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4월호

보험조사인 vs 보험사기꾼, 목숨 건 1조원 전쟁

  • 박성원 < 한경비즈니스 기자 > parker49@kbizweek.com

    입력2004-11-01 1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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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 ‘하면 된다’. 최근 몇 년 사이 개봉됐고 안방극장에서도 선보인 보험사기와 보험조사인 소재의 영화들이다. 피해액이 연간 1조원으로 추정되는 보험사기, 날로 극성을 부리는 보험금을 노린 범죄와 이에 맞서는 보험조사원의 세계를 들여다 보았다.
    ”해마다 보험사기로 빠져나가는 돈이 얼마나 되는지 아세요? 무려 1조원입니다. 전체 보험금 중 10%가 사기꾼들의 주머니로 흘러 들어가는 거죠. 예전엔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보험범죄를 저질렀는데 요즘은 달라요. 제법 사는 사람들이 고의로 사고를 냅니다. 그러다보니 보험금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도 많습니다. 최근엔 대학생, 주부, 샐러리맨까지 가세해 보험금 타낼 궁리를 하고 있어요.”

    보험조사인의 세계를 취재하기 위해 찾아간 기자에게 안병재 대한손해보험협회 보험범죄방지센터 부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보험사기 사건을 조사하는 직원들이 늘어난 보험사기꾼들 때문에 얼마나 속을 끓이고 있는지 짐작케 했다.



    목숨을 건 진실 파헤치기


    경찰을 도와 보험사기 사건을 해결하는 사람들을 보험조사인이라고 한다. 보험사기 사건이 해마다 늘어나자 보험사들은 전문 보험조사요원으로 구성된 SIU(Special Investment Unit, 특별조사팀)라는 조직을 만들어 보험금의 누수를 막고 있다. 보험사기 사건엔 여러 보험사가 얽혀 있어 손해보험협회와 생명보험협회 등도 특별조사팀을 두었다. 협회소속 특별조사팀 직원들은 각 보험사에서 파견된 베테랑급 직원들이다.



    사실 일상에서 보험조사인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자동차 사고 현장에서 만나는 보험사 직원들은 손해사정인이다. 보험조사인은 특수한 경우에나 만날 수 있다. 이들이 뛰어다니는 현장이 대부분 사기꾼과 협잡꾼 그리고 조직폭력배들이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말과 표정만으로도 거액의 보험금이 오가는 곳이어서 그런지 현장엔 항상 긴장감이 감돈다. 몸을 던져서라도 돈을 벌겠다는 사람 앞에서 이들은 때로는 생명의 위협까지 받아가며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고 있다.

    이렇듯 위험한 현장을 다니다보니 보험조사인 중엔 전직 경찰관 출신이 많다. 때론 며칠간 잠복해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의 동태를 파악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이런 일에는 전직 경찰 출신이 제격이다. 조직폭력배의 계보나 이들의 최근 동향을 파악해야 할 때는 옛 경찰 동료들과 술 한잔 하면서 관련 정보를 슬쩍 듣기도 한다.

    대부분 보험사건은 목격자나 증거가 없는 경우가 많아 훈련된 수사 감각이 필요하다. 범죄자들은 보험상품의 맹점을 파고들어 우연을 가장하기 때문에 과학적인 수사기법이 요구된다. 보험 조사인들이 현장에 들고 가는 노트북 컴퓨터엔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 내장돼 있다. 이 프로그램에 관련자의 진술, 사고 차량의 방향과 속도, 파손된 부위, 도로의 마찰 계수 등의 정보를 입력하면 동영상으로 사건을 재현할 수 있다. 마치 사건을 카메라에 담은 것처럼 정확도가 뛰어나다. 이 프로그램은 과학수사연구소나 교통안전공단 등에서 개발하는데, 가격은 2000만원대로 상당히 고가다. 더욱 정확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이들은 디지털 카메라, 줄자, 돋보기 등도 챙겨간다.

    보험조사인들의 활약으로 미궁에 빠졌던 사건의 진실이 밝혀진 사례는 상당히 많다. 이중 1998년 충남 서산의 한 저수지에서 벌어진 자동차 추락사건은 조사인들 사이에 두고두고 전해지는 유명한 사건이다.

    1998년 8월 충남 서산의 한 저수지에 자동차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시간은 밤 9시30분경, 커브길을 돌다가 길을 벗어나 난간을 들이받으며 저수지로 떨어진 자동차엔 김모(35)씨와 그의 딸 둘 그리고 조카 둘이 타고 있었다. 생존자는 김씨 한 사람. 12세, 10세의 두 딸과 12세, 7세의 여자 조카들이 물에 빠져 죽은 안타까운 사고였다. 현장에서 사고를 조사한 경찰관들은 단순 교통사고로 결론을 내렸다.

    단순 교통사고로 결론이 난 사건에 손보협회 전문 조사인들이 특파된 것은 1999년 여름이었다. 무려 1년이 지난 뒤 조사인들이 투입된 이유는 일선 보험담당 직원들이 “아무래도 이상하다”며 조사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운전자 김씨가 교통사고가 나기 일주일 전 두 딸 명의로 생명보험에 가입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던 것이다. 당시 사건조사를 맡았던 O팀장은 이렇게 말했다.

    “경찰의 초동수사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통사고는 우연히 일어나는 것 같지만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왜 그 시간에 그곳에서 사고가 발생했는지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으면 뭔가 문제가 있는 거죠. 더구나 일주일 전 운전자가 딸 이름으로 보험을 들었다는 사실은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O팀장은 조사요원 몇 명을 데리고 서산으로 내려갔다. 모든 사건이 그렇지만 보험사고는 특히 현장 답사가 중요하다. 도로의 상태만 면밀히 체크해도 전문가의 눈엔 예사롭지 않은 증거들이 포착되기 때문이다. O팀장이 사건 현장에 간 것만 20회. 그는 사고가 난 시각에 사고 발생 지점으로 차를 직접 몰고 가,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을 확인했다. 생존자 김씨는 경찰조사에서 “동물이 도로로 뛰쳐나왔다” “졸음 운전중이었던 것 같다” “하루살이가 시야를 가렸다”는 등 다양한 이유를 댔다. O팀장이 확인하려고 애쓴 것도 이 부분이었다. 결론은 특별히 사고를 일으킬 만한 원인을 찾을 수 없다는 것.

    현장 확인 작업에는 사고 차량을 다시 살펴보는 것도 필수적이다. 사고차량의 파손된 부위 등을 조사해야 우연한 사고인지 아닌지의 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론 차안에서 의외의 증거를 찾기도 한다.

    정비소에 보관된 사고차량을 조사하면서 O팀장은 경찰이 놓친 증거를 찾는 데 성공했다. 뒤 트렁크에서 해외여행 견적서 한 장을 발견한 것. 그 견적서에는 비행기편과 목적지 등이 있었다. 견적서가 결정적인 증거가 됐던 이유는 견적을 의뢰한 사람이 김씨와 제3자였기 때문이다. 제3자는 그의 부인이 아닌 다른 여자였다. 이는 그에게 정부(情婦)가 있었다는 사실과, 보험금을 타면 쓸 데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자료였다.

    여기에 덧붙여 진실을 밝혀줄 또 다른 증거가 나타났다. 김씨의 부인이 쓴 일기장이 그것. 경찰이 김씨 집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부인의 일기장에는 사건 발생 일주일 전부터 소름 돋는 얘기가 적혀 있었다. 주요 내용은 이렇다.

    *사건 발생 일주일 전. “애 아빠가 이상하다. 딸 이름으로 생명보험을 든 것이다. 왜 그랬을까. 갑자기 불안해진다.”

    *사고 당일 아침. “요즘 점점 애 아빠가 수상하다. 오늘 딸들을 데리고 놀러간다고 나갔다. 지금까지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애들을 챙기는 남편이 낯설다.”

    *사고 당일 밤 9시30분. “갑자기 하늘이 노래진다. 애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 틀림없다.”

    부인은 마치 모든 것을 아는 듯 섬뜩하도록 정확하게 사건 전말을 일기장에 적어 내려갔다. 이를 통해 O팀장은 사건 일주일 전 김씨가 예전과 다른 행동을 했다는 것을 알아냈다. 게다가 김씨는 증권투자 실패로 상당한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이 추가로 밝혀지면서 그의 마각이 세상에 드러났다. 김씨는 지난해 1심에서 사형을 구형받았으나,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죄명은 미필적 살인. ‘어린 딸들과 조카들을 구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점이 재판부에게 인정됐다.

    전직 경찰관 출신으로 보험조사업무만 15년 동안 해온 B팀장은 “지난해 춘천에서 일어난 교통사고 사건은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했다”고 말한다. 이 사건 역시 저수지에 자동차가 추락한 사고였는데 경찰 수사 결과 단순 교통사고로 판명된 경우다. 그러나 B팀장의 재조사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

    지난해 5월 어느날, 밤 9시경 춘천의 한 도로변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난간을 들이받은 차는 저수지로 떨어졌고, 차에 타고 있던 남편 P씨와 부인 L씨가 차와 함께 물 속에 잠겼다. 남편은 다행히 헤엄쳐 나왔지만 옆에 타고 있던 부인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조사 결과 우연한 교통사고로 결론지었다. 당시 이 사건이 B팀장에게 넘어간 이유는 담당 보험사 직원들이 파악한 보험기록 때문이었다. 사고가 나기 한 달 전, P씨는 부인 명의로 생명보험을 들었다. 그는 무려 4개 보험사에 생명보험을 들었고, 부인이 사망하면 13억원을 받도록 돼 있었다. B팀장은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B팀장의 주의를 끈 증거는 사건 현장에서 발견됐다. 그가 직접 저수지에 들어가 수심을 잰 결과, 불과 1∼2m 정도임을 확인했다. 당시 날이 가물어 저수지가 말라 있었기 때문이다. 이 깊이에서 사람이 익사했다는 것이 석연치 않았다. 분명 곡절이 있을 법했다. 남편 P씨의 주변을 탐문한 결과, B팀장은 사고 전 P씨는 손윗동서와 부인의 관계를 의심하는 등 의처증에 시달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살해 동기를 추측할 수 있는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그는 즉시 담당 경찰에 이 사실을 알렸고, 남편 P씨를 잡아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경찰은 그의 눈앞에 죽은 부인의 사진을 갑자기 들이댔고, 사진을 보자 그는 울음을 터뜨렸다. P씨는 “물에 빠진 아내가 죽지 않아 강제로 익사시켰다”며 자신이 저지른 일을 모두 털어놓았다. 부인을 살해하고 죄책감에 시달린 사람의 전형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사건이 해결된 후 B팀장은 P씨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중 깜짝 놀랄 만한 얘기를 듣게 됐다.

    “형사님(P씨는 B팀장을 경찰관으로 알았다) 아내를 죽이고 난 뒤 한숨 못 잤습니다. 자다가 눈을 뜨면 천장에 소복을 입은 아내가 눈을 부릅뜨고 저를 쳐다보고 있어요. 저녁 때 수돗가에서도 아내가 나타나 저를 원망하듯 쳐다보고… 정말 견딜 수 없었습니다. 경찰에 붙잡히기 전 소주를 마시고 사고가 난 장소로 갔어요. 죽으려고요. 도로 한가운데 누워 지나가는 차가 저를 쳐주길 바랐습니다. 그런데 그마저도 제 뜻대로 안되더군요. 중학교 다니는 딸에게 재산을 다 물려주고 죽으려고 했는데… 사실 이곳에 오기 전 파출소에도 두 번이나 갔습니다. 자백하려고 갔지만, 번번이 문앞에서 돌아섰죠. 입이 안 떨어져서요. 형사님, 이젠 마음이 편합니다.”

    A보험사에서 특별조사팀을 이끌고 있는 J부장은 “조사인들은 경찰과 함께 보험사기 수사에 참가할 뿐 아니라 범인 검거에도 한몫을 하고 있다”며 “때로는 위험한 상황에 직면해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이 분야에서만 10여 년이 넘도록 근무해 베테랑 소리를 듣는 J부장이지만 지난해 겪은 일은 잊혀지지 않는다. 서울 모 재개발지역에서 이 지역의 조직폭력배 중 한 명이 교통사고를 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크게 다친 데가 없는 경미한 사고였지만 일은 쉽게 마무리되지 않았다. 이 지역 조직폭력배들이 조직원의 사고를 마치 자신이 당한 일처럼 아파했기(?) 때문이다. 사고를 당한 조직원을 대신해서 또 다른 조직폭력배들이 가해자에게 과다한 보험금을 청구하기 시작했다. 사고를 처리해야 할 담당 보험직원은 자신의 역량으로는 해결이 안되자 J부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들이 요구한 보험금이 엄청날 뿐 아니라, 근육질 몸매에 험상궂은 얼굴을 한 사람들이 주위를 어슬렁거리자 담당자가 지레 겁을 먹었던 것.

    J부장은 이런 일에 익숙했지만, 이들이 어떻게 나올지 몰라 직원 한 명을 데리고 피해자가 누워있는 병원에 갔다. 예상한 일이었지만, 병실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사고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자는 많이 다치지 않았고 이런 모습을 보험사 직원들에게 보여주었다가는 꾀병으로 들통나기 십상이었다. 자연히 거액의 보험금을 받아내기 힘들기 때문에 이들은 문을 열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리고 있는 J부장에게 한 조직원이 마지못해 병실 문을 열어주었다. 병실 안에는 중간급 조폭으로 보이는 사람이 대뜸 J부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보상금 받지 않는 대신 가해자와 당신 둘 다 똑같이 자동차 사고를 당하게 해주겠다.”

    순간 J부장은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느낌이었다. 조폭들은 J부장의 가족까지 위협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당신은 물론이고 당신 자식들도 등교길 조심하라고 해.”

    이 상황에서 섣불리 행동했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랐다. 이럴 때는 그저 협상을 다음으로 미루고 현장을 빠져나오는 것이 상책.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병실 바깥에 직원을 대기시켜 놓았지만, 급박한 상황에선 도움이 안 될 수 있다.

    별 소득도 없이 모욕만 당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J부장은 이들의 인상착의와 특징 그리고 이름까지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를 경찰서 강력계에 통보했다. 그는 자주 조직폭력배를 상대해 전국의 조폭 계보 정도는 머릿속에 꿰고 있었다. 관할 경찰서로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면 관련된 조폭들의 명단, 신상, 계보를 파악할 수 있다.

    J부장의 제보로 조폭이 보험사건에 개입돼 있음이 확인되자 경찰이 나섰다. 보험금 청구에 제3자가 개입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이며, 더구나 제3자가 조직폭력배였기 때문. 당시 경찰의 협조를 통해 J부장은 유리한 입장에서 피해자 측과 보험금 협상을 했고, 합리적으로 보험금을 지급했다.

    J부장은 보험조사인의 자질을 다음과 같이 꼽는다.

    “우선 문제의식을 갖춰야 합니다. 단순한 교통사고라도 왜 이곳에서 사고가 났을까 하는 의문을 갖고 이면을 파헤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둘째 집요해야 합니다.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상어 이빨이 있어야 사건을 제대로 해결합니다. 셋째는 담대해야 해요. 워낙 험한 일을 해야 하므로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는 뚝심이 필요해요.”

    그는 그러나 이렇듯 험한 일을 하면서도 “회사로부터 특별한 인센티브를 받지 않는다”며 “사명감이 없으면 하기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업무가 더욱 힘들어 보이는 이유는 경찰관처럼 신분 보장이 안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일부 보험조사인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회의를 느끼기도 한다. C화재 K과장은 “곧 보험조사업무를 그만두고 싶다”며 “지점에서 일하는 것이 낫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신분상의 위협을 당하는 일이 잦다. 그렇다고 경찰관이나 검사들처럼 신분을 보호해주는 제도가 없다”며 “하루라도 빨리 그만두고 싶다”고 고백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힘들고 위험한 일을 하는 만큼 성과에 따른 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보험조사인들이 상대해야 하는 껄끄러운 손님 중에는 상이군인들이 있다. S화재 보험조사인 P대리는 지난해 서울 강동구에서 끔찍한 일을 경험했다.

    “서울에 상이군인들만 받는 병원이 있습니다. 이곳엔 진통제를 맞지 않으면 하루를 버티기 힘든 중증 장애인들이 많습니다. 팔 다리가 없는 사람들, 가느다란 호스를 통해서만 소변을 볼 수 있는 사람들…. 이렇듯 불쌍한 사람들이 보험사고에 개입하면 엄청나게 두려운 세력으로 변합니다. 난동을 부려도 불쌍하다는 이유만으로 용서가 되죠. 동정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함부로 할 수도 없어요. 아주 골치가 아픕니다.”

    지난해 여름, 푹푹 찌는 더위에 10여명의 상이군인들이 S화재 사무실을 덮쳤다. 이유는 한 상이군인이 당한 교통사고에 대한 보상액수가 너무 적다는 것. 이들은 사무실 책상, 서랍 등을 닥치는 대로 뒤집고 부수며 직원들의 업무를 방해했다. 직원들은 갑작스러운 이들의 침입에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정신을 차려 경찰서에 신고했다. 하지만 경찰들이 현장에 도착해도 이들의 횡포는 그치지 않았다.

    “어떤 상이군인은 몸 속에 있던 호스를 풀더니 노란 오줌을 사무실로 뿌려댔습니다. 더운 여름에 오줌 냄새는 코를 찔렀습니다. 이런 모습은 처음 봤죠. 그렇게 소변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니까요. 경찰도 이들을 어떻게 하지 못하더군요. 과잉진압했다는 소리 듣기에 딱 알맞았던 거죠.”

    그러나 상이군인들의 횡포에 대응하는 경찰들의 모습이 예전과는 달랐다. 강동경찰서는 이들의 횡포가 점점 심해지자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이전에도 비슷한 사고가 많았고, 피해자들도 적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수사를 시작한 강동경찰서는 8명의 상이군인을 구속하기에 이르렀다.

    최근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차량 도난사고다. 서울지방경찰청 기동수사대가 적극적으로 차량 도난사고를 수사하는 이유는 도난사고 건수가 늘고 있으며, 도난차량이 해외로 수출된다는 점 때문이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을 방불케 할 정도로 자동차를 훔치는 솜씨가 정교하고 대담해졌다는 것이 보험조사인들의 전언이다. 한 보험조사인은 이렇게 말했다.

    “요즘 차 도둑들은 한 대 두 대 훔치지 않아요. 아예 스타렉스 10대, 테라칸 5대 이렇게 주문을 받고 차를 도둑질합니다. 영화에서 나오는 도난 전문가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지난해 니콜라스 케이지와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한 ‘식스티 세컨즈’라는 영화 있잖아요. 이들은 암조직처럼 움직이기 때문에 붙잡기가 힘듭니다. 매니저 역할을 하는 총책이 있고, 차를 훔치는 실무자가 다릅니다. 실무자들은 차 한 대당 200만원가량 받습니다. 이들에게 도난 차량을 넘겨받는 사람도 따로 있죠. 서로 누가 누군지 모릅니다. 그래서 소탕하기가 어려운 거죠.”

    도난사건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자 최근 손보협회 조사인들이 도난 차량 수출지역으로 지목된 몽골에 파견됐다. 이곳에서 조사인들은 도난차량으로 보이는 자동차 2대를 발견했다. 차대번호는 바꿔도 엔진번호는 바뀌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 조사인들은 엔진번호를 점검했고 이를 통해 도난 차량이라는 점을 알아냈다. 다음은 조사원의 증언.

    “차량 도난사고가 급증하고 있는 곳은 경기도 평택, 안산, 수원 등 서해안 항구와 가까운 곳입니다. 평택에서는 지난 3월에만 카니발, 카렌스 등 10대를 도난당했습니다. 충남 아산의 한 아파트에선 스타렉스 4대가 한꺼번에 사라지기도 했어요. 이 차량들이 불법 수출된 거죠.”

    도난 차량은 특정 폐차장으로 직송된다. 이곳에서 차대번호가 바뀌고 번호판도 위조된다. 고속도로에는 도난차량을 탐지하는 카메라가 있지만, 이들 차량은 적발되지 않는다. 기존 번호판을 떼어내고 임시 번호판을 부착하기 때문. 업계에선 이같은 도난사고를 막기 위해 관세청 등 정부기관이 수출 중고차량을 통관시킬 때 엔진번호를 조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엔진번호까지 위조할수 없기 때문에 이를 조사하면 도난 차량인지 아닌지 식별할 수 있고, 외국으로 수출되는 것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보험사기에는 특징이 있다. 일정기간 여러 사건에 관련자로 특정인의 이름이 계속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 특정인은 자신을 숨기려고 갖은 노력을 한다. 예를 들어 한 사건에는 피해자로, 다른 사건에는 가해자로, 또다른 사건에는 보험금 수령자로 등장하지만 보험사가 보관하고 있는 사고 파일에는 그때마다 이 사람의 이름이 기록으로 남는다. 또 몇 명의 이름이 사건마다 역할을 달리하며 등장하기도 한다. 보험조사인들이 주목하는 것은 이런 부분이다. 보험조사인들은 이들을 전문사기꾼으로 간주하고 있고, 이들이 조직적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들 사기꾼들은 보통 일정 기간동안 20∼30여 건의 보험사고와 관련을 맺는다. 심지어 한 사람이 150건의 보험사고에 관련자로 등장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D화재에서 보험조사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L과장. 최근 L과장의 책상 위에는 별난 사건파일이 하나 놓여 있었다. 오토바이 사고였는데, 이상한 점은 사고 난 오토바이들이 찾아가는 정비소가 모두 같은 곳이었다. 사고 오토바이는 대 당 1500만원을 호가하는 고급이었다. 사고가 날 때마다 수리비만 500만∼1000만원이 들어갔다. 사고는 한 달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발생했다.

    이상한 점은 이뿐이 아니었다. 오토바이 사고를 일으킨 운전자가 오토바이 주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주인은 정비소 사장이었다. 10대의 오토바이가 번갈아 사고를 당하면서 타낸 보험금은 무려 2억원. 오토바이 운전자는 대부분 20대 초반의 건달들이었다. 이들은 오토바이 소유자는 아니었지만, 패키지 보험을 들어 사고가 나면 보험금을 받을 수 있었다. 오토바이의 실제 소유자이자 정비소 사장은 이런 약점을 노린 것이다.

    L과장의 제보와 경찰조사 결과 오토바이 주인은 우선 보험사기에 가담할 20대 청년들을 모집한 것으로 밝혀졌다. 정비소 사장은 이들에게 교통사고를 내달라고 주문했고, 두 번만 사고를 내면 외제 오토바이를 공짜로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사고 두 번이면 오토바이가 저절로 손에 들어온다는 말에 솔깃한 청년들은 선뜻 지원했다. 사고 한 번에 수리비로 1000만원에 가까운 보험금이 나오니, 사고 두 번이면 주인에게 떨어지는 금액은 2000만원 가량 된다. 오토바이 한 대를 판매한 금액보다 500만원이나 많은 셈이었다. 오토바이 주인과 사건에 가담한 20대 청년들은 모두 구속됐다.

    보험사기를 벌여 한 어머니가 딸에게 외제차를 사준 예는 보험사기가 단순히 생계 목적으로만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게다가 이 사건은 무려 일가족 10명이 가담한 대규모 가족 보험사기였다. 1999년 A생명보험사에 다니는 K씨(여·49)는 남편 몰래 자신의 가족뿐 아니라 친척들까지 보험에 가입시켰다. 게다가 K씨는 내연의 관계이던 3명의 남자들 이름으로도 보험에 가입했다. 물론 당사자들은 이 사실을 몰랐다.

    K씨가 사용한 수법은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사람들과 짜고 고의로 교통사고를 내는 것. 예컨대 서울 근교의 러브호텔에서 내연의 남자와 일을 마치고 나온 K씨는 집으로 가는 도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가해자 역시 K씨가 알고 지내는 또 다른 내연의 남자. 경미한 교통사고였지만, 이들은 병원에 상당 기간 입원했다. 이렇듯 K씨가 병원을 제집 드나들 듯 할 수 있었던 것은 병원 의사의 협조가 있었기 때문.

    그녀가 수차례에 걸쳐 허위 진단서를 받고 타낸 보험금만 해도 20억원에 이르렀다. 이 돈으로 K씨는 자신의 딸에게 외제차를 사주기도 했다. 보험금으로 부자 흉내를 낸 K씨의 정체가 드러난 것은 S화재 H대리의 집요한 추적 때문이었다. H대리는 보험에 든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나씩 조사를 시작했고, 그 결과 사고를 낸 사람이 보험에 가입했다는 것조차 몰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면서 일가족 10명은 물론 허위 진단서를 끊어준 의사 4명도 함께 구속됐다. 이 사건은 너무 유명해 지난해 개봉한 영화 ‘하면 된다’의 스토리 배경이 되기도 했다.

    지난해 부모와 딸이 함께 구속된 보험사기 사건도 보험금으로 부자가 되려는 헛된 욕망에서 비롯된 사건이었다. 일명 ‘티코와 액센트’로 불리는 이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재혼한 김모씨에겐 후처 소생인 딸이 하나 있었다. 대학생인 딸은 의붓아버지를 정성껏 모시는 효녀였다. 그런 딸에게 김씨는 무엇이라도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마침 그 딸이 중고 ‘티코’를 몰고 다니는 것을 보고 새 ‘액센트’로 바꿔줘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런데 문제는 돈이었다. 이리저리 궁리한 끝에 김씨는 후처와 딸의 이름으로 생명보험과 상해보험을 들었다. 그리고 김씨는 후처에게 부탁해 다치지 않을 정도의 교통사고를 내라고 부탁했다. 그 뒤의 일은 자신이 알아서 한다는 얘기도 잊지 않았다. 딸과 어머니는 경미한 사고만 내면 좀더 좋은 차를 탈 수 있다는 욕심에 사고를 내기로 결심했다. 결국 계획대로 사고를 냈고, 보험금을 타낸 이들은 새 차로 바꿨다.

    이 사건은 D화재의 보험조사인 L대리의 활약으로 세상에 그 진실이 드러났다. L대리는 가해자만 있을 뿐 피해자가 없다는 것에 의문을 가졌다. 딸과 어머니는 병원에 몸져눕는 등 많이 다친 것처럼 보이는데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L대리는 이들에게 “피해자는 어디 있냐”고 묻자, 이들은 “피해자가 괜찮다고 말해 10만원을 주고 돌려보냈다”고 답했다.

    “가해자가 이 정도 다쳤다면, 분명 피해자도 많이 다쳤을 텐데 10만원만 받고 돌아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얼마 뒤 이들의 차량을 재조사했더니, 차를 티코에서 액센트로 바꾸었더군요. 이상하다 생각해 경찰에 제보했습니다. 결국 제 예측대로 가족이 공모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그들은 모두 구속됐어요.”

    최근엔 앞날이 창창한 대학생들까지 보험금 욕심으로 미래를 그르치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손보협회 O팀장은 “보험범죄 연령이 계속 낮아지고 있으며, 대학생까지 가담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개탄했다. 실제 지난해 C대학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로 보험범죄를 저지른 일이 발각돼 충격을 주었다. 게다가 이들은 법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었다는 점이 드러나 상아탑이 돈으로 오염되고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친구 사이인 다섯 명의 대학생들은 한 친구의 형을 통해 보험범죄에 말려들었다. 친구 형은 지방의 건달로 이들에게 “일당 10만원을 줄 테니 교통사고를 내라”는 지령을 내렸다. 이들이 저지른 수법은 지나가는 택시를 들이받는 것이었다. 들이받은 뒤 병원에 입원하면 1인당 100만원을 받아, 이중 90만원은 친구의 형에게 주는 식이었다.

    처음엔 제법 돈을 벌 수 있었지만, 결국 꼬리가 밟히고 말았다. 예전과 같은 수법으로 택시를 들이받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만 마음씨 좋은 택시 기사를 만난 것이 화근. 사고를 당한 택시 운전사는 사고가 경미하고, 가해자들이 어린 대학생들인 점을 감안해 그냥 돌려보냈다. 그러자 이 학생들은 차를 몰아 같은 택시를 한 번 더 받았던 것.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택시 운전사와 보험조사인들의 조사 결과, 범죄 행각이 밝혀졌다. 순식간에 이들은 범법자로 낙인 찍히고 말았다.

    손보협회 O팀장은 “IMF 이후에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고, 보험금액이 높아지자 이를 노리는 범죄자가 대학생, 주부 등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며 “범죄자들의 죄의식이 희박해지고 있다는 점이 더욱 심각한 문제”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범죄자들은 경찰서에서 “돈 많은 보험사의 돈을 조금 가져가는데 내가 왜 벌을 받아야 하느냐”며 반발하기도 한다고.

    지난해 전국의 경찰서에 설치된 보험사기 전담 조직은 50일 동안 대대적으로 단속활동을 벌여 2001명의 보험사기 혐의자를 적발했으며 이 가운데 545명을 구속했다. 거액의 보험금을 타내기 위한 보험사기가 가장 많은 분야는 고의 교통사고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사고의 피해를 과장해 나간 보험금도 상당히 많았으며, 있지도 않은 가공의 사고로 나가는 보험금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사기행각이 발각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지급된 보험금만도 연간 1조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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