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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나타 사회학

‘소나 타는 자동차’에서 ‘국민 중형차’로 우뚝 서다

  • 나성엽│동아일보 인터넷뉴스팀 기자 cpu@donga.com│

쏘나타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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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F쏘나타가 모습을 드러냈다. 날카롭게 살아 있는 에지는 손을 대면 베일 것 같은 파격적인 디자인이다. ‘국민 중형차’로 우뚝 선 쏘나타에는 숨 가쁘게 달려온 한국 사회가 그대로 투영돼 있다. ‘쏘나타 사회학’을 조명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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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골목에 서 있는 쏘나타에서 S자 떼어가는 게 유행이라면서? 여러분 중에는 그런 사람 없을 줄로 믿지만, 혹시라도 그런 생각을 한다면 그 시간에 한 문제라도 더 풀어라.”

1990년대 서울의 한 고등학교 3학년 교실 조회시간. 담임교사의 이 같은 훈시에 일부 학생들이 들릴 듯 말 듯 킥킥거린다. 자기 학급 누군가가 ‘S’자를 내보이면서 “난 이제 서울에 있는 대학은 무조건 간다”고 자랑한 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시 수험생들 사이에서 현대자동차 ‘쏘나타’의 트렁크에 부착된 ‘Sonata’ 엠블럼에서 ‘S’자를 떼어다 보관하면 ‘인 서울(in Seoul)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는 출처 모를 얘기가 돌고 있었다.

길거리에서 수입차 보기가 밤하늘에 떨어지는 별똥별 보기만큼 어렵던 시절. 메르세데스 벤츠 S클래스의 엠블럼에서 ‘S’자를 떼어내 보관하면 서울대학교에 간다는 말도 있었다.

쏘나타의 ‘S’는 서울에 있는 대학교, 벤츠의 ‘S’는 서울대학교.

당시 수험생은 지금 30대가 됐다. PGA 골프선수나 연봉 수십억원씩 받는 프로운동선수, 로펌의 변호사와 같은 소위 ‘엄청 잘나가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당시 수험생의 상당수는 대학에 진학하고 기업에 취직하거나 혹은 자기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중 상당수는 쏘나타를 몰고 출퇴근을 하거나 지금도 어디론가 길을 달리고 있을 터.

초등학교 시절에 TV화면에서 쏘나타 광고를 보고 자라 고3 시절에는 엠블럼 ‘S’를 수집하고 다녔으며 이제는 성인이 돼 쏘나타를 몰고 다니는 이들은 현재 한국 경제와 사회의 허리를 구성하는 당당한 버팀목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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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처음 선보인 쏘나타 1세대.

‘소나 타는 자동차’

현대자동차의 ‘쏘나타’는 한국 사회에서 단순히 한 차종의 이름이 아니다. 대한민국 부유층의 상징이 전통적으로 ‘그랜저’였듯, 쏘나타는 대한민국 중산층을 대표하는 차종이었다.

쏘나타는 1985년 10월 처음 등장했다. 지금의 아반떼보다 실내가 좁은 당시 중형차량 ‘스텔라’에 사이드 몰딩과 앞범퍼, 라디에이터그릴, 뒷범퍼, 유리창 몰딩 등 붙일 수 있는 모든 부위에 크롬몰딩을 접착해 그야말로 ‘번쩍번쩍’하게 겉모습을 바꾸고 일부 편의사양을 더해 ‘소나타’라고 이름 붙여 내놨다.

당시 현재자동차는 중형차 시장에서 대우자동차에 현격하게 밀리는 처지였다. ‘국산차는 수출용과 내수용의 철판 두께가 다르다’는 게 일반적인 상식으로 통하던 시절. ‘대우자동차는 독일 오펠사의 제품을 그대로 들여다 팔기 때문에 튼튼하다’는 입소문에 더해 객관적으로 우위에 있던 품질을 앞세운 ‘로얄 시리즈’로 중형차 시장은 대우자동차가 장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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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대 쏘나타. 서울올림픽을 석 달 앞두고 등장했다.

스텔라의 ‘돌연변이’ 소나타는 대우자동차의 아성에 명함 한번 내밀어보지 못하고 2년간 2만6000대가 팔린 뒤 시장에서 사라진다.

2만6000대. 올해 7월 시판한 르노삼성자동차의 뉴SM3가 두 달 만에 2만5000대가 계약된 것을 감안하면 얼마나 초라한 수치인지 알 수 있다. 물론 당시 자동차시장 규모가 지금처럼 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1세대 ‘소나타’는 현대자동차로서는 호적에서 파버리고 싶은 ‘자식’이다.

우스꽝스러운 외모와 내세울 것 없는 품질로 당시 ‘소나타’는 ‘소나 타는 자동차’라는 별명을 얻으면서 조롱의 대상이 됐다.

현대자동차는 부랴부랴 차 이름을 ‘소나타’에서 ‘쏘나타’로 바꾸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아무도 몰랐다. 해프닝으로 바뀐 이름 ‘쏘나타’가 대한민국 자동차 역사 그 자체가 되리라는 것을.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서곡

쏘나타다운 쏘나타가 나온 것은 서울올림픽 개막을 석 달여 앞둔 1988년 6월이다. 현대자동차의 신화 ‘포니’를 디자인했던 디자이너 주지아로가 디자인을 맡아 다소 보수적이지만 수입차와 견주어도 손색없는 외형을 갖추고 나왔다.

당시 국내 최고급 모델은 역시 현대자동차의 ‘그랜저’였다. 이 차는 미쓰비시의 ‘데보네어’를 기반으로 제작해 차체 길이는 길지만 실내는 넓지 않았다. 순수 자체 개발 모델인 쏘나타는 라인업상의 질서를 무시하고 그랜저보다 큰 차체와 넓은 실내로 소비자를 유혹했다.

미쓰비시의 ‘시리우스’ 엔진과 쏘나타 차체의 철저한 방음대책, 미국 스타일의 푹신한 승차감, 한국 운전자들은 쏘나타를 통해 자동차의 새로운 지평을 경험하게 됐다. 당시 쏘나타를 타본 소비자들이 느낀 ‘쇼킹하게 편안하고 조용한 승차감’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중형차 승차감의 표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금도 한국 운전자들이 중형차를 고르는 기준으로 안락함과 푹신함, 조용함을 꼽는 것은 알게 모르게 1988년형 쏘나타를 접한 운전자들로부터 입소문을 타고 내려오는 측면이 없지 않다.

쏘나타의 성공 요인 중 또 하나는 앞바퀴 굴림 방식이다. 당시 소형차 및 스텔라는 물론이고 대우 로얄시리즈 등 중형차들은 ‘앞 엔진 뒷바퀴 굴림(FR)’ 방식이어서 동력축이 지나가는 뒷좌석 가운뎃 부분이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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