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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비화

LG그룹의 ‘한쪽 날개’ 허씨家 스토리

55년간 내조의 道 지킨 ‘숫자귀신’들

  • 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ans@donga.com

LG그룹의 ‘한쪽 날개’ 허씨家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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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G그룹의 55년 동업자 허씨家. 구인회 - 구자경 - 구본무 3대에 걸쳐 대권(大權)이 이어지는 동안 줄곧 ‘내조자’, ‘2인자’, ‘조언자’의 자리를 지켜온 집안이다. 그룹 곳곳의 요직에 포진했어도 결코 앞으로 나서는 법이 없었다. 큰 목소리 내지 않기로는 LG 바깥의 허씨 집안 경영인들도 마찬가지. 그들 앞에 드리운 베일을 걷어봤다.
”경영은 구씨 집안이 알아서 잘한다. 처신을 잘해서 돕는 일에만 충실하라.”

해방 이듬해, 젊은 사업가 구인회(具仁會)에게 거액의 자본을 투자, LG그룹의 주춧돌을 놓은 만석꾼 허만정(許萬正)은 훗날 자손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고 한다.

1947년 그룹의 모태가 된 ‘락희화학공업사’를 창업한 이래 55년 동안 구씨와 허씨 일가는 대를 이어 끈끈한 동반자로 사업을 꾸려왔다. 기업은 한 집안에서 경영해도 규모가 커지고 대를 넘기면 크고 작은 분란이 불거지게 마련. 하지만 LG는 두 핏줄이 기업을 이끌면서도 좀처럼 ‘잡음’이 새나오지 않았다.

이는 여러가지 배경으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허씨가의 안분지족(安分知足)에 힘입은 바 크다. 허씨 집안은 대등한 동업자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구씨 집안에서 구인회 - 구자경(具滋暻·77) - 구본무(具本茂·57) 3대가 그룹의 법통을 잇고 주류를 이루는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허만정 ‘창업투자자’의 혜안(慧眼)을 허씨네 또한 3대에 걸쳐 충실하게 따랐던 것이다.

7월29일, 허준구(許準九) LG건설 명예회장이 79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 병원은 허씨 상가(喪家)가 아니었다. ‘허씨·구씨 상가’였다. 많은 구씨 집안 사람들이 자기 일처럼 빈소를 지켰다. 일본에 머물던 구본무 LG 회장은 일정을 취소하고 귀국, 조문했다. 구자홍(具滋洪·56) LG전자 부회장은 5일장 가운데 3일을 빈소로 퇴근했다. 구평회(具平會·76) 그룹 창업고문도 미국에서 급거 귀국했다.

그럴 만도 했다. 허 전 명예회장은 그룹내 허씨 일가의 좌장이었다. 구씨 일가의 수장(首長) 격인 구자경 LG 명예회장과 양가(兩家)를 대표하는 원로였다. 허만정씨의 셋째 아들인 그는 연암(蓮庵) 구인회 창업회장을 도와 LG를 일으킨 창업공신. LG화학, LG상사, LG전자, LG전선 등 주력 계열사 CEO를 역임했다.

하지만 화려한 커리어와는 달리 그의 면모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거의 없다. 대외활동을 극도로 자제하고 소리 없이 본업에만 충실했기 때문이다. 이는 허씨 집안 경영인들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허만정씨의 여덟 아들이 모두 기업인의 길을 걸었고, 그들의 아들들 또한 대부분 LG 계열사의 CEO나 임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누구 하나 큰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언론 인터뷰에 나서는 경우도 없고, 그 흔한 자서전이나 회고록 한 권 펴낸 사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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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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