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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파워 연구

‘박카스 신화’어떻게 만들었나

시원한 맛, 싼 가격, 감동 주는 광고가 비결

  • 글: 최희정 자유기고가 66chj@hanmail.net

‘박카스 신화’어떻게 만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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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시대 상황 속에서 강신호 회장은 가난과 피로에 지친 사람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술꾼의 간을 보호해줄 의약품을 개발한다면 얼마든지 시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우선 비타민과 미네랄에 강간제(强肝劑)를 배합한 종합강간영양제를 개발해 산뜻한 이미지를 줄 수 있는 이름을 찾았다. 그리고 술꾼을 지켜주고 풍년이 들게 해준다는 그리스 신화의 ‘바커스’신이 약품의 개발동기나 효능과도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해 ‘박카스’로 이름을 짓게 된 것이다.

알약으로 출시된 박카스는 월 매출이 1만개까지 늘어날 정도로 소비자의 호응이 높았다. 그러나 발매된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예기치 않은 사태가 발생했다. 제조 기술이 미숙한 탓에 박카스의 외피를 형성하는 당의정이 녹으면서 대량 반품 사태가 빚어진 것. 그야말로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었다.

강회장은 고심 끝에 박카스를 앰풀 형태로 만들어 시장에 내놓았다. 그러나 앰풀은 운반 과정에 파손될 위험이 컸고, 또 소비자들이 앰풀 박카스를 주사제로 착각, 제 손에 주사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벌어졌다. 앰풀 용기를 대체해 새롭게 내놓은 것이 바로 드링크타입의 ‘박카스-디’였다.

소비자들이 드링크 타입으로 선보인 박카스에 보다 쉽게 다가가게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마케팅 전략이 필요했다. 이에 동아제약은 ‘3M 전략’을 펼쳤다. 3M 전략이란 대량생산(Mass Prod uction) 대량광고 (Mass Communi cation) 대량판매(Mass Sale)를 뜻하는 것으로, 이 전략은 훗날 대학 마케팅 강의 교재에도 실렸다.

우선 의사나 약사를 대상으로 한 광고 관행에서 벗어나 TV나 신문, 잡지, 옥외광고 등을 동원해 광고 공세를 펼쳤다. 특히 당시 선풍적 인기를 끌기 시작한 TV매체에 중점을 두고 인기 코미디언 김희갑과 유명 여배우 남미리를 등장시킨 TV광고를 내보냈다.



이러한 광고 물량 작전은 곧바로 효과를 나타냈다. 발매 초부터 매출이 월 평균 35만병을 웃돌았고, 그 이듬해에는 월 평균 56만병으로 판매가 증가한 것. 대량광고로 대량판매를 달성한다는 전략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박카스는 어느샌가 술꾼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마실수 있는 피로회복제로 인식되었고, 자연히 박카스를 찾는 연령층도 다양해졌다.

지금도 동아제약 홍보팀 냉장고에는 박카스가 떨어지는 날이 없다. 냉장고가 귀하던 시절에도 큰 주전자에 얼음과 박카스를 넣어놓고 회사를 방문한 손님들에게 박카스를 대접했던 동아제약은 요즘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차갑고 상쾌한 박카스를 대접하고 있다.

DSC로 소매업자와 직거래

3M 전략에 DSC(Dong-A Sales Circle) 제도를 도입했다. DSC란 소매 직거래를 뼈대로 하는 특약점 제도이다. 당시 약업 시장은 제약회사보다는 도매상에 의해 상권이 좌지우지됐을 정도로 도매상의 파워가 막강했다. 이들 요구대로 가격을 맞추다 보니 마진율이 너무 낮았다. 게다가 소매상들은 물건이 제때 배달되지 않는다며 불만을 토로하기 일쑤였다.

DSC는 동아제약이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일선 약국과 직접 특약점 계약을 맺는 제도였다. 특약점으로부터 일정액의 계약금을 받으면 월 4부의 이자를 회사가 지급하면서 각종 서비스를 우선적으로 제공하는 것이었다. 소매업자로서는 동아제약의 전제품을 구색 맞춰 갖출 수 있고, 또 각종 서비스를 지원받을 수 있어서 유리했다. 회사 입장에서는 거래처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러한 유통전략은 나날이 발전하여 현재에 와서는 ‘박카스 루트세일’이라는 동아제약만의 독특한 유통시스템을 이루었다. 루트세일이란 그 자리에서 바로 현금을 지급해야 물건을 주는 것이다. 지금도 시중 약국에서는 일주일 안에 대금을 결제해야 박카스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박이사는 “동아제약은 업계 최초로 사원 공개 채용을 실시해서 유능한 인재를 발굴했어요. 당시 대학 졸업생들은 동아제약에 취직했다면 출세했다는 인사를 받을 정도로 동아제약의 위세가 막강했거든요. 이 점도 동아제약과 박카스가 성공한 요인 중 하나일 것입니다”고 덧붙였다. 3M 전략, DSC 제도 도입, 루트세일, 그리고 사원 공채 등에 힘입어 박카스 매출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나날이 신장했다. 마침내 1967년에는 제약업계 선두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동아제약은 1976년 일대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더 이상 자양강장 드링크류 의약품을 대중매체에 광고할 수 없게 된 것. 당시 보건사회부는 광고로 인해 약의 오남용이 심해진다는 이유로 모든 자양강장 드링크류의 광고를 금지했다. 3M 전략을 구사하고 있던 동아제약으로선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같은 조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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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희정 자유기고가 66ch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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