의 사업자가 동기식을 택하길 바라고 있다. ‘CDMA 개발에 너무 많은 공을 들였다, 시장은 작지만 지금 와서 포기하기엔 너무 아깝다’는 것이다.

    장비업체들의 입장도 다르지 않다. 비동기 기술을 어느 정도 축적해 놓은 LG정보통신 외에 삼성전자, 현대전자 등의 대다수 장비제조업체들은 동기식 기술표준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최근 들어 소규모로나마 유지해오던 비동기식 단말기 제조 라인을 아예 철수시켜버리는 등 ‘배수진’을 친 상태다. IMT2000 기술 표준 선택과 관련해선 각자의 상황에 따라 이렇듯 복잡한 사정이 얽혀 있는 것이다.

    ─네트워크 공유와 기술 표준 문제는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요. 그럼 ‘네트워크 공유가 왜 중요한가’ 하는 질문으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 보지요.

    “장비 업체 쪽에서 보면 네트워크 공유는 반가운 얘기가 아니지요. (장비) 두 벌 팔 수 있는 걸 한 벌밖에 못 파니까. 그러나 서비스 사업자는 그렇지가 않아요.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게 있는데, 사실 IMT2000으론 한동안 돈을 벌 수 없습니다. 투자비만 계속 들어가는 거죠. 호출기에서 휴대폰으로 바뀌던 때를 생각하면 오산이에요. 그 두 가지는 전혀 다른 서비스였습니다.

    휴대폰과 IMT2000은 그렇지 않아요. 특히 요즘의 첨단 휴대폰 서비스는 국제 로밍과 동영상 빼고는 기능 면에서 IMT2000과 하등 다를 게 없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IMT2000에) 수 조원씩을 퍼 넣으면서, 한편으론 크게 다르지 않은 서비스로 고객을 ‘유인’해 이 쪽에서 저 쪽으로 옮기는 작업까지 병행해가며 돈을 벌 수 있겠어요. 방법은 하납니다. 네트워크를 공유해야죠.

    혹자는 ‘네트워크로 차별화 하겠다’는 얘기를 할 수도 있어요. 어차피 경쟁이니까 더 많은 망을 까는 걸로 승부를 보겠다 이거지요. 그런데 그게 가능한 일일까요? 출연금만 1조원인데…. 그런 식으로 하다간 경쟁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타 사업자와 네트워크는 공유하되 서비스의 질로 승부를 봐야지요.”

    ─출연금 얘기가 나와서 말입니다만, 1조원이란 액수가 적정하다고 보십니까?

    “내가 아직도 프리텔 사장이라면 너무 많다고 아우성을 치겠지(웃음). 하지만 처음에 5000억원, 이후 15년 동안 분할상환하게 돼 있으니 아주 과하다곤 할 수 없겠죠. 대신 정부도 사업자가 자금 확보를 원활히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해요. 주식 할증이 한 방법이 되겠죠. 출연금 1조원을 내려면 자본금이 적어도 2조원은 돼야 하는데 그걸 현금으로 준비하기는 상당히 어려워요. 그러니까 자본금을 한 5000억원 정도로 하고 주식을 할증 발행해서 나머지 1조5000억원을 채우게 하는 거죠. 거기서 5000억원은 1차 출연금으로 내고 나머지 1조원으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말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기술 표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죠. 다른 쪽은 말고 일단 서비스 사업자 입장에서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과연 사업 신청자들은 애초 공언한대로 모두 비동기식을 택하게 될까요?

    “예를 들어 한통프리텔이 메인 사업자인 컨소시엄이다, 그래서 기존 016 고객을 IMT2000 쪽으로 옮겨와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먼저 가만히 생각해 보겠죠. 사람들은 IMT2000을 어떤 용도로 쓸까. 과연 동영상을 그렇게 많이 쓸까. 유선 전화에 동영상 기술이 들어온 건 20년 정도 됩니다만 실제로 활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죠. 아마 휴대폰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활용도를 대강 따져 보면 음성통화가 95%, 인터넷 같은 하이데이터가 4%, 동영상이 1% 정도나 되지 않을까요? 그럴 때 내가 사업자다, 그러면 어떻게 시스템을 운영하고 네트워크를 깔고 고객을 옮겨가겠습니까?”

    ‘비동기’가 불합리한 세 가지 이유

    ─그야, 기존 휴대폰을 되도록 오래 쓰게 하지 않겠습니까.

    “바로 그겁니다. 사실은 답이 모두 나와 있는 거죠. 사람들은 이 사업을 너무 정서적, 감성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시스템 사업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길을 찾아가죠.

    첫째, 가능하면 기존 휴대폰을 오래 쓰게 하다가 굳이 IMT2000으로 바꾸겠다고 하면 그 때서야 옮겨줄 겁니다. 둘째, IMT2000에 대한 고객들의 음성통화 요구는 기존 시스템으로 처리하려 할 겁니다. 셋째, 새 시스템 설치는 되도록 천천히 할겁니다. 대도시 중심으로 아주 서서히. 모두 초기 투자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네트워크 공유를 생각하겠죠.”

    ─그런데 그건 다 IMT2000에서도 현재의 휴대폰처럼 동기식을 선택해야만 가능한 일 아닙니까. 또 네트워크를 공유할 수 있는, 기술표준이 같은 사업자가 최소한 한 개 이상 있어야 하는 거구요.

    “그렇죠. 그러니 다른 가능성도 생각해 봐야지요. IMT2000에서 비동기식을 선택했을 때, 또 사업자간 기술표준이 다른 상황을 말입니다. 난관이 무척 많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첫째, 단말기 문제입니다. IMT2000에서 비동기식을 선택했다, 그럼 그 사업자는 자사가 서비스하는 IMT2000으로 표준 방식이 다른 동기식 휴대폰과도 자유롭게 통화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아야 합니다. 한마디로 동기식, 비동기식 함께 사용 가능한 단말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건데 그게 기술적으로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죠. 그뿐인가요, 지금 음성통신을 하고 있다면 사용자 모르게 CDMA로 내려줘야 하고 그게 아니면 비동기로 가줘야 하고, 비동기 중에서도 데이터면 휴대폰 쪽하고 연결해야 하고…. 뭐 이러자면 전세계에 유례가 없는 단말기가 나와야 할겁니다.

    둘째, 시스템 문제입니다. 사업자 간 기술 표준이 다르다…, 당연히 네트워크 공유는 불가능하죠. 더 나쁜 건 나 외에 다른 둘이 같은 방식을 채택했을 때예요. 둘은 네트워크를 공유해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췄는데 나만 전국망을 혼자 다 깔아야 하는 거죠. 물론 셋 다 동기, 또는 비동기로 간다면 괜찮겠지만. 그러니 사업자들 생각이 어떻겠어요. ‘어떤 쪽이든 하나는 나하고 같은 방식을 썼으면 좋겠다, 내가 비동기로 간다면 저 둘은 뭘로 갈까, 그럼 내가 동기로 가면 나머지 둘은 어떻게 되지…?’ 뭐,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거지요.”

    “SK는 한국통신 따라갈 것”

    ─어떤 표준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투자 비용에도 큰 차이가 나겠군요.

    “그렇습니다. 그게 바로 세 번째, 서비스 개시를 위한 초기 투자비용의 문제입니다.

    IMT2000은 초기 비용이 무척 많이 들어갑니다. 서비스 개시를 위해선 전국에 최소한의 망은 깔아놔야 하니까요. 그런데 동기식을 택했다, 그러면 큰 무리가 없습니다. 기존 망을 충분히 활용하며 서서히 늘려가면 되니까요. 하지만 비동기식일 땐 초기에 상당히 무리를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같은 액수의 돈이라도 2년 만에 써버리는 거랑 5년 동안 서서히 소모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5년동안 100만원씩 5번 내는 거하고 처음에 500만원 전부를 내는 거하고는 얘기가 전혀 다르다 그 말입니다.

    서비스 비용도 마찬가지예요. 동기식을 채택한 쪽은 이미(휴대폰용으로) 개발해 놓은 서비스가 한 100가지 된다, 그러면 그걸 IMT2000 쪽으로 그대로 가져다 쓰면 돼요. 거기 더해 1년에 한 10개씩만 착착 개발해도 2년 후엔 120가지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비동기로 가면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2년 뒤 120가지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그 동안 엄청난 노력과 비용을 들여야 해요.”

    ─그렇게 난관이 많은데도 왜 업체들은 비동기식을 택하겠다는 걸까요.

    “아무래도 국제 로밍 때문이지요. 세계 80%가 그쪽으로 간다지 않습니까. IMT2000의 가장 큰 특징이 국제 로밍인데 그 쪽이 부실해서야 마케팅에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요. 물론 처음부터 국제 로밍에 대한 요구가 많지는 않을 겁니다. 몇 년 간은 국제 로밍이 되고 안되고가 매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진 않겠지요. 하지만 7년 후쯤 가면 사정이 달라질 겁니다.

    미국, 중국은 주로 동기식을 쓰니 그 쪽에 연이 닿는 이들은 동기식을 선호할테고, 다른 쪽은 비동기식을 원할 텐데 그 비율의 차이가 한 10%정도 날 겁니다. 그러니까 유럽식 비동기를 원하는 사람이 20%라면 미국식의 동기를 원하는 이는 10%정도 될 거란 얘기예요. 이 때부턴 어떤 방식을 채택했느냐에 따라 매출이 차이 나기 시작하겠죠.

    자, 그럼 SK가 주춤주춤 하는 사이 한국통신이나 LG, 한국IMT2000컨소시엄이 비동기로 가겠다고 선언한 이면에는 뭐가 있느냐, 바로 시장 판도를 바꿔보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겁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기술표준을 택해 SK가 50% 이상 장악하고 있는 지금의 시장 상황을 엎어보겠다는 거예요. SK가 동기식을 선택할 경우엔, ‘우린 국제 로밍에 강하다’는 점을 크게 부각시켜 역전 기회를 노릴 수 있겠죠. 또 SK까지 전부 비동기식을 택할 경우에도 아예 처음부터 같이 시작하는 셈이니 이전에 비하면 한번 붙어 볼 만하지 않겠어요.

    이런 구도를 머리에 그려볼 때, 전 SK가 한국통신 가는 쪽으로 따라가지 않을까 싶어요. 어쨌건 현 시장 구도에서 SK 최대의 경쟁자는 한통 쪽이니까, 서로 다른 기술표준을 택할 경우 한통에 시장을 잠식당할 가능성이 적어도 10%는 있다고 보는 거죠. 그런데 한통은 또 정부 입김이 많이 작용하는 회사거든요. 정통부가 동기식을 계속 지지하는 이상 한통이 비동기에서 동기식으로 바꿀 가능성이 상당히 크죠.”

    ─말씀하신 내용으로 봐서 이 전사장께서는 사업자들이 비동기식이 아닌 동기식을 선택하리라 예상하시는 것 같은데요.

    “비동기식을 선택하기엔 난관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기술 수준이 낮고 그런만큼 외국 업체들에 지불해야 할 로열티는 너무 높고요. 물론 로열티가 획기적으로 낮아지고, 서비스 사업자 3사가 모두 같은 네트워크(비동기식)를 쓰며, 듀얼단말기(동기식·비동기식을 다 지원하는 단말기) 개발 가능성이 보인다면 비동기로 갈 수도 있겠죠.

    제일 좋은 건 삼성전자나 LG정보통신 같은 회사에서 비동기식 핵심 기술을 보유한 업체를 사버리는 거예요. 현실성 없는 얘기가 아닙니다. 지금은 거대 기업이 돼버렸지만 퀄컴도 처음 한국전자통신연구소(ETRI)와 계약할 때는 주가가 17달러에 불과했어요. 그래서 당시 전 퀄컴을 통째로 사버리든지 아니면 주식이라도 사두자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먹히지 않았죠. 아니나 다를까 ETRI와 계약이 성사되자마자 주가가 85달러까지 올라가더군요. 지금은 그보다 더 비싸잖아요.”

    ─이 전 사장께선 PCS사업자 선정 당시 동기식의 전 단계인 CDMA보다 비동기식 쪽인 GSM으로 갈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는데요.

    “지금 비동기식 얘기하는 거하고 비슷한 맥락이죠. 국제 로밍 되고, 퀄컴이란 미국의 작은 기업에서 이제 막 시작한 CDMA에 비하면 이미 국제적으로 증명된 기술이었고요. 사실 그 때 GSM을 주장한 건 요즘 비동기식 얘기하는 것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사업자의 눈으로 봐도 그랬단 말입니다. PCS 전에 이미 SK와 신세기통신은 CDMA에 기반한 셀룰러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어요. 후발주자인 PCS폰이 이들을 이기려면 당시로선 아직 불안하던 CDMA보다 증명된 기술인 GSM을 선택하는 게 훨씬 유리한 상황이었지요.”

    사업 본질은 정부의 주파수 판매

    ─그렇다면 왜 애초에 우리나라는 유럽식 GSM이 아닌 퀄컴의 CDMA 방식을 채택하게 된 거였지요?

    “그건 상당히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깁니다. ETRI가 ‘우리도 무선통신 기술을 개발하자’ 해서 퀄컴과 GSM 쪽을 접촉했는데 GSM이 냉담하게 나온 반면 퀄컴은 대환영을 한 거지요. 당연하죠. 당시 퀄컴은 구멍가게보다 조금 나은 수준의 아주 작은 벤처기업에 불과했으니까. 그렇게 해서 ETRI는 퀄컴과 계약을 맺었고 삼성전자, LG정보통신, 현대전자 등도 가세하게 된 거지요.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난 후 우리나라에서도 휴대폰 서비스를 시작하게 됐고 이미 퀄컴에 몇천만달러를 지불한 ETRI는 적극적으로 CDMA방식을 추천하게 된 겁니다. 삼성, LG, 현대도 마찬가지였죠.

    제가 GSM 방식을 주장했을 때는 이미 대세가 기운 다음이었어요. 앞서 CDMA 서비스를 제공중이던 SK나 신세기는 공정한 경쟁을 위해 후발주자인 PCS 사업자도 같은 기술표준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LG텔레콤도 소속 그룹 계열사인 LG전자가 CDMA 관련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만큼 그 쪽을 원했지요. ETRI를 비롯, 정부도 그랬어요. 원체 신기술 개발에 많은 의미를 두는 데다 이미 퀄컴 쪽에 지불한 돈이 아깝다는 거였어요. 96년 봄부터 8월 무렵까지 이걸 주제로 대단한 논쟁이 벌어졌는데 GSM 쪽 손을 든 사업자는 제가 있던 한통프리텔뿐이었습니다. 아마 그 때 복수표준을 인정해 GSM 서비스를 시작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혼란은 없었을 겁니다.

    그렇다고 CDMA 기술 개발을 통해 얻은 이익을 부인하는 건 아니예요. 시스템과 단말기 수출로 큰 이윤을 얻었으니까요. 지금도 수출 여지는 많습니다. 중국, 동남아, 남미 등으로 한 5년 이상은 계속 팔려나갈 걸요.”

    ─이야기 방향을 좀 돌려 보죠. IMT2000사업이 세간의 평가대로 정말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며 ‘혁명’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전 이 사업의 본질을 ‘정부가 돈 받고 주파수를 대여하는 것’이라 봅니다. 기술적, 사업적인 측면에서 냉정하게 따져볼 때 IMT2000은 무슨 대단한 진화를 이룬 첨단 시스템 같은 건 아니에요. 다만 기존 무선통신 사업자들이 이미 사용중인 주파수 대역에 60㎒가 더해짐으로써 이전에는 제공할 수 없던 다양하고 질 높은 서비스가 가능해지는 거지요. IMT2000 서비스 사업자로 선정될 경우 각기 20㎒의 주파수 대역을 할당받게 되거든요.”

    ‘정보의 자원 대체’가 IT혁명의 핵심

    ─그렇다면 사업자에게 돌아가는 구체적 이익은 무엇입니까.

    “정부가 공공사업에 쓸 출연금을 얻고, 국민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받게 되듯이, 업체는 (지금 당장은 큰돈이 되지 않으나) 점점 확대될 통신 시장에서 확고한 위치를 점하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기존 무선통신 서비스 사업자라 해도 IMT2000 사업권을 따내지 못하면 시장에서 도태됩니다. IMT2000 사업자들이 새로 부여된 20㎒의 주파수로 첨단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비해 탈락한 사업자는 뒷짐지고 서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앞으로 넓은 주파수 대역폭을 활용할 수 있게 된 휴대폰(기존 사업자가 IMT2000 사업권을 따냈을 경우) 내지 IMT2000은 단순한 통신 도구의 수준을 넘어 신분증이자 신용카드, 전자화폐, 개인용 컴퓨터, 첨단 오락기로 진화해 갈 것입니다.”

    ─끝으로 우리나라의 정보통신 정책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지요.

    “자잘한 문제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의 정보통신 정책이 옳은 방향을 향해 발전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이만큼 큰 정보통신 사업을 ‘밑으로’ 눕히는 작업이 필요해요. 모든 산업, 비즈니스 분야마다 확고한 정보통신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는 거죠.

    정보통신 혁명의 핵심은 ‘정보 비용의 하락’입니다. 과거에는 원재료나 노동력에 비해 정보 비용이 대단히 높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반대입니다. 깡통 하나를 만든다고 칩시다. 원재료인 알루미늄과 노동 비용은 앞으로 오르면 올랐지 떨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결국 제품 가격을 낮춰 경쟁에서 이기려면 점점 싸지고 있는 정보 비용으로 원재료 값과 노동 비용을 대체해야 합니다. 정보에 의한 기존 자원의 대체, 저는 이것이 진짜 정보화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정보화를 종종, 데이터베이스화로 오해하는 듯 합니다. 진정한 정보화는 자료를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전체 비용을 낮추는 것입니다. 이 개념을 이해하면 굴뚝 산업이니 정보통신 산업이니 하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지요.

    이른바 굴뚝 산업에서도 정보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루아침에 효율성을 50% 향상시킬 수도 있어요. 노동 비용을 깎고 싼 원재료를 찾아 헤매는 것으로는 효율성을 1% 높이기도 힘듭니다. 정부, 기업, 개인 모두 정보를 값싸게 얻고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법을 익혀 생활화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나라가 진정한 정보통신 강국으로 우뚝 서는 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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