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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구자홍 기자의 ‘WORLD NO.1’ 탐방

(주)풍산 ‘소전’

돈을 만들어 돈을 번다

  • 구자홍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hkoo@donga.com│

(주)풍산 ‘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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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골퍼들 사이에 유행하는 퀴즈 가운데 ‘세계 어느 곳에 가든 만날 수 있는 한국의 세 가지는?’이란 질문이 있다. 정답은 삼성전자 휴대전화 애니콜, 현대자동차, 그리고 한국 골퍼다. 애니콜과 현대자동차의 명성이야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한국 골퍼는 왜 포함됐을까. 해석이 그럴싸하다. 40℃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에서 골프채를 휘두르고,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사막에서조차 인조잔디매트를 들고 다니며 골프를 즐기는 사람은 한국 사람밖에 없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것. 그뿐인가. 한겨울이면 녹색 필드가 아닌 흰눈이 소복이 쌓인 필드에서조차 빨간 공을 들고 다니며 골프를 즐기는 민족 아니던가.

그런데 앞으로는 퀴즈의 질문과 답변을 조금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세계 어느 곳에 가든 만날 수 있는 한국 제품이 하나 더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풍산의 소전(素錢)이다. 풍산은 전세계 60여 개국 동전을 만들어 수출하고 있고, 특히 EU 단일통화인 유로화 동전까지 납품하며 소전 분야에서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동전으로 세계를 제패한 풍산의 세계시장 공략기를 살펴본다.


(주)풍산 ‘소전’

풍산이 생산한 세계 각국의 소전과 압인을 한 동전.

1993년 유럽연합(EU)을 출범한 12개 회원국은 1995년 단일통화인 유로화를 발행키로 합의했다. 3억명이 넘는 EU 인구 1인당 200개 정도의 신규 동전을 발행하는 화폐혁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EU는 유로화의 역내 조달을 원칙으로 내세웠다. 니켈 알레르기가 많은 유럽인의 체질을 고려해 구리와 아연, 주석과 알루미늄으로 구성된 4원 합금 노르딕 골드가 유로화의 소재로 채택됐다. 이전까지 동전은 직경과 두께, 표면강도 등의 요건을 갖추면 됐지만 노르딕 골드는 위조방지를 위한 전기전도성 검사를 의무적으로 통과해야 했다.

그러나 노르딕 골드를 최초로 개발한 핀란드 업체에서조차 대량 생산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노르딕 골드가 내구성이 좋고 빛깔이 아름답지만, 대량 생산을 위해 거쳐야 하는 열간압연과정에서 깨지기 쉬운 단점이 있었던 것. 유럽 업체들은 이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틀을 좁게 만들었다. 그러다보니 생산성이 뚝 떨어졌다. 결국 유로화 발행에 맞춰 충분한 물량을 납기 내에 납품할 수 있겠느냐는 문제가 불거졌다.

노르딕 골드를 개발하라

# 1997년 10월

울산 온산공단 풍산 내 소전공장 소전생산팀에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가 걸려왔다.

“유럽 업체가 유로화 소재인 노르딕 골드를 기한 내에 납품하는 데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공장에서 개발할 수 있을까요?”

본사 해외영업부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김원헌 차장(현 이사)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답했다.

“우리 회사 기술력이면 노르딕 골드 생산이 어렵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유럽에 납품하려면 일단 특허 문제부터 해결돼야 합니다.”

통화를 마친 김 차장은 김인달 개발팀장을 급히 찾았다.

“영업부에서 노르딕 골드 양산 가능성을 묻는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우리 기술이면 충분히 개발할 수 있습니다만, 특허가 문제입니다.”

보고를 받은 김 팀장은 ‘특허 문제만 해결되면 수요가 팽창할 유로화 시장에 진입할 좋은 기회인데…’라는 생각에 즉시 소전생산팀 주요 간부 대책회의를 열었다. 하나같이 제품 개발에는 문제가 없다며 자신감을 피력했다. 김 팀장은 특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저 없이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주)풍산 ‘소전’

검사를 마친 유로화 소전이 캐리어에 가득 쌓여 있다.

# 1997년 11월. 스페인 조폐국

유로화 발행 문제를 담당하는 스페인 조폐국 책임자와 풍산의 김 팀장, 김 차장 등이 마주 앉았다. “노르딕 골드에 대한 특허 문제만 풀어준다면 우리가 개발해보고 싶습니다.” “괜히 시도했다가 실패하면 풍산만 손해 아닙니까” “손해를 보더라도 우리 회사가 보는 것입니다. 빠른 시일 내에 노르딕 골드를 개발해서 대량 생산체제를 구축하도록 하겠습니다. 특허 문제만 해결해주시면….” “좋습니다. 노르딕 골드는 4원 합금 소재라 쉽지는 않을 겁니다.”

반신반의하는 조폐국 책임자를 뒤로하고 사무실을 빠져나온 김 팀장과 김 차장은 쾌재를 부르며 본사에 연락했다.

“특허 문제는 구두 승인 받았으니 제품 개발을 서둘러주세요.”

# 1997년 12월. 울산 풍산 소전공장

소전생산팀은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노르딕 골드 시제품을 만들었다. 샛노란 금빛의 노르딕 골드가 쏟아지자 공장 안에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제품 개발에 착수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시제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본사 영업부에서조차 예상하지 못한 속도였다.

“노르딕 골드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김 팀장은 스페인 조폐국 책임자에게 들뜬 목소리로 성공 사실을 알렸다. “벌써요? 정말 성공했습니까?”

며칠 뒤 스페인 품질관리 임원이 한국으로 날아왔다. 울산 풍산 소전공장에서 노르딕 골드 생산 공정을 둘러본 이 임원은 “원더풀”이라며 오른손 엄지를 치켜세워보였다. 그는 테스트용으로 노르딕 골드 500개를 들고 돌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10만개 샘플을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또 얼마 뒤에는 100만개로 수량을 올렸다. 샘플 수가 점점 많아지는 것은 양산 능력을 테스트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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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홍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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