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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영’ 지지론자들의 김우중을 위한 충고

파렴치한 졸부가 아니라 실패한 영웅이 되라

  • 안기석 daum@donga.com

파렴치한 졸부가 아니라 실패한 영웅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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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구속되더라도 당당하게 국내에 들어와야
  • ● 빅딜 때 대우자동차 삼성에 넘겼어야
  • ● 박정희식 성장전략 국내에서는 포기했어야
  • ● 신속한 구조조정으로 빚갚았어야
  • ● 방향은 맞았지만 혼자서 과욕 부렸다
  • ● 재기보다는 젊은 경영인에게 교훈 남겨야
한때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화두로 세인의 찬사와 이목을 집중했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이제는 ‘세계는 넓고 숨을 곳은 많다’는 식의 조롱을 받으며 도피자의 신세로 전락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에 대한 사회적 비난의 초점은 두 가지로 모아진다. 첫째는 대마불사론을 믿고 구조조정은 하지 않고 엄청난 돈을 빌려써 국가 재정에 심각한 부담을 안겨줬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 돈의 상당액을 분식회계 등 불법적인 방법을 통해 비자금으로 사용하기 위해 해외로 빼돌렸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 등으로 검찰은 해외에서 도피중인 김우중 전회장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재외공관에 소재 파악을 지시했고 인터폴에 수사공조 요청을 했다. 대학생 및 청년진보당 당원 등은 ‘김우중 전 대우회장 체포결사대’를 만들어 김 전회장의 자택을 기습 점거. 김 전회장의 구속과 특별검사제 수사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대우그룹 소속 노조원과 일부 시민단체 회원들은 ‘체포조’를 만들어 해외로 파견하기도 했다.

맨손으로 기업을 세우다시피 해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며 ‘신화’를 만들었던 영웅 ‘킴기즈칸’의 운명이 어떻게 이처럼 비참하게 된 것일까. 김우중 전회장에 대한 뜨거운 찬사들은 모두 어디로 가고 ‘나라경제를 망친 장본인’이라는 비난과 조롱만 난무하는 것일까.

언론과 지식인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던 김우중 전회장의 ‘세계경영’의 허와 실에 대해서 제대로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현재 도피중인 것으로 알려진 김 전회장이 국민 앞에 ‘고해성사’를 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허황된 꿈’으로 기업을 부실하게 만들고 비자금을 빼돌린 부정하고 부패한 기업인의 모습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때 수많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만들고 수출의 그래프를 높이 끌어올렸을 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 경이로운 한국 경제의 성장 모델을 이식시켰던 김우중 전회장을 비난의 무덤에 파묻어버리는 것만으로 마무리지을 수 있는 것일까. 김 전회장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던 측근이나 김 전회장의 세계경영에 박수를 쳤던 지식인들은 ‘김우중 신화’의 몰락을 어떻게 설명할까.

재벌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에 선 사람들은 김우중의 신화란 정경유착과 관치경제가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경영의 투명성 등 새로운 규칙을 요구하는 21세기 세계경제에서는 더 이상 이런 신화가 발 붙일 수가 없는데도 김 전회장은 옛 경영방식을 고집하다 결국은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

이상묵(李尙默·39) P&Rs 컨설팅 대표는 재경부의 구조조정팀에서 대우를 담당하다가 구조조정 담당 이사로 대우에 입사했던 독특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데, 대우 붕괴의 원인을 흥미롭게 설명했다.

“똑똑하고 부지런한 김회장은 자신감에 넘쳐 수십년동안 혼자서 수십 개의 접시를 동시에 돌리는 묘기를 부렸어요. 그러나 IMF 사태라는 태풍이 불어닥치자 이 접시들은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한 겁니다. 대우는 신속하게 구조조정을 해서 빚을 갚아야 했는데 구조조정 플랜을 늦춘 것은 내부의 심각한 문제점이 노출되는 것을 꺼렸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씨는 재경원과 금감원에 ‘대우 문제는 유동성 위기가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워크아웃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의견을 전달하고 대우을 떠났다. “워크아웃 외에는 대안이 없는데 김우중 회장은 어느 하나도 포기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

‘김우중 죽이기’ VS 부실기업 정리

그의 진단에 대해 김우중 전회장의 측근인 백기승 코콤포터노벨리 부사장(44)은 이렇게 반박한다.

“김회장은 돈을 모으는 스타일이 아니라 돈을 돌리는 스타일인데 그걸 막아버리면 끝나는 거죠. 이것이 약점이 된겁니다. 정부는 대우의 자금줄을 모두 끊어버리는 것 같았어요. 강봉균, 전윤철, 이헌재씨가 대우 죽이기의 핵심 멤버였습니다. 이들은 개혁의 선봉장으로서 경제 정책의 실적을 내야 했기 때문이죠. 김대중 대통령이 ‘대우,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보면 ‘저희들에게 맡겨주십시오’ 해놓고 대우에 대해 나쁜 보고서만 올린 거죠.”

김대중 정부 초기에 김우중 회장은 전경련 회장을 맡는 등 정부와 밀월관계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무슨 이유로 사이가 틀어진 것일까. 전경련 회장을 맡으면서 정부의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발언을 한 것 때문에 미운털이 박힌 것일까.

“김대중 대통령과 사이가 나빠 그렇게 된 것은 아닙니다. 집권 초기에 김대통령은 김회장의 의견을 많이 받아들였어요. 그런데 보좌집단과 생래적으로 맞지 않았어요. 그 보좌집단은 원래 반재벌의 입장을 갖고 있었어요. 박정희 정권 때부터 이어져내려오던 성장 정책이 김영삼 정권 때도 이어졌는데, DJ 경제인맥은 성장의 그늘에 가려졌던 쪽을 배려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성장론자들을 타파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죠. 기본적으로 박정희주의자와 김대중주의자의 충돌이었던 거죠. 사실은 경제 정책이 잘못돼 문제가 생긴 것인데 산업기반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파악한 거죠. 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재벌을 잡자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IMF의 원죄를 재벌쪽으로 몰려고 한 거죠. 국민의 정부의 정치적인 입지를 위해 재벌을 타깃으로 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구조조정을 신속하게 하지 않고 버틴 이유는 무엇일까.

“구조조정은 다운사이징인데 대우는 기간산업이 골격이었어요. 이 덩어리를 사갈 사람이 없는 겁니다. 그리고 해외사업이 이것을 기반으로 연결돼 있는데 없앨 수가 없는 거죠. 대우가 해외로 진출한 것은, 우리가 정부의 권유에 의해서 부실기업을 인수하면서 기간산업을 많이 갖게 됐는데 해외에서 우리 것을 부러워하는 나라들이 있어 완제품 반제품뿐 아니라 공장까지도 수출하게 됐기 때문이죠. 그래서 개발연대의 경험 있는 노장층들을 해외에 보내 현지기업에 투입한 겁니다. 본국에서는 기술로열티만 받고 국내에서 문닫을 산업은 그대로 버리지 말고 해외로 빼먹을 수 있을 때까지 내보내자는 거였어요.”

백씨는 분식회계와 비자금에 대해서도 해명을 했다.

“금감위에서 밝힌 대우의 분식 규모가 22조3000억 원인데 (주)대우가 15조 원, 런던금융센터(BFC)와 관련된 것이 7조입니다. 15조 여 원이 순수한 분식규모이고 7조 원은 우리가 자진신고한 겁니다. 그런데 금감위에서 2000년에 BFC 비밀계좌를 적발했다고 발표한 겁니다. 그리고 70억 달러를 횡령했다고 하는데 검찰까지 이어지면서 비밀계좌인 것처럼 된 겁니다. 그때 우리가 4조 원만 있으면 안 망한다고 했는데 24조 원을 빼내갈 수 있었으면 우리가 망합니까. 동구 등지에서 쓴 비자금도 있는데 이것은 얼마든지 영업비용으로 처리해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대우문제가 다시 불거진 것에 대해 백기승씨는 다분히 정치적 목적이 있다는 견해를 보였다.

“검찰 입장에서는 안기부 자금 사건 더 못나가고, 정부에서는 현대 지원 문제가 불거지니까 시선을 돌리기 위해 새로운 브리지가 필요했던 거지요. 수많은 공적자금을 투입하고도 경제는 하락하니까 책임을 물을 희생양이 필요한 거지요. 공적 자금 150조 원중 대우가 20조 원 썼다고 합시다. 그러면 13%만 우리가 책임을 져야지 왜 대우가 다 뒤집어 써야 합니까”

백기승씨의 ‘항변’을 요약하면 대우 몰락의 원인은 ‘유동성의 위기’였으며 정부는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보다는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김우중 죽이기’의 기회로 삼았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반론도 만만찮다. 김 전회장이 정경유착시대의 금융특혜를 기대했다면 이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며 대우 붕괴는 과도한 차입으로 인한 부실경영의 결과일 뿐이라는 것. 구조조정을 제 때에 하지 않은 대우는 진작 해체됐어야 하는데 김 전회장의 영향력 때문에 오히려 질질 끌었다는 것이다. 김 전회장의 해외도피 기간이 길어지는 것도 정부가 김 전회장을 검거할 의지가 약하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고려대 장하성 교수(경영학)는 “한마디로 김우중 전회장은 국민 모두를 속였다”며 “김우중식 경영은 작은 사업을 일으켜 그것을 지렛대로 삼아 더 큰 사업으로 확장하는 이른바 레버리지 경영의 대표적인 방식인데, 부채로 성장한 기업은 어느 순간 허망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고 대우는 그 순간이 외환위기로 표출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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