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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일기

박찬법 아시아나항공 대표이사

성취가 곧 보상, 나를 키운 자양분의 8할은 일

박찬법 아시아나항공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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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이란에서 국제박람회가 열려 행사에 참가하고 있을 때 본사에서 전문이 도착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 있는 바이어가 철근 1만t 구매 의향을 밝혀왔으니 곧바로 그를 만나 상담하고 수주해 오라는 내용이었다. 희소식이었으나 내겐 사우디아라비아 비자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때는 무슬림 라마단 기간이어서 정식으로 비자발급 절차를 밟자면 몇 달이 걸릴 판이었다. 이란과 쿠웨이트에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을 찾아가 사정을 설명했으나 반응은 신통찮았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낙담해서 호텔로 돌아와 프런트 직원에게 푸념을 늘어놓았더니 뜻밖에도 해당 항공편의 기장과 줄이 닿게 해줬다. 그래서 무비자 상태로 일단 제다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러나 중간 기착지인 리야드에서 불법입국혐의로 체포됐다. 임기응변에 들어갔다. 알아듣기 힘든 빠른 영어로 “제다를 거쳐 베이루트로 갈 것이라 비자가 필요 없는 줄 알았다”고 우겼다. 우여곡절 끝에 기장에게 여권을 맡기는 조건으로 제다까지 가는 게 허용됐고, 무사히 바이어를 만나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무려 2500만달러짜리 계약이었다.

소기의 성과는 거뒀지만, 이번엔 사우디아라비아를 어떻게 빠져나올 것인가가 문제였다. 여권을 되찾으려 나름대로 시도하다가 다시 철창 신세를 지고 말았다. 결국 나와 계약한 바이어가 외무성에 선처를 부탁해 베이루트로 강제 출국당하는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됐다. 만리타국에서 두 번씩이나 유치장에 끌려갔던 나는 아마도 우리나라 최초의 사우디아라비아 불법 입국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불가능을 몰랐거나, 겁이 없었거나, 아니면 내가 아니었던 것 같다.

시멘트 공장과 맞바꾼 라지스탄 사막의 별빛

아스라히 떠오르는 향기로운 추억도 몇 가지 있다. 1980년대 초 기계전자 무역부장으로 있을 때 파이프 공장과 시멘트 공장을 수출하려고 인도의 라지스탄을 찾은 적이 있다. 승용차를 빌려,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타운으로 들어가 광산과 현장 입지조건 등을 조사하다가 시간이 늦어져 석양 무렵에 이동하게 됐다. 그런데 아뿔싸! 사막의 밤은 갑작스레 찾아온다고 했거늘, 급기야 운전기사는 길을 잃고 말았다. 새벽까지 헤매다녔으나 미로를 맴도는 형국이었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우물이 숨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 ‘어린 왕자’의 말도 한낱 레토릭에 불과한 것일까. 오아시스는 흔적도 없었다. 29시간 동안 갈증과 굶주림을 참으며 돌아다닌 끝에 낙타를 몰고 오는 한 노인을 만나 사막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비록 라지스탄에서 시멘트 공장을 수주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귀한 소득이 있었다. 좀 엉뚱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때 나는 적도에서 가장 가까운 사막의 별빛이 얼마나 형형한가를 생생하게 체험했던 것이다.

‘선수’들을 만나는 즐거움

1980년대 중반, 독립 딜러로 미국의 타이어 세일즈 분야에서 황제로 일컬어지는 인물이 있었다. 그가 언젠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함께 저녁을 먹던 우리 직원 다섯 명이 한국식으로 그에게 술잔을 돌린 적이 있다. 그후 내가 애틀랜타의 한 컨벤션에 참석했을 때 그는 10여 명의 직원들에게 자신이 한국에서 경험한 일을 들려주면서 “한국에서 오신 손님께 술을 한잔씩 따라올려라”고 했다. 되로 주고 말로 받은 셈이었다.

그는 취중에 “우정의 표시로 선물을 하나 하고 싶다”면서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풀어 마구잡이로 내 손목에 채웠다. ‘롤렉스’였다. 셀러(seller)가 바이어(buyer)에게 뇌물을 받는 격이라 이튿날 시계를 돌려보냈는데,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나서 그가 보낸 소포를 받았다. 새 롤렉스 시계가 들어 있었다. “주문 제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려서 이제서야 선물을 다시 보낸다”는 편지와 함께.

더는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서 회사에 보고하고 시계를 보관시켰다. 비즈니스도 비즈니스지만, 나는 이런 ‘선수’들과의 만남 그 자체를 즐겼던 것 같다. 그 바이어가 보여준 호의와 신뢰를 생각하면 비록 싸구려 손목시계를 차고 다니는 지금도 왼팔이 무겁게만 느껴진다.

미국법인 영업담당 이사로 6년여를 근무하고 1987년 귀국한 후에는 금호타이어 수출본부에서 영업을 총괄하게 됐다. 수많은 우리 비즈니스맨들이 해외 수출전선을 누비고 다닌 결과 한국의 국력과 위상은 완연히 달라져 있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그 정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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