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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판매왕 4인의 성공스토리

“나는 판다. 고로 존재한다”

  • 김기영 hades@donga.com

“나는 판다. 고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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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다. IMF위기가 되풀이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 했던가. 과거를 짚어보면 다가올 위기를 극복할 방안을 발견하기도 하는데 97, 98년의 경제위기를 돌아보면 유난히 영업직에서 두드러진 실적을 내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매장을 찾는 발길이 뚝 끊어진 소비위축의 시대에는 반대로 고객을 찾아가는 영업에 활로가 있었다. 서민경제에 주름살이 깊어 가는 요즘, 영업으로 활로를 개척해온 판매왕들은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고 성공의 반열에 올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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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진 이사(45·대우자동차판매 종로지점)는 유명인이다. 97년, 98년 두 해에 걸쳐 대우자동차 판매왕에 오른 이후 지난해 4월에는 샐러리맨의 ‘별’이라는 이사에 오르면서 다시 한 번 화제의 인물이 됐다. 고졸 출신 영업사원으로는 업계 최초의 이사 승진이었다. 지난해 8월에는 MBC-TV ‘성공시대’의 주인공으로 선정돼 방송에도 출연했다.

‘성공시대’ 외에도 이런 저런 이유로 방송에 얼굴을 내민 게 3∼4차례, 방송에 출연한 뒤로는 길을 가던 사람들도 그를 알아볼 정도로 얼굴이 알려졌다. 강연요청도 쇄도하고 있다. 요즘엔 자동차 업계뿐 아니라 다른 업종의 세일즈맨들도 그의 이름을 기억할 정도다. 한마디로 박 이사는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할 지경이다.

이 와중에도 박 이사는 자동차 영업사원이라는 본래 업무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결과 2000년에도 대우자동차 판매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지난 한 해 박 이사가 판 자동차는 모두 186대. 2위보다 딱 1대를 더 팔아 99년 잠시 빼앗긴 판매왕 자리를 되찾았다. 대우자동차라는 회사는 어려운 처지지만 대우차의 판매왕인 박 이사의 연봉은 1억원을 웃돈다. 그러니까 대우자동차에서는 흔치 않은 억대연봉자인 셈이다.

지금은 성공한 세일즈맨의 상징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그의 ‘무명시절’은 서럽고도 길었다. 덕수상고를 졸업한 박 이사는 관리직 사원으로 대우자동차에 입사했다. “덕수상고를 졸업하면 은행 등 금융권으로 진출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실력이 모자라 대우자동차에 지원서를 냈다”는 것이 ‘불가피하게’ 대우차와 인연을 맺은 사연이다.

“영업은 아무나 하는게 아냐”

상고 출신이라 박 이사는 관리부 경리파트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직원들의 급여를 관리하던 중 일반 사원보다 영업직 사원들이 훨씬 높은 급여를 받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일한 만큼 보상받는 영업직의 매력을 숫자로 확인한 뒤, 박 이사는 윗사람들을 졸라 영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163cm의 작은 키에 왜소해 보이는 체구, 한없이 선량해 보이는 얼굴…, 동료들은 한결같이 그의 결심을 말렸다. “영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다시 생각해봐.” 심지어 영업파트에서조차 그를 의아한 눈으로 봤다. 그러나 한번 세일즈맨이 되겠다고 마음을 굳힌 박 이사를 말릴 사람은 없었다. 최고의 세일즈맨이 되겠다는 꿈을 안고 자동차 판매 일선에 나섰다. 82년의 일이었다.

영업 현장에 나선 처음 몇 달, 박 이사는 별로 신통치 않은 세일즈맨이었다. 열심히 뛰었지만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아침 일찍부터 청계천 1가에서 9가까지 몇 번씩 오가며 전단지를 뿌렸지만 그를 찾는 전화는 없었다. 일한 만큼 돈을 벌 수 있는 게 영업인데 아무리 열심히 돌아다녀도 단 한 대도 팔지 못하는 기막힌 현실이 그를 당혹스럽게 했다.

이처럼 소득도 없이 다리품을 팔고 다니던 어느 날, 매일같이 전단지를 돌리는 그를 측은하게 본 청계천의 어느 업소 사장이 “영업한 지 얼마나 되느냐”며 박 이사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는 “이곳은 경기(景氣)가 좋지 않으니 경기 좋은 곳에 가서 차를 팔라”고 충고했다.

지나가는 사람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성공의 중요한 밑거름이 된 경우였다. ‘그러면 어디가 경기가 좋을까? 어디 가면 차를 살 사람이 있을까?’ 영업사원이라면 당연히 했어야 할 고민을 박 이사는 한참 헛발길을 한 다음에야 시작했다.

그때부터 경제신문을 유심히 읽기 시작했다. 어느 분야가 경기가 좋은지 아는데는 경제신문을 탐독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렇게 신문을 읽던 중 눈에 띄는 기사를 발견했다. 수해로 인해 흉작이라 채소 값이 급등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이거다”며 무릎을 쳤다. 청과물시장을 찾아가야 차를 팔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 길로 당장 전단지를 챙겨서는 당시 서울 용산에 있던 청과물시장을 찾아갔다.

큰비가 내린 직후라 신발에 배춧물이 들 정도로 시장 바닥은 질퍽거렸다. 이런 곳에서는 도저히 차가 팔릴 것 같지 않았는데 전단지를 돌린 다음날 아침 ‘놀랍게도’ 자동차 값을 묻는 전화가 3통이나 걸려왔다. 며칠 뒤 처음으로 트럭을 팔았다. 그 후로는 승승장구였다.

이 사건 이후 지금까지도 박 이사는 신문을 꼼꼼히 읽는다. 돈의 흐름을 알기 위해서 뿐 아니라 고객과 만나 어떤 주제로 대화를 하더라도 막히지 않으려면 신문 정독은 영업활동을 위한 필수적인 준비라고 믿고 있다.

학연·지연은 철저히 피한다

청과물시장에 자리잡고 차를 팔기 시작한 뒤 1년 반 동안 박 이사는 100여대를 팔아 영업사원으로는 성공적으로 데뷔무대를 장식했다. 잔치가 있으면 사비(私費)를 들여서 막걸리에 돼지머리를 돌리고, 시키지 않아도 나서서 노래도 부르면서 얼굴을 익혀 나갔다.

이렇게 맨투맨으로 접촉한 결과 박 이사의 고객은 대부분 개인고객이다. 한 번 거래를 맺은 개인이 주변사람을 소개해주고 또 그 고객이 다른 고객을 소개해주는 방식으로 인간관계를 넓혀나갔던 것이다. 이렇게 알게 된 박 이사의 고객만 무려 6000여 명. 박 이사는 남들처럼 학연이나 지연 등 1차적 인간관계에 기대지 않았다. 오히려 아는 사람들에게는 차를 사라고 권하지 않는다. 그럴 경우 일상적 만남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이사의 이런 영업전략은 IMF라는 위기상황에서 오히려 빛을 발했다. 실제 박 이사가 대우자동차 판매왕에 오른 것은 지난 97년 이후, 즉 한국 경제가 심각한 몸살을 앓고 난 이후다. 법인을 상대로 수백 대씩 차를 팔던 영업사원들은 기업들이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차를 거의 팔지 못했다. 하지만 평소 개인 고객을 개척해온 박 이사에게는 위기가 곧 기회가 된 셈이다.

2000년 12월까지 19년 동안 박 이사가 판 자동차는 모두 2598대. 99년 5월에는 한 달에 무려 57대를 파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처럼 숱한 기록의 주인공이기도 한 박 이사의 판매전략은 뜻밖에도 간단했다. 박 이사는 가급적 날씨가 궂은 날 고객을 찾아다닌다. 비가 오고 태풍이 몰아칠 때 고객을 찾아가면 일단 상대방이 감동을 받는다. “이렇게 궂은 날 찾아오다니 정성이 대단한 걸” 하며 평소 문전박대하던 고객도 비바람을 맞으며 찾아온 박 이사에게 커피라도 한잔 대접하는 너그러움을 보인다. 이렇게 상대방이 닫힌 마음의 문을 여는 순간, 차 팔기는 그만큼 쉬워진다.

또 궂은 날에는 의사결정권자인 ‘높은 분들’도 외출을 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기 마련. 따라서 평소에는 얼굴도 보기 힘든 구매결정권자를 만나기가 그만큼 쉬워진다는 얘기다.

박 이사는 까다로운 고객일수록 더 정성을 다해 응대해준다. 그런 고객이 서비스에 만족을 느끼면 반드시 다른 사람을 소개해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 번을 만나더라도 강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 자신을 가꾸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라는 충고도 잊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양복을 차려입더라도 검은 와이셔츠에 빨간색 넥타이를 매는 식으로 나중에 다시 만나도 ‘검정 셔츠의 대우차 영업사원’으로 상대가 기억할 수 있게끔 하라는 것이다.

“자존심은 신발장에 벗어두고 출근합니다”

옷뿐만 아니라 행동도 남과 다르면 좋다고 한다. 가령 남과 다른 자신만의 독특한 인사법을 개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데 실제 박 이사는 지금도 누구를 만나든 머리를 90도로 숙여 인사한다. 사소한 것 같지만 이런 행동이 고객에게 은근히 감동을 준다는 게 박 이사의 지론이다.

“옛말에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자기를 낮추고 겸손한 사람이 영업에서는 승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지요. 저는 아침에 출근할 때 자존심은 신발장에 벗어두고 나온다는 심정으로 영업에 임합니다.”

억대 연봉을 받으며 고졸 출신으로는 업계 최초로 이사가 됐지만 박 이사에게도 말 못할 고민이 있다. 그가 몸담고 있는 대우자동차가 부도 위기에 처한 현실이 그것이다. 박 이사는 “경쟁사 영업사원이 부도 소문 퍼뜨리고 다니는 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고객들마저 ‘대우차 곧 망한다는데 애프터서비스가 되겠어’라며 차 사기를 꺼려할 때 정말 사기가 떨어진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나 “영업능력 있으니 다른 회사로 옮기는 것은 어떠냐”는 말에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내가 택한 직장입니다.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대우자동차 박노진’이라고 나를 소개하고 다녔고 고객들과도 그렇게 관계를 맺어왔는데 이제 와서 바꿀 생각은 없습니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박 이사는 마치 무슨 보물단지라도 보여주듯 조심스럽게 서류철 하나를 보여주었다. 표지에 ‘불만고객 리스트’라는 글자가 인쇄된 이 서류에는 고객의 불만사항이나 문제제기가 적혀 있고 이에 대한 처리과정이 꼼꼼히 기록돼 있었다. 이 서류철을 넘기면서 박 이사는 “신차를 인수한 뒤 불만을 제기한 고객이 ‘이제 됐다’고 할 때까지 기록을 남기며 관리한다”며 “이렇게 일일이 문제점을 체크하고 처리하는 과정이 곧 고객만족이고 새로운 단골을 확보하는 지름길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이사는 말하지 않았지만 불만고객 리스트에는 박 이사의 성공비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비결은 바로 ‘정성(精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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