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호

‘지속가능경영’ 전도사 김순택 삼성SDI 사장

“유해물질은 ‘글로벌 기준’으로 제거, 태양·연료전지로 미래 에너지산업 주도”

  • 입력2005-03-23 16: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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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년 국내 최초로 ‘지속가능성 보고서’ 발간, 2004년 국내 최초로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 기업 선정, 제품 생산 공정에서 6대 유해물질 완전 제거….
    • 최근 삼성SDI가 내놓은 ‘환경경영 성적표’다.
    ‘지속가능경영’ 전도사 김순택 삼성SDI 사장
    텔레비전 브라운관을 만들던 굴뚝기업, 삼성SDI의 이미지 변신은 신화처럼 인구에 회자된다. 디지털 디스플레이 기업으로 환골탈태한 이 회사는 5년 연속 사상 최대 매출실적을 경신했다. 지난해에는 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PDP)이 25%, 유기발광다이오드(OLED)가 40%, 휴대전화용 액정표시장치(LCD)가 23%, 컬러 브라운관이 29%의 세계시장 점유율을 기록, 모두 1위에 오르며 디스플레이 4대 제품에서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그러나 삼성SDI를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이 기업이 선구적으로 도입한 지속가능경영이 환경경영 실천을 위한 ‘롤(role) 모델’로 떠오르고 있는 것. 삼성SDI는 2003년 국내 최초로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펴내 환경경영의 신호탄을 쐈다. 지난해 9월에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2005년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DJSI)’기업으로 선정됐다.

    삼성SDI는 2003년부터 1년간 환경경영 전문 컨설팅업체의 도움을 받아 ‘환경중심기업’으로 거듭났다. 환경의 중요성을 절감하지 못했던 임직원에게 환경 마인드를 심는 것은 물론, 협력사들의 환경의식을 제고하는 데도 힘을 쏟았다.

    김순택(金淳澤·58) 삼성SDI 사장을 ‘환경 CEO’로 선정한 것은 그가 바로 삼성SDI의 이 같은 변신을 이끈 주역이기 때문이다. 1999년 삼성SDI 사장으로 취임한 그는 이후 놀랄 만한 속도로 환경경영과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다.

    갑작스런 봄눈이 소복이 내린 3월2일 오전. 서울 태평로 삼성생명 건물 18층 접견실로 김순택 사장이 들어섰다. 삼성 사장단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참이었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한 권의 책자를 꺼내 보인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환경 관련 보고서다.



    “일본의 섬유업체 아사히카세이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600만t이나 감축하는 기술을 개발했다네요. 이산화탄소(CO2) 600만t이 얼마나 되는 줄 압니까? 자그마치 네덜란드 전체 국민 1600만명이 1년간 배출하는 양과 맞먹는다고 합니다. 한 기업에 소속된 몇 명의 연구원이 이처럼 획기적으로 환경을 보호하고 비용을 절감하는 기술을 만들어냈다니 대단하지 않습니까. 우리도 이런 기술을 도입할 방법을 적극 모색해봅시다.”

    김 사장은 일본 기업의 친환경기술 개발 이야기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분·초도 전략적으로 쪼개 쓴다는, CEO다운 인사법이다.

    법규보다 5배 강한 기준

    -삼성SDI의 지속가능경영이 화제입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죠.

    “지속가능경영. 말은 어렵지만 내용은 간단합니다. 기업 활동에서 경제적 성장뿐 아니라 환경보호와 사회적 책임까지 고려하는 경영 패러다임이지요. 삼성SDI는 유엔환경계획(UNEP)의 산하기관인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가 제안하는 가이드라인에 따라 기업 경영활동을 환경·비전·전략·경제 및 사회 부분으로 나눠 경영성과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가 담은 것이 바로 지속가능성 보고서예요.

    우리가 2003년에 처음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발간한 후 현대자동차와 포스코가 이 작업에 동참한 걸로 압니다. 세계 50개국 632개사가 이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고요. 그런데 GRI의 기준이 워낙 까다로워서, 웬만한 각오 없이는 보고서를 발간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니까요.”

    -지속가능경영을 시행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올해로 제가 삼성에 몸담은 지 33년이네요. 과장 2년차부터 사장으로 부임할 때까지 20여년간 비서실에 근무하면서 삼성의 환경 마인드를 체화했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오염배출량 등 환경관련 조항에 대해서는 법규보다 5배 이상 제한을 강화하라’고 지침을 내렸습니다. 환경 투자를 소홀히 해서 그룹 이미지가 손상되면 결과적으로 더 큰 손실을 본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속가능경영의 도입은 필수였지요. 지속가능성 보고서 발간은 주주와 국민에게 투명 경영을 약속하는 것과 같습니다. 올해엔 아예 사업보고서와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묶어서 낼 예정입니다.”

    -삼성SDI가 생산하는 3대 제품인 PDP, OLED, 2차 전지는 모두 생산과정에서 환경유해요소를 발생시킵니다. 환경오염을 줄일 대책이 마련돼 있습니까.

    “환경유해물질을 대체할 신기술을 개발하는 데 많은 노력을 쏟았습니다. 그 결과물이 카드뮴 프리(free) 형광체지요. 또 PDP 격벽에 사용되는 납을 제거하기 위해 신공법(에칭 공법)을 개발, 일부 라인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2차 전지에 사용되는 희귀 금속류를 대체하기 위한 연구도 진행중입니다. 지난해에는 2차 전지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화학물질 세정제를 모두 물로 대체했어요. 유해화학물질 사용을 생산공정에서 근원적으로 배제하는 것이 우리의 최대 목표입니다.”

    ROHS 대응은 이미 끝났다

    -그렇다면 지난 2월16일 발효된 교토 의정서나 EU(유럽연합)의 환경규제인 유해물질사용제한지침(ROHS·전자제품에 납·수은·카드뮴·6가 크롬 등의 사용을 금지) 등의 각종 환경규제에 대한 대비는 어떻습니까. 엄격한 규제 때문에 많은 국내 기업의 수출에 제동이 걸렸는데요.

    “삼성SDI가 1년에 배출하는 온실가스량이 50만t이에요. 우리도 2013년부터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평균 5.2% 의무 감축토록 하는 교토 의정서에 동참하게 됩니다. 아사히카세이 같은 업체들을 벤치마킹해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더욱 획기적으로 감축해나갈 생각입니다.

    환경규제는 오히려 기업 경쟁력을 증진시킬 전략적 기회가 될 수 있어요. 친환경 기술을 미리 개발함으로써 환경규제 시대에 세계시장을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내년 7월에 시행될 ROHS에 대응할 친환경 기술의 개발도 이미 마쳤습니다. 소니와 노키아에 6대 유해물질을 모두 제거한 PDP와 MD를 각각 납품하고 있으니까요.”

    2002년, ‘일본의 마쓰시타가 1000일 만에 제품의 납 제거 기술을 개발했다’는 소식을 들은 김 사장은 특유의 경쟁심이 발동했다. 기업의 생존은 친환경 기술에 달렸다고 믿던 그에게 발등의 불이 떨어진 셈. 그날로 “마쓰시타를 이겨보자”는 김 사장의 주문이 떨어졌다. 연구팀은 곧 신기술 개발에 착수했고, 결국 1년 만에 전 제품군에 들어가는 6대 유해물질을 모두 제거하기에 이르렀다.

    삼성SDI의 지속가능경영은 환경역량 강화를 위한 효율적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끈다. 2004년 환경경영을 위한 비전과 전략을 수립·추진하는 지속가능성경영(SM) 추진사무국이 출범했고, 친환경제품개발 소위원회, 녹색경영 실무 소위원회, 녹색구매 실무 소위원회 등이 만들어졌다. 전사적으로 지속가능경영을 추진하기 위한 조직을 정비한 것. 이는 ‘시스템 경영’을 중시하는 삼성의 특기가 발휘된 대목이다.

    -환경 관련 소위원회가 많은데, 어떤 역할들을 합니까.

    “소위원회를 보면 삼성SDI의 환경경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어요. 친환경제품개발 소위원회는 연구소와 사업본부별 개발팀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는데, 전 제품군에 대한 유해물질을 분석하고 친환경제품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녹색구매 실무 소위원회는 전략구매본부와 각 사업본부의 구매팀장으로 구성돼 있고, 협력회사의 친환경 공급망을 관리하고 있어요. 협력회사의 환경경영 수준을 업그레이드시키는 게 주요 업무입니다. 녹색경영 실무 소위원회는 각 사업장의 공장장으로 구성돼 있어요. 생산공정상 발생할 수 있는 수질 및 대기오염을 최소화하고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주요 역할이지요.”

    하지만 삼성SDI가 아무리 환경 마인드를 갖고 지속가능경영을 추진해도, 생산에 관여하는 협력업체들이 잘 따르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삼성SDI의 생산공정에서 1·2차 협력업체가 차지하는 비율은 60%나 된다. 협력업체 관리가 환경경영 성공의 열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열악한 중소 협력업체들을 관리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협력업체가 대기업에게 요구되는 까다로운 환경 기준을 기꺼이 준수하려고 하나요.

    “협력업체 관리가 환경경영에서 가장 어려운 대목이었습니다. 컨설팅 결과 가장 약점으로 지적된 것도 바로 그 부분이었어요. 우선 환경 기준을 준수하는 곳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녹색구매 가이드라인을 수립해 공급 부품과 자재의 유해물질을 자체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협력회사가 납품하는 제품의 샘플을 분석하고 환경유해물질이 없는지 검사했어요. 친환경 자재 사용 여부를 협력업체 평가에 적극 반영했고요. 협력업체 사장들을 모아 환경경영에 대한 강의를 꾸준히 진행하다 보니, 이들의 환경의식도 점차 성장하더군요.”

    -협력회사를 관리하는 환경심사원만 54명이라고 들었습니다.

    “새로운 협력업체가 선발되면, 환경 심사원들이 업체 대표에게 교육부터 실시해요. 이들은 협력회사의 친환경 부품·자재 공급 및 운영체제를 진단하고 지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올해부터는 이 심사원이 환경성뿐만 아니라 사회성도 함께 평가하게 해 통과하지 못하는 협력회사는 거래관계를 제한할 계획입니다. 특히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환경성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모기업의 이러한 노력이 정부의 규제보다 휠씬 효과적일 거라 생각합니다. 환경심사원은 삼성SDI와 협력회사의 상생을 위한 ‘환경경영 전파자’가 되는 셈이지요.”

    -그렇다면 환경부문에 대한 지출이 만만치 않겠네요.

    “지난해 환경분야에 대한 직접투자비용만 60억원이었습니다. 간접투자비용까지 합치면 수백억원이 될 거고요. 그러나 이걸 아까워하면 안 돼요. 환경에 대한 투자는 ‘엑스트라 코스트(extra cost)’가 아니라 기업이 생존하기 위한 ‘필요 코스트’니까요. 가령 해외수출이 전체 매출의 9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제품에 포함된 유해물질을 제거하지 못하면 아예 수출길이 막혀요. 환경규제 시대에 어울리는 제품을 개발하지 못하면 엄청난 기회와 비용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거지요.”

    -삼성SDI의 생산사업장이 자리잡은 수원, 천안, 부산에선 ‘하천 가꾸기 운동’도 벌이고 있다더군요.

    “생산사업장은 더이상 환경위협 요인이 아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업장마다 ‘1산 1하천 가꾸기 운동’을 시작했어요. 주변의 학교와 자매결연을 하고 사업장의 환경시설을 교육장으로 개방했는데 주민들의 호응이 높습니다.”

    김순택 사장의 ‘현장 챙기기’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다. 지금까지 출장을 다녀온 거리를 합치면 약 27만km. 지구둘레를 일곱바퀴나 돈 셈이다. 그는 7개국 13개 생산네트워크를 순회하며 우수 경영 사례를 전파하고 현장직원들의 목소리를 들어왔다. “해외 생산사업장도 국내 사업장 못지않은 엄격한 환경 기준으로 관리하라”는 게 그의 주문이다.

    -해외에서는 어떤 환경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까.

    “멕시코 법인 티후아나의 해변에서 환경정화활동을 정기적으로 시행하고 있고, 중국 선전(深) 법인에서는 선전시 자연보호구역인 홍수림 안에 삼성SDI 녹색 생태림을 지정해 나무를 심고 있습니다. 말레이시아 사업장은 그 나라 정부가 수여하는 환경 관련 상을 독식하고 있습니다. 말레이시아에 온 다른 나라 경제시찰단이 우리 사업장을 가장 먼저 구경하고 돌아간다네요.”

    태양·연료전지에 거는 희망

    환경전문가들이 삼성SDI에 거는 기대는 크다. 전도유망한 친환경 에너지로 손꼽히는 태양전지와 연료전지를 개발해왔기 때문이다. 삼성SDI는 이제 디지털 디스플레이 기업에서 친환경 에너지 기업으로 또 한번 패러다임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이들이 만드는 태양전지와 연료전지의 상용화 여부에 한국의 환경지수가 달라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광주 조선대에 태양에너지 시범단지를 조성했다고 들었습니다. 삼성SDI의 태양전지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입니까.

    “대한민국에선 최고라고 자부합니다. 빛을 전기로 변환시키는 효율은 거의 선진국 수준에 이르렀으니까요. 태양전지 상용화 기술에선 일본과 독일이 세계 최고입니다. 한국의 전반적인 태양전지 연구 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5년 이상 뒤처져 있어요. 우리도 얼마든지 따라잡을 수 있는데….”

    -그런데 왜 빨리 상용화하지 않습니까. 환경전문가들이 가장 안타까워하는 대목입니다.

    “한국의 전기요금은 일본의 딱 절반 수준입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는 매우 싼 전기를 공급받고 있어요. 반면 일본에서 태양전지가 빨리 상용화될 수 있었던 건 바로 비싼 전기요금 때문입니다. 현재는 우리가 만든 태양전지의 원가가 한국전력공사의 전기요금보다 수십 배 비쌉니다. 아무리 친환경 에너지라지만 일반 전기보다 훨씬 비싼 태양전지를 쓰려는 소비자가 얼마나 되겠어요.

    일본 같은 나라에서는 친환경 에너지인 태양전지 개발을 위해 정부가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데 비해 우리나라는 지원에 인색했던 것이 사실이고…. 뚜렷한 성과가 없으니까 지원은 더 줄어드는 상황이지요. 태양전지의 상용화는 결국 정부가 마음먹기에 달렸어요.”

    -연료전지는 어떻습니까. 지난해 삼성SDI가 노트북용 연료전지를 개발했다고 들었는데, 언제쯤 상용화될까요?

    “먼저 연료전지의 원리부터 설명하죠. 에탄올을 산화시켜 수소를 만들 때 열이 발생하지요? 그게 바로 전기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에너지는 당연히 공해와 소음이 없겠죠.

    우리가 본격적으로 연료전지 개발에 뛰어든 것이 2002년입니다. 현재 40명의 연구인력이 투입돼 있고요. 연료전지는 크게 휴대용, 가정용, 자동차용으로 나뉘는데, 우리가 중점을 두고 개발하는 것은 휴대용과 가정용입니다. 지난해 20W 노트북 PC용 연료전지를 만들었고, 지금은 1kW 가정용 연료전지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요.

    문제는 아직 연료전지의 크기가 너무 크고 경제성이 없다는 거죠. 저렴한 비용으로 작은 크기의 연료전지를 생산하는 것이 현안 과제입니다. 휴대전화와 노트북 PC에 사용될 휴대용 연료전지는 수년 안에 상용화될 거예요.”

    ‘지속가능경영’ 전도사 김순택 삼성SDI 사장

    김순택 사장은 “지속가능경영을 실천함으로써 국민에게 존경받는 기업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좀처럼 시간을 내기 힘든 김순택 사장을 만나 환경 이야기만 물어본다면 아쉬움이 남을 것 같다. 높은 기술경쟁력으로 사상 최대 매출과 순익 기록을 연거푸 갈아치우는 힘의 원천이 궁금했다. 아울러 PDP와 LCD를 놓고 형제지간인 삼성전자와 벌이는 치열한 경쟁도 관심거리가 아닌가.

    -삼성전자와 삼성SDI의 경쟁구도가 화제입니다.

    “경쟁에 관한 한 삼성은 ‘죽기 아니면 살기’입니다. 우리가 삼성전자의 LCD를 보유하고 있다면 애당초 PDP는 만들지도 못했을 겁니다. 세계에서 가장 얇은 브라운관인 ‘빅슬림’을 만들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경쟁의 힘이었지요.

    삼성전자요? 지독합니다. 삼성전자는 우리가 만든 배터리를 50%도 안 씁니다. 형제간이라도 경쟁력이 없으면 안 먹혀요. 이러한 경쟁 속에서도 두 업체는 공동의 목표를 갖고, 세계 최대 크기인 102인치 PDP를 만들어냈어요. ‘경쟁과 협업’이야말로 삼성전자와 삼성SDI 간의 흔들림 없는 원칙입니다.”

    최근 전자업계가 직면한 골칫거리 중 하나는 지적재산권 분쟁이다. 지난해 상반기 일본 후지쓰는 삼성SDI가 자사의 PDP 특허를 침해했다며 특허소송을 제기했고, 마쓰시타도 LG전자를 상대로 PDP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했다. 후지쓰와 삼성SDI의 ‘분쟁 1라운드’는 결국 두 그룹이 상호특허를 공유함으로써 서로 상생하는 차원에서 잘 마무리 되었지만, 지적재산권 소송은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최근 자주 등장하는 지적재산권 분쟁에 대해 김 사장은 자신감을 감추지 않았다.

    “PDP 종주국을 자부하던 일본 기업들이 위기의식을 느낀 모양입니다. 어느 시점부터 한국 기업들의 PDP 기술수준이 일본 기업을 앞지르기 시작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일본 기업들의 제소가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삼성SDI는 특허 회피 전략을 사용해 분쟁의 소지가 될 요인을 미리 없애고 있습니다. ‘길목 특허’‘지뢰 특허’ 등 다양한 노하우가 있어요. 너무 자세하게 알려주면, 곤란한데….(웃음)

    앞으로는 ‘프리 크로스 라이선스(free cross license·무료 공유 특허)’ 를 이용하기 보다, 오히려 충분한 대가를 받고 우리의 지적재산권을 다른 기업에서 쓰도록 만들 겁니다.”

    김 사장은 전자·전기산업과 관련된 다른 삼성 계열사들의 CEO와 달리 경제학 전공자다. 비전공자가 신기술 사업을 진두지휘하는 데 어려움이 적지 않았을 터. 까다로운 기술용어가 나올 때마다 쉽게 풀어 설명해주는 그에게 비결을 물었다.

    “20여년에 걸쳐 비서실과 미주 본사에 근무하면서 회사의 여러 사안을 두루 경험했습니다. 1987년 이건희 회장 취임 당시 비서실에서 전자 경영 관리를 총괄하면서 반도체, LCD 등 첨단사업을 추진했지요. 제 특기 중 하나가 어려운 기술도 쉽게 풀어 요점을 잡아내는 겁니다. 비기술자가 기술 회사의 리더가 되려면 부단히 공부해야지요. 20년 이상 전자 계통의 업무를 해왔으니, 지금은 기술자와 별 차이가 없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무료 개안 사업 10년

    삼성SDI는 올해도 바쁜 행보를 이어가야 한다. 특히 지난해 국내에서 유일하게 ‘2005년 DJSI’ 기업으로 선정되면서 어깨가 더욱 무거워졌다. DJSI 기업이란 미국의 다우존스와 스위스의 기업평가회사 샘(SAM)이 기업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전세계 2500개사를 대상으로 평가해 상위 10% 이내에 든 우수 회사들을 지칭한다. 삼성SDI는 동종업체들 중 3위를 기록했다. 김 사장은 “매년 발표되는 DJSI 기업에서 제외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이 더욱 커졌다”고 털어놨다.

    “우리가 ‘DJSI’ 기업 심사 대상이었는지도 몰랐습니다. 아무래도 2003년 발간한 지속가능성 보고서가 많은 영향을 미쳤겠지요. 사실 국내의 다른 많은 기업도 지속가능경영 성과 부분에서 선정될 수 있는 충분한 실적을 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홍보가 제대로 안 되어 있는 것이죠. 이젠 우리 기업들도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발간하는 등 경영 성과를 적극적으로 글로벌 네트워크에 노출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지속가능경영에서 강조하는 또 다른 대목이 바로 윤리경영과 사회환원이라고 들었습니다. 10년째 벌여온 개안(開眼)수술 사업은 삼성SDI의 상징처럼 돼 있습니다만.

    “우리는 디스플레이 업체입니다. ‘삼성SDI를 통해 세상을 본다’는 광고 카피와도 맞아떨어진 것이 개안수술 사업이지요. 실로암병원과 손잡고 특수차량에 이동병원을 설치, 산골 등지를 찾아다니며 녹내장을 앓는 시각장애인들을 만났습니다. 10년 동안 수술로 시력을 회복한 사람이 2700명입니다. 올해는 무료 개안사업은 물론, 도우미견 사업, 매칭 그랜트(Matching Grant), 자원봉사활동을 4대 축으로 한 사회환원활동을 더욱 강화할 방침입니다.”

    -환경경영을 더욱 가속화하기 위한 계획으로는 어떤 게 있습니까.

    “환경효율이 높은 제품 생산에 투자를 아끼지 않을 생각입니다. 향후 규제가 예상되는 PVC(비닐), 할로겐 등을 사용하지 않는 신기술을 개발할 겁니다. 차세대 친환경 디스플레이인 OLED에 대한 연구도 강화해야 합니다. OLED는 기존의 디스플레이에 비해 분해성이 우수하고 자원 사용량과 소비전력이 적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글로벌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삼성SDI에도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다. 문제점을 인식·개선하고 선진 기준을 따라가기에만 급급했지, 정작 글로벌 협약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표명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유럽의 각종 환경협약들이 때로는 일본과 한국 기업의 성장을 견제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유럽 국가들이 제정한 각종 환경규제들을 살펴보면 한국 기업들의 의사가 반영된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반면 일본 기업들은 환경규제 협약에 맞서 좀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고요. 삼성SDI는 교토 의정서, ROHS, 폐전기전자제품처리지침(WEEE) 등 각종 협약에 대해서 자사의 의견을 반영할 로비 창구를 마련했습니까.

    “허허허…. 일개 기업이 국가간 협약에 대응하는 로비창구를 만드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일본의 경우 비슷한 사업군의 업체들이 협회를 조직해 정부의 힘을 얻어 조직적으로 대응하는 거지요. 한국도 이제는 정부기관과 경제단체가 힘을 모아 개별 기업의 입장을 대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회사와 관련된 환경규제에 대한 의견은 환경 전담기구인 지속가능성경영(SM) 추진사무국을 통해 제출한 적이 있습니다. ROHS가 규정하는 PDP 패널 속의 납 성분 함유량 기준에 대해 항의하는 정도였지요.”

    ‘디지털 德將’의 꿈

    김순택 사장은 1972년 구학서 신세계 사장, 고홍식 삼성아토피나 사장, 이용순 삼성정밀화학 사장 등과 함께 삼성그룹에 입사했다. 처음 제일합섬에 배치된 그는 본사 인사팀의 발탁으로 1978년 삼성그룹 비서실 감사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1986년에 이사, 1988년 상무가 됐다. 그의 동기들보다 늘 승진이 빨랐다. 삼성 비서실 감사팀장으로 이름을 날리던 시절, 1년에 183일을 집에 들어가지 않고 일에 매달린 집념의 소유자다.

    김 사장은 신입사원 교육 때 언제나 첫 강사로 나선다. 신입사원 모두 최고경영자가 될 수 있다는 꿈과 비전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신입사원의 부모에게는 감사 편지를 쓰고, 사원들에겐 e메일을 보낸다. 덕분에 ‘디지털 덕장(德將)’이란 또 하나의 별명이 생겼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CEO로서 남은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지금까지 거둔 성과에 안주할 수 없다는 듯, 열정 어린 답변이 돌아왔다.

    “국민에게 사랑받는 기업을 만드는 겁니다. 투명경영을 실현함으로써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고 싶어요. 그래서 ‘존경받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본보기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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