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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디플레’, 복합불황 몰려온다

비상! 가계대출·단기외채 위험수준

  • 글: 이필상 고려대 교수·경영학 phillee@korea.ac.kr

‘인플레+디플레’, 복합불황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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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금리 상태에서 돈이 많이 풀려 디플레이션보다 인플레이션을 걱정하는 이가 많다.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 경제는 디플레이션과 인플레이션을 함께 겪는 구조를 갖고 있다. 저금리와 과잉 유동성, 주택가격 상승 등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크고, 경기침체, 가계부채 급증, 부동산 거품 붕괴 조짐으로 디플레이션 위협도 받고 있다.
‘인플레+디플레’, 복합불황 몰려온다
경제가 심상치 않다. 단기 외채가 외환위기 직전 수준으로 급증해 외환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저축률이 급락하고 부채가 크게 늘면서 가계부문이 부도 위기를 맞고 있다. 더욱이 금융기관들은 값싼 엔화를 꿔와서 돈놀이하는 데 급급하다. 그러면서도 경제를 살리는 기업금융에는 아예 등을 돌리고 눈앞의 돈벌이를 위한 가계대출 경쟁에 여념이 없다.

이런 상황에 소비와 건설로 들뜬 거품경제가 주저앉고 경제가 구조적 침체국면에 들어서면 단기 외채 상환 압박이 거세지고, 증권시장에 들어온 외국 자본이 밀물처럼 빠져나갈 수 있다. 가계부문의 연쇄 부도도 우려된다. 거품경제가 꺼지면 부동산 가격만 믿고 담보대출을 받은 개인들은 부도를 맞기 십상이다. 또한 금리가 낮다고 방심해 과소비 잔치를 벌이던 신용카드 사용자나 사채 이용자들 중에도 개인파산이 늘어난다.

최악의 경우 가계부문과 금융기관의 동반 붕괴도 생각해볼 수 있다. 설사 숨이 멎을 만큼 긴박한 위기까지는 아니어도 경제가 서서히 생명력을 잃어가는 내면적 위기로 접어들 개연성은 높다. 우리 경제는 천신만고 끝에 외환위기를 극복했으나, 다시 빚의 덫에 걸린 시한부 경제의 운명에 처한 것이다.

지난 9월 말 현재 우리나라의 총외채는 1298억달러인데, 이중 단기 외채는 529억달러로 40.8%에 이른다. 단기 외채 비중은 1997년 말 외환위기 당시 39.9%에서 1998년 말 20.6%까지 떨어졌으나,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물론 단기 외채가 늘어도 외환보유액이 충분하면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 외채의 비중이 4개월 연속 증가세가 이어진 끝에 45.3%에 이르렀다.

현재 우리나라 외환보유고는 1170억달러. 이중 단기 외채 529억달러는 1년 안에 갚아야 한다. 이 돈과 함께 증권시장에 유입된 700억달러가 넘는 외국 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면 지금의 외환보유액은 안전한 수준이라고 보기 어렵다.

무방비 상태의 ‘빚 경제’

단기 외채가 증가하는 현실에서 주목할 것은 돈놀이를 목적으로 한 금융기관들의 엔화 차입이다. 금융기관들은 연리 0.7∼0.8%의 엔화 자금을 대거 차입한 후 국내에서 3∼4%의 높은 금리를 받고 대출해 폭리를 취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 5000만달러선에 불과했던 국내 기업의 단기 외화대출 규모가 지난 10월 말 현재 26억달러로 치솟았다.

엔화대출은 환위험에 무방비 상태다. 빌린 엔화는 나중에 엔화로 갚아야 하기 때문에 엔화가치가 상승하면 그만큼 부담이 커진다. 예컨대 엔화를 연리 4%에 대출받은 상태에서 엔화가치가 원화에 비해 10% 오른다면 실제로 부담하는 금리는 14%가 된다. 이쯤 되면 엔화를 차입한 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은 견디기 어렵게 된다. 실로 치명적인 독을 가진 자금이다.

가계부채 문제도 악화일로에 있다. 10월 말 현재 가계대출 잔액이 212조5000억원에 이른다. 이중 담보대출이 123조원이나 된다. 여기에 급증하는 신용카드 사용액과 사채 등을 합치면 가계대출은 400조원을 훨씬 넘어 국민총생산의 80% 수준에 육박한다. 성장 중심의 경제에서 가계대출 비율이 80%를 넘어선다는 것은 사실상 경제파탄을 예고하는 것이다. 성장은 못하고 소비만 증가할 경우 소비자들의 연쇄 파산은 당연한 귀결이다.

특히 부동산 가격의 거품이 꺼질 경우 가계 파산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이미 우리나라 가구 중 51%가 부채를 갖고 있고, 평균 부채규모는 2800만원에 달한다. 이런 마당에 가계저축률이 15%로 급락했고, 자산보다 부채가 많은 사람들이 38%에 이른다. 상당수 가구가 파산 위험에 직면해 있다는 얘기다.

카드 빚과 사채를 서로 돌려쓰다가 범죄에 말려드는 경우도 많다. 사채를 쓰는 사람 가운데 절반 이상이 증권투자, 도박, 유흥비 마련 때문에 카드 빚을 얻거나 은행대출을 받고 있으며, 이를 갚기 위해 다시 사채를 끌어 쓴다고 한다.

사채를 쓰는 사람 중 4분의 1 이상이 폭행이나 협박을 당했으나 보복이 두려워 신고도 못하는 실정이다. 더욱이 연리 200%가 넘는 초고금리 사채를 쓰는 사람도 10%가 넘는다. 신용시장의 질서가 무너지고 폭력이 판을 치는 무법상태로 가고 있는 것이다.

가계부채가 이 지경에 이른 근본적인 원인은 정부의 무모한 경기 활성화 정책과 금융기관들의 무분별한 대출경쟁에 있다. 정부는 지난해 초부터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해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면서 재정과 금융 양면에서 팽창정책을 폈다. 또한 신용카드 회사들은 마구잡이식으로 카드를 발행하고 대출을 늘렸다. 금융기관들은 회수가 쉽고 수익성이 높은 가계대출에 치중했다. 이렇게 되자 국민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소비를 늘리고 증권투자 등을 하면서 빚더미에 올라앉게 된 것이다.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해진 또 다른 이유는 소득격차에서 찾을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마다 정리해고와 연봉제가 제도화하자 중산층이 무너지고 빈부격차가 커졌다. 특히 정보통신 등 신산업 분야에 문외한인 40∼50대 계층의 실업이 대량으로 발생하면서 양극화 현상은 두드러졌다. 상위 10%의 부유층 소득이 하위 10% 서민층 소득의 9배가 넘는다. 서민들은 실업과 생활고에 허덕이면서도 자녀 과외비, 사업 밑천, 증권투자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감당할 능력도 없으면서 카드 빚과 사채를 얻기에 급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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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필상 고려대 교수·경영학 phillee@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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