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호

도 넘은 지식경제부의 전관예우

취업제한 업체 무단 입사, 퇴직 이튿날 공기업 출근

  • 정현상│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11-05-20 14: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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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사 대상 20개 협회·재단에 지경부 출신 25.9%
    • 산하기관 60개 상근 임원·감사도 15.7% 차지
    • 전관예우 제한 규정 너무 느슨
    • ‘세 번 돌려막기’ 고리 끊어야
    도 넘은 지식경제부의 전관예우
    최근 국민을 분노케 한 부산저축은행 특혜인출 사태는 퇴직 공무원의 ‘전관예우’가 한 원인이었다. 검찰에 따르면 부산저축은행그룹 계열은행의 감사 4명은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 출신 인사들로 대주주의 지시를 받아 2조3582억원에 달하는 불법대출과 분식회계를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임직원이 취업제한 규정을 피해 관련 기업으로 옮길 수 있도록 정년을 3년 앞두고 직무 연관성이 적은 인력개발실이나 소비자보호센터 등으로 보내 보직 세탁을 해주기도 했다.

    조직적 전관예우는 금융권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법부,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지식경제부(이하 지경부) 등 공무원 사회 전반에 걸쳐 있다. 특히 재계 등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경부는 산하에 60여 개의 공공기관과 2년에 1회 이상 감사하는 영리사기업 협회와 재단 20곳을 두고 있는데 상당수의 퇴직자가 전관예우를 받으며 이곳에 재취업하고 있다.

    ‘신동아’는 최근 한나라당 김태환 의원(경북 구미을)이 입수한 ‘지경부 산하 80개 공기업·공공기관·협회 상근 임원 226명의 명단’을 분석한 결과, 지경부 산하 공기업 및 협회 임원 10명 중 2~3명은 지경부 퇴직 관료임을 확인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지경부의 60개 산하 공공기관 상근 임원·감사 172명 가운데 퇴직 관료는 모두 46명으로 26.7%를, 지경부 출신은 모두 27명으로 15.7%를 차지했다. 지경부가 2년에 1회 이상 감사하는 20개 협회 및 재단의 상근 임원·감사 54명 중에선 퇴직 관료가 21명으로 38.9%, 지경부 출신 인사는 14명으로 25.9%를 차지했다.

    41.8% 한 달 안에 이동

    현행 공직자윤리법상 퇴직 공직자가 공공기관에 취업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그러나 정부 부처의 관리감독이 필요한 곳에 전관이 취업하는 것은 공직자윤리법의 퇴직 후 취업제한제도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있어왔다.



    공무원의 퇴직 후 취업제한제도는 퇴직 공직자 또는 퇴직을 앞둔 공직자의 이해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다. 이해충돌의 우려는 공무원이 현직에 있을 때 취업이 예상되는 직위에 유리한 정책결정을 하거나 감독 등을 소홀히 하며 취업 후 현직의 후배나 동료들을 상대로 정보를 얻는 등의 로비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제기된다.

    또 같은 자료에 따르면 전관 가운데 공무원 퇴직 뒤 한 달 안에 곧바로 현 기관에 취업한 이들이 28명으로 취업자 67명 가운데 41.8%나 됐다. ‘공기업·준정부기관의 인사운영에 관한 지침’에 따르면 퇴직자는 원칙적으로 퇴직일로부터 6개월 이상 지난 뒤 취업이 가능하지만 사원총회, 공개모집, 정부업무 위탁 등의 경우 그 기한 안에 취직하는 것이 허용된다. 그러나 이에 대해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관계자는 “공직자에겐 공직 전념의 의무가 있는데도 권한 많은 고위공직자들이 그 의무를 망각한 채 퇴직 이후의 재취업을 준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그만큼 이해충돌의 가능성 또한 커진다고 볼 수 있다”라고 비판했다.

    취업 제한 사기업 범위 넓혀야

    도 넘은 지식경제부의 전관예우

    과천 정부종합청사의 지식경제부 건물.

    더욱 심한 것은 퇴직자가 공직자윤리법상 취업제한기관에 취업했다가 그 사실이 발각돼 1주일 뒤 퇴직, 다시 2개월 뒤 재입사한 일도 있다. K기업 H 본부장은 지경부 3급 팀장으로 있다가 2008년 10월31일 퇴직 후 3일 뒤인 11월3일 취업 확인(업무 연관성 여부 확인)을 받지 않고 현 기업에 취직했다. 그러나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주일 뒤인 11월10일 퇴직처리됐다. 그러다 2개월 뒤 공직자윤리법 시행령 34조 3항 ‘경영개선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해당돼 다시 취업했다. 이에 대해 H씨는 “퇴직 전 직무와 현재 기업의 업무 관련이 없어 처음부터 공직자윤리위원회를 통과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공직자윤리법과 시행령은 재산등록 의무자 이상의 직위에 대해 퇴직 전 3년간 업무(부서의 업무)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 자본금 50억원 이상·매출액 150억원 이상의 영리사기업 또는 영리사기업의 협회 등에 대해 퇴직 후 2년간 취업을 제한하고 있다. 2년이 지나기 전 이곳에 취업하려면 공직자윤리위원회로부터 취업확인을 받아야 한다. 다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사무를 위탁받아 수행하는 협회나 국가기관이나 지자체 장이 임원을 선임하는 협회 등에는 별도의 규정으로 취업확인이 불필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전관예우 제한 규정이 너무 느슨하다는 비판이 많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퇴직 공무원의 취업 제한 사기업의 범위를 확대하고 업무연관성을 부서가 아니라 부처단위로 판단하고, 공무원이 로펌에 취업하는 것도 제한해야 한다. 또 취업제한과는 별도로 전관이 현직공직자에게 업무와 관련해 관여하는 것을 제한하는 ‘행위제한’제도와 전직 공직자가 업무와 관련해 접촉할 경우 현직 공직자에게 보고를 의무화하는 방안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저축은행 사태’를 계기로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은 4월12일 고위공직자에 한정했던 금융위원회(4급 이상), 금감원(2급 이상)의 전관예우 금지 대상을 전 직원으로 확대하고, 취업제한 사기업의 성격도 퇴직 전 소속 기관 자체의 업무와 관련이 있는 사기업으로 수정한 내용의 공직자윤리법 개정안과 금융위원회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관예우로 요직을 차지한 공무원 퇴직자는 해당 기관 인사적체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H기업의 K팀장은 “아무리 유관부처의 퇴직자라 해도 전문성이 없는 인사가 올 경우 별로 도움이 되지도 않고, 직원들의 불만만 높아진다. 퇴직 후 산하기관·단체를 옮겨 다니는 현상인 ‘세 번 돌려막기’ 관행 등의 낡은 고리는 이번 기회에 끊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한나라당 김태환 의원은 “전관예우의 병폐는 금융권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다. 퇴직 공무원의 유관기관 취업은 정부정책 결정과 감사기능에 대한 로비의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는 만큼 공직자윤리법을 지금보다 한층 강화해 부작용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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