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호

좌충우돌 ‘버냉키號’, 美 경제 불안 부채질

  • 나중혁| 대신경제연구소 이코노미스트 jhna73@deri.co.kr│

    입력2010-09-01 11: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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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충우돌 ‘버냉키號’, 美 경제 불안 부채질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본 연구소는 지난해 이맘때부터 올 하반기 이후 성장 둔화 가능성을 꾸준히 제기해왔고, 지난 4월 하반기 경제성장 전망 자료에서 2010년 미국 경제는 ‘상고하저’ 흐름을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하반기 성장 둔화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런데 올 2·4분기 중반까지만 해도 ‘상저하고’ 패턴을 보일 것으로 예상하던 시장 전문가들이 지난 5월 이후로 하나둘씩 ‘상고하저’ 패턴으로 전망을 수정하고 있다.

    이는 경기선행지수를 시작으로 각종 체감 경기지표, 그리고 소비 및 고용지표 등 실물지표에 이르기까지 주요 경제지표에서 확인되는 것으로, 본 연구소의 판단에 따르면 하반기 미국 경제는 최근 시장에서 예상하는 것보다 가파른 성장 둔화 과정을 거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여전히 연간 기준 3% 초반대를 유지하고 있는 시장 컨센서스는 하반기로 갈수록 2%대 후반까지 하향 수정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할 듯하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올 하반기 미국 경제에 대한 우려는 경기선행지수의 전분기 연율이 지난해 9월 고점을 형성하고 하락 반전한 것을 시작으로, 생애 첫 주택 구매자에 대한 세제혜택 연장에도 연말을 전후해 주택관련지표에서 재차 정체 가능성이 확인되는 과정에서 본격화한다. 그 후 경기선행지수가 전년 동월 대비 기준으로 지난 3월 중 고점을 형성하고, 현재 미국 경기 회복을 주도하는 ISM 제조업지수가 지난 4월 이후 확장 국면이 둔화되고, 5월 이후에는 주요 실물지표에 해당하는 소매판매와 고용지표에서 경기 둔화 시그널이 점차 강화된다.

    FRB는 여전히 ‘상저하고’ 낙관

    문제는 이러한 일련의 흐름이 주요 체감 경기지표 위축으로 전이되고 있다는 것인데, 우선 경기 회복을 주도하던 제조업 체감경기가 빠르게 위축되고 있으며 주택 공급업체의 체감경기 역시 2009년 4월 수준으로 떨어졌다. 무엇보다도 양대 소비심리지표에 해당하는 미시간대의 소비심리평가지수와 컨퍼런스보드의 소비자신뢰지수 모두 경기 회복에 대한 불확실성이 상존하던 2009년 상반기 수준까지 하락해 하반기 경제 전반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2007년 12월 이후 공식적인 리세션(경기후퇴)에 접어든 미국 경제는 1930년대에 경험한 대공황 이후로 가장 극심한 침체를 겪었는데, 특히 부동산시장의 극심한 버블을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상품의 높은 레버리지는 과거 경험하지 못했던 충격으로 다가왔다. 즉 주택가격이 하락세를 타기 시작하자 주택을 담보로 만들어진 파생상품 가치가 떨어졌고, 이때 높은 차입금을 가지고 관련 상품에 투자한 이들은 그 만큼 커다란 위험에 노출되는 패턴이 현실화한 것이다.

    이에 정부가 주도하는 전방위적인 경기부양이 시작됐고, 2009년 3·4분기 이후 미국 경제는 4분기 연속 잠재성장률을 상회하는 완연한 회복세를 보였다. 6500포인트까지 급락했던 다우지수는 2010년 7월 현재 1만선을 상회하는 견고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좌충우돌 ‘버냉키號’, 美 경제 불안 부채질


    또한 비록 지난 6월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 정례회의를 통해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 전망치 하단을 3.2%에서 3.0%로 하향 조정하긴 했으나, 지난 4월까지 2010년 경제성장률 하단이 2.8%였고 2011년 성장률 하단을 오히려 3.4%에서 3.5%로 0.1%p 높인 것을 보면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경기 판단 스탠스는 여전히 ‘상저하고’이며, 적어도 이러한 견고한 경기 회복 흐름이 2012년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FRB에 대한 시장의 평가도 후한 편이다. 블룸버그 컨센서스에 따르면 각종 대내외 악재로 일각에서는 더블딥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지난 5월 최고점에 달했던 미국 경제성장률 전망치(2010년 3.2%, 2011년 3.1%, 2012년 3.1%)는 이번 7월 조사에서도 각각 3.1%, 2.9%, 3.0%로 나타나 이번 사태를 단순한 소프트 패치 국면(경기가 상승 국면에서의 본격적인 후퇴는 아니지만 일시적인 어려움을 겪는 상황)으로 해석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지난 경기침체기에 보여준 FRB의 경기 조절 능력이 여전히 시장의 높은 신뢰를 받고 있음을 시사한다.

    불신의 상징 ‘버냉키 콜’

    그렇다면 FRB의 경기 판단력은 과연 앞으로도 시장의 전적인 신뢰를 이어갈 수 있을까. 만일 필자가 이러한 질문을 받는다면 이젠 자신 있게 “네”라고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두 달 만에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올렸다 내렸다 하고, 이제는 하반기 경제가 비정상적으로 불확실하다고 말하는 FRB의 경기판단 능력을 믿을 수 있을까. 오히려 미국 경제가 좀 더 악화된다면 버냉키 FRB 의장이 아무리 경기 회복을 부르짖더라도 ‘버냉키 콜’이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을까 싶다.

    ‘버냉키 콜’이란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으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버냉키가 부임 초기에 잦은 말 바꾸기로 시장의 높은 변동성을 초래하자 ‘그린스펀 풋’의 반대 개념으로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용어다. 최근 FRB의 다소 실망스러운 행보를 감안할 때 한동안 사라졌던 이 말이 올 하반기에는 다시 유행어처럼 번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린스펀 풋이란 미국 증시 역사상 시장 참여자들에게 가장 높은 신뢰를 받은 그린스펀 전 의장이 일관된 통화정책으로 경기를 조절한 데서 나온 말. 증시 침체로부터 옵션 보유자를 보호하는 풋 옵션과 비슷하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특히 1998년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LTCM) 사태 당시 3회에 걸친 금리인하를 통한 긴급조치로 이를 극적으로 해결한 것은 당시 시장 참여자들의 맹신에 가까운 신뢰를 이끌어냈다.

    좌충우돌 ‘버냉키號’, 美 경제 불안 부채질


    좌충우돌 ‘버냉키號’, 美 경제 불안 부채질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현재 미국 경제는 전방위적인 경기부양에 힘입어 2009년 3·4분기 이후 4분기 연속 잠재성장률을 상회하는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는데, 문제는 FRB의 제로금리 기조가 이미 역대 최장기간에 해당하는 20개월째 이어지면서 각종 경기부양책에 따른 효과가 점차 탄력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 경기 침체 때마다 FRB는 이례적인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며 경기 부양에 나서곤 했는데, 역대 최장기간 저금리 기조가 이어진 경우는 1991년으로 당시 FRB는 무려 17개월 연속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며 U자형 경기 회복에 성공한 바 있다.

    그런데 이제는 경기 회복 초기 단계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하기 위해 개인과 민간기업으로부터 일정 수준의 지출과 투자를 이끌어내는 경기 선순환 구조(고용시장 회복→민간소비 개선→기업투자 확대)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경기 선순환 구조로의 전환 가능 여부를 가늠할 고용시장이 여전히 부진을 거듭하고 있어 머지않은 미래에 이것이 실현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렇다면 소프트 패치에 해당하는 ‘고용 없는 성장’이나마 가능하게 하기 위해 정부의 경기 부양 기조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 통화정책 당국의 일관성 있는 정책과 이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형성돼야 한다. 그래야 적정 수준의 소비와 투자가 이뤄질 수 있다. 그러나 이 또한 버냉키 의장을 필두로 한 FRB 관계자들의 최근 행보를 감안할 때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은 시나리오다.

    오판으로 드러난 출구전략

    지난 2·4분기 초까지만 해도 FRB에 대한 시장의 믿음은 굳건했다, 2월 전격적인 재할인율 인상을 시작으로 3월 말에는 1조2500억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모기지 담보증권 매입 프로그램을 종료하고, 4월 말에는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에 대한 세제혜택을 마무리하는 등 일관적인 통화정책이 지속적인 경기 회복에 대한 믿음을 두텁게 했다. 더욱이 4월 FOMC 정례회의에서 경제성장률 하단을 상향 조정하면서 주요 기관들은 앞다퉈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높이는 등 시장의 높은 신뢰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이들의 경기 판단과 일관되게 진행해온 광의의 출구전략이 오판인 것으로 증명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바로 다음달인 5월의 고용지표 쇼크는 시장에 작지 않은 충격을 줬다. FRB는 바로 다음 FOMC 정례회의에 해당하는 6월 모임에서 유럽발 악재 및 고용시장 부진이라는 다소 군색한 이유로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다시 하향 조정하는 이례적인 조치를 단행한다. 이로 인해 FRB의 경기 판단 능력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간 것은 물론, 불확실성의 증대로 시장은 높은 변동성을 겪게 된다.

    그때까지만 해도 FRB의 경기 조절 능력에 의심을 품지 않던 필자도 7월 하순 버냉키 의장이 미 상원 은행위원회 반기 통화정책 보고에서 보여준 행보에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그는 이틀에 걸친 보고 첫날 의회 증언에서 현재 미국 경제의 향방은 ‘unusually uncertain’ 상태라고 증언하면서 추가적인 경기 부양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아 증시 급락을 초래했다. 그랬다가 다음날에는 경기 하강시 구체적으로 세 가지 큰 틀(이 또한 새로운 것이 아님)에서 경기 부양에 나설 수 있다고 거듭 밝히면서 이번에는 증시 급등세를 이끌어내는 등 중앙은행 수장으로서 미덥지 않은 태도를 보였다.

    버냉키 의장이 경기 하강 대응 방안으로 밝힌 세 가지는 ▲현재의 이례적인 저금리 기조를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지속하는 것 ▲지급 준비금 이자를 제한해서 은행들로 하여금 보다 많은 대출을 유도하는 것 ▲현실성은 높지 않으나 국채와 모기지 증권 매입을 통해 시장에 추가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다. 셋 모두 지금까지 시장과 FRB에서 종종 언급되던 방안으로 새로울 게 전혀 없다. 오히려 시장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즉흥적인 대응에 가깝다는 느낌이다.

    지속적인 성장을 이끌어야 할 FRB의 경기 판단 스탠스가 수시로 뒤바뀌고 버냉키 의장의 발언에 따라 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지는 현상은 FRB의 경기 조절 능력과 일관된 통화정책에 대한 시장의 신뢰에 금이 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에 따른 불확실성 증대는 예상치 못하던 또 하나의 하반기 성장 둔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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