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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색깔논쟁으로는 경제개혁 안된다

  • 김윤자 < 한신대학교 교수·국제경제학 전공 >

색깔논쟁으로는 경제개혁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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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J정부의 경제개혁은 정치개혁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전근대적 정치구조와 사회 각 부문 기득권 집단의 저항은 소수정권의 경제개혁을 무망하게 만들었다. 결국 현정권은 개혁 추구보다 권력기반의 안정화를 선택했고, 이는 필연적으로 개혁의 굴절과 왜곡을 낳았다.
IMF구제금융사태 이후 그간 누적돼온 한국자본주의의 병폐를 척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요구가 국내외에서 제기됐다. 따라서 새로운 구조조정이 요구되는 이 계기는 변화에 대한 사회적 열망에 바탕해 그 지지기반을 확보하기에 따라서는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호기일 수도 있었다. 이런 점에서 DJP합작의 소수정권이라는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50년 만의 정권교체’라는 정치적·도덕적 정통성을 가진 현정부는 상대적으로 유리할 수 있었다. 또 외환위기를 전후한 밖으로부터의 각종 압력에도 국내의 다양한 ‘민족주의’를 나름의 방패막으로 활용할 여지도 적지 않았다.

기득권 집단의 반발

이에 따라 현정부 집권 초반부터 재벌과 수구정치권의 개혁이 선행되지 않으면 향후의 구조조정이 올바른 방향을 갖기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예컨대 정부수립 50돌에 즈음해 김대중 정부 출범 6개월을 점검하는 한 좌담회에서 각계 전문가들은 “모기업이 소유한 지분을 부채와 교환하는 등의 방식으로 재벌총수의 독점적 지배권을 한두 개 계열사로 한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문했으며 “재벌의 경영책임을 명확히 하지 않고 구조조정에 들어가면 재벌의 정치력과 경제력 때문에 개혁이 한계에 부닥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은 혹자의 표현처럼 ‘호남권력과 영남지배구조 사이의 불일치’ 속에서 정치개혁을 전제하는 것이었다. 야당과의 소모적 정쟁, 재벌과 일부 언론의 저항, 사학법인 및 이들과 연계된 수구정치권의 저항 등 50년 만의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세대에 걸쳐 재생산된 각 부문 기득권집단의 저항은 소수정권의 개혁을 무망하게 만드는 주요한 요인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보스정치와 계보정치에 길든 한국 정치권 일반의 문제이긴 하지만 오랜 야인(野人)생활이 남긴 일종의 ‘제도권 밖 막후문화’의 각인일지, 현정권 고위층과 이른바 실세그룹이 가끔 보여주는 제도권 질서에 대한 부조응은 정책 입안 및 집행과정에서 일관성 결여, 체계성 부족을 빚기도 했다. 그것은 관료사회에 대한 개혁적 장악의 실패로 연결돼, 한때 ‘수구 관료세력에 둘러싸인 개혁 대통령의 고립’이라는 논변을 낳기도 했는데 현상적으로 그것은 한국 사회의 오랜 지배지형 속에서 소수정권이 갖는 소심함으로 비치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배경에서 결국 현정권은 개혁을 추구하기보다 정치적 다수를 확보하는 정국 안정, 곧 권력기반의 안정화를 선택했고 의원영입, 정계개편에 이어 한때 불편한 듯했던 DJP공조의 회복으로 그 기조를 유지했다. 이는 노동계를 포함해 폭넓은 개혁세력 속에서 정권의 지지기반을 확충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서 상당 부분 개혁의 굴절과 왜곡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개혁보다 권력기반 안정 추구

그 밖에 여소야대의 정치지형에서 ‘정부의 개혁후퇴를 비판하고 개혁의 가속화를 주장하는 야당’이 없는 것도 모처럼 맞은 개혁국면을 굴절시킨 중대한 요인이었다. 그러나 어차피 야당의 정치적 성향을 ‘주어진 조건’이라고 한다면 이 점은 야당에게 책임을 묻기보다 개혁의 정치적 지도력을 발휘하는 데 미숙했던 정부의 책임, 그리고 이에 못지않게 넓은 의미에서 개혁진영이라고 부를 수 있는 노동계 및 시민·사회운동진영이 개혁동력화에 미흡했던 점 등을 점검하는 것이 오히려 생산적일 것이다.

기업퇴출, 정리해고 등 IMF 구제금융의 한파가 거셌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테면 작년 총선연대가 일으킨 돌풍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50년만의 정권교체’라는 역사적 계기에 대한 국민이 기대가 컸던 만큼, 광범위한 의미의 개혁진영 역시 이를 개혁확산의 계기로 삼을 수 있었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개혁부진을 김대중 정부의 한계나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초국적 자본’의 횡포로만 설명해서는 안 될 것이다. 김대중 정부 3년 반에 즈음한 지금은 정부개혁의 한계에 대한 점검 못지않게 개혁세력의 책임 혹은 개혁진영의 주체적 역량에 대한 엄정한 자기점검이 필요한 때다.

외환위기 이전부터 한국경제는 재벌총수 1인의 취향에 따라 정해지는 기업의 비민주적·비합리적 의사결정구조(삼성의 자동차산업 진출이나 한보·현대의 철강산업 진출 등)와 그에 따른 각종 중복투자와 과잉투자, 그리고 그간의 각종 비리사건이 보여주듯 정권이 그것을 용인해주는 대가로 오고간 거대한 규모의 검은 돈, 단기 외화자금을 동원해 이 왜곡된 자금흐름을 지지해온 재벌 계열 금융사 등이 착실히 금융불안을 예비해왔다.

그런데 임기 후반 김영삼 정부는 재벌집단과 타협해 오히려 1996∼1997년 겨울 노동법 날치기통과 시도 등으로 노동계와 필요 이상 대립하면서 정책역량을 소진했다. 여기에 세계적 과잉생산에 따른 철강, 반도체 등 수출주력품목의 가격하락은 곧바로 국제수지 적자와 외환 부족을 가져왔고 집권 말기 김영삼 정부의 대응이 신뢰를 받지 못하자 국내외에 심리적 불안이 확산되면서 IMF구제금융 사태로 이어졌다.

따라서 1997년 외환위기는 한편으로 한국경제가 본격적인 자본주의 공황에 돌입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세계 자본주의의 약한 고리로서 한국경제의 구조적 취약점을 노정하는 계기였다. 국제금융 불안 속에서 재벌체제의 비효율성이 외환위기 발발로 이어지는 내외의 연결고리는 한국경제의 구조조정 혹은 경제개혁의 방향을 상당 정도 제시하는 것이어서, 구조조정 혹은 개혁은 단순한 경기변동대책을 넘어 기존의 비효율적 구조를 척결한다는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재벌과 관료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비판이 시장규율을 강조하는 논변으로 이어졌는데, 출범 초기 ‘민주적 시장경제’라는 현정부의 슬로건은 이러한 정세에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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