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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러시아 채권으로 북한의 러시아빚 갚는다?

DJ·김정일·푸틴의 러시아차관 3각 게임

  • 최영재·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한국의 러시아 채권으로 북한의 러시아빚 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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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이 러시아에 가지고 있는 채권 14억7000만 달러로 북한이 러시아에 진 빚 38억 루블을 상쇄하자는 충격적인 주장이 나왔다. 러시아 전문가인 국제농업개발원 이병화 원장이 6·15 남북정상회담 직후 한국 정부의 부탁을 받아 러시아 푸틴 대통령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는 것이다.
‘신동아’는 국제농업개발원 이병화 원장이 6월18일 대(對)러시아 차관과 관련해서 러시아 정부에 보낸 제안 내용을 입수했다. 다음은 그 편지 내용이다.(239쪽 편지 사본 참조)

『존경하는 러시아연방 대통령 각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각하와 가족 여러분 그리고 러시아 연방정부 국민들의 무궁한 행복을 기원하는 바입니다. 저는 현재 한국의 국제농업개발원 원장직을 맡고 있는 이병화입니다. 저는 러시아 극동지역 대학에서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경제학 박사 학위(99년 9월17일 학위번호 004731)를 받은 바도 있습니다.

저는 오늘 아주 중요하고 비밀스런 내용을 대통령 각하께 건의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한국 고위층의 지시를 위임받아 전달하는 것입니다. 현직 공무원이 아닌 제가 나서게 된 것은 만약 성사되지 못했을 때를 대비하여 중재자로 등장하게 되었음을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건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현재 러시아 연방공화국은 북한 김정일 정권으로부터 약 40억 달러(4,000,000,000$)의 채권(자금)을 회수하여야 하지만 북한의 경제 파탄으로 회수가 불가능하여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반면에 한국은 대통령 각하께서 통치하는 러시아연방 정부로부터 약 14억 달러(1,400,000,000$)의 차관 금액을 회수하여야 하나 러시아 연방 정부 역시 경제가 회복되지 않아서 지불하기가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요약하면 한국은 러시아로부터 약 14억 달러를 받을 것을 포기하는 대신에 러시아는 북한으로부터 약 40억 달러를 받을 것을 포기하여 서로 상쇄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의 정치적 의미는 굳이 표현하지 않더라도 대통령각하는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2. 만약 상기 내용이 타당하다고 생각되어 승낙하신다면 한국측 금액의 14억 달러 중 1억 달러는 ‘극동지역 농축산 발전기금’으로 별도로 떼어내어 운영하도록 조치하여 주십시오. 이 돈의 원금(1억 달러)을 그냥 은행에 영원히 예치하여 두고(예치 은행은 블라디보스토크, 또는 하바로프스크 내의 은행) 발생하는 이자를 가지고 연해주의 논 농장과 사슴 및 밍크 농장을 한국측과 공동 운영하면 러시아 노동자 수천 명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고, 이곳에서 생산되는 쌀을 북한으로 보내면 러시아연방 정부의 입장도 강화될 것입니다.

이상 두 가지의 내용을 건의하겠습니다. 이 문건은 저희 국제농업개발원 연해주 지사장인 남정욱 교수가 번역하여서 극동농공위원회 우바로프 박사를 경유하여 대통령 각하께 전달될 것입니다. 답신도 같은 경로로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국제농업개발원장 이병화 올림

2000년 6월18일』

위 편지에서도 나왔듯이 이 편지를 러시아 정부에 전한 이는 V.A 우바로프 박사다. 그는 푸틴 대통령이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법학부 학생일 때 경제학을 강의했던 은사로 푸틴 대통령과는 터놓고 의사를 교환할 수 있는 인사로 알려져 있다. 다음은 편지 중계역을 맡은 우바로프 박사가 이병화 원장에게 보낸 편지다.(239쪽 편지 사본 참조)

『2000년 6월

국제농업개발연구원 이병화 원장께

존경하는 이박사님/

제가 6월16일에 보낸 팩스를 받으셨는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똑같은 편지를 국가 두마(하원)로 보냈는데, 그 편지는 국가 두마에서 긍정적인 답변이 나오리라 예상됩니다. 제 생각엔 이것이 가장 옳은 결정일 것 같습니다. 6월26일부터 30일까지 모스크바에 다녀올 생각입니다. 모스크바에 가는 것은 국립 모스크바 협동조합대학의 분교를 서울에도 세울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입니다. 제 생각에는 모스크바에 가면 좀더 이 문제에 대한 폭넓은 지지를 얻게 될 것 같습니다. 깊은 존경을 표하며 우바로프 박사』

이번에는 우바로프 박사가 모스크바에 다녀온 뒤 이병화 원장에게 보낸 편지다.

『보내는 이:

국립 모스크바 협동조합대학 부총장 겸 극동러시아 농공위원회 부위원장

V.A 우바로프

받는 이:

대한민국 서울 국제농업개발원 이병화 원장

존경하는 이박사님 모스크바에 갔다가 하바로프스크에 왔습니다. 갈리차닌 국가두마 의원은 노어와 한국어로 된 나의 청탁 서신을 러시아 공화국 푸틴 대통령 행정부로 전했습니다.

존경을 표하며 우바로프 박사』

러시아 차관에 얽힌 이 충격적인 논의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노태우 대통령의 6공 정부는 1990년 9월 소련과 수교하면서 그 이듬해에 30억 차관 예정액 중 14억7000만 달러를 러시아에 제공했다. 러시아가 구소련 정부 권한을 이어받으면서 이 차관 14억7000만 달러는 러시아가 1991년 12월27일 자동 승계했다.

하지만 러시아 경제 사정 때문에 이 자금을 돌려받을 길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한국 정부는 현금 상환 대신 탱크와 산림 헬기 같은 현물로 대체 환급받기로 하고, 최근까지 이를 일부 들여오고 있다.

한·러 양국은 91년 이후 여러 방향으로 차관 상환 문제를 검토했다. 한국이 러시아의 연해주 농토나 시베리아 지하자원 개발권을 제공받자는 논의도 있었다. 1991년 말께 고르바초프 전 소련연방 대통령은 차관 상쇄 조건으로 6공 정부에 연해주 지역의 ‘달래내골스키’라는 지역을 할양하겠다고 제의한 바 있다. 당시 6공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문제의 이 곳을 헬기를 타고 답사한 적이 있었다. 고르비가 제안한 달래내골스키는 경상북도 크기로 순전히 산악 지역이었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찾던 곳은 논농사를 지을 수 있는 농토였다. 그래서 정부는 이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이 바로 6공 당시 추진되었다가 무산된 이른바 ‘광개토대왕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고르비가 제안한 이 지역은 사실 극동 연해주 지역에서 다이몬드와 금이 가장 많이 나는 지역이었다. 당시 우리 정부 관계자들은 이 땅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러시아 차관을 러시아제 무기로 상환한다는 안도 있었다. 이 방안도 역시 이를 반대하는 미국의 압력과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번에는 북한이 러시아에 진 부채다. 북한은 1970년대 후반 이후 소련으로부터 꾸준히 경제지원을 받아왔다. 그 액수는 소련 연방이 해체되는 1991년 12월 기준으로 볼 때 약 38억 루블이었다. 이 루블 금액의 달러 환산을 놓고도 북한과 러시아 사이에 견해차가 있었다. 러시아는 공식 환율(1달러=0.63루블)을 적용해서, 차관액이 약 60억 달러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반면 북한은 시장 환율(1달러=1.5루블)을 적용해서, 30억 달러에도 못 미친다고 반박했다. 최근에 스위스 중앙은행은 분쟁 여지가 있는 이 금액을 40억 달러 선으로 정리해 양국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쨌든 이 금액은 북한이 구소련 시절부터 지금의 러시아연방 푸틴 정부까지 갚지 않고 미뤄온 결과다. 북한은 안드로포프와 체르넨코 시대까지는 소련이 절대적 동맹국이라는 믿음 속에 부채라는 개념을 가지지 않았다. 그런데 고르바초프와 그 뒤를 이어 옐친이 집권한 뒤부터는 독촉를 강하게 받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한국은 대러시아 차관 14억7000만 달러를 러시아로부터 돌려받기 힘들고, 러시아 또한 북한으로부터 38억 루블을 받기 힘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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