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3월호

아내의 명품 본능

  • 김민경 동아일보 주간동아 차장 holden@donga.com

    입력2007-03-12 11: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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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의 명품 본능
    거의 동시에, 두 남성이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아내가 ‘명품 가방’을 사달라고 해서, 어떤 브랜드가 좋을지 고민 중이라는 것이다. 두 사람이 아내에게 10년여 만에 큰맘먹고 가방을 선사하기로 한 건 연말정산과 상여금 덕분이다. 두 사람은 똑같이 “아내가 원래 명품 같은 거 알지도 못하고, 원하지도 않는 사람인데, 가방만은 좋은 것이 하나 필요하다고 한다. 여자들은 그런 면이 있나보더라”고 말했다.

    쯧쯧. 명품을 알지도 못하고, 원하지도 않는 사람이 명품 가방을 사겠다고 했을까? 그녀들에게 물어보자. 백화점에 가거나 미용실에서 잡지를 펼칠 때마다 그녀들의 각막엔 빛나는 명품 로고가 새겨졌을 것이다. 그녀들은 연예 프로그램에서 김희애나 황신혜를 보는 게 아니라 기십만원대 주름제거 에센스를 발랐다는 팽팽한 피부와 가방을 본다. 40대 여배우들의 팔이 아름다워 보이는 건 악어가방 덕분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단지 그녀들은 살림꾼의 본능으로 남편의 월급과 아이 과외비와 명품 가격을 비교해보나마나라는 것을 잘 알기에 ‘명품을 알지도 못하고, 원하지도 않는 사람’인 척 위장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녀의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하긴 몇 년 전 아내가 샤넬 화장품을 산 적이 있긴 해요.”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경기가 나쁠 때 샤넬 립스틱이나 크리스찬 디오르 향수가 더 잘 팔린다. 쇼핑 욕구를 채우기 위해 사람들은 돈이 없을 때 상대적으로 사기 쉬운 명품 브랜드의 화장품이나 액세서리를 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1만원짜리 립스틱이나 향수를 사고는 ‘올해의 신상품 샤넬’을 쇼핑했다는 만족감을 얻기 위해서다. 또한 가짜-짝퉁도 그 시즌 화보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제품이 판매된다. 쇼퍼홀릭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이번 시즌 ‘머스트해브 아이템’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이다.

    마케팅 담당자들이 이를 모를 리 없다.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넘어가면 립스틱에서 가방으로 프로모션 타깃이 바뀐다. 스타의 인터뷰에는 한결같이 “다른 건 동대문에서 사도 가방만은 좋은 걸 들어요”란 말이 들어 있다. ‘가방이 그 사람을 말해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3년 전부터는 ‘구두는 신발 이상’의 무엇이 됐다. 최근엔? ‘시계는 한 사람의 우주’라고들 한다. 그러나 부적처럼 가방, 구두, 시계 달랑 하나만 명품을 가진 사람은 보지 못했다. 나는 두 남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들 그렇게 시작해요. 처음엔 가방, 다음엔 구두, 옷, 그 다음엔 시계….”

    남자들은 잔뜩 겁을 먹었다. 그러나 현명한 그녀들은 결혼 10년여 만에 남편이 사준 명품 가방을 명품스럽게 들고 다닐 것이고, 또 몇 년 지나 남편이 보너스를 두둑이 받아올 때쯤 좋은 구두 한 켤레 사고 싶다고 할 것이다. 그때 섹시한 하이힐을 선사하면 된다. 전혀, 전혀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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