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호

2조8000억원대 당진화력 9·10호기 표류 내막

“지식경제부 부적절한 개입으로 사업 1년 지연”

  • 정현상│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9-06-08 10: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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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조8000억원대 당진화력  9·10호기 표류 내막
    2조8000억원대의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 당진화력발전소 9·10호기 건설공사 사업이 지식경제부(장관 이윤호·이하 지경부)의 부적절한 개입으로 난항을 겪어왔다. 발주처인 한국동서발전은 애초 2008년 6월 이 사업의 입찰공고를 낼 예정이었으나 지경부의 개입으로 지난 1년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시간을 끌어왔다. 그 결과 공사 착수 지연으로 3000억원(1일 8억~9억원)가량의 손실액이 발생했고, 국가적 전력수급계획에도 차질을 빚게 됐다.

    지경부는 올해 초 발주처인 한국동서발전 관계자들에게 기술 수준을 갖추지 못한 두산중공업과 특혜라고 볼 수 있는 사실상 수의계약을 하도록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겉으로는 두산중공업에 입찰 참여 기회를 주라는 것이었지만 내용상 두산이 사업권을 딸 수 있는 구조를 만들게 한 것. 한국동서발전은 공기업인 한국전력의 자회사이므로 지경부의 요청을 거절하기가 힘든 처지다.

    그러나 한국동서발전의 내부 제보로 올해 3월 감사원이 한국동서발전을 상대로 감사를 벌였고, 감사원은 “지경부의 요청이 부적절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은 “두산중공업이 공사한 영흥 1·2호기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잘 안다. 한국동서발전이 당진 9·10호기와 관련해 세운 계획대로라면 언제든 시행해도 좋다. 그게 아니면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는 요지의 내용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2조8000억원대 당진화력  9·10호기 표류 내막
    이후 한국동서발전은 사업 공급계약 방식을 국제경쟁입찰로 바꾸는 것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다만 국제경쟁입찰에 들어간다 해도 그 조건을 무엇으로 하느냐에 따라 수의계약과 다름없는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감사원과 발전업계는 이를 관심 깊게 지켜보는 상황이다.

    애초 2008년 6월 입찰 예정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올해 2월 이윤호 지경부 장관은 두산중공업 정지택 부회장으로부터 당진화력 9·10호기 건설사업과 관련, 수의계약을 하게 해달라는 청탁을 받고 지경부 K 실장에게 이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K 실장은 2월18일 한국동서발전 이길구 사장, 박상준 건설처장을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 사업권을 두산중공업에 줄 것을 요구했고, 이 사장과 박 처장은 “두산이 영흥화력 1·2호기 등을 건설했는데 기술력이 부족해 하자보수가 많았다”며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뒤 K 실장은 2월25일 P 사무관을 시켜 다시 한국동서발전 관계자들에게 같은 내용을 요구하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국동서발전은 당진 9·10호기에 대해 경제적인 기술 수준으로 확인된 발전 시스템(단위용량 100만kW급, 증기온도 600/600℃)을 국제공개입찰을 통해 도입하기 위해 2008년 6월 입찰안내서에 대한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참고로, 증기온도 표시 가운데 앞의 숫자는 주증기, 뒤의 숫자는 재열증기의 온도를 뜻한다. 증기온도가 높을수록 기술 수준이 높으며, 보통 10℃ 차이를 기술력의 한 단계로 구분하는데, 전문가들은 한 단계 높이는 데 2년간의 실증경험이 쌓여야 상용화가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2007년 10월 한국전력기술(KOPEC)과 설계기술 용역을 계약한 이후 기본 설계를 확정해 사업이 20% 이상 진행 중이었다. 이미 230억원의 설계비도 한국전력기술에 지급된 상태였다. 이 사업은 발주처인 한국동서발전 전체 설비용량의 20%를 차지하는 대규모다. 총공사비 2조8000억원 가운데 주기기인 터빈과 보일러 공급분만 약 6000억원대.

    무엇보다 한국동서발전은 당진 9·10호기에 도입하려는 터빈과 보일러 기술을 두산중공업이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보았다. 두산중공업이 주도해 설계한 영흥화력발전소 1·2호기, 당진화력 5~8호기, 태안화력 7·8호기 등 14기는 현재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는 당진화력 9·10호기보다 훨씬 낮은 증기조건(566/ 593℃)인데도 성능이 떨어져 중대한 결함이 자주 발생했다는 것. 발전 정지를 예방하기 위해 당진 5~8호기, 영흥 3·4호기는 증기온도를 약 15℃ 낮춰 운전해왔다.

    기술력에 대한 의견 차이

    특히 영흥화력 1·2호기는 보증효율(48.26/ 47·56%)과 출력(81만4000/ 80만kW)이 미달돼 고압 터빈을 신품으로 교체했으나 높은 진동 발생으로 출력을 낮춰 운전하는 등 막대한 손실이 발생해 보유사인 한국남동발전 측이 공사 계약금액(850억원)보다 많은 95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영흥 1·2호기는 국내 최초로 단위용량 80만kW급, 증기온도 566/566℃ 성능으로 격상시킨 발전소다.

    그러나 두산중공업은 전력연구원과 함께 정부주도형 연구과제로 세계적으로 상용화된 사례가 없는 차세대 화력발전기술인 단위용량 100만kW급, 증기온도 610/ 621℃를 선정해 기술개발을 해왔다며 기술력을 자신하고 있다. 2002년 8월부터 2008년 8월까지 수행된 이 프로젝트에 지경부가 381억원을 투입했고, 두산중공업이 315억원을 투입했다. 두산중공업은 이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관련 기술을 축적했다며 당진화력 9·10호기 건설을 수주하려 하는 것.

    2조8000억원대 당진화력  9·10호기 표류 내막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

    문제는 바로 이 지점이다. 두산은 위의 연구과제를 통해 신기술을 개발했다며 이를 국내 상용발전소에 적용해 해외에 수출할 수 있게 해달라는 쪽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증기조건 566/566℃ 시설에서도 결함을 내온 두산중공업이 그보다 네 단계나 위인 610/621℃의 발전시설을 짓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한다. 보통 네 단계를 극복하는 데 10년 이상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한국동서발전은 당진 9·10호기를 연료수급 여건을 고려해 상대적으로 값이 싼 아역청탄을 50%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를 진행했는데, 두산중공업이 수행한 연구과제는 비싼 역청탄만 사용할 수 있는 설계였다. 따라서 연료비가 비싸 경쟁력이 떨어지고 석탄 수급에도 상당한 문제점을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두산의 연구과제가 제시하는 연료규격을 당진 9·10호기 수준으로 재설계할 경우 기본설계를 재검토해야 하는 등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판단된다.

    한 전문가는 “두산중공업이 세계적으로 상업화 사례가 없는 고난도의 연구개발 과제를 소규모 시험설비에서 수행하고 이를 당진 9·10호기에 적용하려는 것은 신약을 개발한 뒤 임상시험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환자에게 투여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한국동서발전의 한 관계자는 “두산중공업이 기술을 개발했다면 자사의 비용으로 제품을 실증한 다음 그것을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게 상식인데도 제품개발에 따른 막대한 위험 비용을 발주자가 떠안게 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동안 두산중공업은 자사가 개발한 신기술은 법적으로 수의계약 요건에 해당하므로 당진 9·10호기 건설에 대해 수의계약을 하게 해달라고 요구해왔다. 그러나 한국동서발전 측이 법률 검토를 거친 결과 두산중공업은 국가계약법상 수의계약 대상으로 지정하고 있는 ‘국가사업을 대행 또는 위탁받은 자’로 볼 수 없으며, 연구과제에서 수행한 신기술도 세계무역기구(WTO) 정부조달협정상 수의계약 요건인 ‘조달기관의 요청에 따라 개발된 시제품 또는 최초 상품’이 아니므로 수의계약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를 무시하고 계약을 강행할 경우 WTO에 제소당할 수 있다는 것.

    K 실장 ‘원천기술 수출 돕고 싶었다’

    ‘신동아’는 이윤호 장관에게 ‘두산중공업 정지택 부회장으로부터 당진화력 9·10호기 건설사업과 관련, 수의계약을 할 수 있도록 청탁받고 K 실장에게 이를 지시한 사실이 있는지’ 물었다. 이에 대해 이 장관 측은 “청탁을 받은 적도, 수의계약을 지시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다만 K 실장은 “두산중공업 측이 입찰에 참여할 기회를 주면 좋겠다고 나에게 연락해왔고, 한국동서발전 측에 두산이 터빈과 보일러에 대한 신기술을 개발했으니 기회를 주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두산중공업이 기술 부족으로 발전소에 결함이 생기는 등 리스크(risk·위험요소)가 발생할 경우를 가정해 돈으로 보상하는 조건을 달고 입찰에 참여케 해서 평가해볼 것을 권유한 것은 맞다”며 “국내 유일의 화력발전설비 제작업체인 두산중공업이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실용화해 원천기술을 확보해서 해외시장에도 진출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였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한 발전업계 전문가는 리스크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다고 설명했다. 통상적으로 계약시에 발전설비에 대한 리스크는 공사대금 10%에 2년간의 하자 보증기간을 둔다. 그러나 애초 한국동서발전 측은 “두산중공업이 공사를 한 뒤 결함이 생길 경우 공사비 전액을 돌려받는 조건을 내걸겠다”는 강경한 태도였다. 막대한 공사비가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이므로 자칫 발전기 성능에 문제가 생기면 회사 존립 자체에 큰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5월14일 현재 한국동서발전은 한발 물러선 상태다. 이길구 사장은 “두산이 공사를 한 뒤 성능을 제대로 내지 못하면 공사대금을 일부만 지급하고, 제 성능을 발휘할 때 이자와 함께 나머지를 갚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 입찰 조건 논란 예상

    지경부와 한국동서발전, 두산중공업의 이해가 얽히고설킨 채 1년 가까이 사업 입찰을 하지 못한 당진 화력 9·10호기는 조만간 국제경쟁입찰에 붙여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입찰 조건에 따라서 국제경쟁입찰이라면서도 외국사는 참여하지 않고 두산중공업만 단독으로 입찰할 수도 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입찰조건에 대해 이길구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600℃ 조건으로 1년 이상 운영실적을 가진 회사, 그리고 그런 실적을 가진 회사와 제휴할 경우 입찰 자격을 부여할 계획이다. 두산중공업이 외국회사와 제휴를 거부할 경우 566℃ 조건에서 영흥 1·2호기를 운영해온 실적을 유사실적으로 인정할 계획이다. 두산중공업이 비록 장기간 실증 기술을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신기술을 개발했기 때문에 이 부분도 인정해줘야 앞으로 신기술 개발이 더욱 유발될 것으로 본다.”

    이 사장이 인정할 수도 있다는 ‘유사실적’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 또 다른 논란이 예상된다.

    K 실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당진화력 9·10호기 문제에는 2~3주 전부터 개입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이 문제에 대해 계속 한국동서발전 관계자들과 입장을 조율하는 정황이 포착됐다. 공기업인 한국전력 자회사인 한국동서발전 경영진은 독자적 회사 운영권을 갖고 있지만 이처럼 정부가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개입을 멈추지 않는 한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발전업체 한 관계자는 “발전 자회사의 경우 중요 프로젝트는 지경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결정은 자회사가 스스로 한 것으로 남는 폐단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10월 취임한 이길구 사장은 “어렵고 힘들다. 어떻게 보면 내가 가장 피해자일 수 있다”며 지경부와의 사이에서 단독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처지를 한탄했다.

    이번 사안과 관련해 ‘신동아’는 두산중공업 정지택 부회장이 2월초 이윤호 장관을 만나 동서발전의 당진화력 9·10호기 건설 수의계약을 하게 해달라고 청탁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정 부회장을 만나려 했지만 회사 관계자로부터 “만나기를 원치 않는다”는 답변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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