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호

(주)풍산 ‘소전’

돈을 만들어 돈을 번다

  • 구자홍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0-01-06 17: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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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 골퍼들 사이에 유행하는 퀴즈 가운데 ‘세계 어느 곳에 가든 만날 수 있는 한국의 세 가지는?’이란 질문이 있다. 정답은 삼성전자 휴대전화 애니콜, 현대자동차, 그리고 한국 골퍼다. 애니콜과 현대자동차의 명성이야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한국 골퍼는 왜 포함됐을까. 해석이 그럴싸하다. 40℃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에서 골프채를 휘두르고,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사막에서조차 인조잔디매트를 들고 다니며 골프를 즐기는 사람은 한국 사람밖에 없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것. 그뿐인가. 한겨울이면 녹색 필드가 아닌 흰눈이 소복이 쌓인 필드에서조차 빨간 공을 들고 다니며 골프를 즐기는 민족 아니던가.

    그런데 앞으로는 퀴즈의 질문과 답변을 조금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세계 어느 곳에 가든 만날 수 있는 한국 제품이 하나 더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풍산의 소전(素錢)이다. 풍산은 전세계 60여 개국 동전을 만들어 수출하고 있고, 특히 EU 단일통화인 유로화 동전까지 납품하며 소전 분야에서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동전으로 세계를 제패한 풍산의 세계시장 공략기를 살펴본다.


    (주)풍산 ‘소전’

    풍산이 생산한 세계 각국의 소전과 압인을 한 동전.

    1993년 유럽연합(EU)을 출범한 12개 회원국은 1995년 단일통화인 유로화를 발행키로 합의했다. 3억명이 넘는 EU 인구 1인당 200개 정도의 신규 동전을 발행하는 화폐혁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EU는 유로화의 역내 조달을 원칙으로 내세웠다. 니켈 알레르기가 많은 유럽인의 체질을 고려해 구리와 아연, 주석과 알루미늄으로 구성된 4원 합금 노르딕 골드가 유로화의 소재로 채택됐다. 이전까지 동전은 직경과 두께, 표면강도 등의 요건을 갖추면 됐지만 노르딕 골드는 위조방지를 위한 전기전도성 검사를 의무적으로 통과해야 했다.

    그러나 노르딕 골드를 최초로 개발한 핀란드 업체에서조차 대량 생산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노르딕 골드가 내구성이 좋고 빛깔이 아름답지만, 대량 생산을 위해 거쳐야 하는 열간압연과정에서 깨지기 쉬운 단점이 있었던 것. 유럽 업체들은 이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틀을 좁게 만들었다. 그러다보니 생산성이 뚝 떨어졌다. 결국 유로화 발행에 맞춰 충분한 물량을 납기 내에 납품할 수 있겠느냐는 문제가 불거졌다.



    노르딕 골드를 개발하라

    # 1997년 10월

    울산 온산공단 풍산 내 소전공장 소전생산팀에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가 걸려왔다.

    “유럽 업체가 유로화 소재인 노르딕 골드를 기한 내에 납품하는 데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공장에서 개발할 수 있을까요?”

    본사 해외영업부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김원헌 차장(현 이사)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답했다.

    “우리 회사 기술력이면 노르딕 골드 생산이 어렵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유럽에 납품하려면 일단 특허 문제부터 해결돼야 합니다.”

    통화를 마친 김 차장은 김인달 개발팀장을 급히 찾았다.

    “영업부에서 노르딕 골드 양산 가능성을 묻는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우리 기술이면 충분히 개발할 수 있습니다만, 특허가 문제입니다.”

    보고를 받은 김 팀장은 ‘특허 문제만 해결되면 수요가 팽창할 유로화 시장에 진입할 좋은 기회인데…’라는 생각에 즉시 소전생산팀 주요 간부 대책회의를 열었다. 하나같이 제품 개발에는 문제가 없다며 자신감을 피력했다. 김 팀장은 특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저 없이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주)풍산 ‘소전’

    검사를 마친 유로화 소전이 캐리어에 가득 쌓여 있다.

    # 1997년 11월. 스페인 조폐국

    유로화 발행 문제를 담당하는 스페인 조폐국 책임자와 풍산의 김 팀장, 김 차장 등이 마주 앉았다. “노르딕 골드에 대한 특허 문제만 풀어준다면 우리가 개발해보고 싶습니다.” “괜히 시도했다가 실패하면 풍산만 손해 아닙니까” “손해를 보더라도 우리 회사가 보는 것입니다. 빠른 시일 내에 노르딕 골드를 개발해서 대량 생산체제를 구축하도록 하겠습니다. 특허 문제만 해결해주시면….” “좋습니다. 노르딕 골드는 4원 합금 소재라 쉽지는 않을 겁니다.”

    반신반의하는 조폐국 책임자를 뒤로하고 사무실을 빠져나온 김 팀장과 김 차장은 쾌재를 부르며 본사에 연락했다.

    “특허 문제는 구두 승인 받았으니 제품 개발을 서둘러주세요.”

    # 1997년 12월. 울산 풍산 소전공장

    소전생산팀은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노르딕 골드 시제품을 만들었다. 샛노란 금빛의 노르딕 골드가 쏟아지자 공장 안에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제품 개발에 착수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시제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본사 영업부에서조차 예상하지 못한 속도였다.

    “노르딕 골드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김 팀장은 스페인 조폐국 책임자에게 들뜬 목소리로 성공 사실을 알렸다. “벌써요? 정말 성공했습니까?”

    며칠 뒤 스페인 품질관리 임원이 한국으로 날아왔다. 울산 풍산 소전공장에서 노르딕 골드 생산 공정을 둘러본 이 임원은 “원더풀”이라며 오른손 엄지를 치켜세워보였다. 그는 테스트용으로 노르딕 골드 500개를 들고 돌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10만개 샘플을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또 얼마 뒤에는 100만개로 수량을 올렸다. 샘플 수가 점점 많아지는 것은 양산 능력을 테스트하기 위해서였다.

    (주)풍산 ‘소전’

    소전개발팀은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유로화 소재인 ‘노르딕 골드’를 개발해냈다.

    그로부터 몇 달 뒤인 1998년 4월. 스페인 조폐국으로부터 ‘노르딕 골드 인증서’가 풍산에 도착했다. 드디어 유럽연합 출범에 맞춰 단일 통화로 통용될 유로화 수출길이 활짝 열리게 된 것이다. 당시 스페인은 유럽연합 국가 가운데 유로화 동전 발행 전환을 책임지고 있었기 때문에 스페인 조폐국으로부터 인증받는 것은 곧 유럽연합 전체 국가를 대상으로 납품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풍산은 1998년 7월 스페인과 네덜란드에 5000t규모(9억개, 8t 트럭 600여 대분)의 유로화 소전 공급을 시작했다.

    김원헌 소전생산팀 이사는 “IMF 외환위기로 한국 경제가 침체의 늪에서 허덕이던 1998년부터 2000년까지 풍산 온산공장은 ‘돈’(소전)을 만들어 ‘돈’(외화)을 벌어들이느라 하루 3교대로 24시간 공장을 풀가동해야 했다”고 회고했다.

    풍산은 2001년 상반기까지 EMU(Economic and Monetary Union · 유럽경제통화동맹) 회원국 12개 국가 가운데 10개국(스페인 네덜란드 프랑스 포르투갈 오스트리아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이탈리아 독일 그리스)에 2만2000t, 약 1억달러어치의 유로 소전을 공급한 데 이어 현재까지 벨기에 핀란드 슬로베니아 사이프러스 등을 추가해 EMU 회원 14개국에 총 3만7000t을 공급했다.

    지구에서 달까지 6번 왕복할 ‘길이’

    소전은 무늬를 새겨 넣기 직전의 동전을 의미한다. 보통 동전 앞뒷면에는 인물과 그림 등 각종 도안과 액면가, 발행연도 등을 새겨 넣게 마련이다. 소전은 압인가공(금속을 무늬가 있는 틀 사이에 넣고 눌러 금속 표면에 무늬를 새기는 일)을 거쳐야 비로소 동전으로 완성돼 시중에 유통된다. 동전으로 인정받기 위한 최종 승인과정인 압인은 엄격한 화폐관리 등을 위해 대부분 각국 조폐국이 직접 담당한다.

    풍산은 소전 분야에서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1973년 대만 수출을 시작으로 현재 전세계 6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고, 풍산이 만든 소전을 30억명 가까운 인구가 사용하고 있다. 풍산이 지금까지 생산한 소전은 880억장에, 무게 44만t에 달한다. 880억장의 소전은 한데 이으면 지구에서 달까지 6번 왕복하고, 지구를 55바퀴 돌 수 있는 양이다.

    2009년 12월8일. 울산 온산공단에 위치한 풍산 울산사업장을 찾았다. 공장 안쪽에 소전공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소전은 언뜻 동전 모양의 금속 조각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자판기에 넣으면 돈으로 인식돼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소전공장 출입을 위해서는 금속탐지기 검색 등 철저한 보안 검색과정을 거쳐야 한다.

    공장을 안내한 홍상호 과장은 “자판기가 공장 안에도 여러 대 있는데, 소전이 하나라도 나오면 검색 담당 직원이 사직해야 할 만큼 보안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소전의 생산 공정은 소재를 녹이는 주조를 시작으로 열간압연과 냉간압연을 거쳐일정 두께의 판으로 만들고, 타발공정으로 동전 모양으로 뚫어낸 뒤 테두리 성형으로 매끄럽게 만든다. 이후 내부 조직을 균일하게 하기 위해 일정 온도로 가열한 다음 천천히 식히는 소둔과 불순물 제거를 위한 산세 과정을 거친다. 마무리 공정으로 표면광택 작업을 한 뒤 건조시켜 검사단계로 넘긴다.

    소전공장을 둘러보는 동안 180㎜의 두꺼운 금속덩어리가 불덩어리로 만들어진 뒤 레일 위에 놓여 여러 번 왕복하며 눌려 10㎜ 두께의 납작한 판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잠시 지켜봤다. 2~3m 이상 떨어져 서 있는데도 압연 중인 쇳덩어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후끈 느껴졌다. 레일 위를 왕복할 때마다 엿가락이 늘어지듯 점점 길어지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일정 두께로 압연된 판은 동그랗게 말려 다음 공정으로 넘어간다.

    (주)풍산 ‘소전’

    김인달 개발실장

    한국의 대표적인 수출품

    타 타 타 타. 탁 탁 탁 탁.

    기계와 사람의 눈으로 흠집 난 불량품을 골라내는 검사 단계에서는 검사를 통과한 소전이 캐리어에 떨어지는 소리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마치 카지노에서 잭팟이 여기저기 터져 동전이 쏟아지는 소리와 흡사했다.

    소전 검사는 기계로 한 번 하고, 사람이 다시 한 번 한다. 기계도 정확하게 불량품을 골라내지만, 육안으로 잡아내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한다. 수십 개의 소전이 쉴 새 없이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움직이는 동안 손과 눈을 이용해 불량품을 찾아내는 검사요원들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세계 시장점유율 1위 제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공정마다 ‘달인’의 손길이 필수적인 모양이다. 검사를 마친 제품은 포장 뒤 발주처로 출고된다.

    풍산의 소전은 세계 동합금소전 입찰시장의 60%가량을 점유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수출품이다. 일반적으로 화폐인 동전은 자국의 자존심과 직결되기 때문에 되도록 자국 내에서 조달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만약 우리나라의 100원, 500원 주화를 일본이나 중국 등 해외에서 수입해서 만든다고 생각해보라.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처럼 어느 나라든 보이지 않는 거부감과 장벽이 존재하는 소전을 풍산이 세계 각국에 수출하게 된 비결은 뭘까. 개발실장을 맡고 있는 김인달 전무의 설명이다.

    “좋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내면서도 가격을 낮추고, 제때 납품해왔기 때문에 세계 여러 나라에 수출할 수 있었습니다. 소전 시장은 나라마다 자존심 때문에 진입장벽이 높습니다. 그렇지만 품질과 가격을 앞세워 뚫었지요. 풍산 직원들의 성실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또 아이디어를 내서 원가를 절감해온 것도 중요한 요인이 됐고요.”

    (주)풍산 ‘소전’

    풍산은 ‘소전’생산을 위한 일관시스템을 구축했다.

    새로운 시장 개척에 초점

    동전 제작은 어느 나라든지 해당국가 중앙은행에서 총괄하기 때문에 풍산의 비즈니스 파트너는 자연스럽게 각국 정부와 공무원들이다. 특히 국가 예산이 결정된 뒤 입찰을 통해 공급업체를 정하기 때문에 품질은 물론 가격 경쟁력 없이는 시장을 장악할 수 없다.

    1993년 풍산이 필리핀 중앙은행에 제안해 대대적인 화폐개혁을 이끌어내며 시장을 개척한 일은 지금도 소전 사업의 모범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당시 필리핀은 같은 단위의 화폐가 4종류씩 유통되는 등 동전 종류만도 40여 종이 넘어 자국 국민조차 동전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풍산은 2년여에 걸쳐 필리핀 정부에 화폐 정리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결국 대대적인 동전 통폐합을 이끌어내 입찰을 통해 교체물량의 70%를 따냈다.

    이밖에도 풍산은 브루나이 정부에 주화 체계 전반에 대한 컨설팅을 진행, 선진화된 소재와 규격 변경을 제시함으로써 브루나이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했다. 이 같은 컨설팅 노력은 경쟁이 치열한 소전 시장에서 풍산이 단발성이 아닌 장기적인 거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

    풍산의 소전을 취재하면서 문득 동전의 미래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우리는 지갑에 지폐 대신 신용카드를 넣고 다니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버스를 탈 때도, 지하철을 탈 때도 동전이나 지폐 대신 카드를 사용하는 게 현실이다. 그뿐인가. 고속도로 통행료도 카드로 결제하는 시대다.

    그러나 김인달 개발실장은 ‘어두운 동전의 미래’에 대한 질문에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요. 전자화폐를 도입할 수 있는 인프라가 잘 갖춰진 선진국에서는 점점 동전 사용량이 줄고 있는 게 사실이니까요. 그렇지만 지구상에는 전자화폐를 사용할 수 있는 인프라가 깔려 있지 않은 곳에 살고 있는 인구가 훨씬 더 많습니다. 당분간 동전 수요는 더 늘어날 것입니다. 풍산의 소전 시장 개척 전략도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남미와 아프리카 등 인구가 많고 개발이 덜 된 국가에 진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주)풍산 류목기 부회장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던 1968년 창립한 풍산의 창업 이념은 ‘사업보국’이다. 인천 부평구에 국내 최초의 현대식 동제품 생산 공장을 준공했고, 기초소재산업을 통해 국가경제 발전에 밑거름이 됐다. 1980년대에는 온산 비철금속단지에 단일 규모로는 세계 최대의 동제품 공장을 건립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췄다.

    풍산은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소전과 주력 제품인 동제품과는 별도로 1973년 경주시 안강읍에 종합탄약공장을 건립했다. 또 1982년에는 육군 조병창을 인수하는 등 방위산업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소구경 탄약부터 곡사포탄에 이르기까지 우리 군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탄약을 생산하고 있다.풍산의 류목기 부회장을 만나 풍산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들었다.

    -풍산이 소전 사업에 진출한 계기는 무엇입니까.

    “풍산이 부평공장에서 조업을 시작했을 당시에는 국내 동제품 수요 산업이 발전하지 않아 시장 수요를 스스로 창출해야 했습니다. 압연품에 관심을 갖고 있던 차에 소전용 압연제품 시장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1970년 황동 10원화(貨)용 동압연판을 한국조폐공사에 납품하면서 국내 주화용 소전 시장을 석권했습니다.”

    -이제는 해외에 더 많은 소전을 수출하고 있는데요, 수출로 방향을 전환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1973년에 불어닥친 제1차 오일쇼크의 여파로 성장세를 보이던 당시 한국 경제는 여지없이 추락했습니다. 산업소재를 생산하던 풍산에도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창사 이후 처음 겪은 세계적인 불황의 늪에서 풍산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고, 소전 수출이 그 역할을 하게 됐습니다. 1973년 대만의 소전 입찰에 참가해 350만달러의 물량을 확보한 것이 세계 소전시장에 첫발을 내디디는 계기였습니다.

    풍산이 세계무대에 진출하기 전까지만 해도 소전시장은 영국과 독일(당시 서독), 캐나다,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풍산은 대만 수출 이후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소전 수출량을 늘려 시장점유율을 높여나갔습니다. 수출 국가도 1980년대에는 17개국에 그쳤지만, 1990년도에는 25개국으로 늘렸고, 1998년부터 유로화 소전을 수출하면서 지금은 60여 개국에 총 12억달러 이상의 수출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지금은 세계 소전 교역량의 60% 이상을 풍산이 점하고 있습니다.”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기까지 남다른 노력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회사 설립 초기만 하더라도 풍산은 소재 합금기술이나 소전 생산기술 등을 해외업체에 의존하면서 관련 기술을 도입했습니다. 업체 간의 기술이전은 매우 까다로운 문제여서 기술도입 과정도 그만큼 힘들었습니다. 그렇지만 풍산은 일단 도입한 선진기술을 자체 기술로 발전시키는 등 노하우 축적에 주력했습니다. 그 결과 선진국 업체보다 더 우수한 제품을 만들게 됐습니다. 생산설비를 신설하고 확충해 시장 수요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한 것도 주효했습니다.”

    풍산 온산공장에서 만난 김인달 개발실장은 풍산이 세계 1등으로 올라선 배경으로 한국조폐공사를 꼽기도 했다. 어느 나라 조폐국보다 더 꼼꼼하고 까다롭게 제품 검사를 하기 때문에 한국조폐공사의 품질검사를 통과하면 곧 세계적으로 인정받는다는 것.

    풍산이 소전시장을 제패하게 된 또 다른 요인 가운데 하나는 소전 제작 전 과정을 한 공장에서 처리하는 일관시스템을 갖춰 원가를 절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소전은 타발 과정을 거치고 나면 SCRAP(구멍이 뚫린 부분을 제외한 판의 나머지 부분)이 남게 되는데, 주조시설을 갖춘 풍산은 이 스크랩을 녹여 다시 판을 만들어 가공함으로써 원가를 낮출 수 있다고 한다.

    -나라마다 동전의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인데, 생산라인은 어떻게 운영하고 있습니까.

    “소전생산팀에서 생산하는 월평균 화종 수는 20여 개입니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 100원화와 호주 10센트, 말레이시아 20센트는 크기가 비슷합니다. 이 때문에 유사한 품종은 동시 작업을 지양하고 생산 일정을 조정해 생산합니다.”

    -품질관리는 물론 제작과 납품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걸쳐 무엇보다 보안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전을 납품하기 위해서는 품질 못지않게 고객과의 ‘신뢰’가 중요합니다. 풍산이 지금의 위치에 올 수 있었던 것도 고객과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온 덕분입니다. 소전공장은 별도의 펜스와 검신대를 설치해 ‘돈 샐 틈이 없도록’ 소전공장 사원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보안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특히 이란 소전의 경우 이란에서 온 품질관리팀이 생산에서 검사 및 포장까지 전 과정을 모니터링합니다. 그만큼 엄격한 품질관리를 합니다.”

    (주)풍산 ‘소전’
    -몇 해 전 풍산은 ‘Vision 풍산 50’을 선포하셨는데요, 앞으로 어떤 꿈을 향해 달려갈지 궁금합니다.

    “2018년까지 그룹매출 12조원, 경상이익 1조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풍산은 기존 사업의 성장 극대화를 위해 글로벌 생산기지와 해외 판매망을 확충하는 한편, 고부가가치 전략 제품의 비중을 높이고 선진업체와의 전략적 제휴도 적극 추진할 예정입니다. 최적의 사업 포트폴리오 구축을 위해 기존 사업의 생산기지를 재배치하고, R&D 역량을 확대해 신제품 개발에도 집중할 것입니다. 또한 전후방 연관 신사업에 진출하는 것은 물론, 에너지와 환경 분야를 제2의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할 계획입니다. 아울러 조직문화 혁신을 위해 풍산의 핵심가치인 5C(Challenge, Create, Change, Confirm, Communicate)를 체질화해 성과 지향적 기업문화를 정착시키고 핵심 역량을 극대화하는 조직으로 탈바꿈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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