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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기자의 쇼퍼홀릭

복고풍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 김민경 동아일보 ‘The Weekend’ 팀장 holden@donga.com

복고풍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복고풍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디자이너 조르주 아르마니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아르마니 카사.

고백하건대, 패션이나 트렌드를 다루는 기자들의 가장 큰 딜레마는 눈이 팍 튀어나오게 잘 빠진 악어백들을 소개하면서 일말의 청교도적 자기검열 때문에 ‘백 없어도 행복하리라’는 사족을 덧붙이게 된다는 것이다. 차이나펀드 따위 빨리 환매해서 아프리카산 악어백을 사세요, 정말 새끈하지 않아요? 라고 감히 말하지 못한다. 그랬다간 악플이 3700개쯤 달릴 테고, 님은 돈이 없으신 거죠, 라고 받아넘겼다간 회사 서버가 다운되는 재앙을 맞으리란 걸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또 이번 시즌의 잇백(it bag·최신 유행 명품 가방) 앞에서 같이 침 흘렸던 동료 기자들의 ‘먹이’가 되어 자분자분 씹히게 되리라.

그래서 대신 이렇게 말하곤 한다. 다양한 컬러의 악어백이 인기 폭발이다, 남자들 사이에선 돈 물면 놓지 않는다는 악어지갑이 유행이다, 이렇게 한참 강조해놓고 악어백이 워낙 비싸니 장롱 안에서 어머니 아버지 쓰시던 악어백을 찾아 매치하시라고 말한다. ‘복고풍’이 유행이니까 말이다. 이건 악어백뿐 아니라 코트, 모피, 원피스와 모자나 장갑 같은 액세서리도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복고풍은 패션 기자들이 이번 시즌에 막 나온 럭셔리 아이템을 검약 정신으로 위장해 소개하기에 아주 좋은 방패가 됐다. 그렇다면 복고풍이란 패션기자들이 만들어낸 ‘벌거벗은 임금님’이냐고? 그럴 리가. 실제로 복고 트렌드는 지난 10년간 가장 강력한 패션 테마였다. 한때는 1980년대 디스코의 열기를 담은 복고풍이 유행이었고, 한때는 60년대 재키 스타일이 세를 얻었으며, 이어 80년대 프렌치룩이 유행했다. 이번 겨울엔 40년대 할리우드 배우들처럼 머리를 굽슬굽슬 말고, 새빨간 입술에 검은 아이라이너로 메이크업을 해야만 한다. 여기에 옷은 재키 스타일로 입든지 헵번 스타일로 입는다. 또는 1930년대 상하이의 불행한 갑부 인텔리처럼 차이나드레스나 프렌치 슈트를 입고 연말 파티를 빛낸 사람들도 있다. 이쯤 되면 ‘묻지마 복고풍’이라 할 것이다.

언론에서는 흔히 이를 경제 침체에 따른 대중의 심리적 불안감, 혁신적 아이디어의 고갈, 보수적 사회 분위기 등과 연결시킨다.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패션업계에서 복고풍이 이처럼 오랫동안 ‘첨단’이 되는 이유는 럭셔리업계가 그 시절의 이미지를 반복 재생산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즉, 1930년대 오트 쿠튀르의 발생기부터 1950년대 쿠튀르 전성기 때의 유산을 뒤져서 이를 변형한 신제품들을 내놓음으로써, 소수 귀족과 왕족들을 위해 장인이 수공업으로 만들었던 ‘메종(하우스)’의 이미지를 비싸게 판매하는 것이다. 1950년대에 태어난 샤넬2.55는 ‘타임리스백’이란 이름으로 지금도 최고의 인기를 얻는다. 이런 환상 뒤에는 대부분의 럭셔리 상품이 전문경영인 휘하에서 대량 생산되고 있으며, 심지어 중국의 저임금 수출품인 데다가, 우리가 아는 모든 ‘메종’이 몇몇 재벌그룹에 합병된 현실이 있다.

럭셔리 브랜드들이 복고풍과 메종 이미지를 통해서 얻어내려는 건 패션업계의 우위뿐만이 아니다. 럭셔리 브랜드 대부분이 보석과 화장품뿐 아니라 호텔과 리조트, 레스토랑과 주류, 초콜릿 사업에도 진출한다. 여기서 이들이 파는 것은 상품이 아니라 ‘이미지’다. 예를 들면 도쿄의 명물로 자리 잡은 샤넬의 베이지 레스토랑, 불가리 발리 리조트, 로베르토 카발리 보드카 등은 샤넬의 우아한 이미지, 불가리의 럭셔리한 이미지, 로베르토 카발리의 관능적 이미지를 상품화한 것이다. 이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은 없다. 더 이상 개성을 위한 ‘희소성’이나 대를 이어 물려주는 ‘견고함’ 때문에 럭셔리 브랜드를 사는 소비자도 없다. 쉽게 말하면 젊은이들이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이유와 비슷하다.

따라서 럭셔리 브랜드 기업들은 본사 차원에서 이미지를 전에 없이 엄격하게 관리한다. 20년 전 럭셔리 브랜드들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라이선스를 없앤 것은 물론이고, 쇼윈도를 세계적 아티스트에게 맡겨 전세계적으로 통일하고, 직원 개개인이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금지하기도 한다.

결국 복고풍이 유행한다는 말은 로고 뒤에서 빛나는 브랜드의 전통과 장인 의식을 찬미하는 새로운 아이템을 구입하라는 말이다. KW로 표시된 가격은 상품이 아니라 브랜드가 쌓아온 아우라에 치르는 값이란 점을 설득하는 것이다. 2008년에도 복고풍의 강세는 이어질 전망이다. 하지만 부디 장롱에서 어머니가 처녀 시절 들던 갈색 악어백이나 앞주름 잡힌 판탈롱을 꺼내진 마시라. 그것은 결코 유행하는 그것이 될 수 없다.

신동아 2008년 2월 호

김민경 동아일보 ‘The Weekend’ 팀장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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