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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획 | 농협 출범 50년, 한국농업이 사는 길 - ②

농촌지도사업에서 구매·판매사업, 신용사업까지…국민기업으로 거듭나

농협의 역사

  • 한상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greenfish@donga.com

농촌지도사업에서 구매·판매사업, 신용사업까지…국민기업으로 거듭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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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협은 1961년 창립됐다. 농업협동조합과 농업은행이 통합되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농업조직이 만들어졌다. 지난 50년간 농협은 숨가쁘게 달려왔다.
  • 농촌과 농업인을 위한 사업에 매진했다. 농촌 지도사업을 벌이는가 하면 농업인을 위한 각종 구매사업, 판매사업을 담당했고 은행을 중심으로 한 신용사업도 크게 키웠다. 한국 현대사를 관통해온 50년 농협의 역사를 되짚어봤다.
농촌지도사업에서 구매·판매사업, 신용사업까지…국민기업으로 거듭나

1961년 8월15일 열린 농협중앙회(종합농협) 창립총회(왼쪽)와 제1회 농협중앙회 정기총회.

농협중앙회는 1961년 설립됐다. 설립 당시 이름은 ‘종합농협’이었다. 그전까지 농협은 농업협동조합과 농업은행으농협중앙회는 1961년 설립됐다. 설립 당시 이름은 ‘종합농협’이었다. 그전까지 농협은 농업협동조합과 농업은행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농민을 위한 경제사업은 농업협동조합이 맡고 신용사업은 농업은행이 맡았다. 1961년 8월15일 통합 당시 종합농협의 출자금은 30억1000만환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농협이 창립 50년을 맞았다.

출범 이후 농협은 여러 가지 사업을 전개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농업인을 돕는 사업을 전개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생활물자사업, 금융사업 등을 통해 일반 국민의 생활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하나로마트 같은 사업을 통해 품질 좋은 우리농산물을 소비자에게 싼값에 공급했다. 그런 점에서 농협은 더 이상 농업인만의 조직은 아니다.

지난 50년간 농협이 벌여온 방대한 규모의 사업은 크게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농촌에 대한 지도사업, 구매사업, 판매사업, 신용사업이 그것이다. 50세 농협의 성장사를 들여다보자.

1 농협 지도사업의 발전

농협은 1961년 창립 이래 농업환경 변화에 발맞추며 다양한 형태의 지도사업을 전개해왔다. 1960년대 종합농협은 농협의 조직기반 확립을 위해 지역조합 정비와 조합원 확대에 주력했다. 그 결과 창립 이듬해인 1962년에는 전국에 걸쳐 2만1000개소가 넘는 지역조합이 설립됐고, 전 농가의 90% 이상인 220만여 명을 조합원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종합농협이 채용한 700여 명의 개척원은 지역조합에 배치되어 조직정비, 조합원 교육, 조합의 사업개발을 담당했다. 이들은 조합 구판장이나 도정공장의 설립과 운영 등을 지원하는 한편 조합원의 출자, 이동조합의 회계처리, 장부정리지도 등의 업무도 수행했다.

1970년대 들어 농협은 때마침 시작된 새마을운동에 발맞추는 식으로 사업을 전개했다. 길을 만들거나 농로를 확장하거나, 지붕 및 담장을 개량하는 것이었다. 급수시설의 설치, 마을하천 및 하수도 정비 등의 사업을 할 때는 행정기관과 유기적인 협조체제를 이뤘다. 1974년부터는 농가소득 증대사업이 본격화됐다. 1970년대 농협이 추진한 각종 지도사업들은 모두 정부의 식량증산정책과 맥을 같이했다. 과학적 영농기술의 보급, 협업생산 장려, 영농자금의 공급, 농기구 공동이용 촉진, 우량종자의 공동구입 사업 등은 모두 먹을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것들이었다. 1977년부터 시작된 영농기계화사업은 이후 육묘기술 보급운동, 농기계수리센터 설치 운동 등으로 이어지며 농업생산성 개선에 획기적인 전기를 가져왔다.

1980년대 들어 농협은 기술 진보, 기계화, 품종개량 등에 박차를 가했다. 다양화, 고급화된 소비자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때부터 작목별로 주요 생산단지가 형성됐고 상업적 영농이 급속히 확산됐다. 농협의 지도사업도 이에 맞게 변모해갔다. 1983년부터 복합영농사업이 시작되면서 쌀과 보리를 중심으로 했던 농업 형태에 축산과 경제작물 등 수익성이 있는 성장작목이 결합됐다. 농협은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고 이에 맞게 농민들을 교육하기 위해 농협대학 내에 새농민기술대학을 설립하기도 했다. 매년 수만명의 농민이 이곳에서 교육을 받았다. ‘영농후계자’라는 이름의 신세대 농업인들이 배출돼 농업의 현대화에 이바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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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greenfi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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