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호

고도성장 대신 내실 택한 중국, 한국의 대응전략은

  • 한재진│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hzz72@hri.co.kr

    입력2011-05-20 14: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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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 초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 업무보고를 통해 중국 정부는 올해부터 시작되는 제12차 5개년 개발계획 기간 중 성장률 목표를 연평균 7%로 낮추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동안 유지해온 급속한 성장기조의 깃발을 내리고, 이제는 양적 성장보다 질적 성장에 중점을 두겠다는 취지.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해온 중국의 이러한 정책 수정이 세계 경제는 물론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은 구체적이면서도 심대하다. ‘신동아’가 각 전문기관의 연구결과물을 검토해 선정한 이달의 보고서는 현대경제연구원이 4월 말 발표한 ‘중국 성장정책 전환과 파급 영향’이다.
    12차 5개년 개발계획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중국의 성장정책 기조를 규정하는 청사진이다. 중국 정부가 이를 기존의 고성장 위주 정책에서 민생, 혁신, 환경을 통한 질적 성장으로 전환했다는 것, 아울러 글로벌 균형을 위한 안정적인 성장 전환을 목표로 삼았다는 것은 향후 5년간 중국의 경제정책 운용이 이제까지와는 사뭇 다른 색깔로 진행될 것임을 의미한다. 말 그대로 거대한 전환의 시기다.

    이제까지 중국의 성장정책은 개발 초기, 고도 성장기, 질적 성장기의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개발 초기 성장정책은 공업화를 목표로 한 불균형 성장전략을 핵심으로 한다. 이 무렵 중국은 중공업 분야를 지원하기 위해 농업부문의 집단화를 추구했지만, 결론적으로는 기술이 정체되고 자본효율이 하락하는 뼈아픈 결과만을 얻었다.

    다음 시기에 해당하는 고도 성장기에 접어들어 산업화와 현대화가 성장목표로 설정되면서 중국은 과감한 투자와 수출, 저가의 노동집약적 요소를 활용한 개방화 정책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러한 투자주도형 성장방식은 그간 물가상승 같은 거시경제 불안이나 소득격차의 확대, 소비시장 발전 저해와 환경오염 같은 다양한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저가의 노동력을 이용한 단순 제조업 위주의 수출주도형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면서 오히려 기술집약적 첨단산업은 상대적으로 열세에 놓이는 역설도 생겨났고, 이는 결국 대외적으로 미국과의 무역 불균형 문제를 확대시키는 근본요인으로 작동하게 된다. 정부가 공업화 전략의 중재자 역할을 오랫동안 맡아오는 바람에 재정시장이나 금융시장에서도 구조적 모순이 발생해 현재까지도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중국이 꺼내든 카드가 바로 질적 성장기로의 전환이다. 민생안정과 기술혁신, 환경개선을 추구하고 글로벌 불균형을 안정화하는 질적 구조로 전환하는 성장정책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12차 5개년 계획은 기존의 고성장 정책을 점차 완화하고 내수 확대를 통한 지속적인 성장세 유지에 초점을 맞추는 한편 차세대 신성장동력을 발굴하는 작업에 역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정책 전환의 주요 방향으로는 우선 그간의 고성장 기간에 확대된 계층 및 지역 간 소득격차와 민생불안 요소를 제거하는 작업이 있다. 또한 수출 위주의 외연적 성장정책으로 불거진 글로벌 무역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수입 간소화나 관세 인하조치를 통한 수입 중심 정책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것도 한 축을 담당한다. 환경오염 문제의 경우 전통적 제조업에서 벗어나 친환경·첨단 혁신산업을 육성하는 정책적 집중과 함께 서비스업 비중의 확대가 예상된다.



    고도성장 대신 내실 택한 중국, 한국의 대응전략은
    폭등하는 물가, 가중되는 마찰

    물론 이러한 성장정책 변화는 그간 중국 경제가 경험해야 했던 다양한 현상적, 구조적 배경을 숙고한 결과물이다. 먼저 현상적인 배경을 살펴보자. 개혁개방 이후 투자 위주의 성장 방식이 계속되면서 가중된 물가상승 압력과 부동산 리스크는 중국 경제의 발전에 큰 걸림돌이 돼왔다. 한마디로 지나친 과열현상이었다. 소비자물가지수만 봐도 개혁개방 시기부터 지금까지 고도의 성장정책을 유지하기 위한 긴축과 확장의 거시조절 정책에 따라 물가는 상승과 하락을 주기적으로 반복했다.

    특히 최근 10년간 소비자물가지수는 2008년 5.9%로 최고점을 찍은 후 글로벌 금융위기로 잠깐이나마 -0.7%의 하락세를 보였지만 2010년부터 다시 과열조짐이 보이더니 3.3%까지 상승했다. 또한 부동산 가격도 2007년부터 중국경제에 주요 불안요인으로 작용하면서 경제의 연착륙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부동산가격지수는 2007년부터 증가율이 등락을 반복했지만 최근 2년간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규제대책으로 다소 주춤해졌다. 2010년 말 현재 전년 같은 달 대비 부동산가격 상승률은 6.4%로, 2010년 4월의 12.8%에 비해 절반으로 떨어졌다.

    대외거래 측면에서도 정책전환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수출주도형 정책이 추진되는 동안 대미(對美) 무역흑자가 증대되면서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마찰이 비등점을 넘어선 것이다. 2010년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 규모는 2000년에 비해 약 다섯 배까지 증가한 반면, 미국은 반대로 대중 무역적자가 두 배로 늘어났다. 최근 10년간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 증가율이 커질 때마다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 증가율도 동반해서 상승하는 패턴이 반복돼온 것이다.

    규모로 따져보자면 중국은 2007년부터 미국의 최대 수입국이 됐다. 2010년 현재 미국이 중국으로부터 수입한 규모는 3600억달러를 넘어섰고, 이는 2000년의 1000억달러에 비해 3.6배가량 증가한 것이다. 이렇게 미·중 간 무역 불균형이 심화되면서 중국은 위안화 시스템을 2005년 7월부터 관리변동환율제로 전환했지만, 고정환율제와 유사한 ‘크롤링 페그(crawling peg)’ 제도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당분간 갈등이 누그러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곳곳에서 나타나는 불균형

    다음으로는 구조적인 배경을 살펴보자. 먼저 계층 간, 지역 간 소득격차 문제다. 중국 정부는 10차 5개년 계획 시기(2001~05년)부터 농업의 산업화 추구를 통해 농촌 지역의 소득증대 정책을 중시해왔고, 그 결과 2010년 말 농민의 1인당 평균 순소득이 전년 동기 대비 상승률에서 도시민보다 약 3.6%p 높아지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2010년 도시 주민의 1인당 처분가능 소득은 약 1만9000위안으로 농촌의 5900위안에 비해 여전히 세 배 이상의 큰 격차가 존재한다. 지역적으로도 창장삼각주(長江三角洲)와 주장삼각주(珠江三角洲)를 중심으로 하는 동부 연해지역과 동북3성이나 쓰촨성 등 비교적 낙후한 지역 사이의 소득 불균형 문제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이러한 소득격차의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차별화된 ‘선부론(先富論)’적 경제정책으로 공평 분배 시스템이 약화됐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소비구조 측면 역시 적지 않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공업화 전략으로 나타난 과잉저축 경향이 오랫동안 체화되면서 상대적으로 낮은 소비성향을 보였다. 개혁개방부터 현재까지 소비, 투자, 경상수지의 경제성장 기여율을 시계열적으로 추정해보면 소비의 기여율은 2010년 46%로 1978년 48%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정도다. 이는 2010년 현재 미국과 독일 등 선진공업국과 비교해보면 30~40%p 낮은 수준이다. 반면 투자의 기여율은 중국이 30%p 이상 높은 수치를 보인다.

    이러한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은 개발초기 공업화정책으로 누적된 높은 저축 경향이 개혁개방 이후 도시화와 현대화의 정책적 수요로 더욱 강해지면서, 소비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2010년 중국 저축의 성장 기여율은 미국과 독일에 비해 각각 42%p, 31%p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재정인 금융 측면에서도 구조적인 문제를 찾을 수 있다. 지방정부의 재정수입원 구조가 편중되는 것이나 금융 자산규모의 불균형이 확대되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중국통계연감에 따르면 중국의 중앙과 지방 간 재정수입 비중은 1994년 분리과세제도(分稅制) 개혁 이후 기존의 3대 7에서 5.5대 4.5로 비교적 균등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이를 좀 더 자세히 계산해보면 중앙정부에 비해 지방정부의 재정수입원은 토지관련 부문이 전체 세수 수입의 25%를 점유할 정도로 심각하게 편중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금융시장의 구조적 불균형은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예를 들어 중국은행감독위원회와 상하이증권거래소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은행산업과 자본시장의 규모는 각각 약 95조위안(14조달러, GDP 대비 237배)과 23조위안(약 4조달러, GDP대비 57배)으로 분석되고 있다. 세계적인 소매뱅킹으로 성장하고 있는 은행부문에 비해 자본시장 규모는 은행산업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 12차 5개년 계획부터 자본시장을 육성하는 정책의 채택이 불가피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산업 측면에서는 개혁개방 이후 산업화 정책으로 야기된 심각한 환경오염 문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 2008년 분석에 따르면 이미 세계 1위의 에너지 소비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2030년에는 총 에너지 수요가 약 38억 TOE(석유환산톤)에 달해 세계 에너지 소비의 2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따라 발생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예상량도 세계 총배출량의 40%에 달해 그 심각성은 나날이 증대되고 있다.

    이러한 환경오염 문제에는 공업화 등 산업화 전략과 도시화를 통한 현대화 전략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저가의 노동력을 이용한 제조업 위주의 노동집약적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에 비해 최첨단 기술집약 산업은 일부를 제외하고 전반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무르는 점도 향후 차세대 성장산업 육성이 절대적인 과제로 떠오른 이유다.

    고도성장 대신 내실 택한 중국, 한국의 대응전략은


    고도성장 대신 내실 택한 중국, 한국의 대응전략은
    위협과 기회

    이러한 배경하에 단행된 중국의 성장정책 전환은 한국 경제에도 다양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단기적인 변화는 물론 중·장기적으로도 위협요인과 기회요인을 동시에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먼저 단기적 위협요인으로는 중국의 성장둔화에 따른 대중(對中) 수출 감소가 대표적이다. 이와 함께 중국 정부가 지역 간 소득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지역별로 임금을 차등적으로 적용하게 되면 주로 동부 지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채산성도 악화될 공산이 크다. 3조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의 해외진출이 더욱 확대될 경우 대량의 차이나머니가 국내에 유입되면서 통화정책의 탄력성이 저하되는 등의 부작용도 우려된다. 반면 소득이 증대되면서 한국을 찾는 중국인 여행자수가 늘어나는 것은 국내 관광산업 발전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와 함께 다양한 문화 콘텐츠 산업 활성화로 한국의 기획력을 활용할 기회도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중장기적인 위협요인으로는 먼저 중국이 IT와 친환경산업을 결합한 신성장산업을 발전시키는 경우를 상정해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아직까지 유럽이나 미국, 일본에 비해 기술경쟁력이 낮은 한국이 국제시장에서 가장 먼저 잠재적인 위협을 받을 것으로 우려된다. 그러나 역시 중국의 내수가 확대되면서 한국의 소비품이나 중간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다면 수출증대로 이어질 수도 있다. 또한 친환경 산업정책이나 복지 관련 서비스 업종의 투자확대를 통해 국내 산업이 한단계 발전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듯하다.

    새로운 경쟁력 확보 전략

    이처럼 다양한 위협과 기회를 동시에 살펴보고 나면, 한국의 선택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도 가늠할 수 있게 된다. 중국이 내수확대를 통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하고 있음을 겨냥해 무역품목을 확대하고, 투자 및 사업 분야에서 타기팅 전략이나 금융상품의 맞춤형 설계가 필요한 것이다. 산업측면에서는 무엇보다 기술혁신을 통한 경쟁력 확보가 급선무다.

    먼저 무역품목의 경우 자본재와 중간재를 위주로 하는 기존의 수출구조에서 소비재의 비중을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대중 수출 가운데 소비재 비중은 2007년 7%에서 2010년(1~5월) 10%로 소폭 상승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좀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

    투자 및 사업 분야의 타기팅 전략을 수립하는 과정에서는 제조업 위주의 투자항목을 유망 서비스업종으로 확대하고 신개념 콘텐츠 개발을 통한 틈새시장 공략을 시도해야 한다. 또한 내수시장의 핵심인 유통시장 진출은 지역별 산업특화 정책에 맞춰 온라인 쇼핑분야를 자동차부품이나 타이어, 게임, 제과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해야 하며, 젊은 네티즌의 정보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는 소셜커머스(Social Commerce), 중국 노령화를 겨냥해 헬스케어를 응용한 안티에이징(anti-aging), 친환경 콘셉트 분야의 아이디어 상품을 판매하는 신개념 사업 창출 등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중국 현지 금융 분야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방안을 모색할 때가 왔다. 중국 경제의 소비확대와 민생안정 기조가 유지될 경우 소매금융이 활성화될 것이므로 국내 은행들의 적극적인 현지법인 설립과 중국 현실에 맞는 맞춤형 금융상품 개발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현지 은행의 소매금융 발전과 사회복지 향상 추세에 맞춰 소비형 펀드 등의 금융상품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끝으로 중국의 성장정책 전환이 한국에 제기하는 가장 절실한 과제는 산업기술 혁신을 통한 경쟁력 확보다. 차세대 성장동력 분야의 자체기술을 개발해 기술경쟁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금세 중국의 위협에 시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원절약이나 친환경 분야에서 한국은 여전히 주요 선진국에 비해 기술력과 비전의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인천 송도 등 이미 설치돼 있는 경제특구지역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IT와 의료, 바이오, 물류 등 새로운 첨단 성장분야를 개척하는 전략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중국 성장정책은 한국에도 이제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경쟁력 확보전략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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