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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MA 신화의 그늘

  • 이나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byeme@donga.com

CDMA 신화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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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우리는 이미 동기식 IMT-2000 서비스를 하고 있다. 그러니 비동기식 서비스는 일찍 시작할 이유가 없고, 심지어 불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식의 의도마저 풍겨나온다.

이에 대해 회의에 관여했던 한 업계 인사는 “한마디로 꿈 같은, 현실성이 미약한 이야기들”이라며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이번 회의는 정통부의 CDMA 편애에 ‘국익 추구’란 정당성의 가면을 씌우기 위한 작업에 다름 아니었다. 업체들도 그런 속내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대로 맞춰갈 수밖에 없었다.”

더 황당한 것은 ‘세계 CDMA 시장 현황’이란 제목의 그림이다. 세계 전도를 그려놓고, 아이슬란드와 아프리카·유럽 일부를 제외한 전지역에 ‘CDMA 색깔’을 입혀놓은 것. 한 업체 임원은 “과장된 부분이 많다. 러시아나 아프리카, 유럽, 인도네시아, 뉴질랜드 등에 색을 칠해 놓은 건 좋게 말해 희망사항에 가깝다.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혀를 찼다.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정통부에 자료를 요청했다. 세계 CDMA 시장에 대한 통계가 필요하다고 했더니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대륙별 CDMA 사용자 수 외에는 다른 자료가 없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그렇듯 부실한 자료로 대통령에 올리는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었냐고 물었다. 관계자는 “업계 도움도 받고…” 하며 말끝을 흐렸다. 또 다른 담당자는 “더 자세한 자료가 있으면 우리한테도 좀 달라”고까지 했다. 결국 업계를 수소문해 자료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알게 된 실제 상황은 정통부 보고서와 차이가 컸다.

에 나열된 국가 외에 CDMA를 선택한 곳은 거의 없다. 또 채택 국가 중 한국, 아이티를 제외한 대부분은 복수 표준을 선택하고 있다. 에 나온 국가들의 CDMA 점유율 평균이 22.3%에 불과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삼성 휴대폰 수출 63%는 GSM

정통부는 종종 “우리나라는 CDMA 종주국이다, 이쪽 시장이 GSM보다 좁은 건 사실이지만 다국적기업들과 싸우느라 용의 꼬리가 되는 것보다는 닭의 머리가 되는 편이 낫다”는 주장을 편다. 우리나라 이동통신산업 수출의 실상은 어떨까.

에서 보듯 이동통신 산업 수출 실적이 가장 탁월한 분야는 CDMA가 아니라 GSM 단말기다. 중국·홍콩에만도, 올 상반기 CDMA 휴대폰 수출량은 4만8000대, 116억원어치였지만 GSM 단말기는 144만9000대를 팔아 543억5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CDMA 단말기보다 5배 가량 많은 액수다. 삼성전자의 경우 전체 이동통신 수출의 63%를 GSM 단말기가 차지하고 있다.



통신 장비의 ‘꽃’은 단말기가 아니라 시스템이다. 규모가 워낙 큰데다, 한번 뚫린 시장에는 지속적인 납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시스템 수출 규모는 전체 이동통신 수출액의 6.8% 수준. 그나마 세계시장의 85%를 차지하는 GSM 쪽은 전혀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있다. 중국 시장을 예로 들어보자.

삼성전자의 CDMA 시스템 중국 진출은 올 상반기 최대 경제뉴스 중 하나였다. 대통령까지 나서 세일즈 외교를 펼친데다 중국 이동통신 시장의 엄청난 잠재력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 시장에서 CDMA가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기 그지없다.



이번 수출건 역시 ‘빛 좋은 개살구’라는 표현을 쓰는 업계 인사가 적지 않다. 삼성전자의 한 임원도 “적자인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시중에는 “적자액이 500억~60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 시장 진입을 위해 가격을 너무 낮게 책정한 때문이다. 낙찰 순위도 루슨트테크놀로지(27.4%)→모토롤라(25.7%)→노텔(16.8%)→에릭슨(15%)→중흥통신(8.6%)에 이어 6위(7.5%)에 그쳤다.

LG전자는 아예 낙찰에서 탈락했다. 여기에는 씁쓸한 뒷얘기가 있다. 낙찰 순위 5위를 기록한 중국 업체 중흥통신은 3년 전부터 LG전자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출신 연구원들이 설립한 모 벤처기업으로부터 CDMA 기술을 배워왔다. LG전자는 중국에 CDMA 서비스가 시작될 경우 중흥통신과 제휴해 현지 합작회사를 설립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입찰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서 중흥통신이 돌연 태도를 바꿨다. LG전자는 부랴부랴 수신그룹이란 업체와 손잡고 입찰에 참여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기술만 전해주고 팽(烹)당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해외 유력 기업과 중국 내 업체들 사이에 한국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넓지 않다”고 말한다. ▲현지 업체의 무리한 기술이전 요구 ▲합작 진출만 가능 ▲완제품 수출 불가 등 까다로운 조건이 많은데다 국내 기업간 과당 경쟁, 그로 인한 ‘자살 가격’ 등 난관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위협적인 건 중국 내부 역량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는 점. 1999년 중국 시장에 대한 현지 업체 점유율은 3.7%에 불과했지만 2000년에는 15%로 증가했고, 2003년에는 45%, 2005년에는 80%까지 올라갈 것으로 중국 정부는 전망하고 있다. 결국 ‘CDMA 수출 입국’ 신화의 시험대인 중국 시장에서 우리 업체들은 소문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으며, 성공 가능성도 높지 않은 것이다.

다른 국가들의 경우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3년간 정통부는 중국 외에도 호주·인도·사우디아라비아·인도네시아·베트남·몽골·모로코·캄보디아에 CDMA 수출 길을 트기 위해 장·차관 방문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그러나 실질적인 계약을 맺은 것은 중국·호주(2억달러)·인도(1억6000만달러)·인도네시아(1400만달러)·몽골(300만달러) 정도다.

상황이 이런 만큼 많은 전문가들은, 시스템보다 경쟁력이 월등히 높은 단말기 수출에 진력하는 것이 국가적으로 이익이 될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 등 국내 장비업체들의 경쟁력은 단말기에서 나온다. 2세대 및 2.5세대에서 쌓은 실력을 더욱 배양해 3세대(IMT-2000) 세계시장에 도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비동기식 기술 축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난 5월 정통부 산하 ETRI는 3세대 시장에서 ‘동기식’의 점유율이 40%에 이를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우리 회사를 비롯, 세계적 조사기관들은 2세대와 마찬가지로 3세대에서도 2(동기) 대 8(비동기) 비율이 유지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한 유명통신업체 한국 지사장의 말이다.

참고로, 올 상반기 삼성전자의 세계 휴대폰 시장(GSM+CDMA) 점유율은 6.7%다. 노키아(35%)→모토롤라(14%)→에릭슨(7.5%)→지멘스(6.8%)에 이어 5위를 기록했다.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높은 휴대폰도 아직 갈 길이 먼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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