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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부문 개혁 없이 기업 구조조정 없다

영국경제 구조개혁에 비춰본 한국경제 개혁의 해법

  • 원종근

공공부문 개혁 없이 기업 구조조정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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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일 정부가 공공부문 개혁과 공기업 민영화를 통해 경제개혁에 모범을 보인다면, 정부는 이를 기반으로 강력한 노사관계 개혁 내지 기업구조조정을 국민에게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가 표류하고 있다. 구조조정이 지연되면서 주가는 폭락하고 기업활동은 극도로 위축되었으며 금융불안은 날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국제 유가(油價)도 만만치 않은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대건설이 부도의 위기를 넘기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고 대우자동차는 끝내 법정관리로 넘어가고 말았다.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내년에는 경상수지가 적자로 반전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견해도 나오고 있다. 더욱이 부(富)의 편재와 양극화 현상은 우리 사회를 극단적인 갈등과 대립 구조로 몰아가고 있다. 가까스로 경제위기를 극복해내는가 싶더니 다시 위기의 물결이 한국경제를 엄습하고 있다.

이와 같은 위기의 본질은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이런 위험을 극복하고 한국경제를 다시 한 번 탄탄한 성장궤도에 올려 놓을 수 있을 것인가. 이 글에서는 영국경제 구조개혁의 과정을 심층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우리 경제가 나아갈 기본 개혁방향을 찾아보고자 한다. 1970년대 소위 ‘영국병’이라는 불치의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뼈를 깎는 구조조정으로 경제를 회생시킨 영국의 경험은 우리 경제개혁의 기본방향을 제시해주는 살아 있는 모델이요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영국병과 대처리즘

영국은 1976년 파운드화의 가치폭락에 이은 급격한 외환보유고 감소로 전례 없던 통화위기에 직면, 당시 노동당 정부는 같은해 9월 마침내 IMF에 자금지원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통화긴축·금융제도 개선 등을 주 내용으로 하는 영국경제에 대한 IMF 관리체제가 시작되었다. 그 후 영국은 지속적인 경제개혁 작업을 통해서 이른바 영국병을 치유, 경제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영국경제가 공식적으로 IMF관리체제를 탈피한 것은 1년 만인 1977년 9월이었지만, 본격적인 경제개혁 작업이 이루어진 것은 대처 총리가 집권하던 1980년대였다. 소위 대처리즘(Thatcherism)이라고 불린 이 시기 영국 경제개혁의 초점은 크게 세 가지, 즉 공공부문 개혁, 공기업 민영화 및 노사관계 개혁에 있었다.

대처리즘의 본질은 영국의 각 부문이 세계수준의 경쟁력을 회복하고 생산성을 향상시키도록 각종 제도를 개선하고 유인책(incentives)을 제공하며, 개혁의 걸림돌을 과감하게 제거하는 것이다. 영국은 당시 세계화라는 용어를 쓰지는 않았지만, 각종 효율(efficiency)과 생산성 (productivity) 기준을 세계 수준에 올려놓는 정책을 씀으로써 세계수준의 경쟁력=세계화=영국화라는 개념을 추구하였다. 이러한 기본등식 개념은 단순히 경제부문뿐만 아니라 공공부문·교육부문 등 사회 각 분야에 무차별적으로 적용되었다.

대처리즘의 영향을 받은 영국 공공부문 개혁의 특징은 공공부문이 정치의 압력에서 벗어나 ‘시장의 압력’(market pressure)을 받게 했다는 점이다. 이런 개혁의 결과 영국의 공공부문은 민간기업과 같이 비용, 효율성, 생산성 및 성과 등의 개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재정지출의 절대규모가 대폭 삭감되었고 비용에 비해서 효율성이 낮은 정부조직은 과감하게 정리되거나 민간으로 이양되었다. 즉 공공부문에 시장원리가 도입된 것이다.



시장원리 도입과 공공부문 개혁

공공부문 개혁은 규모축소에서 시작했다. 1980년 무려 75만명에 달하던 공무원 수는 87년에 64만명, 97년에 약 51만명으로 감축되었다. 공무원 수를 감축하기 위해 초기에는 신규채용 금지, 부처별 인원감축계획 수립 등 다소 강압적인 방법이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공무원 수 감축의 기본철학은 공무원들로 하여금 제한된 공공자원을 어떻게 사용해야 국민의 후생(welfare) 수준을 높일 수 있는가를 깨닫게 하는 데 있었다. 이는 공공부문의 세계적 경쟁력 달성·유지 여부가 국제경쟁력에 가장 중요한 초석이 된다는 기본 철학이 담겨 있다.

공무원 수 감축과 아울러 함께 추진된 중요한 개혁 프로그램은 ‘넥스트 스텝’(Next Steps). 반관반민 단체인 각종 대행기구(Agency)를 설립하여 정부의 행정서비스를 대폭 이관·위임하는 제도다. 실상 정부업무의 95%는 국민의 실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된 대(對)국민 행정서비스 업무다. 중요한 정책결정 업무는 5%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정부조직 안에 정책결정 업무와 행정서비스 업무가 혼재돼 상대적으로 행정서비스 제공을 소홀하게 취급하는 경향이 있었다.

넥스트 스텝은 이러한 정부조직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개혁 프로그램이었다. 영국정부는 차량등록 여권발급 등 국민의 실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110여 개 행정서비스 사업을 각종 대행기구에 이관하였다. 이때 대행기구는 중앙정부와 예산·서비스 품질 등에 대한 계약을 체결하며, 책임자는 재정·인사권을 가지고 독자적으로 운영한다. 정부가 대행기구에 명확한 목표를 부여하되, 목표달성의 방법은 자율에 맡기며 다만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요구하는 체제다. 대행기구의 책임자는 공개경쟁을 통해 선발한다. 이 제도는 1989년부터 시행되었는데, 현재 영국 행정부 업무의 약 75%가 이런 대행기구들을 통해 수행되고 있다.

넥스트 스텝과 병행하여 메이저(Major)정부가 새롭게 시작한 정부개혁 프로그램은 시장성과측정(Market Testing)이다. 이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모든 업무를 시장성과측정에 부쳐 정부 내부에서 직접 수행할 것인가, 아니면 민간부문에 외주(外注, out-sourcing)를 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시장성과측정 선별 과정에는 행정부 내부의 지원자와 민간부문 지원자가 서로 경쟁하게 된다. 경쟁 기준은 누가 예산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함으로써 해당 행정업무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여기서 민간부문 지원자가 이기면 외주 계약이 체결된다. 즉 시장성과측정은 행정업무의 수행 여부를 경쟁에 부침으로써 행정의 ‘품질경쟁’을 유발하는 정부개혁 프로그램이다.

1992년 시장성과측정 제도를 도입한 후 영국의 정부예산은 20∼28% 절감효과를 보인다. 예산절감보다 더 큰 효과는 행정부의 업무수행이 기업경영과 같은 합리성 추구, 성과측정 및 이의 피드백(feedback), 경쟁촉진 등의 개념이 바탕에 있기 때문에 효율이 크게 증대되었다는 것이다. 시장성과측정의 기본철학은 ‘정부의 행정업무는 기업과 마찬가지로 최고의 경쟁을 통해 최고의 효율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기업뿐 아니라 공공부문도 세계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유지하지 못하면 진정한 세계화를 이룰 수 없다는 영국정부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영국 중앙정부의 효율성 추구는 지방정부의 업무수행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지방정부는 주민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행정서비스를 직접 생산·공급하는 주체이며 특히 주택 및 교육은 지방정부 업무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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