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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개혁현장을 가다 ⑦

한국수력원자력 김종신 사장

1200조원 세계 원전시장의 ‘빅3’ 된다

  • 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한국수력원자력 김종신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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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한수원 있었기에 ‘UAE 수주’ 가능
  • ● ‘원전 건설’ 기술력, 세계 1위권 도달
  • ● 지속적 리노베이션…100% 국산화 목표
  • ● “인간과 자연 생각하는 미래성장엔진”
한국전력공사 컨소시엄은 2009년 12월27일 아랍에미리트(UAE)가 발주한 원자력발전사업을 수주했다. 1400MW(메가와트)급 원전 4기의 설계, 건설, 준공 후 운영지원 등 일괄수출계약(건설부문 200억달러, 60년간 운영지원 참여 200억달러)으로 알려졌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원전수출이자 해외사업 수주 역사상 최대 규모다.

‘국가적 낭보’의 주역

한국수력원자력 김종신 사장

김종신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UAE 원전 수주는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원전 신흥국’인 한국이 쟁쟁한 원전 선진국들을 따돌렸다는 점이 해외 언론에서 비중 있게 다뤄졌다. 국내 언론은 모처럼 만의 ‘희소식’이라고 보도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도 “국가적인 낭보이자 획기적인 쾌거”라고 치켜세웠다.

계약규모도 규모이거니와, ‘지금껏 내수용에 그친 한국 원전산업이 세계 원전시장으로 뻗어나가게 되는 역사적 전기를 맞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명박 대통령은 현지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미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와 함께 어깨를 겨눌 수 있게 됐다. 한국은 크나큰 원전시장에 당당히 참여하게 됐고 가장 경쟁력 있는 국가가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산업 수출액 4220억달러의 10%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이번 수주를 계기로 원전 수출이 가속화할 것이다” “지식경제부는 2030년까지 세계적으로 약 430기의 원전이 새로 지어져 1200조원의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이상 ‘한겨레’ 2009년 12월28일 보도)

그런데 원전업계에선 이번 ‘국가적 낭보’의 주역 중 하나로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을 꼽고 있다. 대규모 수출의 경우 해외 마케팅이나 협상전략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상품의 품질’이 뛰어나지 않으면 성사되기 어렵다. 한전의 자회사인 한수원은 이번 계약의 ‘상품’에 해당하는 ‘원자력발전소 4기’를 UAE에 건설해주는 곳이다. 정부 관계자는 “UAE 원전 수주는 한수원이 원전의 상품성 즉, ‘원전 건설-운영 기술능력’을 세계 최고수준으로 끌어올려놓았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한수원은 정부의 ‘전력산업구조개편’ 정책에 따라 2001년 4월1일 한국전력공사에서 화력발전 5개 부문과 수력원자력 발전 부문이 분리되면서 출범했다. 이 회사의 자산은 26조원 정도이고 연 매출은 5조~5조5000억원, 당기순이익은 3500억~8000억원 선이다. 현재 고리, 영광, 월성, 울진 등 4개 원전본부에서 20기의 원전을 운영하고 있다. 발전량 기준으로는 세계 5위, 회사 단위로는 세계 2위의 원자력발전회사다. 올해 말부터는 신규 발전소인 신고리 원전 1호기가 상업운전에 들어간다.

테크노 전사(戰士)

1월 중순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수원 집무실에서 이 회사 김종신(金鍾信·64) 대표이사 사장을 만났을 때 그가 내민 명함에는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요 나의 산성이시로다’라는 성경 구절이 적혀 있었다. 경남 마산 출신인 김 사장은 1972년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뒤 한전에 입사, 38년째 원전 외길을 걸어왔고 2007년 4월 한수원 사장에 취임했다. 회사 안팎에선 “기독교의 윤리관과 테크노크라트의 저돌성으로 무장한 전사(戰士)”라는 인물평도 있다.

▼ 이력을 살펴보니 1972년 한전 입사 후 원자력연구실장, 원자력기술실장, 원자력발전처장, 원자력안전실장, 고리원자력본부장, 한국수력원자력 발전본부장 등 원전건설 현장에서 주로 활동했더군요. 원자력의 산증인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 같은데요.

“서울대 기계공학과에 재학할 때 ‘한전 장학금’으로 공부했어요. 이 무렵 ‘원자력을 도입한다’는 얘기를 듣게 됐어요. 원자력에 아주 흥미를 느끼고 있었고 인생을 걸어볼 만하다고 생각해 1972년 졸업 후 한전에 입사했어요. 첫 근무지는 ‘부산화력’이었는데 1년쯤 지나자 회사에서 ‘원자력 요원을 전국적으로 선발한다’고 해요. 망설임 없이 지원했죠. 영국으로 6개월간 원자력 연수를 받으러 가면서 원전과의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 1978년 처음으로 고리1호기 원전이 상업운전을 개시하면서 원자력시대가 열렸는데 원전건설 상황은 어떠했나요.

“재원도 없고 인프라도 없고 인력도 충분하지 않았죠. 고리원전 1, 2호기, 월성원전 1, 2호기는 외국회사가 턴키(일괄공급) 방식으로 다 지어주었어요. 우리 땅에 지은 우리 발전소임에도 외국인 원전 전문가에게서 괄시받고…. 핵심 부문에 들어가려고 하면 제지당하기도 했죠.”

▼ 원전 국산화는 어떻게 시작됐나요.

“1980년대 고리원전 3호기, 4호기 건설 때 사업자 주도형 원전건설 방식이 처음으로 시도됐습니다. 나는 미국 LA사무소에서 근무하다 돌아와 6년 동안 기술부장 등으로 고리 3,4호기 건설사업에 참여했는데 당시 외부에선 ‘실패할 것’이라는 예상이 더 많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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