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호

종합주가지수 3년내 2000포인트 갈 수밖에 없는 이유

“강세장은 새벽이슬처럼 찾아온다, 지금이 새벽이다!”

  • 글: 장득수 태광투신운용 상무

    입력2005-03-23 16: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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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합주가지수 3년내 2000포인트 갈 수밖에 없는 이유
    미국 증권시장 역사상 두 번째로 강력한 강세장은 1982년 8월 조용히 시작됐다. 8월13일(금요일)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이하 다우 지수)는 776.92로 출발해 12포인트 상승한 뒤 마감됐다. 8월 들어 지수는 하락세였고, 모처럼 하루 올랐다고 그리 놀랄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지난 1년6개월 동안 주가는 지겹게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거래량은 빈약했고, 빈사상태에 빠진 주식시장에서 투자자들은 무기력했다.

    그러나 주말을 보내고 난 뒤 월요일에 다시 4포인트가 올랐고, 화요일엔 지수가 831.24를 기록했다. 의외였다. ‘주가의 그림자’라는 거래량도 급증했고, 마침내 8월말 지수는 901.31을 기록했다. 며칠 사이 125포인트가 뛴 것이다. 증권시장의 변화는 지나간 다음에야 확인할 수 있다. 혼돈과 잡음 탓에 변화의 단초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이 증권시장의 숙명이다(주가 그래프만 봐도 알 수 있다). 1982년 강세장은 그렇듯 아무도 모르게 시작됐다.

    주가의 ‘거울’이라는 거시 경제지표로는 8월의 상승장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불경기가 지속됐고, 실업률은 높았으며, 기업의 실적은 형편없었다. 그런데도 인플레이션과 금리는 급속하게 하락했다. 당시 유명한 비관론자 헨리 카우프만(살로먼 브라더스 증권사에 리서치센터를 만든 1980년대 대표적인 경제분석가)은 향후 12개월 동안 금리가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일 것으로 예측했다.

    당시 월스트리트의 분석가들 가운데 8월 상승이 ‘강세장의 시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기관들의 매수로 일시 상승했다거나 기술적 상승이라고 냉담하게 분석했다. 월가의 분석가나 펀드 매니저들도 마치 실연당한 뒤 다른 여자와 첫 데이트를 하듯, 다시 상처받지 않기 위해 큰 기대는 하지 않겠다는 눈치였다.

    처음엔 이들의 시각이 맞는 듯했다. 9월 들어 증시는 다소 침체 양상을 보여 8월 마감 대비 5포인트가 하락했다. 그러나 10월 초부터 거래량이 폭주하더니 다시 100포인트 상승했고, 10월22일엔 10년 만에 다우 지수가 1000을 넘었다. 월가는 다시 술렁였다. 눈에 띄는 증거라고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통화 공급을 확대한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 저널’ ‘배론스’ ‘머니 매거진’ 같은 증권 관련 매체는 재빨리 새로운 강세장이 도래했다고 외쳤다.



    1982년 미국, 2005년 한국

    도대체 얼마 만의 강세장인가! 1960년대 말 이른바 ‘Go-Go’ 시대가 막을 내린 지 10년이 넘었다. 1966년 2월 다우 지수는 995.15까지 올랐다가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후 1982년 8월까지 16년 동안 다우 지수는 큰 산등성이를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해왔다. 1000포인트에 접근했다가 다시 하락하기를 거듭했다. 어느 투자자라도 이처럼 혼란스런 장세에서는 수익을 내기가 어렵다. 시련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개인투자자 중 살아남은 이는 소수였다.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의 높은 인플레이션 탓에 주식 배당으로 살아가던 투자자들조차 점차 주식투자를 외면했다. 발빠른 투자자들은 인플레이션에 민감한 부동산 투자로 돌아섰다. 증권사 브로커들이 투자자들에게 주식 매매를 권유하기란 난감한 일이었고, 이 때문에 수수료가 적은 MMF(단기투자펀드)나 팔았다. 투신사의 주식형 펀드 자금은 지속적으로 빠져나갔다. 유명세를 떨치던 피델리티의 주식형 펀드도 견뎌내지 못했다. 그러나 비관 속에서 희망이 자라듯 1982년 강세장은 새벽에 내리는 이슬처럼 그렇게 조용히 찾아왔다.

    1999년 한국 코스닥 시장이 과열될 때 나는 증권시장을 비관적으로 바라봤다. 자주 보수적인 의견을 내다 보니 경제부 기자들은 나를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으로 알았나보다. 한 기자가 나를 만나러 와선 “너무 젊은시네요” 하며 놀라워했다.

    그러나 내 의견은 같았다. 지수 1000을 견딜 정도로 내실 있는 기업을 찾기 어려웠고, 투자자들은 한몫 보기 위해 덤벼드는 투기꾼들이 대부분이었다. 기업들도 주가가 올라가면 유상증자로 자금을 확보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주가가 올라갈 만하면 유상증자 물량이 찬물을 끼얹었다. 그러다 보니 지수 1000을 찍기가 무섭게 다시 미끄러지기를 되풀이했다. 정보력이 뛰어나고 막대한 자금으로 시장을 교란할 수 있는 외국인 투자자들만 이익을 보는 패턴 역시 주기적으로 반복됐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나는 비관적인 견해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경기 회복 조짐, 투자자의 투자 패턴, 기업의 실적, 세계 경제의 흐름에서 근본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마치 23년 전 미국에서 나타난 강세장의 출현을 보는 것 같다. 5년 만에 다시 지수 1000을 넘었다는 사실만으로는 설명하기가 부족한 커다란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일각에선 아직 우리 경제 여건이 주가지수 1000 이상으로 올라가기엔 무리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 예측으로는 3년 안에 종합주가지수가 2000을 돌파한다.

    종합주가지수 3년내 2000포인트 갈 수밖에 없는 이유

    외국인 투자자가 늘 감시하고 있다는 점은 기업에겐 부담이지만, 투자자들에겐 좋은 일이다. 2004년 SK 주총 당시 소버린 측 관계자들.

    오랫동안 증권시장을 지켜본 나는 지수가 마치 계단을 올라가듯 차근차근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 지수는 한꺼번에 올라가고 한꺼번에 내려온다. 3년내 2000으로 가는 과정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바람직한 것은, 올해는 일단 종합주가지수 1000을 버텨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투자자들은 여기가 바닥인 것으로 확신한다. 그러면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강세장이 출현한다. 내년에 1500을 돌파할 수 있고, 그 다음해 2000을 넘어설 것이다. 나름대로 나는 지난해 가을부터 강세장이 올 수 있는 단초를 찾기 시작했다.

    ‘사상 최고가’ 속출하는 신흥시장

    한국 시장이 변할 수 있다고 기대하게 된 계기는 지난해 세계 신흥시장이 보여준 성적 때문이다. 멕시코가 대표적이다. 멕시코는 1994년 금융위기를 겪은 지 10년 만인 지난해 신고가를 52차례나 경신했다. 2003년과 비교하면 주가는 평균 38%가 올랐다. 멕시코 기업들의 이익이 큰 폭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나라 전체의 생산(GDP)이 4% 성장한 데 비해 기업 이익은 139~224% 증가했다. 멕시코 기업들은 지난 수년간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갖게 되자 이익이 큰 폭으로 늘어났다.

    이 나라는 1994년 12월 신흥시장에선 처음으로 자유변동 환율제도를 도입했다. 외환보유고가 바닥난 상태에서 고정환율을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멕시코 페소화 가치는 폭락했고, 금리는 연 100%나 올랐다. 증권시장은 폭락했고, 18개 은행 중 14개 은행이 문을 닫았다.

    그러나 멕시코는 점진적으로 환율이 평가절하되면서 수출 경쟁력을 회복했고 이를 계기로 기업 실적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80%에 달했던 인플레이션 역시 안정을 찾아갔다. 최근엔 개인연금의 주식투자가 허용돼 투자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상황도 멕시코와 비슷한 점이 많다. 한국 역시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지속적인 구조조정 덕분에 안정적인 이익을 내고 있으며 곧 기업연금이 간접적으로 주식시장을 노크할 예정이다.

    또 다른 신흥시장 인도네시아와 호주는 자원 덕분에 증시가 활기를 띠었다. 인도네시아는 석유자원 덕분에 주식시장이 상승했고, 호주는 철광석 가격이 올라 증시 상승을 이끌었다. 한국은 자원이 없는 나라로 알고 있지만, 우리에겐 반도체라는 자원이 있다. 인공 자원이긴 하지만 세계는 반도체 없이 작동되지 않는 구조를 갖고 있다. IT 경기의 회복으로 반도체 가격이 뛴다면 우리 증시 역시 상승할 여지가 많다.

    증권시장의 근본이 달라졌다고 판단한 또 다른 이유 중 하나가 투자자의 변화다. 투자자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어떻게 움직이는지 가늠해야 돈이 어디로 몰릴지 예측할 수 있다. 이를 예측해볼 수 있는 것이 인구 통계적 변화다.

    나는 향후 5년 동안 금융에 밝은 386세대가 금융시장의 주역이 될 것으로 본다. 386세대는 이전 세대처럼 부동산에 연연하지 않는다. 이들은 금융자산을 축적하는 데 적극적이고 개방적이다.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시절을 보낸 386세대는 현재 35~44세, 5년 뒤엔 40~49세가 된다. 앞으로 사회의 주역으로 활약할 이들은 금융자산을 늘려나가는 데 노력할 것이고, 이런 행동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올해 말 도입되는 기업 퇴직연금도 개인투자자의 투자 패턴을 바꾸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퇴직금을 일정 기간 펀드로 운용하는 것인데, 투자자 입장에선 부담이 적다. 목돈을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 분산해서 투자하기 때문이다. 고령화 사회가 도래하면서 노후에 쓸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과제가 된 요즘 세대에게 이는 미래 수입원을 마련한다는 측면이 강하다.

    이와 함께 지난해부터 인기를 끌고 있는 적립식 펀드 역시 투자 패턴의 변화를 예고한다. 매월 적금을 붓듯 조금씩 펀드에 돈을 넣는 적립식 펀드는 최근 월 불입액이 3000억원을 돌파했다. 매월 3000억원이 들어오는 ‘화수분’을 마련한 것이다. 이 자금이 장기적으로 꾸준히 주식을 매입한다면 주가는 오르지 않을 수 없다. 예전처럼 퇴직금을 몽땅 털어서 펀드에 넣고 불안하게 지켜보는 시대는 지난 것이다.

    피델리티의 한국 진출 의미

    투자 주체별 순매수 동향을 살펴보면 앞으로 주식시장에 들어올 세력이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기관투자자는 최근 몇 년 동안 매수보다는 매도가 많았지만 적립식 펀드와 기업 연금의 유입으로 매수가 많아질 것이다. 업계가 예측하는 올해 기관 순매수 규모는 3조4000억원. 국민연금의 주식투자 유입도 좋은 징조다. 꾸준하게 주식에 투자한 국민연금은 다른 연금보다 투자 수익이 높다. 앞으로 연금의 주식투자 비중을 확대할 좋은 명분이다.

    외국인은 지금까지도 순매수 세력이었고, 앞으로도 이를 유지할 것이다. 한국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신흥시장이지만 과거에 비해 리스크가 상당히 줄었다. 이를 입증하는 증거가 세계 최대 펀드업체인 피델리티가 한국에 진출한 것이다. 이 펀드는 해외에 진출할 때 신중하기로 이름이 높다. 이득이 있다고 확신해야 들어간다. 피델리티를 포함해 해외 자산 운용사는 국내에서 시장점유율 40%를 넘어섰다. 국내 시장을 좋게 보는 외국인들이 늘고 있다는 얘기다.

    개인투자자는 매도로 일관해 주식 보유량이 역사상 가장 낮은 상태다. 주식을 충분히 팔았기 때문에 더 팔 물량이 없어 매수로 돌아설 여지가 크다. 개인투자자들이 증시로 돌아올 것으로 예측하는 또 다른 근거는 저금리 현상의 지속이다. 은행에 돈을 넣어봤자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이자 수익은 거의 마이너스 수준이다.

    홍콩은 2002년부터 제로 금리 시대를 맞았지만, 자본시장이 발달한 덕분에 이자 생활자들이 이를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었다. 주식과 펀드, 채권에 투자한 것이다. 개인 금융상품 중 주식 비중이 1999년엔 12%였으나, 2003년엔 23.8%로 급증했다. 펀드 투자 비중도 같은 기간 3%에서 9.8%로 증가했다.

    한국의 이자 생활자들도 이런 패턴을 따라갈 것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은행 이자 수익보다 높은 배당금을 주는 기업을 찾아 투자하고 있다. 이런 수요가 늘면서 최근엔 기업의 배당금이 사상 최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물론 일부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주주들의 요구에 밀려 기업이 기술개발에 투자하기보다 배당에 돈을 쓴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나 넓게 보면 고배당은 긍정적인 효과가 크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해 말 주당 3달러를 일시에 배당했다. 총 324억달러(32조4000억원)에 달하는 거금이다. 만약 배당을 받은 주주들이 이를 모두 소비한다면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을 1% 올릴 수 있다. 국가경제를 한 기업의 배당금이 견인하는 것이다. 이익을 유보해도 마땅히 수익성 높은 투자처를 발굴하지 못하는 기업이라면 배당을 높게 하는 것도 기업가치를 높이는 훌륭한 방법이다(투자기회가 많은데도 주주들이 고배당을 요구한다면 이는 큰 문제다). 소비를 진작해 경기를 선순환시키면 기업 환경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기관들도 돌아온다

    저금리 때문에 증시에 들어올 세력은 또 있다. 보험사와 은행 같은 기관투자자는 투자처를 찾기 위해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지만, 불확실한 경제 환경과 위험도를 감안해 다시 국내 증시로 돌아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규 투자자의 유입도 눈에 띈다. 대학에서 관리하는 자금뿐 아니라 교회나 절 같은 종교단체의 자금도 간접투자시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서울의 한 여자대학이 국내 투신사에 돈을 맡긴 바 있는데, 그 규모가 수백억원에 달했다. 이렇듯 대학들이 보유한 자금이 투신사로 유입될 경우 이는 새로운 투자세력으로 부상할 것이다. 종교단체도 마찬가지다.

    다소 걱정스러운 면이 없지 않으나 헤지펀드의 급속한 성장은 또 다른 신규 투자세력으로 불릴 만하다. 이들이 3세대 투자 시대를 열었다. 1세대 투자자들은 펀드매니저가 마음대로 주식과 채권에 투자하도록 내버려뒀다. 2세대 투자자들은 조금 약아서 펀드별로 수익률을 체크해 이를 기준으로 자신이 가입한 펀드의 수익률이 얼마나 높은지 평가했다.

    3세대 투자자들은 펀드별 수익률 비교는 안중에도 없다. 무조건 고수익을 요구한다. 이런 일에 제격인 집단이 바로 헤지펀드다. 이 같은 투자자들이 많아지면서 전세계적으로 헤지펀드가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다.

    이들 펀드가 눈여겨보는 시장은 한국과 같은 신흥 자본시장. 그렇다고 심각하게 우려할 정도는 아니다. 헤지펀드 시장이 커지면 그만큼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활발해져 시장이 이들에게 크게 휘둘리지 않게 된다.

    증권시장이 구조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는 기업의 달라진 태도에서 엿볼 수 있다. 주주 가치를 보호하고 투명경영과 책임경영을 실천하려 노력한다. 주주에게 제공하는 배당 비율을 높이고, 자사주를 매입해 주가 관리에 힘쓴다. 외환위기 이후 많은 기업들이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안정적이며 꾸준하게 실적을 올리는 것도 미래를 낙관할 수 있는 근거다.

    소버린 자산운용이 SK의 지분을 대량 매집하면서 최고 경영진의 퇴진을 요구하는 사태 같은 것도 증권시장에는 좋은 계기가 된다. 외국인의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가 주가를 끌어올렸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이 외국 투자자들의 M&A에 노출되면서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좀더 투명하게 경영하는 흐름이 형성됐다는 점이다. 게다가 외국인들이 늘 감시하고 있다는 것은 기업에겐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투자자들에겐 호재다. 이를 계기로 기업이 재평가를 받고 실적이 좋아지면 주가는 오르게 돼 있다. ‘SK 사태’는 ‘SK 현상’으로 재계와 증권시장에 전파될 것이다.

    종합주가지수 3년내 2000포인트 갈 수밖에 없는 이유

    개미군단이 돌아온다. 강창희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소장의 강의를 듣고 있는 주부들의 눈빛이 진지하다.

    과거엔 주가가 오르면 으레 기업이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오를 때 증자를 해야 좀더 많은 자금을 증권시장으로부터 끌어다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물타기’가 아니라 ‘술타기’인 것이다. 그러나 증시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물량이 쏟아져나오면 주가는 내려가게 마련이다. 1999년과 2000년이 그랬다.

    그러나 올해는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외국인들의 적대적 M&A가 이슈로 등장하면서 유상증자는 자칫 M&A 세력들을 이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우량기업치고 외국인 지분이 50%를 넘지 않은 기업이 없다. 게다가 국내 대기업은 오너의 지분율이 낮다. 그러니 주가가 높아져도 오너가 가진 물량이 나올 가능성이 적고, 주식의 추가 발행 역시 힘든 상황이다. 요즘엔 기업들이 현금을 많이 보유하고 있어 투자재원을 마련하려고 증권시장을 이용 해야 할 필요성이 줄어들었다.

    기업 실적이 좋아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적의 변동성도 낮아지고 있다. 외부 환경 변화에도 기업 실적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이유로 기업의 주가 변동성도 낮아지고 있다. 주가가 심하게 출렁거리지 않아 주가수익비율(PER·주당 가격을 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것. 낮을수록 투자가치가 높다)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거래소에 상장된 기업의 자기자본수익률(ROE)은 은행 금리의 4배에 이른다. 자본을 투입해 얻는 수익이 금리의 4배라는 것은 꽤 수익률이 높다는 얘기다. 장사를 잘하고 있다는 증거다.

    향후 경기가 회복되면 수출기업뿐 아니라 내수기업의 실적도 올라갈 것이다. 만약 경기가 과열됐다는 평가가 나올 때 종합주가지수가 1000을 오르내린다면 이는 곧 떨어질 징조다. 그러나 지금처럼 경기가 바닥일 때 지수 1000은 조금도 부담스럽지 않다. 경기가 회복되면서 기업의 실적이 더욱 좋아진다면 주가 상승의 계기가 된다.

    현재 상장사가 보유한 현금은 46조원으로 추산된다. 예전 같으면 계열사에 순환 출자하거나 중소기업이 점령하는 분야에 신규 진출하는 등 엉뚱한 짓을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요즘처럼 외국인 투자자와 시민단체가 철저하게 감시하는 상황에선 쉽지 않은 일이다. 배당금이 늘고 자사주 매입이 많아진 것도 그 때문이다.

    화제를 좀 바꿔보자. 금융가엔 ‘투자시계’라는 것이 있다. 투자자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디로 돈을 옮기는지 알려주는 일종의 ‘순환로’ 같은 것이다. 12시부터 3시까지는 주식, 6시까지는 상품, 9시까지는 현금, 그리고 다시 12시까지는 채권으로 채워져 있다. 동그란 시간표를 상상하면 된다.

    이 시계이론에 따르면 투자자는 주식으로 돈을 벌고 난 뒤 부동산 투자로 옮기고 그 뒤엔 현금으로 보유한다. 다시 이 돈으로 채권투자에 나서면서 한 사이클이 완료되고, 다시 주식투자로 돈을 옮기면서 두 번째 사이클이 시작된다.

    9시부터 12시까지, 즉 채권이 지배하는 시기는 경기가 지속적으로 침체해 인플레이션 압력이 강하지 않은 전형적 경기 침체기다. 이때 금리는 지속적으로 하락해 채권 투자의 적기가 된다.

    그러나 12시가 지나면서 경기는 서서히 회복된다. 성장률이 미약하지만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기업이 설비투자에 나서면서 경기회복 신호가 나타난다. 금리가 바닥을 친 후 점진적으로 상승하면서 주가는 일부 우량주를 선두로 상승하고 거래량도 증가한다. 이때부터 3시까지는 주식에 투자해야 한다.

    그러나 3시를 넘어서면서 경기는 과열국면을 보이고 일부 원자재에 수급 차질이 빚어지면서 가격이 급등한다. 이런 국면이 6시까지 이어지면서 투자자들은 금, 철강 금속, 원유, 곡물, 부동산 투자로 옮겨간다. 6시 이후엔 일부 버블 현상을 보이던 상품의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서고 투자자들은 시장에서 떠나 휴가를 갖는다. 9시까지.

    ‘한국 투자시계’는 11시

    투자시계를 한국시장에 응용해보자. 한국은 지속적인 내수부진으로 금리가 하락했고 이 때문에 채권시장이 초강세였다. 2004년 주식시장이 상승했지만 상승률은 세계 44개 시장 중 31위에 불과했다. 시원치 않은 수익률이었다. 투자시계로 치면 한국은 10시30분에서 11시 사이다. 앞으로 경기가 회복되면 주식 투자의 적기가 돌아온다. 이제 곧 주식이 어떤 투자보다 매력적인 대상으로 등장할 것이다. 게다가 정부가 부동산에 대해 강력한 규제책을 유지하며, 지난해 말부터 경기 부양 대책을 내놓아 분위기가 주식 투자 쪽으로 무르익고 있다.

    지난해 12월 도이치방크가 평가한 바에 따르면 한국의 투자 매력도는 상당히 높다. 전세계 33개 주식시장을 분석한 결과 한국은 노르웨이에 이어 2위. 이는 가치, 모멘텀, 위험 등 세 가지 요소를 토대로 평가한 결과다. 또 IMF는 올해 한국경제가 회복된다는 데 낙관적인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GDP 대비 시가총액 비율이 선진국보다 낮다는 점은 한국 증시의 또 다른 매력이다. 미국의 경우 100%가 넘지만, 한국은 60%에 불과하다. 올라갈 여지가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국내 기업의 주가가 저평가됐다는 얘기는 최근 들어 꾸준히 외국인 투자자들을 설득하고 있다. 실제로 현재 상장기업들의 주가수익비율(PER)은 1990년 이후 가장 낮은 8~10배 수준인데 이것은 미국이나 일본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주가순자산비율(PBR)로 각국과 비교해도 한국은 고작 1배에 불과한 실정이다. 자산가치 대비 주가가 그만큼 낮다.

    올해 6월부터는 미국의 다우존스 지수 같은 지표가 한국에서도 개발된다. 업종을 대표하는 종목을 묶어 따로 지수를 산출하는 시대가 열린다. 1970년대 미국은 ‘니프티 피프티(Nifty-Fifty)’라고 해서 주요 종목 50개가 큰 폭으로 오른 적이 있다.

    이런 패턴이 증시에 긍정적인 이유는 이 군에 묶인 종목들이 서로 주가를 올리기 때문이다. 선두 종목의 주가가 올라간 뒤 후발대가 따라가면서 동반 상승한다. 우량종목군(群)이 생기면 이들에게만 투자하는 펀드가 생기고, 다른 펀드들도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이 종목들을 매입하게 된다.

    3년 안에 지수가 2000을 돌파할 것이라고 보는 유력한 단초 가운데 하나는 정치권의 일정과 맞물려 있다. 2007년 12월과 2008년 4월,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가 연달아 치러진다(이보다 앞서 2006년엔 지자체 선거도 치러진다). 선거는 보통 주식시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미국의 증시 역사에서 재미있는 점은 5자로 시작된 해엔 어김없이 증시가 상승했다는 것이다. 올해가 2005년으로 5자가 들어 있으니 상승이 예견되는 해다. 미국 증시가 상승하면 한국시장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기대해볼 만한 무겁지 않은 이유다.

    도넛 먹다 대박 터뜨리듯…

    증시 역사에 버블의 생성과 소멸은 늘 있는 일이지만 의미 있는 한 가지 사건이 있다. 1910년대 미국에선 자동차 관련 종목에서 버블이 형성됐다. 1912년 최첨단 기술로 꼽혔던 자동차 기술이 투자자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관련 종목이 5년 동안 수직상승했다. 그러다 다시 5년 동안 관련 기업들의 주가는 70%가 하락해 투자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마치 자동차 기술은 사장되는 듯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1922년부터 1929년까지 7년 동안 자동차 관련 종목의 주가는 무려 22배 상승했다. 가히 폭발적이었다. 이를 한국의 인터넷과 IT 관련 종목에 적용해보면 재미있다. 2000년 천정부지로 올랐던 IT 관련 주식은 4~5년 동안 조정을 받았다. 그러나 다시 조명을 받을 땐 미국에서 벌어진 것처럼 상상을 뛰어넘는 상승장이 연출될 수도 있다.

    미국의 달러 약세는 한국의 수출기업에겐 분명 악재다. 수출단가가 그만큼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증시에선 얘기가 다르다. 달러자산을 회피하려는 세계의 자금이 한국을 포함한 신흥시장으로 몰려들 수 있다. 또 장기적으로 환율은 안정될 것이고 기업의 부담이 적어질 것이다. 유가나 상품 가격은 향후 안정세로 돌아설 것으로 예측된다. 중국시장의 경착륙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까지는 고성장을 유지할 것이다.

    이처럼 증권시장 전망이 밝다면 어떤 주식을 사야 할지 궁금할 것이다. 여기에 대한 답은 간단하고 명료하다. 우량회사의 주식을 사지 말고 우량주식을 사라. 우량주식은 가치가 저평가된 종목이다. 어렵지 않다. 애널리스트처럼 복잡한 분석력이 필요하지 않다. 자신이 잘 아는 기업이 시장에서 대접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그 기업의 주식을 사라.



    전설적인 투자자 피터 린치가 출근하면서 종종 들렀던 도넛 가게(던킨도너츠)의 맛과 서비스가 마음에 들어 투자한 결과 ‘대박’을 터뜨렸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아내에게, 자녀들에게 요즘 인기 있는 것이 뭐냐고 물어보라. 그들의 대답 속에 다이아몬드 같은 종목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귀찮으면 펀드를 사라. 요즘 펀드매니저들 실력,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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