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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中 보따리 무역상 ‘따이공’과의 3박4일

  • 조동수 < 소설가·85년 신동아논픽션 당선작가>

韓·中 보따리 무역상 ‘따이공’과의 3박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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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관 거부, 그리고 데모. 속초 국제여객선 터미널 출국 수속대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사건이다. 속초와 러시아 자루비노항을 오가는 동춘호의 주 고객인 따이공(보따리 무역상)들이 벌이는 시위다. 대체 동춘호 안팎에선 지금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3박4일간 동춘호 따이공들과 함께 한 삶의 현장을 들여다보니….
통관 거부. 또 데모다. 속초 국제여객선 터미널에서 나와야 할 사람들이 안 나오니 출국 수속도 늦어진다. 벌써 오후 2시34분. 평소 같으면 속초와 러시아 자루비노항을 오가는 동춘호가 거대한 몸통을 비틀어 항구를 빠져나가고 있을 시간이다. 그러나 오늘(8월15일)은 기약 없다. ‘따이공(보따리 무역상)’들이 통관거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흘 전인 12일에도 데모가 있었다. 바로 지난번 항차(航次)였다. 그날 나는 따이공으로 살아가는 친구를 만나러 속초 터미널에 나갔다가 충격을 받았다. 낮 12시쯤이면 입국하여 얼굴을 볼 수 있다기에 시간 맞추어 갔는데 저녁 7시가 넘어도 코빼기조차 볼 수 없었다. 따이공들이 세관의 통관대를 지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말이 데모지 구호를 외치거나 무얼 깨고 부수는 격렬 시위는 아니다.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 통제구역 안에서의 무언의 저항이다.

그날(12일) 밤 8시 무렵까지는 대개의 따이공들이 곡물이며 물건 털리는 걸 감수하고 통관대를 통과했다. 허탈한 표정으로 웃을 뿐 별수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끝까지 거부하던 단 한 사람은 혼자가 되자 들고 왔던 술을 따서 마시고 사방에다 욕설을 해대기 시작했다. 세관 쪽에서는 공무집행 방해로 경찰을 부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동료들을 들여보내 데리고가도록 부탁했다. 그는 친구들에게 겨드랑이를 끌려 나가면서도 ×새끼를 찾았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사내였다. 좀 먹고 살자는 데 어째서 매번 죽이냐는 것이다. 그는 친구들에게 들려 다리가 질질 끌린 채 세관 로비를 지나갔고, 목소리가 마당에서 점점 멀어질 때까지도 끈질기게 욕설을 사방에 퍼부어댔다.

그때 문득 호기심이 발동했다. 대체 동춘호 안팎에선 지금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대체 따이공들은 어떤 애환을 품은 채 오늘도 배를 타는지 궁금했다. 당장 동춘호를 타보기로 했다.

늦어지는 스탠바이

선실에는 벌써 몇 군데서 고스톱 판이 벌어졌다. ‘말띠’로 통하는 남자가 피 3점을 내고 주저없이 “고”를 했다. 초반이어서 ‘쓰리 고’ 확률이 높았다. 말띠는 “투 고”까지 불렀다. 나머지 선수들은 포기상태다. 내가 봐도 가망 없었다. 하지만 다음 선수가 비를 먹다가 쌌다. 선상의 화투는 비 띠를 쌍피로도 활용하는 규칙이 있었다. 그 다음 선수가 흑싸리 쭉지를 때리고 넘긴 것이 다이아몬드고, 다시 히떡 패가 까진 것이 싸놓은 비였다. 일타 구피. 말띠는 투박한 손바닥으로 자기 이마를 쳤다. 내가 그 말띠한테 일찍 승선한 까닭을 물었다.

“우리야 뭐, 화투 치다가 내려가서 물건 넘기고, 자장면 하나 먹고 올라와 또 치고… 그 재미로 댕기지요. 아마추어니까.”

동춘 페리는 일주일에 세 번 한국의 속초항과 러시아의 자루비노항을 왕복하며 일요일 밤에만 속초에서 하루 정박하는 1만2000t급의 정기 국제여객선이다.

화투판 구경은 잠시고 나는 승선구 근처 창가에 서서 터미널 출구를 내려다보았다. 3시40분. 친구가 나타나야 했다. 나는 그쪽 길이 초행이므로 친구가 안내를 맞기로 했다.

“100명은 넘었나?”

“네… 겨우, 넘었습니다.”

승선구에 나와 있던 사무장이 사무사한테 현재 시각 승선인원을 물었다. 이미 예정된 출항 시각을 훨씬 넘기고 있어서 실무자들은 바빴다. 손에 들린 무전기에서는 연신 신호음이 삑삑거리고 소리 높은 음성들이 오갔다. 아마 사무장(이혁래씨)이 터미널 매표 담당자와 교신을 하는가 보다.

“인원, 적어도 할 수 없다. 응, 캡틴… 캡틴의 지시야. 늦어도 3시55분에는 스탠바이하여 4시에는… 응, 응….”

그게 마지노선이라는 거다. 4시를 넘기면 러시아 자루비노에 도착한 상인들이 중국 훈춘에 다녀올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내가 물었다.

“속력을 더 높이면 안돼요?”

“20노트 풀로 그래요. 자루비노까지 열여덟 시간, 항상 풀이죠.”

터미널 출구에서는 여전히 커다란 빈 가방을 어깨에 걸친 채 한두 명씩 느릿느릿 나타나곤 했다. 남자거나 여자거나 바쁠 것 없다는 걸음걸이다. 캡틴(선장)이 마지노선으로 설정했다는 55분이 지나고 있었다. 이제 그만인가 하면 나타나고 그만인가 하면 또 꾸역꾸역 나타났다.

“몇 명인가?”

“백 이십, 칠팔 명….”

“그럼 아직도 칠팔십 명이 안 나갔다는 계산인가?”

사무장과 사무사는 배 위에서도 훤히 꿰고 있었다. 관광객 몇 명, 따이공 몇 명, 그리고 배를 못타고 있는 사람 몇 명 등. 4시가 지나도 선장의 스탠바이 명령은 떨어지지 않았다. 무선전화 앞에서 사무장만 쩔쩔 맬 뿐이다. 한 관광객이 늦어지는 출항에 대해 항의하자 사무장은 “저 분들은 배타는 게 직업입니다. 우린 매일 보니까 식구 같은데, 어찌 시간 됐다고 그냥 떠나겠어요” 하고 응대했다.

드디어 선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스탠바이! 올 스탠바이-”

4시10분. 선원들의 움직임이 분주했다. 이제 승강 사다리를 들어올리려고 난간을 접었다. 그때 터미널 출구에서 허겁지겁 한 사람이 손을 흔들며 뛰어왔다. 난간은 다시 펴졌다. 폈던 난간을 접고 사다리를 한참 들어올렸을 때 또 고함소리부터 앞세우고 누군가 나타났다. 둘이다. 올라가던 사다리는 다시 내려와 시멘트 바닥에 긴 모가지를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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