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증시 리포트

종합주가지수 3년내 2000포인트 갈 수밖에 없는 이유

“강세장은 새벽이슬처럼 찾아온다, 지금이 새벽이다!”

  • 글: 장득수 태광투신운용 상무

종합주가지수 3년내 2000포인트 갈 수밖에 없는 이유

1/5
  • ●경기 바닥 이후 주가 폭등…멕시코 증시는 52차례 신고가
  • ●한국사회의 중추 386세대, 금융투자에 적극적
  • ●대기업 M&A 비상, 증시 물 흐리는 유상증자 자제
  • ●대학·종교단체 거대 자금, 펀드 투자로 눈 돌려
  • ●3년 뒤 대선, 총선 2000 돌파 계기 될 듯
  • ●전세계 헤지펀드 급속 성장, 한국 등 신흥시장으로 몰려
  • ●상장사 현금자산 46조원, 자사주 매입·배당 확대
종합주가지수 3년내 2000포인트 갈 수밖에 없는 이유
미국 증권시장 역사상 두 번째로 강력한 강세장은 1982년 8월 조용히 시작됐다. 8월13일(금요일)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이하 다우 지수)는 776.92로 출발해 12포인트 상승한 뒤 마감됐다. 8월 들어 지수는 하락세였고, 모처럼 하루 올랐다고 그리 놀랄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지난 1년6개월 동안 주가는 지겹게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거래량은 빈약했고, 빈사상태에 빠진 주식시장에서 투자자들은 무기력했다.

그러나 주말을 보내고 난 뒤 월요일에 다시 4포인트가 올랐고, 화요일엔 지수가 831.24를 기록했다. 의외였다. ‘주가의 그림자’라는 거래량도 급증했고, 마침내 8월말 지수는 901.31을 기록했다. 며칠 사이 125포인트가 뛴 것이다. 증권시장의 변화는 지나간 다음에야 확인할 수 있다. 혼돈과 잡음 탓에 변화의 단초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이 증권시장의 숙명이다(주가 그래프만 봐도 알 수 있다). 1982년 강세장은 그렇듯 아무도 모르게 시작됐다.

주가의 ‘거울’이라는 거시 경제지표로는 8월의 상승장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불경기가 지속됐고, 실업률은 높았으며, 기업의 실적은 형편없었다. 그런데도 인플레이션과 금리는 급속하게 하락했다. 당시 유명한 비관론자 헨리 카우프만(살로먼 브라더스 증권사에 리서치센터를 만든 1980년대 대표적인 경제분석가)은 향후 12개월 동안 금리가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일 것으로 예측했다.

당시 월스트리트의 분석가들 가운데 8월 상승이 ‘강세장의 시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기관들의 매수로 일시 상승했다거나 기술적 상승이라고 냉담하게 분석했다. 월가의 분석가나 펀드 매니저들도 마치 실연당한 뒤 다른 여자와 첫 데이트를 하듯, 다시 상처받지 않기 위해 큰 기대는 하지 않겠다는 눈치였다.

처음엔 이들의 시각이 맞는 듯했다. 9월 들어 증시는 다소 침체 양상을 보여 8월 마감 대비 5포인트가 하락했다. 그러나 10월 초부터 거래량이 폭주하더니 다시 100포인트 상승했고, 10월22일엔 10년 만에 다우 지수가 1000을 넘었다. 월가는 다시 술렁였다. 눈에 띄는 증거라고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통화 공급을 확대한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 저널’ ‘배론스’ ‘머니 매거진’ 같은 증권 관련 매체는 재빨리 새로운 강세장이 도래했다고 외쳤다.

1982년 미국, 2005년 한국

도대체 얼마 만의 강세장인가! 1960년대 말 이른바 ‘Go-Go’ 시대가 막을 내린 지 10년이 넘었다. 1966년 2월 다우 지수는 995.15까지 올랐다가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후 1982년 8월까지 16년 동안 다우 지수는 큰 산등성이를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해왔다. 1000포인트에 접근했다가 다시 하락하기를 거듭했다. 어느 투자자라도 이처럼 혼란스런 장세에서는 수익을 내기가 어렵다. 시련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개인투자자 중 살아남은 이는 소수였다.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의 높은 인플레이션 탓에 주식 배당으로 살아가던 투자자들조차 점차 주식투자를 외면했다. 발빠른 투자자들은 인플레이션에 민감한 부동산 투자로 돌아섰다. 증권사 브로커들이 투자자들에게 주식 매매를 권유하기란 난감한 일이었고, 이 때문에 수수료가 적은 MMF(단기투자펀드)나 팔았다. 투신사의 주식형 펀드 자금은 지속적으로 빠져나갔다. 유명세를 떨치던 피델리티의 주식형 펀드도 견뎌내지 못했다. 그러나 비관 속에서 희망이 자라듯 1982년 강세장은 새벽에 내리는 이슬처럼 그렇게 조용히 찾아왔다.

1999년 한국 코스닥 시장이 과열될 때 나는 증권시장을 비관적으로 바라봤다. 자주 보수적인 의견을 내다 보니 경제부 기자들은 나를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으로 알았나보다. 한 기자가 나를 만나러 와선 “너무 젊은시네요” 하며 놀라워했다.

그러나 내 의견은 같았다. 지수 1000을 견딜 정도로 내실 있는 기업을 찾기 어려웠고, 투자자들은 한몫 보기 위해 덤벼드는 투기꾼들이 대부분이었다. 기업들도 주가가 올라가면 유상증자로 자금을 확보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주가가 올라갈 만하면 유상증자 물량이 찬물을 끼얹었다. 그러다 보니 지수 1000을 찍기가 무섭게 다시 미끄러지기를 되풀이했다. 정보력이 뛰어나고 막대한 자금으로 시장을 교란할 수 있는 외국인 투자자들만 이익을 보는 패턴 역시 주기적으로 반복됐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나는 비관적인 견해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경기 회복 조짐, 투자자의 투자 패턴, 기업의 실적, 세계 경제의 흐름에서 근본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마치 23년 전 미국에서 나타난 강세장의 출현을 보는 것 같다. 5년 만에 다시 지수 1000을 넘었다는 사실만으로는 설명하기가 부족한 커다란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일각에선 아직 우리 경제 여건이 주가지수 1000 이상으로 올라가기엔 무리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 예측으로는 3년 안에 종합주가지수가 2000을 돌파한다.
1/5
글: 장득수 태광투신운용 상무
목록 닫기

종합주가지수 3년내 2000포인트 갈 수밖에 없는 이유

댓글 창 닫기

2018/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