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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판 장학퀴즈 ‘SK 좡위안방(壯元榜)’ 열풍

‘그림자 마케팅’ 으로 13억 가슴 파고들다

  • 글: 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hans@donga.com

중국판 장학퀴즈 ‘SK 좡위안방(壯元榜)’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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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K그룹은 지난 10월28일 중국 사업을 총괄하는 지주회사를 베이징에 설립했다. 한·중수교 2년 전인 1990년, 한국 대기업 중 최초로 중국에 진출한 지 15년 만의 일이다. SK의 중국 진출 노하우는 ‘동충하초 전략’ 또는 ‘그림자 마케팅’으로 일컬어진다. 시스템보다는 사람을 통해 서서히 시장에 스며들어 깊이 뿌리내리는 방식이다. SK 후원으로 제작되는 고교생 퀴즈 프로그램 ‘SK 좡위안방’이 그 생생한 실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중국판 장학퀴즈 ‘SK 좡위안방(壯元榜)’ 열풍
매주 금요일 저녁 8시5분. 중국 청소년들과 학부모들이 TV 앞으로 모여든다. 베이징TV(BTV) 8채널에서 방영하는 ‘SK 좡위안방(壯元榜)’을 시청하기 위해서다. ‘SK 좡위안방’은 고교생 2인1조 4팀이 토너먼트 방식으로 승자를 가리는 퀴즈 프로그램. 중국판 ‘장학퀴즈’라 할 수 있다. 주·월·기·연장원을 선발해 장학금을 지급하는데, 연장원 장학금은 8만위안(한화 1200만원)으로 중국 대학의 4년치 등록금과 책값, 기숙사비를 충당할 수 있는 액수다.

2000년 1월1일 처음 전파를 탄 ‘SK 좡위안방’은 5년째 중국 청소년들을 사로잡으며 최고 인기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베이징 지역 고교생의 97.5%가 이 프로그램을 알고 있으며 90.7%가 월 1회 이상 시청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89.2%는 이 프로그램이 유익하다고 평가했다.

방송 초기부터 ‘SK 좡위안방’ MC를 맡아온 레이밍(雷鳴)씨는 “프로그램 평균수명이 1∼2년에 불과한 BTV에서 무려 5년째 장수하는 것만으로도 ‘SK 좡위안방’은 다른 설명이 필요없는 독보적 프로그램”이라며 “덕분에 나도 덩달아 유명인사가 됐다”고 말한다. 공동진행자인 신예 여성 MC 슈춘니(徐春尼)씨는 BTV 입사 후 처음 맡은 프로그램인 ‘SK 좡위안방’이 대박을 터뜨리면서 지난해 네티즌이 뽑은 중국 10대 인기 MC 중 4위에 올랐다.

BTV는 금요일 본방송과 토·일요일 재방송을 포함, 매주 3회 이 프로그램을 방송한다. 본방송은 베이징 일원은 물론 상하이(上海)·다롄(大蓮)시와 후난(湖南)·장쑤(江蘇)·쓰촨(四川)·허베이(河北)성 등 7개 지역으로 송출된다. 일요일 재방송은 위성 전국방송인 BTV 1채널로 방영된다.

매회 참가신청자가 3000명에 이르는 데다 많은 지역에서 신청이 몰리기 때문에 지역을 나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전체 출연자의 절반은 베이징 외 지역 출신이다. 이들은 ‘SK 좡위안방’에 참가하기 위해 길게는 2∼3일간 기차나 버스를 타고 베이징을 찾는다. 거액의 장학금이 걸린데다 상당수 대학이 ‘SK 좡위안방’ 입상자에게 입시에서 가산점을 주기 때문에 전국에서 수재들이 몰려들고 있는 것.

‘시’ 구축 위한 인재 양성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SK 좡위안방’은 SK그룹이 제작비와 공익광고를 후원하는 프로그램. SK는 한국 대기업 가운데 가장 먼저 중국에 진출했다. 한·중수교 2년 전인 1990년 푸젠(福建)성에 비디오테이프 합작공장을 세우며 중국에 첫발을 디뎠고, 1991년 중국 사무소를 여는 등 의욕적으로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선전(深)에 10억달러 규모의 정유단지를 건설하려던 사업계획이 무산되는 등 시행착오도 겪었다. 중국 정부가 SK의 주력 사업분야인 에너지·화학 등 중공업 부문에서 외국 기업의 진출을 제한한 데 따른 결과였다. 이후 한동안 SK의 중국사업은 활기를 잃었다.

SK가 다시 중국시장의 문을 두드린 것은 1999년. 아시아 국가들을 차례로 강타한 외환위기 파고에도 중국이 두터운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건재를 과시하자 ‘그래도 중국이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SK는 그해 중국을 ‘21세기 핵심 전략지역’으로 선언하고 그룹의 역량을 집중할 것을 천명했다.

앞서 값비싼 ‘수업료’를 치른 SK는 상품판매에 급급한 단순한 광고·홍보전략으로는 중국시장에 연착륙하기 어렵다고 보고, 장기적인 관점의 PR전략을 구상했다. ‘SK 좡위안방’은 그 과정에 기획됐다. 1973년부터 ‘인재양성’을 표방하며 후원해온 ‘장학퀴즈’를 중국에 그대로 가져오기로 한 것. 중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사람에 대한 장기적 투자로 이른바 ‘시(關係)’를 구축하는 게 관건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SK 좡위안방’에 참여한 학생들이 자라나 각계의 주역으로 활동할 무렵이 되면 이들이 친한파, 지한파가 되어 중국사업에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주리라고 내다본 것.

중국시장은 시스템보다는 사람을 통해 움직인다. 그래서 SK는 SK의 기업문화와 사업모델을 체득한 인재를 육성, 중국에 뿌리내리는 방식으로 중국 진출을 꾀해왔다. 이를 ‘동충하초 전략’이라 일컫는데, ‘SK 좡위안방’도 동충하초의 ‘뿌리’ 가운데 하나다.

1999년 7월부터 BTV측과 협의를 시작한 SK는 중국의 ‘만만디’ 관행을 감안하면 빨라야 2001년 중반에나 프로그램 제작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사회주의 체제의 방송국 관계자들이 자본주의 기업의 장학사업 의도를 제대로 받아들일 리도 만무했다.

그러나 SK가 상업성을 표방하지 않고 27년간이나 ‘장학퀴즈’를 후원해온 사실을 설득하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불과 5개월 후인 2000년 1월1일에 첫 방송을 내보내라는 승인이 떨어진 것. 뿐만 아니라 프로그램 제목에 회사 이름을 붙여도 좋다는 파격적인 선물도 함께 전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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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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