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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기자의 쇼퍼홀릭

선물 사는 남자들

  • 주간동아 기자 ‘holden@donga.com’

선물 사는 남자들

선물 사는 남자들
“여자 친구에게 프러포즈하려는데요, 뭘 선물할까요?”

“티파니가 좋지 않을까요? 특히 결혼할 상대라면 말이에요.”

쇼핑을 자신에게는 절대 닥치지 않을 재난 정도로 생각하는 남성들도 이런 고민을 하게 되는 순간을 맞는다. 그 막연하고도 절박한 공포 앞에서 이런 질문을 해오면 난, 일단 정답을 불러준다. 이때 티파니는 가수 아니냐고 하면, 갈 길이 먼 거다.

티파니는 아주 유명한 보석 브랜드다. 마릴린 먼로가 부른 노래 ‘Diamonds are the girl‘s best friend’에도 나오고 트루먼 카포티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티파니가 바로 그 티파니다(카포티가 게이가 아니라면, 이런 소설을 쓰지 않았을 것 같기는 하다. 50년 전에 상류사회에 대한 동경을 ‘보석’이 아니라 브랜드 이름으로 표현했으니까). 이 영화에서 주인공으로 나온 오드리 헵번이 뉴욕 57번가에 있는 티파니 매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장면은 또 얼마나 유명한가. 지난해 국내 휴대전화 광고에서도 바로 그 장면이 사용됐다. 이런저런 이유로 티파니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대요’로 이어지는 사랑을 상징할 때 꼭 등장한다. 할리우드 로맨틱 영화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티파니 블루라는 하늘색 상자를 내밀며 프러포즈하는 장면이 진부해 보일 정도니까.

그때 세상에서 가장 환한 미소로 상자를 바라보며 여성들은 이런 생각을 한다. ‘우아, 티파니네, 돈 좀 썼구나. 외모와 달리 감각이 좀 있나봐. 앞으로 내 인생도 럭셔리해지려나. 어쨌든 상자는 열어보고 싶어! ’ 여성들은 종종 평범한 남자와 럭셔리 브랜드가 애매하게 뒤섞인 환상 속에서 프러포즈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니까 남성이 어떤 여성에게 티파니를 선물한다는 건, 문명사회에서 청혼을 전제로 한 프러포즈이고, 그것을 받는 건, 그렇게 하겠다는 뜻이다. 뜨거운 열정을 가진 남녀 간에도 이럴진대, 세상에 ‘부담 없이’ 주고받는 선물이란 없다.

한 기업에 다니는 친구가 이런 전화를 해왔다.

“여기 근무하는 직원이 말야, 선물을 받아서 투서가 들어왔는데 판단이 안 서네. 하청기업 사장이 마누라 시장바구니로 쓰시라고 하면서 줬다는데, 자기가 보기에도 명품도 아닌 것 같아서 차 트렁크에 싣고 다녔다는 거야. 이름도 못 들어본 브랜드인데다 내가 봐도 비싸 보이지 않던데 좀 억울할 거 같기도 해.”

들어보니, 샤넬이나 루이비통처럼 ‘사치’의 상징으로 알려지진 않았어도 분명한 이탈리아 럭셔리 명품에 가격도 만만찮은 브랜드였다. 럭셔리 브랜드의 특징은, 열쇠고리를 사도, 조선시대에 빨간 우단 천을 깔고 담아낸 왕의 ‘매화’처럼, 보드라운 융이나 미선지 등으로 제품을 감싸서 단단한 상자에 담거나 더스트백이라는 보호용 가방에 넣고 다시 브랜드의 자존심이 인쇄된 쇼핑백에 넣어 실크리본으로 묶어주는 데 있다. 그러니 브랜드 이름도 모르는 주제에 마음대로 ‘명품이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받아 넣기엔, 패키지가 너무 명품스러웠을 것이다. 그는 받는 순간, 이것이 한 가격한다는 것을 직감했을 것이다. 선물을 차에 넣은 건, 주신 분의 프러포즈를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엔 이런 기사도 실렸다. 중국인민회의와 인민정치협상회의를 앞두고 베이징의 명품 부티크에서 남성용 아이템들이 불티나듯 팔린다는 거다. 평소 뵙기 어려운 최고 권력자들에게 선물하기 위해서 관료들이 묻지마 쇼핑을 하기 때문이다(기사는 명백한 증거를 대진 못했다). 잘 차려입은 두 남자가 루이비통 매장에 들어와선 판매원에게 이런 식으로 묻는다.

“아주 높으신 분인데, 그분에게 어울릴 법한 가방 하나 주시오.”

컨설팅회사 베인앤컴퍼니는 지난해 중국에서 팔린 명품 중 절반 정도가 이러한 ‘선물’용이라는 나름의 조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선물용으론 어떤 게 많이 팔렸을까. 몽블랑 펜, 다이아몬드가 박힌 스위스 시계, 구찌 핸드백, 에르메스 스카프 등이 인기 있다는데, 관리들은 ‘엄청 비싸지만 티가 안 나는’ 에르메네질도제냐 양복과 살바토레 페라가모 구두를 좋아한다고 한다.

선물용 쇼핑목록을 보니, 우리나라의 경우와 아주 똑같다. ‘옷로비 사건’ 의 페라가모, ‘진승현 게이트’ 때 에르메스 가방과 벨트, ‘신정아 사건’으로 이름을 날린 에르메스 스카프와 반클리프아펠 보석,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가 선물받은 ‘다이아몬드가 박힌 스위스 시계’ 피아제. 이 선물들의 특징은 한눈에 어느 브랜드인지 알 수 있어서 비싸 보인다는 거다. 많은 고가 시계 브랜드 중에서도 보석 박힌 시계로 유명한 피아제가 선택된 이유일 거다.

남성들은 종종 여자친구나 아내에게 분홍색 립스틱, 장미 100송이, 레이스가 쪼글쪼글한 속옷 같은 걸 선물한다. 그리고 그녀가 스칼렛 요한슨으로 변신할 거라 믿는다. 여성들은 남성들이 향수, 마리아칼라스의 음반, 로얄코펜하겐 재떨이가 담긴 선물 포장을 풀다가 좋아 죽는 모습을 기대한다. 전직 대통령에게 선물을 한 기업가는 시골 사람들 앞에서 손을 들어 흔드는 팔목에서 번쩍번쩍 다이아몬드가 빛났다면 보기에 좋았을 것이다. 선물을 살 때, 사람들은 받는 사람의 사정 같은 건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말 그대로 선물은 주는 사람 맘이기 때문이다.

티파니박스는 로맨틱한 사랑의 선물을 상징한다. 특유의 파란색은 ‘티파니 블루’라는 애칭을 얻었다.

신동아 2009년 6월 호

주간동아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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