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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그룹 박순석 회장 미스터리

‘사업가’인가, ‘도박꾼’인가

  • 이형삼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ns@donga.com

신안그룹 박순석 회장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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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회장은 건설업으로 번 돈을 부동산에 투자해 재미를 보기도 했다. 1991년 종합토지세 납부실적(개인)에서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 등에 이어 전국 4위에 올랐을 정도로 많은 땅을 사 모았다. 오늘날 그가 일류 재벌 못지않은 막대한 현금 동원력을 갖게 된 것도 당시 아파트 건설과 부동산 운용으로 엄청난 돈을 끌어 모은 데 힘입었다.

박회장은 1990년대 들어 금융업으로 눈을 돌려 1996년 신안주택할부금융, 신안팩토링 등을 잇따라 세웠다. 지난해에는 조흥은행 계열의 조흥상호신용금고(현 신안신용금고)를 인수, 이를 중심으로 그린씨앤에프, 신안캐피탈 등을 금융소그룹으로 묶어 금융업 진출을 본격화했다.

이채로운 것은 20대의 고졸 여성이 신안의 금융그룹을 사실상 진두지휘하고 있다는 점. 광주여상을 졸업하고 1990년 신안종합건설에 입사한 임채연(29)씨가 그 주인공이다. 박순석 회장은 지난해 1월 임씨를 신안주택할부금융(현 신안팩토링) 대표이사로 전격 발탁한 데 이어 10월에는 신안신용금고 대표이사를 겸하게 하면서 금융소그룹 총괄 대표이사에 앉혔다. 임사장은 대리 시절부터 박회장의 자금을 도맡아 관리하면서 뛰어난 재테크 수완을 보여 박회장으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 실세가 박회장을 비호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은 그가 현정권 출범 이후 골프장과 호텔 등 굵직굵직한 사업장을 잇따라 인수하면서부터. 박회장은 1999년 2월 경기도 안성에 신안CC(27홀)를 개장했고 6월에는 경기도 광주 곤지암에 그린힐CC(18홀)를 열었다. 이어 지난 1월에는 법정관리를 받고 있던 대농그룹 소유의 경기도 화성 관악CC(36홀·현 리베라CC)를 인수했다.

신안은 2003년 완공 예정으로 제주에도 27홀 규모의 골프장을 짓고 있어 이 골프장까지 개장하면 박회장은 국내 최다 홀(108홀)을 소유한 골프장 재벌이 된다. 박회장은 1998년에는 정부 소유의 뉴서울CC를 인수하려 했으며, 구속되기 직전까지도 동아건설 계열의 대둔산CC 인수를 추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와 동시에 서울과 유성의 리베라호텔 인수, 경기도 가평의 레저타운 건립 등도 함께 추진해 주변의 놀라움을 샀다.



업계에서는 골프장과 호텔 인수에 들어간 자금이 45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의혹의 핵심은 건설경기 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박회장이 어떻게 그처럼 막대한 자금을 불과 2∼3년 사이에 조달할 수 있었냐는 것과 현정부 들어 신안의 사업확장 드라이브에 가속도가 붙은 배경이 무엇이었냐는 것.

이에 대해 신안그룹측은 “공매나 경매에서 대행 은행을 통해 입찰을 받은 것이므로 인수과정에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밝혔다. 자금조달 경위에 대해서도 “여기저기에 짓고 있는 아파트 단지가 많기 때문에 분양이 이뤄지면 그때그때 인수자금을 충분히 감당할 만한 현금이 확보됐다”고 설명했다.

신안의 현금 동원력은 박회장의 독특한 기업경영 방식에서 비롯된다. 그는 철근 도매업을 할 때부터 ‘빚 얻어 장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무차입경영 원칙은 회사 규모가 커진 후에도 그대로 밀고 나갔다.

뿐만 아니라 신안그룹은 계열사가 10여개로 늘어난 지금도 기업공개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그룹의 모기업인 신안종합건설과 (주)신안은 박회장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어 사실상 개인회사나 다름없다. 박회장은 금융 계열사들의 지분도 절반 이상씩 갖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엄청난 세금을 내야 하는데, 1993년에는 종합소득세 납부순위 2위에 오르기도 했다. 박회장은 회사 지분 외에도 신안상호신용금고에 200억원 대의 예금을 갖고 있으며, 신안관광개발 등에 개인 돈 수백억원을 무이자로 빌려주는 등 ‘현찰왕’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박순석 게이트는 없다?

박회장은 현정권 출범 후 호남 출신의 정치인과 법조인에게 줄을 대려고 여러 차례 시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평소 여권 실세인 K씨, 여당의 H의원·K의원 등과 친분이 두텁다고 과시하며 다니기도 했다는 것. 이는 ‘박순석 게이트’ 존재설의 또 다른 근거다.

하지만 “박순석은 무슨 ‘게이트’를 엮을 만큼 노회한 인물이 못된다”는 시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박회장이 호남 출신 인사들 사이에 평판이 좋지 않은데다, 이들에게 접근할 때도 속이 빤히 들여다 보일 만큼 얕은 수를 쓰는 바람에 ‘약발’이 잘 먹혀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의 여권 실세들이 야당일 때는 눈길을 주지 않다가 정권이 바뀌자 노골적으로 접근을 시도해 빈축을 샀다고 한다.

박회장과 같은 신안 출신인 민주당 한화갑 최고위원은 “고향 사람에게 고리로 돈놀이를 하는 사람”이라고 박회장을 비난하면서 “내가 야당일 때 후원회를 열면 200만원 정도를 보냈는데, 여당이 되자 후원회를 하지도 않았는데 3000만원을 후원회 계좌로 입금했길래 돌려준 일이 있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민주당 인사들이 ‘신안비치호텔’을 자주 이용했다며 박회장과의 밀착설을 제기했으나, 신안비치호텔은 신안종합건설과 이름이 비슷한 신안건설산업 우경선(59) 회장이 운영하는 호텔로 박회장과는 무관하다. 우회장은 역시 신안 출신으로 한 최고위원과 절친한 사이.

또다른 여권 관계자는 “야당시절 DJ가 호남 출신 재력가들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그때 동교동 핵심인사가 박씨를 찾아갔는데, 그는 ‘내가 왜 김대중을 도와야 하느냐’며 매몰차게 문전박대했다”고 전했다.

박회장과 K씨와의 관계도 비슷한 예. 박회장은 K씨가 고위 공직에 있던 1993년 K씨의 동생을 스카우트해 계열사 사장에 앉혔다. 그러나 K씨가 1995년 말 공직에서 떠나자 이듬해 그의 동생도 신안그룹을 떠났다고 한다. 그러나 DJ정부 들어 K씨가 장관에 임명되자 다시 그에게 접근하려고 부산을 떨었다는 것이다. 신안 출신의 한 부장검사도 “박회장이 워낙 부정적으로 알려져 고향 사람이지만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평판 때문에 여권 인사들에겐 박회장이 기피인물로 여겨졌다고 한다. 법조인 출신인 민주당 J의원의 말.

“얼마전 박회장이 운영하는 골프장에서 골프를 친 적이 있다. 처음엔 그 골프장 주인이 누군지 몰랐는데, 우리 팀 바로 뒤에서 따라오던 박회장이 나를 알아보고 달려와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갔다. 조금 있으려니 박회장이 사람을 보내 ‘운동 끝나고 VIP룸에서 식사를 모시겠다’고 전해왔다. 그 사람에 대해 좋지 않은 얘기를 많이 들었던 터라, 공연히 그 자리에 갔다가 나중에 무슨 험한 꼴을 당할까 싶어서 18홀까지 가기도 전에 서둘러 골프장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신안그룹 관계자는 “박회장이 정치권과는 늘 거리를 두려 했다”고 반박했다.

“박회장은 출신지역 때문에 정치적으로 이용당할까봐 정치와 세금에 대해 극도로 예민했다. 정치인 후원회는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 후원회 초대장이 오면 여야를 불문하고 인사치레로 100만∼300만원을 보냈다. 그것도 행여 뒤탈이 있을까봐 반드시 후원회 계좌로 입금한 후 영수증 처리했다. 한화갑 최고위원의 경우는 지역구가 신안이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좀 많은 돈을 보냈을 뿐 다른 목적은 없었다.”

‘3류 로비꾼’과 ‘단순 도박꾼’ 사이. 추가 어느 쪽으로 기울어질지 박회장의 ‘입’에 시선이 쏠려 있다.

신동아 200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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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삼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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