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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21세기 제품, 19세기 유통

용산전자상가

  • 정철영 < 자유기고가 >

21세기 제품, 19세기 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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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11일.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서울시는 ‘용산지구단위계획 개발계획’을 확정, ‘서울시보’를 통해 고시했다. 여의도 면적(93만평)보다 넓은 100만평 규모의 신 시가지를 용산 일대에 조성하려는 야심찬 계획이 오랜 논란 끝에 최종 결정된 것이다. 이 계획은 직접적으로는 2004년 경부고속철도의 개통에 대비한 것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용산 미군기지의 이전과 남북한 철도 연결을 고려해서 마련된 것으로, 낙후한 서울역에서 한강대교에 이르는 부도심권을 근본적으로 바꿔놓는 거대한 사업이다.

최첨단 제품, 복마전 유통

그런데 이 계획안에는 용산전자상가의 판도를 뒤흔들 복병이 있다. 바로 경부고속철도 중앙역사이자 신공항 철도의 시발역사로 지정된 용산역사 건설을 책임지는 현대역사(주)(대표이사 윤영천)가 역사 내에 전자전문상가를 만들 계획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그룹 계열의 현대산업개발과 현대백화점 등이 최대주주인 현대역사(주)는 이미 지난 3월말 용산 상인들이 주축이 된 용산상점가진흥조합원을 대상으로 역사의 3층에서 8층까지 연면적 9만여 평을 전자전문상가 용도로 분양했다.

100% 분양되었지만, 용산전자상가 일대는 민자 용산역사 안에 초현대적인 전자전문상가를 유치해 새롭게 도약해야 한다는 ‘용산상점가진흥조합’의 입장과, 새로운 상가가 대규모로 공급되면 용산전자상가는 공급 과잉과 과당 경쟁으로 공멸한다고 결사 반대하는 ‘용산민자역사 내 전자전문상가 임대분양 반대투쟁위원회’의 입장으로 양분되면서 다툼이 더욱 격렬해지고 있다.

기존의 용산전자상가는 1987년 청계천 도심에 자리잡고 있던 세운상가가 용산의 청과물 시장부지로 이전하면서 출발했다. 용산전자상가는 6개 관리회사가 관할하는 전자랜드, 선인상가, 나진상가, 원효상가, 관광터미널쇼핑센터, 전자타운 등 20여 동의 건물을 총칭한다. 관리 주체가 단일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도 정확히 몇 개의 점포가 영업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상우회 측에서는 대충 4000여 개의 점포가 영업중이라고 추산한다. 연간 매출액은 컴퓨터와 전자, 전기, 가전 제품을 모두 합쳐 3조~3조5000억원. 연간 이용인원은 1260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용산전자상가를 급성장시킨 가장 큰 동력은 PC산업의 성장이었다. 그런 용산상가가 PC경기 침체와 더불어 안팎으로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다.

용산전자상가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는 이중적이다. 값이 싼 데다 최첨단을 달리는 제품들이 풍부하고 다양하게 갖춰진 곳이라는 인상과, 컴퓨터를 잘 모르는 일반 소비자들에겐 뭔가 덤터기를 씌우고 복마전같이 복잡한 곳이라는 이미지가 뒤섞여 있다. 이 같은 인상은 용산전자상가가 가지고 있는 유통의 구조적 문제점을 일면 정확하게 반영한 것이다. 혹자는 용산전자상가를 “21세기의 주축 제품을 20세기 시설에서 19세기적 방식으로 유통하는 곳”이라고도 표현한다. 용산전자상가가 보여주는 이 같은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1차적인 키워드는 ‘과당경쟁’ ‘가격노출’ 그리고 ‘저마진’이다.

‘살인적인’ 저마진

용산전자상가 상인들은 극심한 과당경쟁에 시달리고 있다. 어디까지가 적정한 경쟁이고 어디부터가 과당경쟁인지 판정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용산전자상가 발전사를 살펴보면 오늘날의 과당경쟁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용산상점가진흥조합 조합장 권영하씨는 1987년에 세운상가에서 용산으로 이주해 컴퓨터 판매상을 시작한 용산 1세대 상인이다. 그는 진입장벽이 낮다는 것이야말로 PC 유통 분야에서 과당경쟁이 생길 수밖에 없는 근본 요인이라고 설명한다.

“PC는 CPU(중앙처리장치), 메인보드, 램 등 7∼8개의 핵심 부품을 조립하면 완성된다. 별도의 장비나 조립라인도 필요 없이 십자 드라이버 하나면 된다. 고졸 학력의 사람이 용산에 와서 6개월만 종업원으로 일하면 숙련된 기술자가 될 수 있다. 조립 기술을 익히고 나서 부품을 공급해줄 수 있는 거래처만 몇 군데 터놓으면 되기 때문에 별다른 창업자금이 드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진입장벽이 낮기 때문에 경기가 나빠도 창업자가 있고, 경기가 좋으면 창업자가 급증한다. 1, 2세대 상인들 밑에서 종업원으로 일했던 젊은이들이 1990년대 초·중반 호황이었을 때 대부분 독립해 상인 수가 급증했다. 시장의 확대 속도보다 장사하려는 사람들의 증가 속도가 훨씬 빠른 게 이 업종이다.”

업자가 갑자기 많아지자 일부 상인들은 자구책으로 PC 통신의 게시판에다 부품 가격을 공개하는 광고를 시작했다. 이런 광고 덕분에 큰 재미를 보고 단기간에 급성장한 점포들이 생기면서 너도나도 광고를 통한 저가 경쟁에 불이 붙었다. 보통 도소매를 겸하는 시장이라도 상인들끼리의 딜러가격과 소비자한테 판매하는 가격 사이에는 차이가 있고, 딜러 가격은 소비자한테는 절대로 노출해서는 안 되는 비밀로 취급된다. 그런데 통신 광고를 통해서 딜러가에 근접한 가격이 노출되기 시작하면서 양자간의 격차가 좁혀지다가 작년부터는 일부 품목의 경우 아예 차이가 없어졌다고 한다. 실제로 램, 하드디스크, CPU 등 핵심 품목의 인기 모델은 딜러가격과 소비자가격에 별 차이가 없고, 비인기 품목이나 수요가 제한된 전문적인 부품만 어느 정도 차이가 난다고 한다.

PC 통신을 통한 광고가 가격 노출 경쟁의 시작을 유발한 것이라면, 인터넷을 통해 제공되는 ‘최저가격검색’ 서비스는 PC 통신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용산전자상가를 압박하고 있다.

최저가격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는 많지만, PC 분야 가격 정보에 관한 한 ‘다나와’(www.danawa.co.kr)는 독보적인 존재다. 다나와 사이트는 쇼핑에이전트라는 정보 수집 로봇을 통해 최저 가격을 검색하는 것이 아니라 용산전자상가에서 영업중인 점포를 회원으로 유치해 그들이 직접 가격을 입력하는 정보로 꾸며진다. 로봇에 의한 수집 방식보다는 정확성과 신속성에서 훨씬 앞서간다. 회원사들이 입력한 가격은 가장 싼 점포부터 가장 비싼 점포까지 한눈에 드러나게 정렬된다. 예전에는 몇 시간씩 다리품을 팔아야 가능했던 것이 그냥 마우스를 몇 번 클릭하는 것으로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것이다. 다나와 사이트는 하루 방문자 수 6만명 이상, 하루 200만 페이지 뷰 이상을 올리는 인기 사이트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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