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호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과세 강화해 소외계층 챙겨야 성장 잠재력 커진다”

  • 박성원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 사진·박해윤 기자

    입력2005-10-25 10: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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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 1949년 전북 전주 출생<br>●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하버드대 박사(경제학)<br>● 상공부 중소기업국장·산업정책국장, 특허청장, 통상산업부 차관,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OECD 대사, 청와대 경제수석, 국무조정실장<br>● 現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한덕수(韓悳洙·56) 재정경제부 장관 겸 부총리를 인터뷰하기 전,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는 부총리에게 “학창시절에 사귀던 애인을 생각하면 웃을 수 있을 텐데요” 하고 농을 걸었다. 그러자 그는 정색을 하면서 “그러면 뚜껑이 열리죠”라고 했다. 예상치 못한 농담에 기자가 먼저 웃음을 터뜨렸다.

    “재경부를 모독하지 말라”

    최근 그는 국회에서 국정감사를 받으면서 몇 차례 진짜 ‘뚜껑’이 열렸다. 열린우리당 박영선 의원이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이하 금산법)’ 24조에 대한 재경부 개정안을 두고 “재경부가 삼성을 봐주고 있다”고 하자, 한 부총리는 “재경부를 모독하지 말라”고 언성을 높였다. 한나라당 이혜훈 의원이 “우리 당에서 제시한 감세(減稅)안을 자세히 읽지도 않고 고소득층을 위한 것이라고 폄하하면 정치공세”라고 하자, 그는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며 “감세는 재정 건전성에 문제가 된다”고 밝혔다. 고성이 몇 번 오가다 이 의원은 “지금 누굴 보고 소리를 지르냐”고 소리를 질렀고 이내 격한 논쟁이 붙었다.

    이제 국감은 끝났고, 부총리는 조용한 실무형 관료로 돌아왔다. 이름을 알리는 것보다 일을 중시하는 실무자들은 대개 남의 평가엔 크게 마음을 쓰지 않는다. 그도 그렇다. 10월12일 경기도 과천의 재경부 장관 집무실에서 만난 한 부총리는 인터뷰 도중 몇 번이나 “세간의 평가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가령 그는 “사람들이 내게 분배를 택할 것인지 성장을 택할 것인지를 묻지만, 그건 학자가 평가할 일이지 정부가 선택할 일은 아니다”고 했다. 언제쯤 무색무취한 스타일을 벗어나 부총리 고유의 색깔(정책)을 드러낼 것이냐고 묻자 “부답(不答)”이라며 “남은 나를 평가하고, 나는 일을 할 뿐”이라고 했다.

    그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 중 하나는 부총리가 된 뒤의 ‘변신’에 대해서였다. 그는 본래 전형적인 시장주의자다. 1991년 상공부 산업정책국장 시절 김종인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과 함께 재벌그룹 업종전문화 정책을 기획하고 지휘했다. ‘선택과 집중’ 없는 문어발식 계열사 확장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채찍 대신 당근을 주로 썼다. 비주력업종을 매각하는 재벌엔 여신관리 규제를 풀어주고, 품질관리우수 그룹엔 주력기업 한 곳을 추가로 인정해줬다. 그는 무리하게 기업을 다그치지 않았다. 정부 정책을 밀어붙이기보다는 시장에서 뛰는 기업의 선택을 믿었기 때문이다.

    한 부총리는 또한 개방주의자다.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시절(1998년 3월∼2000년 12월) 자유무역을 위한 중장기 통상정책을 내놓으며 “2006년부터 2020년까지 미국, 유럽,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겠다”고 다짐했고, “중국과 북한을 묶어 발해만 경제권을 개발하겠다”고 했다.

    재경부의 삼성 봐주기?

    그의 이런 행적을 보면 경제부총리가 되고 나서는 시장과 기업 활성화 정책부터 내놓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부동산 정책과 사회복지 확충에 ‘올인’하겠다고 했다. 그가 변한 것일까, 아니면 이 정부에 ‘코드’를 맞추는 것일까.

    이에 대해 한 부총리는 “시장경제와 개방은 필연적으로 소외계층을 만든다”며 “이들과 함께 가지 않으면 성장이 멈춘다”고 했다. 그는 “경제 주체의 생산성을 높이려면 부동산 투기에 휩쓸리지 않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경제수장인 그는 날로 늘어나는 재정수지 적자, 기업의 투자 부진, 사회복지 예산 재원 마련 문제에 직면해 있다. 하나같이 난제다. 최근엔 금산법과 관련, 재경부가 삼성을 봐주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우선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금산법 논란에 대해 질문했다.

    -지난해 11월 재경부가 금산법 개정안을 낸 계기는 무엇입니까.

    “지난해 금융감독위원회가 금융감독원을 통해 전체 금융기관을 검사했어요. 그 결과 20건의 금산법 24조 위반 사실을 적발했죠. 그런데 적발된 회사를 처리하는 법이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예컨대 의결권 제한이나 처분조항이 없었던 거죠. 그래서 금감위가 재경부에 법 개정을 요청한 겁니다. 기업이 24조를 위반하면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또 법이 정비되기 전에 위반한 기업은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를 정해야 했습니다. 미비한 법적 조항을 바로잡을 뿐 아니라 반대로 이를 승인해주는 경우도 마련해야 했어요.”

    논란의 핵심이 바로 금산법 24조다. 이 조항을 만든 것은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금융기관이 고객의 돈으로 산업자본을 지배하고, 동시에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지배하는 것은 금융의 원활한 발전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이 조항에 따르면 금융계열사가 비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주식을 단독으로 20% 이상 또는 다른 계열사와 합쳐 5% 이상 보유할 경우 금감위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금감위가 적발했다는 20건은 이 조항을 위반한 것이다.

    -재경부가 삼성을 봐주고 있다고 비난받는 것은 금산법 24조의 시행령에 공정거래법 11조를 적용했기 때문입니다. 공정거래법 11조는 재벌의 금융회사가 계열사 지분을 소유하는 비율을 최대 15%로 하자는 거죠. 참여연대도 이의를 제기했지만, 이 시행령대로라면 현재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 7.25%를 갖고 있는 것이 합법화될 뿐 아니라 앞으로도 7.75%를 더 살 수 있게 되지 않습니까.

    법 뛰어넘는 시행령은 없다

    “그건 틀린 이야기예요. 공정거래법 11조는 금융계열사가 상장·등록한 비금융계열에 대해 최대 30%까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에요. 2008년 4월부터는 최대 15%까지 허용되고요.

    그런데 금산법 24조에 따르면 금융계열사가 다른 비금융계열사의 주식을 5%이상 소유할 수 없어요. 한쪽에서는 최대 30%까지 의결권을 허용하고, 한쪽에선 5%이상 소유할 수 없게 하는 것이지요. 참여연대가 걱정하는 것은 금산법과 공정거래법이 이처럼 충돌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재경부도 시행령을 만들 때 이런 부분을 감안해서 정리해야 한다고 의견을 낸 것입니다. 앞으로 국회에서 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개정된 법률의 취지에 맞추어 시행령을 만들어가야죠.”

    -참여연대는 재경부의 안대로 시행령을 고치면 과거에 위법한 기업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법은 금지하는데 시행령이 면죄부를 준다면 하위법이 상위법을 무력화한다는 것이죠.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시행령은 법을 위반해서 효력을 발휘할 수 없어요. 새 법이 의결권을 제한하고 있는데, 시행령에서 된다고 허용되지는 않습니다. 시행령은 법이 고쳐지면 앞으로 어떤 문제가 생길 것인지 검토해서 정리해놓은 겁니다. 예를 들어 은행이 원하지 않는데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이런 경우에 취득해도 되도록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까지 검토해서 정리해놓은 겁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도 이해를 한 것 같아요.”

    이에 대해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한성대 교수·경제학)은 “당연히 재경부가 법에 어긋나는 시행령을 만들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그러나 금산법 24조의 취지를 벗어나는 시행령을 만들 우려는 여전히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시행령에서 규정한 공정거래법 11조를 악용하면 비금융계열사의 지분을 금융계열사가 넘겨받아 금융계열사가 30%(2008년까지는 15%)를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카드 등 7개사 의결권 제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 7월5일 국무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한 부총리께 “금산법 개정안이 삼성에 면죄부를 준다는 논란이 있다”며 설명을 부탁했으나 설명을 들은 대통령이 미흡해했다고 합니다. 왜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습니까.

    “사실이 아닙니다. 법안 제안자로서 금산법 개정의 입법 추진 배경이나 주요 내용을 충분히 설명했죠. 다만 설명 도중에 이정우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이 금산법 부칙과 관련해 삼성에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문제를 제기했어요. 그래서 이 위원장이 언급한 기업의 주식 취득 시기, 소유비율 등 사실관계를 실무자에게 확인해서 다시 설명했죠. 그래서 재경부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겁니다.”

    -10월10일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이 방송 토론회에 나와 박영선 의원의 개정안을 지지한다고 했습니다. 금산법을 위반한 기업의 초과 지분을 5년 유예한 뒤 처분하는 안(案)인데, 어떻게 봅니까.

    “그건 개인적인 생각이겠죠. 정부 안은 변함이 없어요. 요약하면, 앞으로 24조를 위반한 경우에는 벌칙 및 과태료 부과대상이 됩니다. 초과지분에 대해서는 의결권 제한, 그리고 처분 같은 시정조치 대상이 됩니다. 처분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이행강제금까지 부과됩니다. 그러나 처벌조항이 만들어지기 전에 위반한 기업의 초과지분에 대해서는 의결권 제한 정도면 적절하다고 봅니다. 공정거래법에선 주로 의결권을 제한하고 있으니까요. 이는 삼성카드, 동부화재, 동부생명 등 7개 금융회사에 적용할 수 있을 겁니다.”

    -동부화재와 동부생명은 2003년 아남반도체 지분을 초과 소유한 부분에 대해 금감위로부터 처분명령을 받지 않았나요?

    “금산법으로 처분한 것은 아니고, 감독명령권으로 처분한 거예요. 그리고 동부건설 지분을 초과 소유한 부분은 아직 처분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이 문제를 단지 재경부가 삼성(삼성카드)을 봐주기 위한 것이라고 보는 논리는 맞지 않습니다. 특정 기업을 봐주기 위해 법률개정을 추진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그런 의도도 없어요.”

    -금산법이 생기기 전(1997년 이전)에 승인 조항을 어긴 기업, 예컨대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 7.25%를 소유한 것은 어떻게 됩니까. 5%를 초과했는데요.

    “금산법 24조 단서 조항에는 ‘다만 이 법 시행 당시 금융기관 설립에 관한 법률에 의해 인가나 승인을 받은 경우에는 이 법에 의해서 승인·인가를 받은 것으로 본다’고 명료하게 나와 있어요. 그러니까 삼성생명이 갖고 있는 7.25%까지는 인정하자는 겁니다.”

    부동산 투기 막아야 성장 잠재력 확보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부동산 투기를 막는 것이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금산법 관련 질문은 이쯤 해두고요. 부총리께선 1990년대에 상공부 산업정책국장, 통상교섭본부장, 기업활성화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1991년 가을 ‘신동아’가 창간 60주년 기념으로 ‘한국, 21세기에의 도전’이란 공개토론회를 열었을 때, 산업정책국장으로 나와 “미국과 유럽은 경쟁력을 상실한 사양산업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는데, 한국은 자동화, 생산성 향상, 구조조정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자”고 하셨더군요.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얘기를 한 것 같아요. 지금은 부총리란 자리 때문인지….”

    -실무자일 때는 줄곧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쪽으로 일했는데, 부총리가 되고 나서는 사회복지와 부동산 정책에 전념하겠다고 하니 얼른 와닿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생각이 바뀐 겁니까, 이 정부에 코드를 맞추는 겁니까.

    “부동산 투기를 막는 것은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것과 직결됩니다. 경제 주체가 투기이익을 좇아다니면 생산성이 올라가겠습니까. 제가 산업정책국장이던 1991년에 업종전문화 정책을 강하게 추진했어요. 대기업이 한국 경제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기 때문에 기업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려면 업종을 전문화하고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연유로 김종인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과 함께 대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매각 정책을 폈어요.

    부동산 자체가 투기이고, 투기가 판을 치는 경제에선 기업 주체가 경쟁력을 강화할 까닭이 없잖아요. 은행에서 돈 빌려 부동산을 사면 몇 년 뒤에 땅값이 올라 그 땅을 거저 갖다시피 했죠. 그 무렵 시화공단과 남동공단을 만들 때 거기 들어오겠다는 기업이 얼마나 많았는데요. 일단 땅만 사놓으면 돈이 됐으니까. 그래서 공장입지법을 만들어 업종별로 땅을 몇 평씩 살 수 있다는 규정을 만들기도 했어요. 그 모든 것이 다 부동산 투기를 막으려고 했던 일입니다. 기업이 열심히 노력해서 월급 올려줘봐야 월세, 전세금이 확 오르면 허사잖아요.”

    -8·31 부동산 대책은 효력을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대책이 나오기 전인 올해 초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지 않았습니까. 다주택 보유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주택거래신고제 도입 등을 담은 2003년 10·29 대책 이후 부동산 투기를 막는 데 실패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봅니까.

    “10·29 대책이 충실하게 집행되지 못한 거죠. 가수요를 없애기 위한 정책의 입법 취지도 퇴색했고요. 공급정책도 효과적으로 작동되지 않았습니다. 시장이 그걸 알고 (가격이) 뛴 거죠. 솔직히 우린(정부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억제정책이 조금 미비해도 가수요나 투기수요를 잡을 수 있다고 봤어요.”

    -부동산 정책 얘기가 나왔으니 한 가지 더 묻겠습니다. 최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한국 정부에 ‘부동산 정책은 시장친화적으로 추진해야지, 규제를 강화했다가 경기가 위축되면 부양책을 쓰는 방식으로 운영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타당한 지적인가요?

    “OECD의 권고사항은 우리의 부동산 정책방향과 같아요. 주택공급 확대에 주력하고, 규제보다 보유세·양도세를 높이고 있거든요. 주택공급은 일차적으로 시장이 해줘야 안정됩니다. 시장이 값싼 주택을 많이 공급하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게 정부의 핵심 대책입니다. 정부는 서민이 싼값으로 주택을 마련하도록 연소득이 2000만원 이하일 경우 모기지론 금리를 낮췄습니다. 또한 100만호의 임대주택을 짓고, 전세자금 융자도 확대하고 있습니다.”

    복지예산, OECD 국가 중 꼴찌

    -최근 이해찬 국무총리가 “사회안전망 구축 대책을 마련하라고 했더니 재경부와 예산처 1급 공무원들이 서로 떠넘겨 시간만 허비했다”며 강하게 질타했습니다. 사회안전망 강화는 부총리께서 취임사에서부터 강조한 것인데, 재경부 1급 공무원들이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건 전달이 좀 잘못된 것 같아요. 총리에게 그 문제로 여러 번 말씀드렸어요. 사회안전망 재원을 확충하는 방안은 세 가지예요. 기존의 지출을 조정해서 충당하거나, 빚을 얻든가, 재원을 확충하는 것이죠. 내년 사회안전망 확충 예산(1조4000억원)은 이미 마련했고, 문제는 2007년부터 2009년까지 7조2000억원을 만드는 것인데, 이 계획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미스커뮤니케이션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속해서 협의해갈 것입니다.

    예전엔 성장 잠재력을 높이려고 임금과 가격을 때려잡았어요. 그런데 요즘은 그렇게 안 됩니다. 시장경제, 개방경제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는 소외계층이 생깁니다. 과거엔 정부가 소외계층을 모른 척했어요. 지금은 이들과 함께 가지 않으면 사회적 신뢰가 형성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성장 잠재력이 떨어지거든요.”

    -사회복지 예산 7조2000억원은 어떻게 마련할 계획입니까.

    “크게 세 가지가 있어요. 우선 음성 탈루 소득을 막아 과세를 강화할 겁니다. 국세청, 국민연금, 의료보험조합 등과 함께 정확한 소득을 조사하고 거기에 맞게 과세하는 거죠. 두 번째로는 비과세·감면을 축소하거나 폐지할 계획입니다. 고용이나 투자 혹은 수출 촉진의 명목으로 한시적으로 도입된 비과세 조항을 단계별로 줄이는 거죠. 비과세·감면 규모는 18조7000억원에 달합니다. 이는 전체 소득의 15%에 해당하는데, 과도한 측면이 있습니다. 이걸 해마다 10%씩만 줄여도 2009년까지 5조원의 세수(稅收)가 확보됩니다. 마지막으로는 새로운 세금의 도입도 폭넓게 검토하고 있어요.”

    -소외된 계층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보호할 생각입니까.

    “우선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내실 있게 운영하는 겁니다.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해 기초생활 수급대상자를 확대할 계획이에요. 올해 6만명을 추가로 보호하고, 내년엔 11만6000명을 추가하려고 합니다. 노인과 장애인 같은 취약계층에 대해서도 지원을 확대합니다. 장애수당도 단계적으로 확대하고요. 2007년엔 중증 장애수당을 신설합니다. 노인요양보호시설도 2008년까지 해마다 110개씩 늘려갑니다. 중증장애인 보호시설은 현재 79개가 있는데, 2009년엔 329개로 늘어납니다. 또 저소득 계층이 스스로 먹고 살 수 있도록 자활근로사업의 대상을 확대하겠습니다. 올해 6만명에서 2009년엔 10만명으로 늘어나죠. 자활능력과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 자활공동체를 구성할 경우 무보증 소액 창업대출을 통해 자금을 지원할 것입니다.”

    -정부가 돈을 많이 쓰고도 사회복지 수준은 높아지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동의하지 않습니다. 돈을 별로 안 쓴 거죠. 우리나라의 복지비 지출이 OECD 국가 중 꼴찌예요. 사회복지 예산을 점차 늘려야 합니다. 그렇게 할 거고요.”

    인천 부산 제주도에 외국병원 들어온다

    -한국의 성장 잠재력을 확충하기 위한 여러 방안을 들려주셨는데, 정부의 기업 지원에 대해서도 어떤 복안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젠 우리 기업들이 세계적인 기업과 경쟁해야 하는데,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경제 전체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혁신, 선진경제, 성장 잠재력 확충…이런 얘기를 하는데 다 같은 내용입니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 가면 노동력이 늘지 않겠죠. 국내 투자도 늘지 않습니다. 결국 생산성 향상이 가장 중요한데, 개방을 촉진해 기업이 더욱 경쟁하도록 만들어야죠. 해마다 생산성을 2%씩은 올려야 합니다. 정부가 할 일은 보이지 않는 규제를 없애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수도권에 대기업 공장을 신설하면 안 된다는 조항은 경쟁 촉진을 제한하죠. 이미 수도권에 진입한 기업만 혜택을 본다면 이들의 독점적 지위를 인정하는 꼴이잖아요.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규제가 경쟁을 가로막는 경우가 많아요. 고쳐야죠.”

    -개방을 촉진한다고 하셨는데, 교육 의료 법률 등 남은 분야 가운데 어느 것이 먼저 개방될까요.

    “다 개방해야 한다는 정책을 밀고나가기 때문에 시차는 없을 겁니다. 교육 분야는 우선 우리 대학을 국제경쟁에 노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외국 대학이 한국에 공익법인 형태로 들어오는 데는 돈이 너무 많이 들어요. 외국 대학은 정부더러 대학을 세워달라고 하는데, 한 학교만 지어도 수천억원이 듭니다. 국내 대학과 외국 대학이 공동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대학이 이미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아직 그리 활발하지는 않아요.”

    -이유가 뭘까요.

    “한마디로 외국 대학이 관심을 갖지 않는 거죠. 관광전문대학이나 물류전문대학은 들어올 겁니다.”

    -외국 대학의 관심을 끌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적극적으로 제휴해야죠. 때로는 대학이 나서는데 정부가 막는 경우도 있어요. 이젠 국내 대학이 외국 대학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도록 정부가 대학을 부추겨야 합니다. 외국 중·고등학교는 이미 경제자유구역에서 일부 허용되고 있으니까 대학보다 변화가 빠를 겁니다.”

    -경제자유구역엔 외국 병원도 들어오죠?

    “인천경제자유구역에 두 개 정도 들어오려 하고, 부산과 제주도에도 들어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고급 치료를 받고자 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세워질 겁니다. 이젠 의사도 국제경쟁을 해야죠.”

    -중견기업의 생존이 불투명하다는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대규모 투자계획을 감당하지 못한 탓인지 중견기업들이 본래 사업에서 벗어나 부동산 투자나 손쉬운 외식사업에 뛰어듭니다. 이들의 투자여력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은 없습니까.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과천 장관 집무실의 한덕수 경제부총리.

    “중견기업이 정부 지원 시책의 사각지대에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인데, 정부가 중소기업을 과도하게 지원하다 보니 중견기업이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낄 겁니다. 중장기적으로는 중소기업도 자생적으로 생존하게 해야 합니다.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이 줄면 중견기업의 박탈감이 좀 덜해지겠죠. 제가 보기엔 중견기업이 의지와 아이디어만 있다면 문제가 없을 것 같아요. 요즘 금융권 개혁이 한창이잖습니까. 돈을 벌고 있는 쪽에선 돈 빌리기가 쉽죠. 시중에 자금이 풍부해 은행이 도와줄 겁니다. 그런 면에서는 기업 환경이 더 좋아졌다고 봐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을 추구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걸림돌은 대기업 공장의 해외이전입니다. 대기업을 따라갈 수 없는 중소기업 처지에선 답답한 게 많습니다.

    “만약 대기업이 안 나가면 다같이 망할 겁니다. 중소기업엔 기회조차 없어지는 거죠. 대기업이 해외로 나가는 것을 막을 수도 없습니다. 대기업 공장이 해외로 나가 (연관 중소기업과) 거리가 좀 떨어진다고 해도 위험요인은 아닐 수 있습니다. 요즘엔 공장재고가 실시간으로 파악되고, 물품이 없으면 즉각 해당 업체에 주문이 들어가잖아요. 국내에 있으면서도 해외로 나간 대기업에 부품을 공급하는 방법이 있을 겁니다.

    중소기업과 서비스업의 경쟁력 강화는 향후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을 확충하는 데 중요한 정책과제예요. 중소기업 구조조정 세제지원 입법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또 서비스업에 대해서는 영세자영업, 예술, 자산운용업, 관광이나 레저, 의료 등 10개 분야를 중점 육성 대상으로 선정해 대책을 마련할 겁니다.”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 재임 중에 여러 건의 해외투자를 유치한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요즘 일각에선 ‘외자(外資)에도 국적이 있다’며 외자도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어떻게 봅니까.

    “일부 국민이나 언론이 그런 견해를 가질 수 있죠. 그러나 정부의 정책은 확고합니다. 외자와 내자(內資)를 구분하지 말자, 외국 자본도 국내에서 활동하면 국내 자본으로 봐주자는 거죠. 외국인 지분이 과도한 것 아닌가, 이익을 많이 챙겨 가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어요. 그건 세무행정이 제대로 이뤄지면 해결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외국 기업에도 확실하게 과세하고 있지 않습니까. 법대로 하고, 법이 미비하면 보완하면 됩니다.

    한 가지 염두에 둬야 할 것은 국내 기업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외국 자본은 과감하게 투자했다는 사실입니다. 국내 연기금이나 자본은 투자하지 않았죠. 외국 자본이 위험을 각오하고 투자했다가 이제 과실을 가져가는 거죠. 이걸 보고 배가 아프다면 세계화 시대에 사는 국민이 아닙니다. 얼마 전 인천경제자유구역에 가서 강연을 했는데, 거기서 그랬어요. ‘이곳은 개방경제의 심벌이니까 리더들이 외국인과 함께 사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넓은 땅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라고요. 외자 없이 발전한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아일랜드는 지금도 연 8∼9%씩 성장하고 있는 데 다른 게 없습니다. 외자 들여온 게 다예요. 단기 자본이다, 아니다 이런 게 중요하지 않아요. 정부가 건전성을 제대로 감독하고, 내외국인을 똑같은 수준으로 대우하면 됩니다.”

    감세혜택은 부유층에 집중

    - OECD는 한국 정부에 급속한 고령화와 통일에 대비해 적자재정은 곤란하다며 2009년까지 재정균형을 맞추라고 요구했습니다. 2009년까지 균형재정을 맞추는 것이 가능할까요.

    “해내야 합니다. 이번에 국회에 제출한 2005∼2009년 국가재정운영계획에서 대체로 적자규모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잡았어요. 정부의 역할을 줄이고 민간자본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합니다.”

    -한나라당이 세금을 9조원 가까이 줄이는 감세방안을 내놓았습니다.

    “일반적으로 감세정책은 근로의욕과 투자의욕을 고취합니다. 그러나 감세혜택이 주로 부유층에 집중돼 소득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어요. 그러면 세입기반이 잠식되고 재정 건전성이 악화됩니다. 혜택을 보는 고소득층은 돈이 더 생긴다고 소비를 늘리지 않기 때문에 소비 증대로 이어지는 효과도 적어요. 미국은 레이건 대통령 시절에 대대적인 감세정책을 폈는데, 재정적자만 확대됐지 경기 부양효과는 미흡했어요.

    한나라당에선 소득세와 법인세를 줄이자고 하지만, 우리나라 소득세(35%)와 법인세(25%) 세율은 OECD 국가 평균(소득세는 37%, 법인세는 27%)보다 낮아요. 그동안 지속적으로 낮췄기 때문에 추가적인 세율 인하는 신중하게 검토해야 합니다.”

    성장과 분배는 시차만 있을 뿐

    -얼마 전 대통령 경제자문회의 위원을 지낸 분이 한 부총리를 언급하면서 “뛰어난 능력이 있지만, 굉장히 힘들어할 것”이라며 “부총리에게 힘이 실려 있지 않고 위원회가 너무 많아 한목소리를 내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맞는 얘기입니까.

    “걱정해주는 것은 고마운데, 현실적으로 전혀 그렇지 않아요. 일하는 데 지장은 없습니다. 지향하는 목표가 같고, 생각이 다르지 않고, 또 재경부가 경제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참여했어요. 누군가 갑자기 의견을 달리해서 재경부 의견과 다르다고 할 사람이 없어요. 그분의 의견은 그냥 보통 사람의 걱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지향하는 목표’라는 게 뭡니까.

    “소외계층 없이 잘사는 거죠.”

    -국민 모두가 궁금해하는 경제 전망에 대해 묻겠습니다. 부총리 취임 당시 올해 경제를 낙관적으로 본다고 하셨는데, 요즘 들어 경제예측기관들이 올해 성장률을 낮춰 잡습니다. 올해 전망은 어떻습니까.

    “올해 4%대, 내년엔 5%대로 예상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반기에 경제성장의 스피드가 4%에서 5%로, 즉 잠재성장률 수준으로 복귀한다는 겁니다. 소비가 상당히 빠르게 회복되고 있지만, 투자는 아직 미흡합니다. 수출은 여전히 두 자리 숫자로 늘고 있고요.”

    -부총리께선 “무색무취한 사람이 되겠다”고 했고, 또 그렇게 소문이 나 있습니다. 이젠 부총리만의 색깔, 혹은 ‘짠맛’을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소이부답(笑而不答, 웃을 뿐 말이 없다)인데요. 남이 나를 평가하는 것이지 나는 일을 할 뿐이에요. 의외로 많은 분이 저에게 ‘성장이냐 분배냐, 빨리 얘기하라’고 합니다. 그건 학자가 판단하는 거예요. 성장과 분배는 상황에 따라 시차를 두고 올 뿐입니다. 어느 나라가 성장만 하고 분배는 모르겠다고 하고, 어느 나라가 성장하지 말고 그냥 나눠 먹고 말자고 합니까. 성장과 분배는 연결돼 있고 조화가 이뤄져야 합니다. 혼자 잘살겠다고 하다가 고꾸라진 나라가 어딥니까. 북한이잖아요. 인도, 베트남, 중남미도 개방하고 있어요. 문을 막아서 망한 나라는 많지만, 문을 열어서 망한 나라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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