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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한국경제 간판 CEO 열전

순간의 ‘대박’보다 영원한 ‘윈윈’으로

황성호 제일투자신탁증권 대표이사

  • 장인석 < CEO전문리포터 > jis1029@hanmail.net

순간의 ‘대박’보다 영원한 ‘윈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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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실투성이 기업을 2년 사이에 탄탄한 금융기업으로 변화시킨 황성호 제일투자신탁증권 대표이사 부사장. ‘다양성’과 ‘변화’를 화두로 삼아 활력을 잃은 회사를 되살린 황대표는 나만 옳다는 생각을 버려야만 변화에 적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조용한 가운데 서서히 이루어진 제일투자신탁증권(이하 제일투신)의 변신에 재계가 술렁이고 있다. 침체에 빠져 있는 투신과 증권업계에 ‘난관을 돌파할 해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처음의 무관심이 이제는 놀라움으로 변하고 있는 것.

변신의 과정은 투신사→종합증권사→자산관리형 증권사. 그게 뭐 그리 대단하냐고 하겠지만 제일투신은 2년 반이란 변신의 과정에서 대우채 파동으로 2000억원에 달하는 부채에 허덕이던 신세에서 2000회계연도에는 18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며 흑자로 돌아선데다 그 많은 부채를 모두 청산했다. 올해는 49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리기 위해 연말까지 투신부문에서 수탁고를 11조원으로 끌어올리고, 증권시장 시장점유율도 1.5%로 높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그러나 제일투신의 변신에서도 가장 눈부신 성과는 외자유치 성공으로 평가된다. 지난 4월 투자사인 프루덴셜로부터 1차 투자금액 2000억원을 유치한 제일투신은 앞으로 2년 이내에 4000억원의 자금을 더 받아 외국계 증권사로 거듭나게 된다. 제일투신의 외자유치는 대우채 파동으로 국내 투신시장이 무너져 내리는 상황에서 다른 투신사와는 달리 자력으로 활로를 모색했다는 점에서, 또 세계적인 금융회사의 까다로운 투자심사를 통과해 세계 금융계에 한국 투신회사의 능력을 알렸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죽어가는 회사를 살렸다”

그 변신을 진두지휘해온 황성호(黃聖虎·48) 대표. 1999년 3월 취임해 2년 반의 실적을 자평해달라는 질문에 그는 “냉정히 얘기하면 죽어가는 회사를 살렸다, 그 일을 황성호 대표가 아니면 할 수 있었겠는가 하고 물어봐도 ‘그렇다’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다”고 확신에 찬 표정으로 대답했다.

“주주들과 모기업인 제일제당에서 좋은 평가를 해주고 있지요. 직원들도 구체적인 평가는 하지 않지만 사내를 오가며 만났을 때 건네는 인사가 제가 취임할 당시와는 비교도 안 되게 따뜻하다는 걸 느낄 수 있어요. 저만의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황대표의 자신감은 그가 추진해온 경영전략이 예상대로 성공을 거두고 난 뒤의 즐거움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모르면 자칫 ‘지나친 자신감, 혹은 자만’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는 씨티은행 소비자 금융 담당 이사로 재직중일 때 제일투신의 CEO를 뽑는 인터뷰에서도 “맡겨주면 자신 있다”고 서슴없이 말했다고 한다. 그는 제일투신을 맡기 전부터 회생에 관한 확실한 수순을 읽은 것이다.

“처음 제일투신을 봤을 때, 한마디로 굉장히 답답한 회사였습니다. 팔고 있는 상품이 채권형 수익증권 하나였으니까요. 시장의 목판 장수 아줌마도 가지만 파는 게 아니고 고추 배추 깻잎 등 다양한 품목을 다룹니다. 하나가 안 팔리면 다른 걸 팔아서 이익의 균형을 맞추는 거지요. 하지만 제일투신은 채권형 수익증권이 수입의 98%였습니다. 그런데 이 수익증권이 잘 팔리지 않으니 수익이 적고 부실이 늘어난 겁니다.”

제일투자신탁증권은 원래 부산지역 상공인들이 만든 지역투자신탁회사였으나 1997년 9월 제일제당이 인수했다. 하지만 IMF를 맞아 대우채 파동이 일어나 부실이 발생하고 경영수지가 악화되자 돌파구를 열어줄 경영자로 황성호 카드를 선택했다.

황대표는 취임하자마자 수익의 다변화를 추구했다. 그는 먼저 주식형 상품을 만들어 팔면서 증권 중개업에 진출하기로 결심, 연구를 지시했다.

“각 지점을 둘러보니 매장은 넓고 직원도 많은데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더군요. 증권 중개도 투자업의 일환이므로 우리 회사의 능력으로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때 장은증권이 망했다. 황대표는 증권업에 진출하려면 전산시스템이 안정적으로 구축돼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장은증권에 전산실 직원과 전산시스템을 전부 인수하겠다고 제의했다. 1999년 7월, 장은증권을 인수한 황대표는 50개 지점을 반은 투신, 반은 증권업무를 할 수 있도록 개조하고, 직원 200명을 충원해 10월1일 마침내 증권업을 개시했다. 2000년 3월 말 결산해보니 증권 중개로만 400억원을 벌었다.

“전체 매출을 따져보니 채권형, 주식형 상품, 증권 중개가 대략 3분의 1씩 차지하더군요. 채권형 수익증권 하나만 취급할 때보다 매출이 세 배로 늘어난 거죠.”

피 말리던 9개월의 외자유치 협상

수익 다변화에 성공한 황대표는 침체에 빠진 국내 투신시장에서 살아남는 길은 외자유치뿐이라고 판단했다. 회사 성장에 단비가 되는 자금유입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선진금융기법을 도입해 당시 화두였던 ‘금융시장의 국제화’를 실현하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었다.

“외자 유치를 시작할 때 세 가지를 특히 고민했습니다. 먼저 어떤 회사를 대상으로 해야 하는가, 둘째 그 회사는 투자 여력 외에 우리에게 필요한 노하우(상품개발 마케팅 리서치 리스크관리 등의 금융기법)를 전수해줄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나라 시장이 그 회사의 성장 전략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외자유치를 단순히 자금원조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선진금융회사로 거듭날 수 있는 전기가 된다는 점이 더 중요합니다.”

마침 아시아 진출을 추진하던 미국 프루덴셜 그룹이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프루덴셜은 제일투신이 믿을 만한 회사인지 알아보기 위해 변호사를 동원해 조사하고 그런 다음 회계사를 보내 회사장부를 이 잡듯 뒤지는 치밀함을 보였다. 믿을 만한 회사라는 판단이 서자 그 다음에는 자사 전문가들을 불러 경영 전반에 걸쳐 자기네 방식으로 다시 조사했다. 프루덴셜은 이 조사과정에 100억원이 넘는 비용을 부담했다. 선진금융회사의 투자심사가 얼마나 까다롭고 치밀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심사와 협상이 진행되는 9개월간은 정말 밤낮없이 일했습니다. 진행이 잘 돼가던 시기에 국내 증권시장이 악화되면서 몇 차례 협상이 결렬될 위기를 겪자 조인서에 사인하기 직전까지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일투신의 투명성과 잠재력을 인정받았고, 국내 투신시장의 장래가 그리 비관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프루덴셜의 외자 유치는 쾌거라고 말해도 과장이 아닐 것입니다.”

이미 1차분 2000억원을 지원한 프루덴셜은 앞으로 3000억원을 더 지원해 제일투신의 지분 60%를 인수, 최대 주주가 된다. 이 과정에 프루덴셜과 전략적 업무제휴를 통해 한층 강화된 서비스를 펼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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