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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한국경제 간판 CEO 열전|임승남 롯데건설 사장

‘호텔 같은 아파트’로 승부한다

  • 장인석 < CEO전문리포터 > jis1029@hanmail.net

‘호텔 같은 아파트’로 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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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같은 아파트’로 아파트시장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롯데건설 임승남(林勝男·63) 사장의 별명은 세 개다. ‘불도저’와 ‘백과사전’, ‘철인’이 그것이다.

‘불도저’는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불면의 밤을 보낼 정도로 고민을 하지만 일단 결정 내리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단호한 성격 때문에 가장 많이 불리는 별명이다. ‘백과사전’은 어떤 일도 맡기면 성공의 길을 찾아간다고 해서 그룹 내 임원들이 붙여줬다. ‘철인’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면서도 고객이 찾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고 술자리에서 폭탄주를 10잔 이상이나 마셔도 끄떡없을 정도로 강철 같은 체력을 자랑해서 부하직원들이 부르는 별명.

이 세 개의 별명은 그를 이해하는 세 가지 키워드가 된다는 점에서 아주 의미심장하다. 또한 이는 어째서 2년전만 해도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롯데건설이 지금 ‘돌풍의 주역’으로 부상했는지 그 이유를 찾는 해법이 된다. 롯데건설은 ‘임승남 이전’과 ‘임승남 이후’를 비교 분석하는 것조차 무의미할 정도로 달라도 너무 다르다. 현재의 롯데건설은 거의 임승남 사장 혼자 힘으로 놀라운 탈바꿈을 했다는 점에서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1998년 4월1일 임승남 사장은 롯데물산에서 롯데건설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롯데건설은 서비스와 제조업종 위주인 롯데그룹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을 뿐만 아니라 건설업계에서도 미약한 존재. 주변사람들은 걱정했지만 그는 ‘잘 안되는 회사를 되살리라’는 신격호 회장의 의중을 읽었고, 그래서 새로운 도전의식에 불탔다.

“하지만 와서보니 3월까지 100억원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고, 부채도 많았어요. 게다가 주로 정부 공사를 수주해 일해왔는데 점수가 나빠서 제대로 된 공사는 전혀 수주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지요.”

아파트는 브랜드다

롯데그룹 공채 1기로 입사해 37년간 외길인생을 달려오면서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 시절이 그에게는 가장 어려운 나날이었다. 회사 상황은 최악이고 상황을 타개할 비책도 전무했으니까. 게다가 롯데건설은 소수정예의 원칙에 따라 부사장도 없었고 전무와 상무도 둘씩밖에 없었다. 직원들은 직원들대로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있었고 오랫동안의 침체로 의욕도 상실하고 있었다. 원군조차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롯데그룹에서 기획통으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롯데제과 기획관리실장, 롯데제과 기획담당 이사를 거쳐 롯데그룹운영본부 기획담당 이사, 롯데그룹 기획조정실 기획담당 상무를 거쳐 롯데건설 중동사업본부장(전무이사)으로 CEO의 세계에 첫발을 내디딘 경력을 갖고 있다. 그의 기획력은 이런 위기에서 빛을 발했다. 그는 평생 제품 기획에 관여했던 경험을 살려 아파트도 하나의 제품, 브랜드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비록 IMF 때라고는 하지만 소득 수준이 1만달러에 육박하고 생활패턴이 고급화하면서 천편일률적인 아파트보다는 편리하고 고급스런 아파트를 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란 판단이 든 거죠. 그러다 ‘호텔 같은 아파트’를 브랜드화하자는 생각이 퍼뜩 든 겁니다. 제가 다행히도 잠실 롯데월드와 부산 롯데호텔을 기획부터 완공까지 맡았던 경험이 있어요. 호텔이 뭡니까? 가장 편리하고 쾌적하고 고급스런 주거지 아닙니까?”

하지만 그의 아이디어에 찬성하는 직원은 한명도 없었다. IMF 시대에 누가 평당 1000만원에 육박하는 아파트를 선호하냐는 것이다. 틀림없이 망한다고 말리는 직원도 생겨났다. 하지만 그는 불도저다. 결정하기까지는 심사숙고하나 일단 결정되면 누구도 말리지 못한다. 그는 틀림없이 된다고 판단했고, 이 길만이 롯데건설이 사는 길이라고 확신했다.

“밀어붙였습니다. 반대하는 직원들을 설득하고 냉철한 시장조사를 선행했습니다. 그때까지 반신반의하던 직원들도 제가 선두에서 뛰기 시작하자 따라 뛰더군요. 물론 결과에 대해선 불안했지만 일단 저질러놓고 보자는 생각이 든 거죠. 제가 처음 왔을 때는 저녁 6시면 거의 퇴근하던 직원들이 늦게까지 일하고 밤을 새우는 분위기가 형성됐습니다. 대장이 뛰는데 부하가 안 따라올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1999년 2월 분양한 서울 서초동의 ‘롯데캐슬84’. 캐슬(castle)이란 이름은 그가 잠실 롯데월드를 건설할 때 석촌호수에 세운 성, ‘캐슬’에서 따온 것이다. 캐슬은 최초로 인테리어가 있는 아파트란 점에서 특히 주부들의 관심을 끌었다. 환경친화적인 인테리어에 주부들의 가사노동을 감안해 짧은 동선을 강조했고, 무엇보다 살기 좋은 느낌이 들도록 세심한 배려를 한 것이 돋보였다.

고급아파트 시대를 선도

‘호텔 같은 아파트’란 캐치플레이즈를 내건 ‘롯데캐슬’은 분양가가 평당 1000만원에 달해 사치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냐는 일부의 비난도 있었지만 모두 1순위에 마감됐다. 고급아파트를 원하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어본 것이다.

롯데캐슬의 성공은 일시적이 아니었다. 이는 구매력이 높은 소비자들에게 고급아파트 유행을 선도했고, 나아가 업계를 고급아파트 경쟁으로 몰고갔다. 이 점에서 롯데건설은 이 유행을 선도한 장본인으로 소비자들의 높은 신뢰를 얻었다. 지난해 3월에 분양한 서울 잠원동과 대치동 캐슬은 각각 35대 1과 132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게다가 1억원이 넘는 분양권 프리미엄까지 생기는 기록을 만들었다.

지난 10월17일부터 분양한 여의도 롯데캐슬 엠파이어는 최고수준의 주상복합아파트란 점에서 눈길을 끈다. 입주자 전용 스포츠센터, 골프연습장, 연회장, 취미실 등의 주민공동시설이 들어서며 무인출동시스템, 디지털 난방제어 시스템, 세대 내 엘리베이터 호출장치, 홈시어터 시스템 등이 기본적으로 제공돼 가장 쾌적한 공간을 꾸민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롯데건설이 캐슬만 지은 것은 아니다. 도심은 캐슬, 외곽과 전원지역엔 ‘낙천대’란 브랜드로 차별된 마케팅을 전개했다. 낙천대(樂天臺)는 롯데의 한자말. 낙천대 역시 대인기였다. 아파트 쪽에서는 명함도 못내밀던 롯데건설은 캐슬과 낙천대의 성공으로 고객들의 신뢰감은 물론 아파트 건설에 대한 자신감도 얻었다.

여기서 임승남 사장은 또다시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아 직원들은 물론 다른 회사까지 놀라게 만들었다. 다름 아닌 주부로 구성된 고객 서비스팀 LSP(Lady’s Service Part)의 운영이다. 이는 그동안 일회성 분양에서 벗어나 아파트 최초로 애프터서비스를 실시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일로 평가된다. LSP는 사전검검에서 입주까지 각 세대를 방문해 사소한 의견에서 구조적인 개선문제에 이르기까지 의견을 수렴해 소비자들의 호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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