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호

보잘것없는 컴퓨터로 만들어낸 ‘기적의 드라마’

  • 류현정 전자신문 기자 dreamshot@etnews.co.kr

    입력2007-05-02 16: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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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잘것없는 컴퓨터로 만들어낸 ‘기적의 드라마’
    올해는 우리나라에 컴퓨터가 도입된 지 꼭 40년째 된다. 1967년 4월 미국 IBM의 컴퓨터 ‘IBM1401’과 같은 해 5월 일본 후지쓰의 ‘파콤222’에 대한 통관 허가가 떨어졌다. 인천항 도착일자로는 파콤222가 한 달 더 일찍 국내에 상륙했다.

    시곗바늘을 돌려 그 시절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크다. 그때가 바로 눈부시게 성장한 우리나라 IT산업의 출발지점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당시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은 인구조사 등으로 업무량이 날로 증가해 컴퓨터 도입을 미룰 수 없었고, 이에 IBM 컴퓨터를 도입하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기획원이 도입한 우리나라 최초의 컴퓨터 IBM1401은 사실 한물간 모델이었다.

    1960년대 후반은 집적회로를 이용한 3세대 IBM 컴퓨터 ‘시스템370’이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던 때다. 시스템370은 미국 내 컴퓨터시장에서 50% 이상을 점유한 초절정의 인기 모델. 주문이 밀려 실제 도입하는 데 1년 반 이상 걸릴 판이었다. 어쩔 수 없이 기획원은 8년 지난 모델을 선택했다.

    IBM의 한국지사 설립 사연도 흥미롭다. 해외 진출의 기치를 높이 세운 IBM은 1932년 호주, 1937년 일본에 지사를 세운 데 이어 태국, 미얀마, 말레이시아, 대만, 홍콩, 스리랑카에까지 법인과 연락소를 만들었다. 그러나 한국지사 설립은 생각조차 없었다. 당시 한국은 전쟁의 폐허에서 막 벗어난 후진국으로 국민총생산은 보잘것없었다. IBM의 판단으로는 영업을 통해 매출을 일으킬 수 있는 경제력을 지닌 국가가 아니었다.

    결국 IBM 한국법인은 1401 도입이 결정된 1967년에야 설립된다. 1대 사장은 미국인이었고 2대 사장은 필리핀인이었다. 물론 IBM이 과소평가했던 한국시장은 이후 엄청나게 성장했다. 현재 한국IBM은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 중 매출 규모로 수위를 다툰다. 반면 그 무렵 여건이 좋았던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력은 제자리걸음이다.



    상륙일 기준으로 국내 도입 컴퓨터 1호로 꼽히는 후지쓰 ‘파콤’ 시리즈. 이 제품의 후속 모델이 1970년대 초 포항제철(현 포스코) 전산화 프로젝트에 공급된 에피소드도 재미있다. 포항제철의 신화를 이룩한 박태준씨가 당시 벤치마킹한 기업은 신일본제철소였고 이 회사의 전산 시스템이 후지쓰 파콤이었다. 1960년대 후반, 대일 청구권 자금을 종자돈으로 탄생한 기업 포스코가 전산 시스템 하나까지 일본을 벤치마킹하며 시작했지만, 오늘날 세계적인 철강 기업으로 성장했다.

    8년 지난 구형 모델이 우리나라 컴퓨터 1호였다는 점은 씁쓸하지만 이런 악조건에서도 한국은 기적 같은 성취를 일궈냈다. 이 때문에 한국의 컴퓨터 역사는 한 편의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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